시점 · 강민 — 균열·낙인 단계

프롤로그: 잿더미에서 피어난 푸른 증기

第1部 · 話 0 · 검령성 · published

세상이 한 번 죽은 날, 하늘은 검지 않았다. 오히려 너무 밝았다.

태양이 수백 개로 찢겨 대륙 곳곳에 떨어진 듯, 지평선마다 흰빛이 솟구쳤고, 산맥은 그림자도 남기지 못한 채 녹아내렸다. 바다는 끓었고, 강은 거꾸로 증발했으며, 도시들은 이름을 잃기 전에 먼저 형태를 잃었다. 철과 유리와 살과 뼈가 같은 색의 재가 되어 하늘로 흩어졌다. 사람들은 그것을 훗날 핵멸망(核滅亡)이라 불렀다. 그러나 그날을 직접 본 자들은 그 이름을 쓰지 않았다. 그들에게 그것은 전쟁이 아니었다. 심판도 아니었다. 단지, 인간이 인간을 이해하지 못한 끝에 스스로에게 내린 마지막 판결이었다.

3차 세계대전.

문명의 절정에서 시작된 그 전쟁은, 문명의 기억을 남김없이 불태우며 끝났다. 인간은 스스로 만든 빛으로 밤을 지웠고, 스스로 만든 불로 태양을 복제했으며, 스스로 만든 무기로 창조의 영역에 손을 댔다. 그리고 그 대가로, 지상의 95퍼센트가 사라졌다. 도시는 무너졌고, 국가는 침묵했으며, 바다 건너의 언어들은 더 이상 대답하지 않았다. 한때 하늘을 누비던 비행체들은 녹슨 골조만 남긴 채 사막에 박혔고, 대륙을 잇던 철도는 끊어진 회선처럼 폐허 사이에 늘어졌다. 위성은 추락했고, 전력망은 꺼졌고, 데이터는 재로 사라졌다. 그러나 인간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남은 5퍼센트.

그들은 재 속에서 손을 뻗었다. 처음에는 먹을 것을 찾기 위해, 다음에는 숨을 곳을 찾기 위해, 그리고 마침내 서로를 찾기 위해. 그들은 폐허 속에서 과거의 찬란했던 전기 문명을 되살릴 수 없었다. 너무 많은 지식이 불탔고, 너무 많은 기술자가 죽었으며, 너무 많은 도시가 지워졌다. 그러나 인간에게는 한 가지 묘한 본능이 있었다. 닿을 수 없는 것을 잃으면, 손이 닿는 것을 붙잡는 본능. 그들은 다시 물을 끓였다. 다시 쇠를 달구었고, 다시 톱니를 깎았다. 그리고 다시 압력계의 눈금을 그렸다.

증기(蒸氣)가 돌아왔다.

과거의 인간이 한때 낡은 기술로 여겨 밀어두었던 그 힘이, 새 시대의 첫 심장이 되었다. 물과 불, 압력과 톱니, 밸브와 피스톤. 사람들은 무너진 원자로의 잔해에서 살아남은 금속을 뜯어내어 보일러를 만들었고, 군함의 껍질을 녹여 농기구를 빚었으며, 고층 도시의 철골을 잘라 성벽을 세웠다. 그리고 폐허의 가장 깊은 자리에서, 인간은 또 다른 것을 발견했다.

코테르. 정확히는 Koter.

옛 과학자들은 그것을 변이 광물이라 기록했지만, 새 시대의 사람들은 그것을 코테르(Koter, 煤特) — 잿더미 속에서 태어난 검은 돌 — 이라 불렀다. 핵의 불길이 지상의 금속과 광물, 인간의 피와 뼈, 짐승의 유전자와 대지의 독을 한데 뒤섞어 만들어낸 결정체. 세계의 상처가 그대로 굳어버린 잔해. 코테르는 단순한 광물이 아니었다. 그것은 열을 품었고, 기억을 품었고, 때로는 사람의 기맥(氣脈)에 직접 반응했다.

어떤 코테르는 물을 끓이지 않고도 증기를 뿜어냈다. 어떤 코테르는 쇠를 사람의 피부처럼 움직이게 했다. 또 어떤 코테르는 인간의 몸속에 잠들어 있던 능력을 강제로 끌어냈다. 축복처럼 보였고, 저주처럼 작동했다. 코테르를 손에 넣은 자들은 살아남았다. 코테르를 다룰 줄 아는 자들은 지배했다.

그리하여 200년이 흘렀다.

폐허 위에 성이 세워졌고, 성 위에 문파가 생겼으며, 문파는 다시 국가로 굳어졌다. 사람들은 더 이상 옛 세계의 지도를 믿지 않았다. 바다는 달라졌고, 산맥은 무너졌으며, 독으로 뒤덮인 평야와 변이 생물의 숲이 옛 국경선을 통째로 삼켜버렸다.

거친 대륙은 각기 다른 생존 철학을 가진 10대 세력으로 갈라져 있었다. 철도와 거대 증기탑을 세우고 인간 개조를 통해 '완전한 인간기계 신선'을 꿈꾸는 잔혹한 기계중원. 효율과 이성을 위해 인간의 감정 자체를 삭제해버린 차가운 북해연방. 사막 위에서 환영술과 기억 조작으로 사람들을 지배하는 서역연맹. 화려한 황금 뒤에 노예 노동의 어둠을 숨긴 해상 강국 남해제국. 이 네 세력이 대륙의 패권을 다투고 있다. 여기에 해적들의 동해열도, 변이 수인들의 야수영역, 붉은 화산 지대의 마족지대, 그리고 억압받는 노동자들의 스팀갱 연합지와 그림자의 사파연합지가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거대한 혼돈의 연대기를 이어가고 있다. 그리고 그 모든 세력의 무공과 기공, 증기병기와 코테르 기술이 뒤섞인 세계를 사람들은 이렇게 불렀다.

네오무림(Neo武林).

강호(江湖)는 돌아왔다. 그러나 옛 강호는 아니었다. 검객은 검만 들지 않았다. 검자루에는 황동 실린더가 박혀 있었고, 검신 안쪽에는 작은 코테르 정제소가 숨어 있었다. 도사들은 도포 안에 증기압 조절기를 차고 다녔다. 살수들은 침묵 대신 무음 피스톤을 사용했다. 문파의 산문(山門) 위에는 현판과 함께 압력계가 걸렸고, 사찰의 법당 뒤편에서는 기계목어(機械木魚)가 일정한 박동으로 울었다. 인간은 다시 강해졌다. 그러나 강해진 인간은 다시 같은 질문 앞에 섰다. 힘은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그 질문에 가장 먼저 답하려 한 것은 두 개의 나라였다.

수많은 세력 가운데 주인공 강민(剛民)의 고향, 해동제국(海東帝國)은 특별했다. 핵전쟁 이전 동방의 잔존 기술과 고대의 기공학(氣功學)을 가장 조화롭게 결합한 이 나라는, 기계가 인간을 지배하지도, 인간이 기계를 거부하지도 않는 '기계와 무공의 균형'을 제국의 신조로 삼았다. 수도 해룡성(海龍城)을 중심으로 밀월성·청혈성 같은 견고한 요새를 구축하며 번영해 온 해동제국은, '동이(東夷)의 각성'을 상징하는 동방 최후의 보루였다.

반면 기계중원은 거대했다. 그들의 도시는 증기탑으로 하늘을 찔렀고, 그들의 철도는 대륙의 혈관처럼 뻗어갔다. 중원의 관료들은 사람의 재능까지 도표로 기록했고, 무공의 경지를 수치로 환산했으며, 코테르 반응을 등급과 병력 단위로 분류했다. 그들은 혼란을 싫어했다. 인간의 감정, 우연, 자비, 변덕 같은 것들을 비효율이라고 불렀다.

두 나라는 서로 달랐다. 그러나 한때, 두 나라는 같은 꿈을 꾼 적이 있었다. 그 꿈의 이름이 바로 잃어버린 동맹이었다. 공식 기록에는 어디에도 남아 있지 않다. 황실의 역사서에도, 중원의 정사에도, 문파들의 족보에도 그 이름은 없다. 그러나 가장 깊은 지하 서고와 봉인된 연구소의 벽면, 그리고 죽기 직전의 노인들이 남긴 떨리는 증언 속에는 그 이름이 분명히 살아 있다.

해동과 중원은 핵멸망 이후 인류가 다시 같은 파멸을 맞이할 것이라고 두려워했다. 그들은 인간이 너무 약해서 멸망했다고 믿었다. 몸은 방사능에 약했고, 마음은 공포에 약했으며, 국가는 욕망에 약했다. 그러니 인간을 바꾸어야 한다고 결론지었다. 더 강한 인간. 더 오래 견디는 인간. 기계와 결합하고, 코테르를 받아들이며, 독과 열과 방사능 속에서도 살아남는 인간.

인류 강제 진화 프로젝트.

처음에는 구원처럼 보였다. 해동의 의공사들은 사람의 기맥과 기계 회로를 연결하는 방법을 연구했고, 중원의 기술자들은 코테르(Koter, 煤特)를 정제해 인체가 받아들일 수 있는 형태로 가공했다. 해동 황실의 백씨(白氏) 가문은 그 결과물 위에 청염기관(靑炎器官)의 원형을 설계했다. 그것은 인간의 심장과 기계 반응로 사이에 놓인 금기의 장기였다. 제대로 사용하면 죽어가는 몸을 살릴 수 있었고, 잘못 사용하면 인간을 살아 있는 병기로 만들 수 있었다. 그 무렵 기계중원에는 한 남자가 있었다.

독고류(獨孤流).

훗날 흑천기황이라 불리게 될 자. 젊은 시절의 그는 학살자가 아니었다고 한다. 오히려 무너지는 도시에서 아이들을 구했고, 코테르 중독으로 죽어가는 병사들을 살리려 자기 몸을 실험대 위에 올렸으며, 인간이 다시는 핵멸망 같은 어리석음을 반복하지 않게 하겠다고 맹세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구원의 맹세는 때때로 가장 잔혹한 폭력이 된다.

그는 인간의 선의를 믿지 않았다. 국가의 양심도 믿지 않았다. 사랑과 우정과 용서 같은 말들은 전쟁 앞에서 장식품에 불과하다고 여겼다. 인간을 자유롭게 두면 언젠가 다시 멸망을 선택할 거라고 확신했다. 그래서 그는 결론을 내렸다. 인류는 스스로 진화하지 않는다. 그러니 강제로 진화시켜야 한다.

해동의 학자들 가운데 일부가 뒤늦게 두려움을 느꼈다. 청염기관은 치료의 도구가 아니라 지배의 도구로 바뀌고 있었고, 코테르 이식 실험은 환자를 살리는 수술이 아니라 병사를 찍어내는 공정으로 변해 있었다. 해동 황실 내부에서도 의견이 갈렸다. 한쪽은 중원과 함께 가야 살아남는다고 주장했고, 다른 한쪽은 그 길 끝에 또 다른 핵멸망이 있다고 경고했다. 해동은 결국 이 모든 실험의 봉인을 주장했고, 기계중원은 완성을 요구했다.

중원의 사절들은 회담장에서 웃으며 협상을 이어갔다. 그러나 그들의 증기열차는 밤마다 더 많은 병력을 국경으로 실어 날랐다. 해동 황실은 흔들렸고, 대신들은 서로를 의심했으며, 연구소의 문은 하나 둘 닫히기 시작했다.

해동기공(海東機工): 강민 일대기 — 코테르의 검, 네오무림의 심장.

— 話 0 終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