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점 · 강민 — 균열·낙인 단계

출정(出征), 두 검이 한 방향으로

第1部 · 話 50 · 검령성 · published

海東曆: 201년 12월 11일 · 시점: 백민

새벽 4시 40분. 붉은 섬은 등불 하나 밝히지 않았다. 부두마다 검은 천이 걸렸고 창문마다 젖은 가죽이 덮였다. 오늘만은 불빛도 표적이었다.

백민은 청룡 一號 유룡(幼龍)의 갑판 끝에 서 있었다. 선미 배관에서 새어 나온 푸른 증기가 광휘은신(光輝隱身)의 잔광으로 한 번씩 빛을 접었다.

그는 갑주 안쪽의 빈 금속판을 짚었다.

“형, 언젠가 중요한 사람 이름 새기라고 비워 둔 칸이야.”

비호가 농담처럼 달아 준 자리가 오늘따라 차가웠다. 바닷바람 때문만은 아니었다.

“북동쪽 등대, 세 번 꺼졌다 켜졌어.”

기름때에 얼굴이 반쯤 검어진 열세 살 단비호가 선미 정비구에서 고개를 내밀었다.

“등대가 아니라 신호야.” 난간에 기댄 류센(柳辰)이 검은 해면을 보며 말했다.

“언제부터?”

“새벽 세 시쯤부터. 간격이 한 번도 안 틀렸어. 어부들 말도, 겐조 쪽 말도 아니야. 제국식 봉쇄 신호. 세 번 점멸, 간격 6초. 항로 폐쇄, 무장선 접근 금지.”

“백유강(白裕剛)이군.” 장무겸이 창대를 갑판에 세우며 이를 악물었다.

그 이름이 갑판의 공기를 눌렀다. 유서란(柳瑞蘭)이 손을 멈췄고, 청우(淸雨)는 눈을 감았다. 고륜(高崙)이 쌍안경 초점을 맞췄다.

“순찰선 열둘, 중형 증기포선 넷.” 고륜이 낮게 셌다. “맨 뒤에 흑청색 장갑선 한 척, 기함이다. 거리는 1,200m. 백색 기문에 황동 백룡문이 박혔어.”

“암초인 줄 알았는데.”

“깃발이 올라오기 전엔 다 암초처럼 보이지.”

기함의 확성관이 바다를 향해 열렸다.

“붉은 섬의 불법 점거민과 해적 잔당에게 고한다.”

여러 겹의 증폭관을 거쳐 감정이 지워진 목소리가 물 위로 미끄러져 왔다.

“해동제국 황도 해룡성(海龍城)의 명에 따라 본 해역은 즉시 봉쇄된다. 백씨 반역 혈통을 자칭하는 자, 봉인선을 탈취한 자, 무라사메 겐조(村雨玄三)의 잔당과 내통한 자는 한 시간 안에 선박을 포기하고 투항하라. 투항하지 않으면 붉은 섬 전체를 반역 협력지로 간주한다.”

“투항이라니…….”

“애들은 어쩌라고.”

부두 아래에서 낮은 웅성거림이 번졌다.

“해적 잔당, 불법 점거민, 반역 협력지라.” 청우가 눈을 감은 채 말했다. “죽이기 전에 먼저 이름부터 바꾸는군요.”

“이름이 바뀐 사람은 죽여도 덜 아프니까요.” 백민이 답했다.

묘지의 스물아홉 기 비석이 떠올랐다. 복수는 칼끝을 한 사람에게 겨누고, 책임은 칼 든 자기 손부터 보게 만든다.

“한 시간이라.” 무겸이 웃지 않는 얼굴로 말했다. “우리가 겁먹고 항로를 내줄 거라 생각하는군.”

“아니요.” 서란이 조용히 말했다. “한 시간을 주는 척하면서 섬의 마음을 갈라놓으려는 거예요. 우리가 떠나야 산다는 사람과 남아야 산다는 사람을 서로 싸우게 하려는 거죠.”

말이 끝나기도 전에 부두에서 고함이 터졌다.

“저 배만 내보내면 되는 거 아니냐! 저 백씨 놈 하나 때문에 우리 애들까지 죽으라는 거야?”

“겐조한테 가족 뺏긴 걸 벌써 잊었어? 제국 놈들을 믿겠다고?”

“믿든 말든 포신이 저기 있잖아!”

“그만들 해! 이러다 우리끼리 다 죽겠어!”

늙은 어부가 밀려 넘어졌다. 같은 마을 사람들의 손이 서로의 멱살을 잡았다. 분노는 늘 가장 가까운 얼굴을 먼저 물어뜯었다.

그때 아야네 류하(綾音流霞)가 부두 계단을 내려왔다. 그녀가 걸음을 멈추자 고함이 잦아들었다.

“제국 함대는 저 배를 내주어도 물러나지 않는다. 포문을 열 명분이 필요할 뿐이다.”

크지 않은 목소리가 부두 끝까지 똑바로 닿았다.

“백민을 넘기면 류센을 내놓으라 할 것이다. 류센을 내놓으면 조류 지도를 내놓으라 할 것이고, 지도를 내놓으면 어부들의 배를 징발할 것이다.”

“그다음은요!” 누군가 외쳤다.

“마지막에는 이 섬 아이들에게 제국 이름표를 달고, 겐조의 창고가 있던 자리에 새 창고를 세울 것이다.”

“그럼 어쩌라는 거요?” 젊은 어부가 이를 악물었다. “당신은 겐조의 칼이었잖아. 우리보고 또 칼을 믿으라는 거요?”

아야네가 잠시 눈을 감았다. 피 나지 않는 상처가 더 깊을 때가 있다.

“믿지 않아도 된다. 다만 오늘은 내 검이 어디를 향하는지 보아라.”

“…….” 젊은 어부는 대답하지 못하고 고개만 돌렸다.

“저 아가씨 말이 틀린 건 아니잖아.” 늙은 어부가 낮게 말했다. “저 아가씨, 겐조 앞에서도 한 번도 고개 안 숙였어.”

백민은 천천히 계단을 내려가 그녀 곁에 섰다. 그는 명령하지 않았다. 손을 내밀었다.

“함께 봉쇄를 뚫자.”

“내가 네 편에 선다는 뜻이 아니다.”

“알아.”

“나는 아직 내가 용서받을 수 있는 사람인지 모른다.”

“용서받기 위해 검을 드는 게 아니면 된다.” 백민이 말했다. “오늘 필요한 건 깨끗한 사람이 아니야. 더는 같은 방식으로 사람을 넘기지 않겠다고 정한 사람이다. 네가 그쪽에 설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해.”

아야네는 손을 잡지 않았다. 대신 검집을 들어 그의 손등에 가볍게 닿게 했다. 손 대신 검이 향할 방향을 맞추는, 붉은 섬의 인사였다.

“한 번만이다.”

“그 한 번이면 돼.”

“멋있게 말했는데,” 비호가 멀리서 속삭였다. “형, 지금 배터리 압력 떨어지는 건 알고 있지?”

“비호야.” 서란이 이마를 짚었다.

무겸이 처음으로 짧게 웃었다.

◆

작전 회의는 갑판에서 열렸다. 류센이 숯으로 바닥에 조류를 그렸다.

“남쪽 해벽 아래 해식동굴. 내가 어릴 때부터 숨겨 둔 길이야. 오전 6시 20분부터 28분까지, 딱 8분 동안 조류가 북서로 세게 밀어. 그걸 타면 포선 사각으로 빠질 수 있어.”

“문제는?” 백민이 물었다.

“동굴 앞에 쇠사슬 부표. 수면 아래 2m에 숨겨 놨고, 밑에는 회전 갈고리랑 폭압 부표가 붙었어. 은신으로 눈은 속여도 걸리면 선체가 찢겨.”

“끊으면 되지 않나.”

“위에서 끊으면 포선이 보고, 아래서 끊으면 물살 때문에 사람이 못 버텨.”

“사람이 아니면?” 비호가 손을 번쩍 들고 작은 원통 여섯 개를 꺼냈다. “폭약나사 개량형. 물에 닿으면 발이 펴지고, 금속에 붙으면 안에서 두 번 물어뜯어. 이름은 ‘게딱지’.”

“이름을 꼭 그렇게 지어야 하나?” 고륜이 눈썹을 찌푸렸다.

“무섭게 지으면 안 붙잖아요. 귀여우면 오래 붙어요.”

“이치가 없지는 않군요.” 청우가 작게 합장했다.

“귀여운 이름 붙인 폭약 들고 웃지 마.” 서란이 비호의 뒤통수를 눌렀다. “손가락 날아가면 내가 붙여 줄 수 있을지 장담 못 해.”

“누나가 장담 못 하면 세상에 장담할 사람이 없는데요.”

“그 입부터 꿰매기 전에 가서 장착해.”

비호가 입을 다물고 뛰어갔다. 검령성 뒤뜰에서 부품을 줍던 아이가 봉쇄선의 사슬을 끊을 폭약을 들고 배 밑으로 들어갔다.

“비호.”

비호가 고개를 돌렸다.

“돌아와.”

“당연하지.” 소년이 웃었다. “내가 안 돌아오면 누가 형 배 고쳐?”

너무 쉽게 나온 대답에 백민은 더 말하지 못했다.

6시 정각, 민초아(閔初娥)가 어부들과 부두 화덕에 솥을 걸었다. 사람들이 마지막일지 모를 밥 앞에 줄을 섰다.

“한 입만 드셔 보세요, 무겸 님. 제가 처음 만든 거예요.”

“고맙소. 어디…….”

무겸이 한 입 먹고 눈을 질끈 감았다.

“어떠세요?”

“……든든하오. 아주 든든하오.”

“바다를 압축했어?” 비호가 배 위에서 중얼거렸다.

몇 사람이 웃었다. 웃음은 곧 사라졌지만 사라진 자리에도 온기가 남았다.

부두 한쪽에서는 서란이 아이를 안고 우는 젊은 어머니 앞에 함께 무릎을 굽혔다.

“남는 것이 버리는 것은 아니에요. 오늘 살아남는 쪽이 내일 돌아올 사람을 맞이해야 해요.”

“그래도…… 이 아이 아버지가 저 배에 타는데…….”

“돌려보낼게요. 약속은 못 해요. 하지만 제가 있는 한 먼저 놓지는 않을 거예요.”

선수에서는 청우가 톱니와 공명판이 든 작은 종을 달고 있었다.

“소리가 나면 들키니, 소리 없는 종을 달았습니다.”

“종인데 소리가 없으면 종이야?” 비호가 정비구에서 물었다.

“들을 귀가 바뀌면, 침묵도 소리다.”

“역시 스님 말은 가끔 나사처럼 돌아요.”

“좋은 뜻이냐?”

“아직 모르겠어요.”

“창병 넷은 선수, 어부 열 명은 좌우 난간. 백병전은 난간에서 끊는다.” 무겸이 위치를 나눴다. “올라오는 놈은 둘씩 맡아라. 혼자 상대하지 마라.”

“예!”

“남는 노병들은 해벽 뒤 엄폐 지점에 엎드려 있으라 일렀소.” 고륜이 말했다. “포탄이 와도 고개만 들지 않으면 되오.”

선미에서는 아야네가 홀로 검을 닦았다. 손끝이 떨리지 않았다. 너무 오래 떨림을 참아 온 손이라는 것을, 백민은 알았다.

6시 12분.

“남은 시간 30분. 투항하지 않으면 포격을 개시한다.”

기함의 좌우 포문이 줄지어 열렸다. 절벽 위에서 아이가 울음을 터뜨렸다. 백민은 갑판 중앙으로 걸어갔다.

“듣고 있나.”

그의 목소리가 청염의 진동을 타고 유룡의 황동 배관 전체로 퍼졌다. 배가 그의 말을 대신 숨 쉬었다.

“이 배에 오른 사람들, 섬에 남은 사람들 모두 들어라. 겁내지 말라고 하지 않겠다. 겁이 나는 게 맞다. 포신 앞에서 두려움이 없는 사람은 용감한 게 아니라 망가진 사람이다.”

갑판의 사람들이 그를 보았다. 배 밑에 매달린 비호도 잠시 손을 멈췄다.

“하지만 두려운 것과 무릎 꿇는 것은 같지 않다. 오늘 우리가 거절하려는 건 한 척의 배가 아니다. 힘 있는 자가 이름을 바꾸면 사람을 마음대로 넘겨도 된다는 오래된 버릇이다. 겐조의 깃발이든 제국의 백룡문이든, 그 버릇은 같은 얼굴을 하고 있다.”

아야네가 말없이 검집을 들어 올렸다.

“나는 백씨의 죄에서 도망치지 않겠다. 그러나 그 죄를 이유로 다시 누군가를 제물로 넘기지도 않겠다. 오늘 이 배는 달아나는 배가 아니다. 길을 여는 배다.”

청우의 소리 없는 종이 처음으로 낮게 떨렸다. 사람들은 소리를 듣지 못했지만 발바닥으로 배의 심장이 한 번 깊게 뛰는 것을 느꼈다.

6시 19분.

“조류 바뀐다.” 류센이 손을 들었다.

“게딱지 하나 붙었고, 둘 붙었고, 셋은 성질 더럽고, 넷은 잘생겼고, 다섯은 내 손가락 물려고 하고, 여섯 붙었다!” 배 밑에서 비호가 외쳤다.

“올라와!” 서란이 소리쳤다.

“올라가요, 올라간다고요! 다들 귀 막아요!”

첫 번째 폭음이 수면 아래에서 터졌다. 거대한 철사가 찢어지는 둔한 소리와 함께 끊어진 쇠사슬 부표가 뱀처럼 가라앉았다.

“두 번째! 세 번째!”

“포탑이 돈다!” 고륜이 외쳤다.

“지금!” 류센이 소리쳤다. “추진기 열어! 앞이 아니라 옆으로!”

“은신 덮는다!”

배는 앞으로 달리지 않고 먼저 옆으로 미끄러졌고, 윤곽이 바다 색으로 흐려졌다. 첫 포격이 방금까지 배가 있던 자리를 때렸다.

“파편! 엎드려!” 무겸이 날아드는 쇳조각을 창대로 쳐냈다.

“은신이 흔들려요!” 비호가 외쳤다. “왼쪽 추진기 열이 너무 올라!”

“몇 도?”

“120℃ 넘었어요! 더 올리면 배가 아니라 찜통이에요!”

백민이 왼손을 배관에 얹었다. 힘을 밀어 넣지도, 억지로 누르지도 않고 배가 이미 가진 박동을 들었다.

“무서워하고 있어.” 그가 낮게 중얼거렸다. “깨어난 지 얼마 안 됐는데, 낯선 바다에 낯선 포성이니까.”

“배가 무서워한다고?” 무겸이 돌아보았다.

“괜찮다.” 백민은 배에게 말했다. “길만 열자. 이겨야 하는 게 아니다. 지나가면 된다.”

배관 속 청염이 한 번 숨을 골랐다. 은신막이 다시 맑아졌다.

“보트 세 척!” 류센이 외쳤다. “파도 모양으로 우리 방향을 읽었어!”

“갈고리 온다!”

“백병전 준비!”

무겸의 창이 첫 줄을 끊었다. 그러나 기계 의수와 작은 방패를 단 병사들이 두 번째 줄을 타고 날아들었다.

“넷이다! 등 맞대라, 좁은 갑판이다!”

“제 쪽은 제가!” 어부 하나가 노를 휘둘렀다.

“물러서요! 창 닿는 곳까지만!” 무겸이 어부를 밀어냈다.

백민은 본국검을 뽑았다. 첫 병사의 방패를 정면으로 베지 않고 선체의 진동을 따라 한 걸음 틀자, 검끝이 의수의 관절 틈에 들어갔다.

“크윽, 팔이……!”

의수가 멈춘 병사를 검등으로 쳐서 갑판에 쓰러뜨렸다.

“죽이지 마라! 바다에도 던지지 말고!”

“알고 있다!”

“서란 누나 뒤!” 비호가 배 밑에서 외쳤다.

“숙이세요!”

아야네의 칼집이 서란을 노린 병사의 손목을 쳤고, 검등이 목덜미를 눌렀다. 병사가 쓰러졌다. 오른쪽에서는 청염의 푸른 호선이, 왼쪽에서는 해류검의 은빛 호선이 그어졌다.

“고마워요.” 서란이 숨을 몰아쉬었다.

“감사는 나중에. 다친 데는 없으십니까?”

“없어요. 저쪽부터 봐요.”

서로 닿지 않았으나 같은 적을 향해 길을 비운 두 검이었다.

“검희님이…… 해동 사람이랑 같은 쪽으로…….” 갑판의 어부 하나가 숨을 멈췄다.

“둘이 칼을 나란히 든 건 처음 보네.”

평생 다른 편이라 믿어 온 두 칼이 처음으로 같은 방향을 가리켰다.

조타간의 류센이 이를 악물고 물을 읽었다.

“오른쪽 아래 숨은 암초! 왼쪽 위는 거짓 물살! 백민, 정면 20m 앞, 물속에 남은 사슬!”

백민은 갑판 중앙의 배관을 밟고 난간 위로 몸을 던졌다. 파도가 얼굴을 때렸다. 물속에서 쇠가 떨고 있었다. 검이 내려가자 푸른 불꽃이 피어올랐다.

“조각이 선체 밑으로 들어갑니다!”

“밀어내겠습니다.”

반대편 난간에서 아야네의 검끝이 수면을 찍었다. 물살이 비틀리며 잔해를 선체 밑에서 밀어냈다. 불이 자르고, 물이 치웠다.

“뚫렸다!”

유룡이 해식동굴의 그림자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양옆 1m도 안 돼요! 추진기 조금만 틀어져도 날개 찢겨요!”

“비호야, 손 놓지 마!” 서란이 소리쳤다.

“놓으면 배가 박힌다는 거 알아요!”

비호가 정비구 바닥에 엎드려 밸브를 붙들었다. 뜨거운 증기가 얼굴 옆을 스쳤다.

“비호, 30초만.”

“29초면 해볼게요.” 소년의 목소리는 떨렸지만 농담은 살아 있었다.

“조류 끝나기까지 몇 분이야?” 무겸이 물었다.

“4분! 그 안에 못 나가면 물살이 우릴 다시 동굴로 밀어 넣어!”

포탄이 절벽을 때릴 때마다 바위 조각이 동굴 안으로 쏟아졌다.

“방패 뒤로! 머리 숙여!” 고륜이 어부들을 막아섰다.

청우의 낮은 염불이 사람과 배와 바다의 숨을 하나로 묶었다. 동굴 끝에 빛이 보였다. 그 앞에 소형 순찰선 하나가 먼저 떠올랐다.

“60m! 50m! 40m!”

“충돌한다!” 무겸이 외쳤다.

백민과 아야네가 서로를 보지 않고 나란히 섰다. 볼 필요가 없었다.

“위로.”

“아래로.”

청염과 해류가 교차하며 물안개가 폭발하듯 피어올랐다.

“지금!” 류센이 외쳤다. “왼쪽 7도! 추진기 반 박자 늦춰!”

“반 박자, 늦춥니다!”

유룡이 순찰선의 옆구리를 스치듯 지나갔다. 무겸의 창이 갈고리 줄을 끊었고, 고륜이 마지막 갈고리를 맨손으로 붙잡아 갑판에 박았다.

“쏴라! 쏴!”

병사들의 포탄이 선미 뒤 물살을 때렸다. 동굴을 빠져나온 순간, 바다가 열렸다.

“빠졌다! 빠졌어요!”

붉은 절벽과 포성이 뒤로 밀려났다. 부두의 사람들이 끝까지 손을 흔들었다. 아야네는 선미에서 붉은 섬을 바라보았다.

“후회하나?” 백민이 조타간의 류센에게 물었다.

“후회는 나중에 할게.” 류센이 눈을 떼지 않고 답했다. “지금은 물길이 너무 바빠.”

백민이 작게 웃었다. 아야네도 아주 짧게 입가를 풀었다.

그러나 웃음은 오래가지 못했다. 해무가 갑자기 짙어졌다. 너무 빠르고, 너무 낮고, 너무 차가웠다.

“형.”

“말해.”

“이상해요. 우리가 은신한 게 아니야.” 비호가 압력계를 가리켰다. “은신 눈금은 멀쩡한데, 바깥 빛이 제멋대로 꺾여. 누가 더 큰 안개로 우리 막을 밖에서 덮어씌우는 것 같아.”

“해무(海霧)야.” 류센의 입술이 말랐다. “겐조의 배들이 쓰는 방식이랑 닮았어. 그런데…… 이건 겐조 것보다 훨씬 커.”

“종소리…….” 무겸이 창을 고쳐 쥐었다. “무음종이 아니다. 물 아래에서 올라온다.”

낮고 둔한 쇳소리가 한 번, 두 번, 세 번 울렸다.

“저 소리는…….” 아야네의 얼굴에서 핏기가 빠졌다.

“아는 소리야?”

“…….”

그녀는 대답하지 못했다. 안개 속에서 붉은 등불이 하나 떠올랐고, 이어 둘, 셋, 다섯. 수면 아래에서 흔들리는 불빛이었다.

백민이 본국검을 고쳐 쥐었다. 갑주 안쪽의 빈 금속판이 다시 차갑게 식었다. 첫 항로가 열렸다고 생각한 순간, 바다가 문을 하나 더 닫고 있었다.

붉은 등불들이 일제히 다가왔다. 그리고 물 아래의 종이, 이번에는 분명한 사람의 목소리로 울렸다.

“첫 배가 왔다.”

— 話 50 終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