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점 · 강민 — 균열·낙인 단계

청염기관(靑炎機關)의 계승(繼承), 첫 번째 각성(覺醒)

第1部 · 話 9 · 검령성 · published

海東曆: 201년 5월 2일 · 검령성 도장 지하 연구소 수술실

격벽이 열리자 차가운 바람이 밀려 나왔다. 검령성(劍靈城)의 도장 밑에는 도장보다 오래된 심장이 숨어 있었다.

장무겸(張武謙)이 강민(剛民)을 안쪽으로 밀어 넣었다. 콧등의 상처에서 피가 흐를 때마다 푸른 불씨가 깜빡였다.

“형, 이 상처 안 닫혀요. 피가 푸르게 깜빡여요.”

“봤다. 보지 마라. 네 피를 들여다보는 건 적에게 맡겨도 충분하다. 너는 앞만 봐.”

“형, 저 벽의 문양이요. 닫힌 눈 하나를 흰 용 비늘이 감싸고 있어요.”

“나도 처음 본다.”

“이상해요. 가슴이 저 앞에서 한 번 더 세게 뛰었어요.”

위에서 금속 파열음이 일었다. 설무진(雪武陳)이 계단 입구에서 마지막으로 버티고 있었다.

“사부님!”

“네가 다시 나가면 사부님이 죽는다. 살아남으라는 명령을 어기게 만들지 마라.”

“형도 피가—”

“나는 아직 서 있다.”

무겸이 창대로 바닥을 찍자 차폐문 하나가 내려와 지상과 그들을 갈랐다. 닫히기 직전 강민은 보았다. 설무진이 돌아보지 않은 채 왼손을 들어 보였다. 가라는 뜻이었다. 아니, 살라는 뜻이었다.

철컥.

문이 닫히자 지상의 소리가 뚝 끊겼다.

“……가자, 민아.”

“네, 형. 사부님은 살아서 따라오실 거예요. 꼭이요.”

◆

“열여덟 해를 살았어요, 이 도장에서.”

계단을 내려가며 강민이 중얼거렸다. 수십 년 켜진 적 없는 등롱이 그가 한 계단 내려갈 때마다 푸른 잔광을 흘렸다.

“보일러 밸브도 갈고, 비호랑 굴뚝에 올라가 배기관도 두드렸는데. 그 모든 바닥 아래에 이런 데가 있었다고요? 여기가 대체 뭐예요, 형?”

“…….”

“사부님은 알고 계셨죠. 누나도 어렴풋이는요. 형도 뭔가 짐작하고 있었죠?”

“짐작과 아는 건 다르다. 이 난간은 내열 합금이다. 군에서도 요새 중심부에나 쓰는 물건이지.”

“누나랑 비호는 무사할까요?”

“기다리라 했다. 비호가 기갑호를 버리고 오지는 않을 거다.”

“형, 사부님은 정말 괜찮으실까요?”

“괜찮다고 믿어라. 지금은 믿는 것밖에 할 게 없다.”

계단 끝의 원형 전실 바닥에는 톱니와 혈맥 모양의 선이 큰 원을 그렸고, 그 한가운데는 비어 있었다. 누군가의 심장을 기다리는 자리처럼.

콰앙!

반대편 격벽이 안쪽에서 두들겨 맞았다. 두 사람이 동시에 몸을 낮췄다.

“숨 죽여라. 안에서 오는 건 처음 보는 놈이다.”

“안이다! 안에 뭐가 남아 있었어!”

“고치던 기계가 왜 우리를 해체하려 해요!”

비상 잠금문을 밀고 목인 하나가 나왔다. 몸통이 좁고 관절 마디가 가늘고 정교했다. 두 손에는 수술용 집게와 톱니 칼이 붙어 있었다.

“사람을 고치던 기계다. 누군가 명령을 오염시켰어.”

“무겸 형, 어깨가 떨려요!”

“안 떨린다. 뒤로 물러서라!”

“그래도 들고 있을게요!”

강민이 앞으로 나서 수련용 증기검을 들었다. 첫 칼을 막으려던 검신이 피 젖은 손에서 미끄러졌다. 톱니 칼이 어깨로 내려오는 순간 왼쪽 벽이 부서지며 열렸다.

쿠구구궁!

네 다리로 웅크린 기갑호(機甲號)가 벽을 밀고 들어왔다. 해치가 벌컥 열리며 단비호(段飛虎)가 튀어나왔다. 한 손에 압력 렌치, 한 손에 깨진 폭약나사 묶음.

“민이 형, 엎드려!”

폭약나사 두 개가 목인의 무릎 관절 사이로 빨려 들었다. 작은 폭발이 다리 축을 접었고 무겸의 창끝이 감응부를 꿰뚫었다.

“비호, 너 여기서 뭐 하는 거냐! 기다리라고 했잖아!”

“혼은 나중에 내세요! 지금은 살아야죠!”

“기갑호는 어떻게 끌고 왔어, 보일러가 터진다며!”

“터지기 전에 벽 부수는 데 다 썼어요!”

꺼지기 직전 목인의 수술 톱니가 마지막으로 돌며 강민의 팔을 스쳤다. 흐른 피가 잠깐 푸르게 빛났다.

“또야.”

“뭐가 또예요?”

“피가요. 또 파랗게 빛났어요.”

비호가 숨을 멈추고 중얼거렸다. 기갑호 뒤편에서 유서란(柳瑞蘭)이 내려왔다. 얼굴은 매연으로 얼룩졌고 약함을 멘 어깨끈은 피에 젖어 있었다.

“강민아.”

“누나, 왜 왔어. 기다리라고 했잖아.”

“그래서 왔다.”

서란이 그의 어깨를 붙잡았다. 손은 떨렸지만 목소리는 단단했다.

“기다리라는 말은, 기다리다 잃으라는 뜻이 아니니까.”

“이것도 나중에 혼날게요! 기갑호가 거의 죽기 직전이라 살아도 많이 혼날 것 같지만, 죽고 혼나는 것보단 낫잖아요!”

비호가 기갑호의 배기 밸브를 발로 걷어찼다. 평소라면 강민도 웃었을 것이다. 전실 뒤편의 격벽이 열리고 수술실이 나타났다. 벽에는 유리판 여섯 장이 걸렸고 중앙에는 사람이 눕기에 지나치게 넓은 석조 수술대가 놓여 있었다.

“여긴 도장이랑 하나도 안 닮았어요.”

“서란 누나, 여기가 어딘지 짐작 가?”

“……짐작이 가서 무섭습니다.”

“유리판에 사람 몸 그림이 겹겹이야. 기맥도, 혈관도, 기계 배선도……. 그런데 가운데가 전부 비어 있어.”

“지운 게 아니야. 처음부터 아무것도 안 그리기로 한 것 같아.”

“이 유리판에 그려진 몸, 나랑 닮은 것 같아.”

“……보지 마. 나중에 같이 보자.”

“누나, 서류철 좀 봐. 표지마다 한자가 있어. 봉인(封印), 보존(保存), 회수(回收). 사람한테 붙일 말이 아니잖아.”

“읽지 마.”

“그런데 이 글씨…… 사부님이 장부에 쓰던 꾹 눌러쓴 획이야. 사부님은 여길 알고 계신 게 아니라, 지켜 오신 거야.”

서란이 강민의 시선을 기록철에서 가로막고 콧등의 상처를 살폈다. 푸른 반응액이 피부 아래에서 가느다란 선으로 엮이며 상처의 모양을 고정하고 있었다.

“치료가 아니야. 낙인이야.”

“그걸 보고도 담담하네, 누나.”

“담담한 척하는 거야. 가만있어.”

“수술실이다. 사람용으로는 너무 오래됐지만.”

“소독 도관, 냉각 도관, 진법 바닥까지……. 황실 의공원 지하와 구조가 같아.”

천장에는 겹겹이 접힌 수술등 여덟 개가 매달려 있었다. 구석의 발전기는 멈춰 있었다. 비호가 곧장 달려갔다.

“이 침 좀 봐요, 누나 침이랑 각인이 똑같아요!”

“황실 의공원 각인이야……. 여긴 정말 의공원의 비밀 병동이었나 봐.”

“옛 해동식 규격이네. 표준보다 더 촘촘하고, 더 성가시고, 더 미쳤어. 만든 사람 성격 참 더러웠겠다.”

“비호야. 농담할 시간 없어.”

“농담 안 하면 손이 더 떨린단 말이에요!”

“전력 올라오는 데 얼마나 걸려?”

“오 분이요! 그 안에 못 하면 한계예요!”

“한 번만 더 시동이 걸리면 돼요……. 됐다!”

비호가 목인에게서 뽑은 동력선을 잇고 마지막 레버를 당기자 발전기가 검은 매연을 뿜었다. 수술등이 하나씩 눈을 떴다. 흰빛이 아니라 푸른빛이었다.

그때 차폐문이 다시 열렸다. 설무진이 들어왔다. 도복은 갈가리 찢겼고 손등에는 푸른 기운이 가는 선으로 번져 있었다. 뒤에서 목인의 발톱이 계단을 긁는 소리가 따라왔다.

“사부님! 어디 다치셨어요?”

“내 걱정은 나중에 해라.”

“제가 막겠습니다.”

무겸이 문 쪽으로 섰다.

“버텨라. 오래 말고, 필요한 만큼만.”

“비호, 냉각 도관 열어. 무겸 오라버니는 문, 사부님은……”

“나는 이미 준비됐다.”

서란이 강민의 손목을 잡고 수술대로 끌었다.

“누나, 지금 뭘—”

“말하지 마. 숨 아껴.”

“나는 괜찮—”

“괜찮다는 말 한 번만 더 하면 침을 혀에 놓을 거다.”

목소리는 날카로웠지만 눈은 젖어 있었다. 지혈침 세 자루가 어깨와 갈비뼈 아래와 목덜미에 놓였다. 통증이 둔해지는 대신 몸속 깊은 박동이 또렷하게 들렸다.

“민아.”

설무진이 수술대 곁에 섰다. 새벽마다 늦잠을 깨우던 목소리였다. 그런데 오늘은 힘이 다 빠져 있었다.

“사부님, 저는…… 저는 아직 아무것도 못 했어요.”

“그래서 살아야 한다. 아직 아무것도 못 했으니, 앞으로 할 일이 남아 있다.”

“같이 살아야죠. 다른 방법은 없어요?”

“있었다면 십팔 년 전에 썼다.”

설무진은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내가 가진 것은 원래 내 것이 아니었다.”

그가 그을린 옷자락을 천천히 찢었다. 안쪽에서 기어가 맞물리는 소리가 났다. 가슴 한가운데에는 오래된 장갑판과 생체 혈맥이 엉켜 있었고, 푸른 불꽃을 품은 황동 기관이 낮게 뛰고 있었다.

청염기관(靑炎機關).

“사부님 가슴에서…… 기계 소리가 나요.”

비호가 속삭였다. 서란의 얼굴에서 피가 빠졌다.

“사부님, 그걸 꺼내면—”

“안다.”

“안 된다는 뜻이잖아요!” 비호가 발전기 옆에서 고개를 홱 돌렸다. “그게 사부님 심장이잖아요!”

“이건 내 심장이 아니다. 주인은 따로 있다.”

설무진의 시선이 강민에게 내려왔다.

“이것은 네가 태어나던 밤, 네 아버지가 네게 남긴 거다. 나는 십팔 년 동안 잠시 맡아 둔 파수꾼일 뿐이었다.”

“제…… 아버지가요?”

“아버지라니……. 사부님, 그건—”

“서란아, 지금은 아니다.”

강민에게 아버지는 이름도 모르는 사람이었다. 설무진이 곁에서 돌봐 주었기에 그 빈자리를 오래 들여다보지 않고 살 수 있었다.

“아버지는 누구예요? 이름이라도—”

“이름은 묻지 마라.”

설무진이 먼저 잘랐다.

“지금 네가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다. 네 몸에는 원래 이 기관이 앉아야 할 자리가 있었다. 그 자리가 깨어나려 한다. 제대로 잇지 못하면 네 심장은 이 밤을 넘기지 못한다.”

“그러면 사부님은요?”

설무진은 대답하지 않았다. 아니라고도 하지 않았다. 문 쪽에서 금속이 찢어지는 소리가 났다.

“이 팔은 왜 안 죽어!”

무겸의 창에 잘려 나간 목인의 팔이 바닥에서 손가락을 움직이고 있었다. 비호가 달려가 렌치로 감응부를 내리쳤다.

“서란아. 네 손이 필요하다.”

서란이 눈을 감았다 떴다. 의공사의 눈이었다.

“이식부 혈맥은 제가 잇겠습니다. 하지만 기관이 강민의 기맥을 잡아먹으려 하면 바로 끊어야 합니다.”

“잡아먹지 않는다. 네가 붙들고, 비호가 죄고, 무겸이 막고, 민이가 견디면 된다.”

“제가 뭘 하면 돼요?”

설무진의 손이 강민의 이마를 짚었다. 처음 검을 쥐여 주던 날처럼 따뜻했다.

“살겠다고 해라.”

강민은 숨을 들이마셨다. 말린 살구, 나사못 한 줌, 서란의 탕약 냄새, 무겸의 창끝 소리가 스쳤다. 처음으로 복수보다 살고 싶다고 생각했다.

“살겠습니다.”

“…….”

“그냥 목숨만 붙잡겠다는 게 아니에요. 이름도 못 물어본 그 애 이름을 언젠가 찾아서 불러 줄 거예요. 무겸 형 등 뒤에만 숨지 않을 거고, 비호 손이 혼자 떨지 않게 할 거고, 누나가 저 때문에만 울지 않게 할 거예요.”

“그리고?”

“사부님이 숨겨 온 심장을 힘이 아니라…… 빚으로 받을 거예요.”

“……그래. 그렇게 말하면 돼.”

“말은 잘한다. 이제 견뎌라.”

푸른 등불이 한 번 흔들렸다. 벽의 압력계 여덟 개가 동시에 움직이더니 바늘이 모두 강민의 가슴 쪽으로 기울었다.

“기계가 전부 한 사람만 가리키는 건 처음 봐요. 그러니 사부님도—”

“좋다.”

설무진은 그 뒤의 말을 끊었다. 아니, 듣지 않기로 했다.

노스승이 자신의 가슴 안쪽으로 손을 밀어 넣었다. 문 쪽에서 무겸이 고개를 돌리려 했다.

“사부님…….”

“돌아보지 마라, 무겸. 네 자리는 거기다.”

설무진의 몸이 찢어졌다. 그런데 통증은 강민이 먼저 느꼈다. 설무진은 비명 한 줄 내지 않았다. 대신 수술대 모서리를 쥔 손가락이 돌을 으스러뜨렸다.

“혈맥 잡았습니다!”

“예비 이음쇠 준비됐어요!”

“문이…… 밀린다! 아직 괜찮다, 계속해라!”

세 목소리가 한꺼번에 겹쳤다. 설무진이 청염기관을 꺼냈다. 수술실의 모든 등이 꺼졌다가 켜졌다. 가슴이 빈 화로처럼 어두워졌는데도 그는 강민 위로 몸을 숙였다.

“서란아.”

“준비됐습니다. 비호야, 도관 세 개 순서대로!”

“하나, 둘, 셋! 맞춰졌어요!”

“비호야.”

“이음쇠 맞췄어요. 형의 규격…… 이상하지만 맞아요. 진짜 처음부터 형 몸에 맞게 만들어져 있어요.”

비호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설무진이 아주 희미하게 웃었다.

“그럼 이제 돌려주면 된다.”

바닥의 진법이 깨어나 강민의 가슴 위 빈자리를 푸른 선으로 그렸다. 서란이 절개선을 잡았다. 강민은 비명을 참지 못했다. 서란의 눈에서 눈물이 떨어졌지만 손은 멈추지 않았다.

“숨을 길게 쉬어라, 민아. 들어오는 건 네 거다.”

청염기관이 강민의 몸에 닿았다.

“으아아…… 몸이…… 몸이 밀어내요!”

“맥이 튑니다!”

“강민아, 눈 떠! 감지 마!”

“떴어요…… 떴어요!”

“압력 내려, 비호야!”

“내렸어요! 또 올라요!”

“십 초만 더 버텨라, 문이 밀린다! 놈이 한 겹 더 뜯었다!”

“단전이 얼어붙었어요! 기맥이 서로 다른 데로 찢어지는 것 같아요!”

“뜨거워…… 차가워…… 둘 다예요!”

“누나, 왼쪽 세 번째 도관! 거기 아니면 과압이 형 폐로 가요!”

“여기?”

“네, 거기요!”

“사부님, 기맥이 끊깁니다!”

“이어라. 멈추지 마라.”

서란이 비호가 가리킨 곳에 기공을 흘려 넣었다. 비호는 작은 나사를 피 묻은 손가락으로 다시 집어 끼웠다. 이하겸이 새긴 상처를 따라 푸른 반응액이 스며들더니 상처가 불꽃 모양의 붉은 선으로 굳기 시작했다.

“……들려.”

“뭐가, 강민아?”

“누나 숨소리, 비호 렌치 소리, 무겸 형이 문을 누르는 박자, 사부님 숨이…… 점점 얕아지는 것도. 처음엔 전부 따로 놀았는데, 이제 하나로 맞아.”

쿵.

한 번. 바닥의 진법이 푸르게 빛났다.

쿵.

두 번. 벽에 기대 둔 본국검이 스스로 낮게 떨었다.

쿵.

세 번. 단전에서 심장으로, 심장에서 오른팔로, 검을 쥔 손끝으로 길이 열렸다. 사람의 기맥과 기계의 배선이 처음으로 같은 박자로 움직였다. 동기화(同期化)였다.

“눈 떴어요! 형 눈이 파래요! 바늘이 전부 형 쪽을 가리켜요!”

“본국검이…… 혼자 빠져나와!”

치이익. 외부 동력 없이 검 안쪽의 실린더가 돌았다. 벽의 등이 차례로 켜졌고 바닥의 선이 살아 있는 혈관처럼 빛났다.

“형…… 검이 형 심장 박동에 맞춰 돌고 있어.”

“맥은…….”

서란이 강민의 맥을 잡은 채 한참 후에 말했다.

“0단계. 이식 직후의 불안정. 그런데 안정이야. 믿을 수 없을 만큼 아슬아슬하고, 믿을 수 없을 만큼 정확한 안정.”

“0단계가 뭐예요?”

“이식 직후의 첫 단계. 이제부터가 시작이라는 뜻이야.”

“그럼 다음은 1단계예요?”

“그렇게 쉽게 오르면 좋겠다.”

그녀는 의공사로서 기록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누나로서 울어야 한다고도 생각했다. 둘 다 하지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설무진의 손이 수술대 위로 떨어졌다. 강민은 서란이 막는데도 몸을 일으켜 스승의 손을 잡았다. 그 손은 늘 단단했다. 지금은 너무 가벼웠다.

“사부님!”

설무진의 입술이 움직였지만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대신 손가락이 아주 조금 움직였다. 손안에 청동 열쇠가 쥐여 있었다. 손잡이에 흰 용의 비늘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청동 열쇠……. 흰 용 비늘이야. 아까 벽 문양이랑 같아.”

“이게 뭘 여는 건지는…… 묻지 않을게요. 묻는 순간 사부님이 더 빨리 가실 것 같아서요.”

강민이 열쇠를 받아 들었다. 설무진의 체온이 아직 남아 있었다.

“잃지 않겠습니다. 제가…… 제가 열어야 할 날까지.”

설무진의 눈이 아주 조금 웃었다. 그것이 대답이었다.

콰아앙!

차폐문이 크게 휘었다. 무겸이 뒤로 밀려났다. 창대가 반쯤 부러지고 무릎이 바닥에 닿았다.

“오지 마라!”

“무겸 오라버니, 물러나요! 문이 찢겨요!”

“찢겨도 서 있겠다!”

달려가려던 비호를 무겸이 팔로 막았다. 문틈으로 이하겸(李河謙)의 검은 칼날 하나가 들어와 차폐문 안쪽을 느리게 긁었다. 끼이이익.

“수술은 끝났나.”

“놈이 말을 걸고 있다. 문 하나가 남았다. 서란 누나, 강민을 일으키지 마라!”

그 목소리를 듣자 강민의 새 심장이 한 번 더 뛰었다. 본국검이 검집 밖으로 완전히 밀려 나왔다. 강민은 스승의 손을 놓지 않은 채 다른 손으로 검자루를 잡았다. 푸른 불꽃이 손등을 타고 올라왔지만 뜨겁지 않았다.

설무진이 마지막 힘으로 강민의 손목을 붙잡았다.

“아직…… 네 싸움이 아니다.”

“그럼 누구의 싸움인데요. 사부님, 눈 뜨세요, 아직 안 된다고요!”

강민이 고개를 저었다. 차폐문이 한 번 더 찢기고 사람 하나가 드나들 만한 검은 틈이 생겼다. 그 틈으로 이하겸의 회색 눈이 강민의 가슴을 보았다. 그리고 처음으로 미소를 지었다.

설무진의 손아귀에 다시 힘이 들어갔다.

“마지막으로…….”

노스승의 목소리가 푸른 빛 속에서 갈라졌다.

“사부 노릇을 하게 해 다오.”

다음 순간 그의 빈 가슴에서 꺼졌다고 믿었던 푸른 불꽃 한 줄기가 다시 솟아올랐다.

— 話 9 終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