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의 마지막 불꽃
海東曆: 201년 5월 2일 · 검령성 지하 연구소 수술실 · 시점: 설무진(임종)
푸른 불꽃 한 줄기는 심장에서 난 것이 아니었다. 심장은 이미 강민(剛民)의 가슴속에 있었다. 설무진(雪武陳)은 평생 쌓은 기공을 마지막으로 전부 끌어올려 빈 가슴을 채웠다.
“……마지막 사부 노릇이로군.”
설무진이 웃으며 중얼거렸다. 강민은 스승의 손을 잡은 채 움직이지 못했다.
“민아…… 내 손을…… 놓지 마.”
“안 놓아요, 사부님.”
끼이이익.
차폐문 바깥에서 이하겸(李河謙)의 흑조갑(黑爪甲)이 긁혔다.
“좋군. 심장을 아이에게 옮겼다면 이제 아이만 가져가면 되겠어. 스승은 심장도 없으니, 태워 버리면 그만이지.”
“저놈이 지금 사부님을—”
강민의 새 심장이 거칠게 뛰었다. 본국검(本國劍)의 실린더가 치이익 울었다. 유서란(柳瑞蘭)이 그의 손목을 잡았다.
“강민아, 숨부터 맞춰. 지금 네가 먼저 움직이면 네 몸이 검보다 먼저 찢어져.”
“하지만 누나, 사부님이—”
“안다.”
서란의 목소리도 갈라져 있었다.
“사부님, 말씀하지 마세요. 숨 아끼세요.”
서란이 설무진의 맥을 눌렀다. 설무진은 대꾸 대신 눈만 깜빡였다. 문 쪽에서는 장무겸(張武謙)이 반쯤 부러진 장창을 차폐문 사이에 밀어 넣고 어깨로 버텼다.
“비호야, 문이 몇 번 더 버티냐!”
“두 번이요! 아니 한 번! 잠깐만요!”
단비호(段飛虎)는 수술대 아래 엎드려 바닥 진법의 보조 도관을 뜯고 있었다.
“왼쪽 냉각관은 멈췄고 오른쪽 보조 압력은 버텨요! 그런데 이 진법, 도장 보일러랑 연결돼 있어요. 사부님이 수련장 전체를 공기와 증기가 도는 구조로 만들어 두셨어요!”
“그걸 지금 알았다고 자랑할 때냐!”
“자랑 아니거든요! 숨 쉬게 할 수 있다는 뜻이에요!”
녹슨 레버가 돌자 지하 연구소가 깊은 곳에서부터 낮게 울었다. 설무진은 그 소리를 들으며 아주 먼 곳으로 미끄러졌다.
◆
비 오는 밤이었다.
십팔 년 전 도공거리(刀工街)에는 산성비가 내렸다. 젊은 설무진은 도면을 태우고 청염기관(靑炎機關)의 원형만 제 가슴에 숨긴 채 달아났다.
처마 밑에서 아기가 울고 있었다. 기름 천에 싸인 작은 손이 그의 손가락을 악착같이 붙잡았다. 손바닥에는 청동 인장, 백룡문(白龍紋).
“이 아이를…… 부탁합니다.”
빗속으로 사라지는 여인의 목소리는 반쯤 삼켜졌다.
“이름은…….”
“울지 마…… 울면 놈들이 듣는다.”
설무진은 우는 아기를 품에 안았다. 그는 그 이름을 들었다. 세상에 되돌려 주지 않았을 뿐. 사흘 뒤 관청의 서기가 붓을 들었다.
“아이 이름이 무엇입니까.”
“강민입니다. 굳셀 강(剛)에 백성 민(民).”
“강하게 살라는 뜻입니까? 거참 평범하군요.”
“평범해야 살지.”
설무진은 갓난아이를 내려다보며 낮게 속삭였다.
“강하게 살아남아라. 고귀한 피가 아니라, 밥 먹고 다치면 아파하고 잘못하면 혼나고 웃을 때는 크게 웃는 평범한 아이로 숨어 살아라. 이 노인이 평생 거짓말쟁이로 불려도 좋으니.”
그는 그 이름을 쓰며 자신이 처음으로 거짓말을 잘했다고 생각했다.
◆
콰아앙!
차폐문 중앙이 꺾이고 무겸의 장창이 두 동강 났다. 갈라진 문틈으로 이하겸의 얼굴이 드러났다.
“창이 부러졌군, 군인. 소란이 길구나. 심장이 열리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렸다.”
“창이 부러져도 팔이 남았다! 이 문은 뚫려도 우리 손으로 열지는 않는다!”
“그 아이를 내놓아라, 노인. 그러면 이 방의 나머지는 살려 주지.”
“……내 제자를 흥정에 올리지 마.”
“아직 살아 있군, 설무진. 네가 가르친 도장은 잘 탔다. 아이들은 잘 울었고, 문하생들은 생각보다 오래 버티더군. 너는 훌륭한 스승이었어. 도망칠 시간을 주었으니까.”
본국검의 실린더가 과속했다. 푸른 불꽃이 검집 밖으로 뿜어졌다.
“놔, 누나!”
“안 돼! 청염이 분노에 반응해서 커지고 있어! 저건 도발이야, 박자 맞추지 마!”
“저놈이 사부님을—”
“강민아, 내 눈을 봐! 지금 청염을 못 누르면 사부님이 연 길이 닫혀!”
설무진은 마지막 힘으로 손가락을 움직였다.
탁.
마른 손가락이 강민의 손등을 가볍게 두드렸다. 그 작은 접촉 하나가 폭주 직전의 푸른 불을 멈추게 했다.
“보아라.”
소리는 작았지만 강민은 들었다.
“분노에 휘둘리면 검은 늘 늦는다. 듣고…… 베어라.”
“듣는다고요? 전부 너무 시끄러워요, 사부님. 도장 타는 소리, 무겸 형 숨소리, 누나 손 떠는 소리, 비호 레버 소리…….”
탁.
두 번째 두드림에 청염기관이 한 번 뛰었다. 강민은 눈을 감았다.
“……세 박마다 오른쪽 관절이 삐걱거려요. 부러진 두 갈래 대신 남은 셋에 압력이 몰려서요.”
“그래.”
“왼발이 바닥에 닿기 직전에 증기가 아주 짧게 새요. 무음보가 완전하지 않아요. 눈으론 안 보이는데 들려요.”
“귀를…… 믿어라.”
“사부님, 숨이……! 맥이 너무 약해요!”
문을 누르던 무겸이 외쳤다.
“지금 말 시키지 마, 서란 누나!”
설무진의 눈이 아주 작게 웃었다. 이제 되었다.
이하겸이 문을 찢고 들어왔다. 뒤편의 자객 둘이 좌우로 파고들었다.
“청염이 켜졌군. 푸른 심지를 보는 게 얼마 만인지.”
“좌우다! 하나는 내가 막는다!”
“왼쪽 목덜미는 제가요!”
서란의 청동 침이 왼쪽 자객의 목덜미 접합부에 박혔다.
“비호야, 지금!”
“끝까지 당겼어요!”
치이이익!
바닥 도관이 터지며 고압 증기가 흰 벽처럼 솟구쳤다. 시야가 사라졌다. 강민은 눈이 아니라 귀로 보았다.
“저 증기 속에서 놈이 어디서 오냐!”
“정면 아래요! 무릎을 낮췄어요! 오른쪽 위에서 셋이 내려와요! 무겸 형 몸이 반 뼘 밀려요! 누나 맥이 빨라져요!”
“말하지 말고 베어라, 민아!”
“셋째 박! 지금!”
본국검이 움직였다. 푸른 박동이 검신 실린더로 곧장 들어가 검날을 얇게 감쌌다. 불이 아니라 날이었다.
챙!
“하나 쳐 냈다!”
“우와, 형 검이 불도 안 뿜고 쳐 냈어요!”
이하겸의 눈이 처음으로 가늘어졌다. 푸른 선이 관절 축을 스치자 황동 기어가 녹는 냄새가 났다.
“이식 직후에 이 정도 동기화라니. 역시 심장이 아니라 이름이 문제였나.”
“놈의 말에 휘둘리지 마, 민아!”
“……이름이 문제라니, 무슨 소리야.”
강민은 알아듣지 못했다. 설무진은 알아들었다. 이하겸은 전부는 아니어도 일부를 안다. 아이는 이겨야 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나가야 했다.
“민아.”
“예, 사부님?”
“네가 여섯 살 때 처음 목검을 쥐던 날을 기억하냐.”
“……제 발등을 때리고 울었잖아요. 그래도 안 놓았고요.”
“내가 ‘그만하자’ 했더니 네가 뭐라 했지.”
“놓으면 검이 혼자 외롭잖아요, 라고요.”
“그날 나는 웃다가 등을 돌렸다. 보이고 싶지 않은 얼굴이 있어서였다.”
“사부님, 지금 그런 얘기를 왜—”
“밸브에도 말을 걸고 망가진 톱니에도 미안해하던 아이였다. 언젠가 세상이 그 마음을 이용할까 봐 두려웠고, 언젠가 네가 그 마음으로 세상을 고칠지도 모른다고 믿었다.”
강민은 대답하지 못했다. 세 번째 갈래를 받던 팔꿈치가 조금 늦었다. 낮아진 칼날이 왼쪽 가슴을 찔러 왔다.
“안 돼!”
서란이 외쳤다. 무겸이 몸을 던졌지만 늦었다.
“형!”
비호의 손에서 렌치가 떨어졌다. 설무진이 눈을 떴다.
푸른 불기둥이 수술대에서 솟구쳤다. 불길은 모든 것을 멈추게 했다. 흑조갑이 강민의 옷깃을 찢은 채 굳었고, 증기가 얼음처럼 멈췄고, 피방울이 허공에 매달렸다.
“시간이…… 멈췄어! 사부님!”
“증기가 하얗게 굳어 있어요……! 숨 쉬면 깨질 것 같아요!”
“움직이지 마! 이건 사부님의 불이다!”
“지금이다.”
설무진의 입에서 나온 말인지 강민의 가슴속 기관이 울린 소리인지 알 수 없었다.
“……들려요. 세 갈래를 한꺼번에 묶는 황동 고리!”
콰직!
강민의 검이 그 고리를 베었다. 세 갈래 중 하나가 꺾여 날아가고 이하겸의 오른팔이 뒤틀렸다. 이하겸이 처음으로 물러났다. 강민은 스승의 수술대를 가로막고 섰다.
“형, 진짜 팔을—”
“지금은 아니야! 숨부터 쉬어, 민아!”
“더 오면, 이번엔 팔만으로 안 끝납니다.”
이하겸은 부러진 흑조갑을 내려다보았다. 분노보다 호기심에 가까운 얼굴이었다.
“좋아. 오늘은 새 심장이 뛰는 소리만 듣고 가지. 하지만 소년아, 네가 정말 네 이름을 듣는 날에는 오늘보다 더 많이 울게 될 거다.”
“이름이라니, 왜 다들……”
물을 시간이 없었다. 불기둥이 꺼지기 시작했다. 이하겸이 손짓하자 자객들이 물러났고 검은 연기탄이 터져 입구가 연기로 덮였다.
“쫓는다!”
무겸이 달려가려 하자 설무진이 눈짓으로 막았다.
“……지금 쫓으면 아이들이 죽습니까, 사부님.”
설무진이 눈을 깜빡였다. 그것이 대답이었다. 무겸은 이를 악물고 끝내 발을 멈췄다.
“갔어요? 진짜 갔어요?”
“갔다. 하지만 다시 온다. 비호야, 길!”
“네!”
“길 열렸어요! 좁아요, 한 명씩만 지나갈 수 있어요!”
“아이들 먼저, 그다음 서란 누나와 비호, 마지막이 나다!”
비호가 레버를 당기자 뒤편의 회색 철판이 갈라지며 비상 통로가 드러났다. 벽에는 삐뚤빼뚤한 글씨가 남아 있었다. ‘비호 키보다 높은 문 금지.’
“……사부님은 진짜 이런 것까지 다 기억하고 계셨네요. 제가 머리 찧고 울던 날 써 주신 거잖아요.”
“비호야, 울음은 나중에. 지금은 손부터.”
“누나, 사부님은 여기 두고 가는 거예요?”
“두고 가는 게 아니야. 사부님이 열어 주신 길을 우리가 대신 가는 거야.”
서란이 설무진의 맥을 짚었다. 손끝에 아무것도 잡히지 않았다.
“의공사는 환자를 포기하지 않아. 하지만 죽어 가는 분을 억지로 붙잡아 둘 수는 없어.”
서란은 청동 침을 하나씩 거두었다.
“스승님. 길을 열겠습니다. 저는…… 스승님이 가르쳐 주신 대로 했어요.”
설무진이 눈동자만으로 그녀를 보았다. 아이들을 대신 붙잡아 달라는 부탁이었다.
“제가 지키겠습니다.”
서란이 설무진의 손을 두 손으로 감쌌다.
“사부님, 길은 열렸습니다. 이제 쉬십시오.”
무겸이 낮게 말했다.
“무겸 형, 구석 보관함에 열쇠랑 같은 문양의 금속판이 있어요! 좌표랑…… 반쯤 읽다 만 문장이 새겨져 있어요!”
“읽을 시간 없다. 품에 넣어라!”
“알았어요!”
무겸이 어린 문하생 둘을 양팔에 하나씩 안아 통로로 밀었다.
“기갑호까지 뛰어! 뒤돌아보지 마! 뒤쪽 해치는 내가 잡는다!”
강민만 움직이지 않고 스승 곁에 무릎을 꿇었다. 콧등의 상처는 붉게 굳었고 눈 안에는 푸른 심지가 있었다.
“민아.”
“예, 사부님.”
“살아라.”
“같이요.”
설무진이 희미하게 웃었다.
“스승은…… 같이 가지 못할 때 길이 된다.”
“아직 가르쳐 주실 게 많잖아요, 사부님. 업고라도 갈게요.”
“가르친 것은 이미 네 안에 있다. 이 몸은 이미 놓았다. 너는 무겁지 마라.”
설무진이 힘겹게 손을 들어 그의 가슴을 가리켰다. 손끝은 닿지 못하고 허공에서 떨렸다.
“그 심장은…… 네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내 것도 아니다.”
숨이 끊어질 듯 멎었다가 이어졌다.
“살려 낸 사람들의 것이다. 그러니…… 네 분노보다 먼저…… 사람을 세워라.”
눈물이 설무진의 피와 섞여 붉은 원이 되었다. 설무진은 십팔 년 전 빗속의 소매 얼룩을 떠올렸다. 두려운 만큼 이 아이를 사랑했다.
“사부님, 가지 마세요. 내일 새벽에도 밸브 앞에 서야 하잖아요. 그때 누가 숨부터 맞추라고 해 줘요…….”
“그때는…… 네 숨이…… 네게 말해 줄 것이다.”
“너는……”
설무진의 목 안쪽에서 피 섞인 숨이 부서졌다.
“강민이…… 아니다.”
수술실 안의 모든 사람이 굳었다.
“……그게 무슨…….”
설무진은 고개를 아주 조금 저었다. 이름을 말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말하면 쫓길 것이고, 말하지 않으면 스스로 찾아야 한다.
“너는…….”
“누구냐고요, 제가! 사부님, 이름이라도 말해 주세요!”
그 다음 단어는 나오지 않았다. 설무진의 눈동자가 강민 뒤로 움직였다.
“스승님, 강민이는 제가 끝까지 붙잡겠습니다.”
“사부님, 저요, 문 높이 전부 고칠게요. 사부님이 만든 건 하나도 안 버리고 다 고칠게요.”
“도장의 이름을 잊지 않겠습니다, 사부님.”
서란이 울면서, 비호가 입술을 깨물며, 무겸이 부러진 창대를 세우고 군례 자세로 등을 펴며 말했다. 설무진은 고개를 끄덕이듯 눈을 감았다 떴다.
설무진은 마지막으로 강민을 보았다. 입가에 아주 작은 미소가 남았다.
손이 떨어졌다.
늙은 손이 철제 수술대 위로 내려앉았다. 소리는 작았지만 귀가 먹먹할 만큼 크게 들렸다. 청염기관이 한 번 깊고 낮게 뛰었다. 울음이었다.
“사부님…… 사부님!”
“……가야 한다.”
무겸이 먼저 움직였다. 강민은 대답하지 않았다.
“민아.”
서란의 목소리는 젖어 있었지만 단호했다.
“스승님이 연 길을 닫히게 하지 마.”
“……알아, 누나. 가자.”
강민은 스승의 손을 조심스럽게 놓고 손등에 이마를 잠시 대었다. 그리고 본국검을 들었다.
◆
“뛰어!”
연구소가 무너지기 시작했다. 바닥 진법이 마지막으로 푸른빛을 뿜었다. 폭발이 아니라 배웅 같았다.
“형, 이번엔 은신 못 해요! 정면 돌파밖에 없어요! 사부님 도장 문 부수는 거 처음이라 기분 이상해요!”
“생각하지 말고 밟아라! 그럼 정면으로 간다. 사부님 도장답게.”
무겸이 피 묻은 이를 드러냈다. 기갑호가 돌진했다.
“철문이 안 열려요, 형!”
“들어 봐.”
강민이 눈을 감았다.
“이음쇠가 왼쪽 위 볼트부터 금이 갔어. 오른쪽 아래 압력 잠금은 박자가 느려. 그 사이야.”
“그 사이라니, 어떻게 알아!”
“형 눈 감지 마요!”
“감아야 들려!”
푸른 선이 철문 중앙을 가로질렀다.
콰아아앙!
기갑호가 외벽을 들이받았다. 돌과 목재와 불씨가 사방으로 튀었다. 밖은 밤인데도 붉었다.
“무서워요, 누나!”
“괜찮아, 다들 숨 쉬어. 여기 있어. 팔 좀 내밀어 봐.”
서란은 우는 아이들 사이를 기어 다니며 상처를 묶었다. 무겸은 깨진 후방 해치를 몸으로 막았다.
“형! 압력계 흔들려요!”
“코피 닦으며 말해라, 비호야!”
강민은 뒤를 돌아보았다. 지하 연구소 자리에서 푸른 불기둥이 치솟아 검령성 전체를 낮처럼 밝혔다. 그 빛 속에 검자루를 바로잡아 주던 스승의 그림자가 있었다.
“밸브보다 네 숨부터 맞춰라.”
새벽마다 꾸짖던 낮은 목소리가 들린 것 같았다. 불기둥이 꺼진 자리에는 이상할 만큼 둥근 잿빛 공터만 남았다.
기갑호는 절벽 그늘 아래 멈췄다. 아무도 먼저 내리지 못했다. 비호가 렌치를 내려놓는 작은 소리를 모두가 들었다.
“사부님이…… 이제 안 계신 거죠.”
서란은 대답 대신 비호를 끌어안았다. 무겸은 고개를 숙이고 부러진 창대를 무릎에 올렸다. 어깨가 작게 떨렸다.
“사부님…… 길은 끝까지 지켰습니다.”
무겸이 낮게 말했다.
“……울어도 된다, 비호야. 나도 오늘만은 안 말릴 테니.”
“아이들 먼저 내려요. 천천히.”
“여기가 어디예요……?”
“괜찮아. 길을 잃은 게 아니라, 빠져나온 거야.”
강민은 기갑호에서 내려 절벽 끝으로 걸어갔다. 품에서 청동 열쇠를 꺼내자 백룡문이 푸른 잔광을 희미하게 머금었다.
“무엇을 여는지도 모르는 열쇠를 주고 가셨어요, 사부님. 그런데 이제 알겠어요. 이 열쇠는 문을 열기 전에 먼저 알아내야 할 게 많다는 걸요.”
“형, 열쇠가 어디를 가리켜요?”
“북서쪽…….”
“수술실에서 가져온 금속판은 내가 갖고 있어요. 나중에 같이 읽어요.”
“강민아, 우리는 아직 살아 있어. 사부님이 바란 건 그거야.”
“형…… 방금 사부님 말씀 말이에요. 형이 형이 아니라니, 그럼 누구예요?”
“몰라. 나도 모르겠어.”
너는 강민이 아니다. 강민은 그 말을 머릿속에서 지울 수 없었다. 열쇠 쥔 손을 가슴에 대자 청염기관이 낮게 응답했다. 설무진의 박자도, 완전히 강민의 박자도 아니었다.
딸깍.
손안의 열쇠가 저절로 돌아가 북서쪽의 어두운 협곡을 가리켰다. 동시에 산 아래 숲 가장자리에서 붉은 안광 세 개가 소리 없이 켜졌다.
“형, 사부님이 형 가슴 속에 계신 거 아니에요? 박자가 똑같잖아요.”
“모르겠어. 똑같지는 않아.”
“……형, 저기!”
“셋뿐이면 좋겠군.”
비호가 숨을 삼켰다. 무겸이 부러진 창대를 다시 쥐었다.
“셋이 아니면요?”
“그럼 서른이겠지.”
“형, 시동은 걸었어요! 한 번만 더 달릴 수 있어요!”
“서란 누나는 아이들 곁에. 비호는 출력 유지. 민아, 앞은 네가 본다.”
서란이 등 뒤에서 낮게 불렀다.
“강민아. 열쇠가 돌아갔어.”
강민은 대답하지 않았다. 본국검이 검집에서 반 치 빠져나와 푸른 선 하나를 드러냈다. 그리고 산 아래의 붉은 안광들이, 동시에 움직이기 시작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