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점 · 강민 — 균열·낙인 단계

기름 냄새 섞인 새벽의 고동

第1部 · 話 1 · 검령성 · published

海東曆: 201년 4월 20일 · 검령성 도장

검령성(劍靈城)의 새벽은 종소리보다 먼저 냄새로 왔다. 밤새 식지 않은 윤활유가 돌바닥 틈에서 눅진하게 올라왔고, 석탄재 냄새가 물기 어린 안개와 섞여 쇠맛 나는 탁한 공기를 만들었다.

해동제국(海東帝國) 변방의 검령도장(劍靈道場) 간판에는 ‘무공은 사람을 떠나지 않고, 기계는 사람을 앞서지 않는다’는 문구가 닳은 채 새겨져 있었다. 그 지하 보일러실은 마당보다 네댓 도쯤 더 뜨거웠다.

강민(剛民)은 주보일러의 메인 밸브 앞에 무릎을 꿇고 있었다. 이틀 전 만 열여덟 살이 되었지만, 그에게 생일은 수련 횟수가 하나 늘어난 날에 가까웠다.

밸브는 보통 수련생 둘이 함께 밀어야 돌아갔다. 강민은 손잡이를 잡지 않고 두 손을 세 뼘 떨어뜨린 채 눈을 감았다. 증기의 떨림이 발목에서 가슴까지 번졌다. 남들에게는 소음일 뿐이었지만, 강민은 그 떨림에서 뜻을 읽어냈다.

“너무 빨라. 왼쪽 냉각선은 밤새 식지 않았고, 압력계 수치도 아직 맞지 않아.”

손가락을 구부리자 밸브 주변의 김이 얇게 갈라졌다. 끼익, 쇠가 긁히는 소리와 함께 톱니가 한 칸 움직였다. 그 순간 가슴 왼쪽 깊은 곳이 희미하게 울렸다.

통증도 열도 아니었다. 아무도 두드리지 않은 문이 안쪽에서 한 번 흔들린 느낌이었다.

“보일러 진동이 옮은 거야. 조금만 더.”

바늘이 붉은 선 가까이 치솟았다. 왼손을 낮추자 치익, 배출구가 열리고 흰 김이 솟았다. 바늘은 위험선 앞에서 멈췄다. 딸랑, 딸랑. 계단 위에서 방울이 울렸다.

“강민아.”

“누나, 벌써 일어났어?”

“벌써가 아니라, 네가 또 너무 일찍 내려온 거야.”

등롱을 든 유서란(柳瑞蘭)이 계단을 내려왔다. 약초 냄새가 기름 냄새와 섞이자 아침이 시작되는 기분이 들었다. 그녀는 압력계, 배관, 강민의 얼굴빛 순으로 살폈다.

“오늘은 출력이 안정적이었어. 보조 냉각선이 어제보다 조금 늦게 열렸는데, 윤활유가 굳어서 그런 것 같고.”

“그 말은 아침을 안 먹었다는 뜻이지?”

“……그건 아니고.”

“그럼 먹었다는 말도 못 하네. 이틀 전에 내가 삶아 준 달걀이 마지막이었던 건 아니고?”

“달걀도 먹었고, 사부님 연경단도 먹었고, 비호 책갈피랑 무겸 형 손목 끈도 잘 챙겼어!”

“먹은 게 달걀이랑 단약뿐이라는 얘기네. 손 줘 봐.”

서란이 손목을 잡았다. 손끝은 차가웠지만 진맥이 시작되자 놀랄 만큼 안정적이었다.

“손끝은 따뜻한데 손목 안쪽이 차. 기운을 위로만 끌어올렸구나.”

“밸브가 위쪽에서 걸렸어.”

“그러면 몸도 같이 위로 걸리지. 내가 몇 번을 말했어. 기계와 맞춘다는 건 기계가 되는 게 아니라고.”

“알아, 누나. 그런데 기계가 몸 바깥에만 있는 것 같지가 않아. 압력이 오르면 내 맥도 팽팽해지고, 냉각선이 열리면 혈관 안쪽까지 서늘해져.”

“그건 위험한 말이야.”

“위험한데…… 이상하게 편해. 오래전부터 알던 감각이 다시 돌아온 것 같아서.”

서란은 말없이 그를 보다가 낮게 물었다.

“가슴은?”

“괜찮아.”

“괜찮다는 말은 진단 결과가 아니야.”

“아프지는 않았어. 그냥 보일러가 크게 울렸을 때 내 맥도 같이 흔들린 것 같아서.”

거짓말은 아니었지만 전부도 아니었다. 서란은 더 캐묻지 않고 약함에서 작은 병을 꺼냈다.

“먹어. 위를 비운 채로 단전 기운을 오래 쓰면 내장이 먼저 지쳐. 몸은 부품이 아니야. 닳으면 바꾸면 되는 물건이 아니라고.”

강민이 쓴 환약을 삼키고 얼굴을 찡그리자 서란이 그제야 웃었다.

“이틀 전 생일 때는 어른이 됐다고 그렇게 우기더니, 약 맛에는 아직도 아이네.”

“어른도 쓴 건 싫어해.”

“그 말은 인정.”

계단 위에서 뭔가 모서리에 부딪히며 굴러 내려오는 소리가 났다. 탕, 탕, 타닥.

“민이 형! 아직 살아 있어요?”

“살아 있냐니. 아침 인사가 그게 뭐냐?”

“새벽에 지상 정비실 바닥이 두 번 울렸단 말이에요. 또 형이 주보일러랑 씨름하겠구나 했죠. 이번엔 몇 칸 움직였어요? 세 칸? 네 칸? 혹시 손도 안 대고 여섯 칸?”

공구가방을 멘 단비호(段飛虎)가 압력계에 코를 붙이고 바늘부터 확인했다. 허리춤에는 땅콩이라 부르는 작은 망치가 달랑거렸다.

“세 칸 반.”

“세 칸 반이라니, 세상에서 제일 사람 놀리는 숫자네요. 반 칸은 뭐예요, 반 칸은. 톱니한테 예의를 갖추세요.”

비호는 밸브 아래로 손을 밀어 넣어 굳은 윤활유를 찍어내고는 냄새를 맡더니 혀를 찼다.

“이거 어제 제가 바른 게 아니에요. 누가 주방선용 묽은 기름을 여기에 발랐네. 그러니까 새벽에 걸리죠. 기계도 기름이 안 맞으면 움직임이 둔해진다고요.”

“비호야. 기름을 입에 가까이 가져가지 말랬지.”

“안 먹었어요. 냄새만 맡았어요.”

“그걸 구별하면 혼나지 않을 거라 생각하는 게 더 문제야.”

“알겠습니다, 의공사님. 제 코의 안전을 위해 앞으로 냄새는 형에게 맡기겠습니다.”

“나는 왜?”

“형은 기계랑 대화하잖아요. 냄새 통역도 해야죠.”

서란이 웃음을 터뜨렸고, 강민의 어깨도 풀렸다. 이런 아침이 있는 동안에는 이곳이 무너지지 않을 것 같았다.

위층에서 나무봉이 바닥을 두드렸다. 규칙적이고 단단한 걸음이었다.

“강민, 사부님께서 새벽 수련을 마당에서 이어가라 하셨다.”

지하 입구에 기대선 장무겸(張武謙)이 목검을 내밀었다. 스물여덟의 창술가는 형 같기도, 훈련 감독 같기도 한 얼굴이었다.

“보일러는 충분히 달궜다. 이제 네 몸이 달궈졌는지 볼 차례다.”

“예, 형. 비호야, 너도 올라와서 구경이나 해.”

“구경이 아니라 기록입니다. 기록!”

“그럼 민이가 날아가는 장면이나 정확히 적어라.”

“그건 이미 두 번 적었어요!”

마당에 올라서자 북쪽 능선 너머 기계중원(機械中原)의 증기탑들이 안개 속에서 검은 윤곽으로 솟아 있었다. 회랑 아래에는 설무진(雪武陳)이 서 있었다. 쉰일곱인데도 등이 굽지 않았다.

“사부님.”

“몸은 어떠냐.”

“괜찮습니다.”

“괜찮다는 말은 쉬운 말이다. 쉬운 말일수록 자주 틀린다.”

강민은 약초 바구니를 정리하는 서란을 슬쩍 보았다.

“아프면 바로 말해.”

서란은 그렇게만 말하고 모르는 척했다. 도장 어른들은 가끔 한 사람처럼 말했다.

“무겸이와 세 합. 힘을 이기려 하지 말고 소리를 들어라.”

“소리 말입니까?”

“네 귀가 아니라 뼈로 듣는 소리다.”

“간다. 눈으로 창끝을 쫓으면 첫 합에 끝난다.”

연습용 금속 고리를 낀 무겸의 창이 땅을 긁고 올라와 오른쪽 어깨를 노렸다. 강민은 창끝 대신 창대가 밀어내는 공기와 무겸의 발이 남기는 압력을 읽었다. 탕, 목검이 창대를 받쳤다.

“늦다.”

“알아요, 형!”

두 번째 공격이 훨씬 가까이 파고들었다. 물러서려던 강민은 발을 멈췄다. 압력은 피하기만 하면 더 크게 날뛴다. 반 발 앞으로 들어가 힘을 비껴냈다.

“오, 이번엔 안 물러났다!”

“시끄럽다, 비호. 구경은 조용히 해라. 민아, 손목은?”

“저릿해요. 그래도 중심은 안 무너졌어요.”

“그럼 다음이다.”

“무겸 오라버니, 아이 손목 부러뜨리지 마세요.”

“부러뜨릴 만큼 세게 안 한다. 그리고 이 녀석은 아이가 아니다.”

세 번째 합은 느리게 왔다. 마지막 순간 창끝이 발목으로 낮아졌고, 강민의 몸이 뛰어오르려는 찰나 설무진의 목소리가 날아왔다.

“뛰지 마라.”

강민은 발바닥을 돌에 붙이고 무릎의 힘을 풀었다. 그 순간 왼쪽 가슴이 울렸다. 웅. 아까보다 분명하고 낮고 깊었다. 마당의 배관도, 무겸의 창도, 돌바닥도 그 울림에 맞춰지는 듯했다.

목검이 창대를 타고 안쪽으로 미끄러져 무겸의 가슴 앞에서 멈췄다. 마당이 조용해졌다.

“어? 방금 형이 이긴 겁니까?”

“이겼다고 하기에는 얼굴이 너무 놀랐는데.”

“그래도 창이 형 가슴 앞에서 멈췄잖아요. 기록관 판정으로 민이 형 판정승!”

“기록관 판정은 기각이다.”

무겸이 창을 거두며 웃었다. 강민은 땀에 젖은 손바닥을 내려다보았다. 의도한 움직임이 아니었다. 설무진은 칭찬도 꾸짖음도 아닌 눈으로 그를 보고 있었다.

“사부님, 방금은……”

“네 몸이 들은 거다.”

“제가 한 게 아닙니다.”

“그래서 더 조심해야 한다.”

설무진은 그 말만 남기고 회랑으로 돌아섰다. 사부에게는 열쇠가 보이지 않는 방이 하나 있었다. 오늘은 그 안에서 아주 작은 금속음이 들린 듯했다.

◆

식당에는 쌀죽 김이 올랐다. 서란이 넣은 씁쓸한 약초 냄새가 났다. 비호는 자기 그릇 옆에 절인 무를 높이 쌓고 있었다.

“비호야, 그건 반찬이지 탑이 아니다.”

“성벽 축조 훈련입니다.”

“먹는 것으로 성벽을 쌓으면 적이 오기 전에 네가 먼저 무너진다.”

“그럼 무겸 형은 창으로 먹으면 되겠네요. 어차피 길잖아요.”

“이 녀석이……”

“둘 다 조용히 먹어. 죽 식어.”

“누나, 죽에 약초가 너무 많이 들어간 것 같은데.”

“몸에 좋은 거야. 남기면 두 그릇.”

서란이 강민의 빈 그릇을 확인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오늘 오전에는 지하 보일러 금지. 마당 수련도 무겸 오라버니가 보는 것만 해.”

“오전 내내?”

“오전 내내.”

“누나, 나 이제 어린애 아닌데.”

“어린애는 아니지. 환자지.”

“누나, 보조 냉각선은 내가 확인해야―”

“비호가 할 거야.”

죽을 삼키다 만 비호가 눈을 번쩍 떴다.

“제가요?”

“네가 아까 기름을 알아봤잖아.”

“알아본 죄가 이렇게 돌아오는군요. 역시 기술자는 말이 많으면 일을 더 얻습니다.”

강민은 결국 웃었다. 오래가지는 않았다. 식탁 건너편에서 설무진이 장부를 덮고 있었다. 사부의 시선이 눈 깜빡할 새보다 짧게 강민의 왼쪽 가슴에 머물렀다가 북쪽 창으로 옮겨갔다.

“사부님.”

“묻고 싶은 얼굴이구나.”

“북쪽에 무슨 일이 있습니까?”

“북쪽에는 늘 일이 있다.”

“오늘은 다릅니다.”

설무진의 손가락이 찻잔 가장자리를 천천히 쓸었다.

“무엇이 다르게 느껴지냐.”

매연이 짙다, 탑의 빛이 어둡다, 성벽 경보선이 미세하게 운다. 모두 맞지만 충분하지 않았다. 강민은 가슴에 손을 얹었다.

“소리가 다릅니다.”

“소리요? 무슨 소리요, 형?”

“비호.”

설무진이 낮게 부르자 식탁이 조용해졌다. 비호의 숟가락이 멈췄고, 서란의 눈빛이 의공사의 것으로 돌아왔다. 무겸은 창가로 시선을 돌렸다.

“그 소리를 들었다고 해서 모두 따라가야 하는 것은 아니다. 세상에는 이로운 소리도 있고, 해로운 소리도 있다. 아직 네가 구별할 때가 아니다.”

“그럼 언제 구별할 수 있습니까?”

“네가 묻기보다 멈출 줄 알게 되었을 때.”

강민은 대답하지 못했다. 멈추는 일은 그에게 가장 어려운 수련이었다.

오전 수련은 기초 보법의 반복이었다. 쉬운 동작일수록 무겸은 엄격했다.

“발끝이 손가락 하나만큼 틀어졌다. 다시.”

“예.”

“어깨가 올라간다.”

“예.”

“열 번째다. 지금은 어떠냐.”

“……몸에서 쓸데없는 힘이 빠지는 게 느껴집니다.”

“그게 보법이다.”

◆

정오 무렵 성 안쪽에서 물레방아 수리 요청이 들어왔다. 강민은 무겸과 시장 아래 수로로 내려갔다.

“사부님은 왜 꼭 우리한테 이런 수리를 시키실까요? 도장인데요.”

“무공을 배운 손이 힘만 쓰는 손으로 굳지 말라는 뜻이겠지. 말 시키지 말고 축이나 잡아라.”

강민은 물살에 손을 담그고 기운을 얇게 흘렸다. 나무 축이 어느 쪽으로 뒤틀렸는지 손끝에 닿았다.

“여기입니다. 오른쪽으로 세 밀리미터쯤 밀면 맞을 것 같습니다.”

“네가 도면보다 낫구나.”

“도면은 아무 말도 안 하잖아요.”

“……그 말은 사부님 앞에서 하지 마라.”

“형, 오늘따라 다 들려요. 성벽 위 경비병 발소리, 대장간 망치질, 북쪽 탑의 낮은 울림까지 따로따로요.”

“귀가 너무 열린 건 아니냐.”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소리가 갑자기 너무 많이 들어오는 것 같기도 해요.”

“서란이한테는 말했냐.”

“말하면 약이 늘잖아요.”

“……그건 맞는 말이다.”

무겸이 축을 한 번 더 두드렸다. 돌아오는 길에 아이들이 손을 흔들었다.

“민이 오빠! 우리 집 온수관도 또 말썽이에요!”

“내일 간다고 전해라.”

“약속이에요! 할머니가 그러는데, 도장 사람들은 싸우는 것보다 고치는 걸 더 좋아한대요!”

강민은 대답 대신 웃었다. 누군가를 이기는 일보다 무언가를 다시 움직이게 하는 일이 오래 마음에 남았다.

오후 햇빛이 마당에 얇게 들었다. 회랑 기둥에 기대 쉬던 강민에게 비호가 쪼르르 다가왔다. 목소리가 아침과 달리 낮았다.

“형. 아침에 주보일러 만질 때, 정말 아무 일 없었어요?”

“없었다니까. 그건 뭐야? 어디서 뜯었어?”

비호의 손에는 냉각선에서 뜯어낸 배관 고리가 들려 있었다. 비스듬한 빛을 받은 절단면 안쪽에 아주 가는 검은 선이 보였다.

“냉각선 맨 아래요. 형이 아침에 밸브 걸렸다던 바로 그 라인이요. 안쪽에 그을음이 남았는데, 과열된 그을음이면 갈색이나 회색이어야 하거든요. 이건 검은데 끝이…… 조금 푸르게 보여요. 제가 잘못 본 걸 수도 있고요.”

“푸르게? 비호야, 확실해?”

“확실하진 않아요. 그래서 더 찝찝한 거예요.”

강민의 가슴이 가볍게 울렸다. 그는 고리를 만지려다 손을 멈췄다.

“아침에 밸브가 걸렸어. 그때 압력이 조금 튄 것 같아.”

“압력이 튀면 금속은 밖으로 벌어지죠. 그런데 이건 안쪽에서 긁힌 것 같아요. 배관 속에 아주 작은 톱니가 생겼다가 지나갔나 봐요.”

약초를 다듬던 서란이 고개를 들었다.

“비호야, 그 고리 따로 보관해. 손으로 더 만지지 말고.”

“네.”

“그리고 강민, 오후 수련 끝나면 의공실에 한 번 들러.”

“괜찮은데……”

“괜찮다는 말은―”

“진단 결과가 아니죠. 알아요.”

비호가 고리를 기름종이로 감쌌다. 푸르다는 말이 강민의 머릿속에 남았다. 그는 푸른색을 좋아했다. 그런데 이번 푸른색은 하나도 좋지 않았다.

◆

해가 서쪽 성벽에 걸릴 무렵, 설무진이 강민을 도장 뒤 대나무 숲 끝의 오래된 석등 앞으로 불렀다.

“오늘 네 몸이 두 번 앞서갔다.”

“마당에서 무겸 형의 창을 막았을 때와…… 또 하나는 무엇입니까?”

“보일러실에서.”

강민의 목이 말랐다.

“보고 계셨습니까?”

“도장의 주보일러가 평소와 다른 숨을 쉬면 이 마당까지 들린다.”

설무진은 석등에 손을 올렸다. 칼에 베인 흉터와 증기에 데인 자국이 가득한 손이었다.

“민아.”

사부가 이렇게 낮게 부르면 강민은 저도 모르게 몸이 굳었다.

“예, 사부님.”

“네 재능은 귀하다. 그러나 귀한 것과 안전한 것은 다르다. 사람들은 재능을 칼날이라고 하지만 나는 문이라고 본다. 문은 사람을 밖으로 내보내기도 하고, 밖에 있던 것을 안으로 들이기도 한다.”

“그럼 저는 그 문을 닫아야 합니까?”

“아니다. 닫힌 문만큼 사람을 병들게 하는 것도 없다. 다만 문 앞에서 서두르지 마라. 누가 두드리는지 확인하기 전에는 빗장을 풀지 않는 법을 배워라.”

바람이 대나무 잎을 흔들었다. 강민은 마른 잎 스치는 소리 속에서 그 낮은 울림을 찾으려 했다. 없었다. 혹은 너무 조용했다.

“사부님은 그 소리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설무진의 눈동자가 아주 미세하게 흔들렸다. 대답을 가진 사람의 눈이었지만 대답은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지금 네가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다. 네 몸에서 일어나는 모든 이상함을 힘으로 여기지 마라. 알지 못하는 힘은 선물이 아니라 빚이다. 그 빚은 언젠가 반드시 갚아야 한다.”

“빚이라면, 누구에게 갚는 빚입니까?”

“……그것도 때가 되면 알게 될 거다.”

“명심하겠습니다.”

“명심만 하지 말고, 오늘 밤은 일찍 자라.”

무거운 말 끝에 평범한 명령이 붙어 있었다. 강민은 웃을 뻔했고, 그러자 어깨에서 힘이 조금 빠졌다.

저녁 식탁은 평소보다 조용했다. 비호가 품에서 배관 고리를 꺼내려 했다.

“비호야.”

“아직 아무것도 안 했어요.”

“꺼내려고 했잖아. 이번이 세 번째야.”

“두 번 반인데요……”

“반은 꺼낸 거야, 안 꺼낸 거야.”

서란이 강민의 그릇에 채소를 더 담았다. 무겸이 입을 열었다.

“성문 쪽 경비 교대가 빨라졌다는데―”

“무겸.”

설무진의 눈짓에 무겸이 말을 삼켰다.

“……밥이 식겠습니다, 사부님.”

“오라버니, 채소도 드세요.”

서란이 분위기를 눙쳤지만 식탁은 조용했다. 비호가 강민의 소매를 당기며 속삭였다.

“형, 오늘 밤엔 보일러실 가면 안 돼요. 알죠?”

“가긴 왜 가. 일찍 자라셨잖아.”

강민은 얌전히 채소를 먹었다. 오늘만큼은 말을 더 하면 모두가 자신을 관찰할 것 같았다.

◆

밤이 되자 도장은 하나씩 불을 껐다. 강민은 잠들지 못하고 결국 발끝으로 복도를 걸어 나갔다.

“확인만 하는 거야. 소리가 사라졌는지만 보고 올라오면 돼.”

계단 아래는 어두웠다. 귀를 기울여도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역시 착각이었네. 사부님 말씀대로 일찍 자야지.”

웃음이 나올 뻔했다. 확인하고 싶어도 확인하지 않는 것, 사부가 말한 멈춤이 이런 걸지도 몰랐다. 그는 몸을 돌렸다.

그때 지하에서 작게 소리가 났다.

똑.

강민은 멈췄다. 두 번째 소리가 이어졌다. 똑. 물방울과 닮았지만 훨씬 규칙적이었다.

“한 번…… 두 번…… 간격이 똑같아.”

세 번째에서 그는 그것이 금속 안쪽에서 나는 소리임을 알았다. 압력계 유리 안쪽에서 아주 작은 무언가가 두드리고 있었다.

“뭐지……”

그는 천천히 계단을 내려갔다. 보일러실은 어둡고 식어 있었는데, 주보일러 앞 압력계만 희미하게 빛나고 있었다.

바늘이 움직이고 있었다.

“말도 안 돼. 밸브도, 냉각선도, 연료 투입구도 다 잠겼는데.”

꺼진 보일러의 바늘이 아주 느리게 안전 범위를 지나 올라갔다. 압력이 생길 이유가 없었다.

똑.

이번에는 바늘 끝이 유리를 향해 떨렸다. 손을 뻗다가 멈췄다. 누가 두드리는지 확인하기 전에는 빗장을 풀지 마라. 그러나 이것은 밖에서 두드리는 소리가 아니었다.

그 순간 왼쪽 가슴에서도 같은 간격의 울림이 시작되었다.

똑. 똑. 똑.

“내 심장이랑…… 같은 박자야.”

물러서려는 순간 유리 안쪽에 하얀 김이 서렸다. 김은 가느다란 선을 긋더니 작은 원이 되었고, 그 안에 짧은 획 하나가 내려앉았다. 글자라 하기엔 흐리고, 흠집이라 하기엔 너무 의도적이었다.

“누구냐.”

속삭임에 대답은 없었다. 대신 잠겨 있어야 할 보조 배출구가, 숨을 참다 견디지 못한 입처럼 아주 조금 열렸다.

치익.

검령성의 모든 불이 꺼진 밤, 차갑게 식은 주보일러에서 가느다란 푸른 증기가 한 줄기 솟아올랐다.

— 話 1 終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