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점 · 강민 — 균열·낙인 단계

잿빛 협곡의 추격

第1部 · 話 11 · 검령성 · published

海東曆: 201년 5월 4일 · 시점: 강민

검령성(劍靈城)이 불탄 지 이틀이 지났는데도, 강민(剛民)의 코에서는 탄 나무와 기름 냄새가 빠지지 않았다.

성벽도 도장도 스승이 마지막으로 손을 뻗던 지하 연구소도 이제 뒤에 없었다. 그래도 숨을 들이쉴 때마다 달아오른 쇠 냄새와, 사람들이 오래 울고 난 뒤 남는 축축한 먼지 냄새가 함께 들어왔다. 콧등을 가른 상처는 걸을 때마다 다시 벌어져 따끔거렸다.

그보다 선명한 것은 가슴속 박동이었다. 스승 설무진(雪武陳)이 마지막 힘으로 넣어 준 청염기관(靑炎機關)이 왼쪽 가슴 안에서 낯선 짐승처럼 낮게 숨을 쉬고 있었다.

일행은 검령성 북서쪽 마른 계곡을 따라 걷는 중이었다. 양쪽으로 검은 현무암 절벽이 솟았고, 절벽 틈마다 수십 년 전 버려진 광산 배관이 녹슨 채 튀어나와 있었다. 밤새 식지 않은 돌의 열기와 새벽 냉기가 섞여 바닥에 흰 안개가 깔렸다.

“이 길, 원래 뭐 하던 길이에요?” 강민이 앞을 보며 물었다.

“광석 수레가 다니던 길이다.” 맨 뒤에서 장무겸(張武謙)이 답했다. “더 오래전에는 해룡성(海龍城) 쪽으로 빠지던 피난민 길이었고.”

“피난민 길이라…….”

“지금 우리한테 딱 맞는 이름이지.”

새벽 다섯 시를 조금 넘긴 시각이었다. 일행 앞에서는 기갑호(機甲號) 초형이 몸을 낮춘 채 네 다리로 바위를 짚어 나갔다. 퉁, 퉁. 오른쪽 뒷다리 관절에서는 전날부터 가는 증기가 새고 있었다.

단비호(段飛虎)는 기체 옆구리 정비 발판에 한쪽 무릎을 건 채 쉬지 않고 손을 놀렸다. 열세 살 소년의 손은 기름과 재로 새까맸다.

“이 다리는 원래 산길용이 아니에요.”

평소 같으면 뒤에 농담이 붙었을 말이었다. 비호는 아무것도 덧붙이지 않았다. 강민은 그게 더 불편했다.

“비호야, 너 마지막으로 잔 게 언제야?”

“그저께? 아니, 그끄저께인가. 도장에 불났을 때부터 날짜가 잘 안 세어져요.”

“좀 쉬어. 내가 다리 봐 줄게.”

“형이요? 형은 지금 형 다리부터 보세요. 아까부터 왼발 질질 끄는 거 다 들려요.”

강민은 대꾸하지 못했다. 맞는 말이었다.

“성벽 뚫으라고 만든 걸 협곡에서 굴리다니, 이건 도구 학대예요. 사람도 말도 병기도 잠은 자야 하는데, 우리 넷 중에 셋은 못 자고 있잖아요.”

“셋?” 뒤에서 유서란(柳瑞蘭)이 되물었다.

“사람, 말, 병기요. 말은 없지만 있다고 치고요.”

서란의 입술이 웃으려다 멈췄다. 그녀 양손에는 쌍수 세검이 쥐여 있었다. 환자의 맥을 짚고 상처를 꿰매던 의공사(醫工士)의 손등에는 약초즙보다 마른 피가 더 많이 묻어 있었다. 허리에는 약장 대신 임시 냉각통 네 개가 매달렸고, 그중 하나는 가는 황동관으로 강민의 흉갑 안쪽과 이어져 있었다.

장무겸은 청룡기창을 비스듬히 들고 맨 뒤에서 협곡 그림자를 살폈다. 오른쪽 어깨 갑주가 갈라진 틈으로 검붉게 젖은 붕대가 보였다.

“오라버니, 붕대 또 젖었어요.” 서란이 돌아보지도 않고 말했다.

“알고 있다.”

“알고 있으면 좀 멈춰요. 갈아 줄게요.”

“여기서 멈추면 갈 붕대보다 묻힐 사람이 먼저 생긴다.”

“그 말, 의공사 앞에서 하면 안 되는 말인 거 알죠?”

“그러니까 네 앞에서만 한다.”

서란은 한숨을 쉬고 더 말하지 않았다.

“형, 뒤는 제가…….”

강민은 말을 끝내지 못했다. 뒤를 맡겠다는 말은 등을 맡길 만큼 강하다는 뜻이었다. 지금의 자신에게는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없다고 느꼈다.

“뭐라고 했냐?”

“아니에요.”

스승의 마지막 목소리가 또 떠올랐다.

너는…… 강민이 아니다. 너는…….

그 뒤는 없었다. 입술이 멈췄고 손이 식었다. 이틀 동안 그 끊긴 문장을 삼켰지만 내려가지 않았다. 청염기관은 그 문장을 떠올릴 때마다 한 번씩 늦게 뛰었다.

“강민아.” 서란이 불렀다. “숨이 빨라졌어. 통증이야, 열이야?”

“괜찮아, 누나.”

“괜찮다는 말은 진단명이 아니야.”

서란이 다가와 손목을 잡았다. 맥을 짚는 순간 냉각통 바늘이 한 칸 올라갔다. 그녀는 눈썹을 조금 찌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강민은 그녀가 입을 다물 때가 더 위험하다는 걸 알았다.

“누나.”

“응.”

“내가 혹시 멈추면…….”

심장이 멈춘다는 건지, 사람 아닌 무언가로 바뀐다는 건지, 스스로도 몰랐다.

“네가 멈추면 내가 다시 뛰게 할 거야. 너무 빨리 뛰면 내가 늦출 거고.”

“그게 안 되면?”

“그건 그때 생각해. 지금은 걷는 것만 생각해.”

“서란 말이 맞다.” 무겸이 낮게 덧붙였다. “지금은 살아서 이 협곡을 빠져나가는 것만 생각해라. 슬픔도, 사부님 유언도, 네 가슴속 기관도. 전부 살아남은 다음 일이다.”

강민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곧 걸음을 멈췄다.

앞쪽 30미터 지점에서 바람에 날리던 잿가루가 한 번 흔들리더니 그대로 가라앉았다. 바람은 계속 불고 있었다.

“형, 저기 먼지가…….”

무겸의 창끝이 이미 내려가 있었다. 서란은 손목을 놓고 세검 두 자루를 거꾸로 쥐었다. 비호는 소리 없이 발판에서 뛰어내려 공구가방 버클을 풀었다.

뒤쪽에서도 같은 일이 일어났다. 지나온 길 두 군데에서 먼지가 움직이지 않았다.

“길이 막힌 게 아니에요.” 강민이 속삭였다. “누가 서 있어요. 발자국을 안 남기는 사람이.”

“무음보(無音步).” 무겸의 목소리가 차갑게 떨어졌다.

앞쪽 바위 회랑에서 검은 잠행복을 입은 자객이 나타났다. 오른쪽 절벽 중턱에서 둘째가 내려섰고, 뒤쪽 굴곡 너머에서 셋째의 붉은 눈빛이 켜졌다. 셋 다 발소리가 없었다. 얼굴은 사람이었지만 목 아래 관절마다 얇은 흑철판이 겹쳐 있었고, 움직일 때마다 살 밑에서 작은 톱니가 맞물리는 소리가 났다.

“기계중원(機械中原) 흑영(黑影)이야.” 비호의 목소리가 떨렸다. “추격조요.”

선두 자객이 손을 들었다. 손목 안쪽에서 끝에 톱니가 박힌 갈고리 사슬 세 줄이 튀어나와 날아왔다.

쾅!

첫 사슬은 기갑호 앞다리 관절을, 둘째는 왼쪽 뒷다리 구동축을 감았고, 셋째는 바위에 박혀 고정되었다. 두 다리를 묶인 기체가 옆으로 기울며 절벽에 어깨를 박았다. 황동 장갑과 바위가 갈리며 불꽃이 튀었다.

“비호!”

“알아요!”

비호는 기갑호 반대편 절벽 아래로 미끄러져 내려갔다. 강민이 뒤따르려 하자 무겸의 장창이 눈앞을 막았다.

“너는 가운데.”

“형!”

“아직 네가 앞에 설 때가 아니다.”

그 말이 가슴을 찔렀다. 무겸은 대꾸할 틈을 주지 않고 협곡 입구에 몸을 박았다. 선두 자객이 낮게 파고들었다. 팔뚝 흑철판이 갈라지며 톱니 단검 두 자루가 튀어나왔다.

창과 톱니가 부딪치는 소리가 협곡을 갈랐다.

첫 찌르기는 어깨 부상 탓에 조금 늦었다. 목을 노린 창끝이 마지막 순간 3센티미터쯤 아래로 밀렸다. 자객이 그 틈에 몸을 비틀어 무겸의 옆구리로 들어왔다.

“오라버니, 오른쪽!”

서란의 세검 두 자루가 교차했다. 하나는 톱니 단검을 쳐내고 다른 하나는 어깨 관절 가죽끈을 끊었다. 피 대신 검은 윤활유가 튀었다. 자객 오른팔이 무거워진 순간, 무겸의 창대가 바닥을 찍고 다시 올라와 흉갑 이음새를 꿰뚫었다. 자객이 발뒤꿈치로 바닥을 긁으며 2미터쯤 밀려났다.

“쓰러졌어요?”

“아니다. 봐라.”

흉갑 안쪽에서 증기가 뿜어졌다. 자객의 목이 옆으로 꺾였다가 다시 돌아왔다. 사람이라면 쓰러졌을 자리에서, 그는 뚫린 흉갑을 그대로 둔 채 다시 걸어왔다.

강민은 검을 뽑았다. 스승의 본국검은 아직 손에 너무 무거워 기갑호 보관함에 묶어 두었다. 손에 쥔 것은 검령성 지하에서 챙긴 낡은 수련용 증기검이었다. 실린더는 이미 과열되어 있었다.

단전의 기운을 끌어올리자 청염기관이 먼저 반응했다. 푸른 열이 목까지 치밀었다.

아직 아니다.

“강민아, 눈금 올라가!” 서란이 자객과 맞선 채 소리쳤다.

“알아! 안 써!”

“안 쓰는 게 아니라 못 쓰게 참는 거잖아. 그게 더 힘든 거 알아. 버텨!”

지금 터뜨리면 모두가 휘말린다. 흉갑에 붙은 냉각관으로 차가운 약액이 흘러 열을 눌렀다. 유리 눈금이 또 한 칸 올랐다.

베지 말고 버텨. 튀어 나가지 말고 봐.

둘째 자객이 절벽 중턱에서 허리의 원통 장치로 쇠침을 연달아 쏘았다. 노리는 곳은 사람이 아니었다. 비호가 기어가는 천장 지지대 주변, 낡은 황동 보강재였다.

“비호, 위!”

비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공구가방에서 손가락만 한 황동 나사 세 개를 꺼내 이빨로 안전핀을 뽑았다. 전날 밤 졸린 눈으로 눈금을 새긴 폭약나사였다. 구조물을 정확히 끊으려고 만든 정비 도구였지만, 잘못 박히면 협곡 전체를 무덤으로 만들 수 있었다.

쇠침이 비호의 머리 위로 쏟아졌다. 강민은 생각보다 먼저 몸을 던졌다. 검을 세워 첫 쇠침을 튕겼고, 둘째는 어깨로 받았다. 쇠가 살을 파고들었다. 셋째가 뺨을 스치며 콧등 상처를 다시 열었다.

“형!”

“박아!”

자기 목소리인데 가슴속 쇠를 지나 나온 것처럼 낮고 거칠었다.

비호가 이를 악물고 뛰어올라 절벽 틈 철제 보강재에 매달렸다. 손가락이 미끄러지자 왼발로 바위 돌기를 찍고 버텼다. 첫 나사가 지지대에, 둘째가 천장과 벽이 만나는 곳에 박혔다.

셋째를 박으려는 순간 뒤쪽 자객이 움직였다. 셋째 자객은 처음부터 강민의 가슴만 보고 있었다. 정확히는 흉갑 안쪽, 냉각관이 이어지는 자리였다. 그가 손바닥을 펴자 가운데서 검은 바늘이 나왔다. 바늘 끝에 푸른 코테르(機核) 가루가 묻어 있었다.

“저건 저를 노려요.” 강민이 중얼거렸다. “제 가슴 안의 걸 깨우려고.”

그 순간 청염기관이 미친 듯이 뛰었다.

쿵.

바닥의 잿가루가 둥글게 튀어 올랐다. 냉각통 눈금이 세 칸을 한꺼번에 치솟았다. 시야 가장자리가 푸르게 타올랐다. 절벽 균열이 푸른 선으로 보였고, 자객들 관절 속 톱니가 어느 방향으로 도는지, 기갑호의 묶인 다리 중 어느 축이 끊어지기 직전인지까지 보였다.

손끝이 떨렸다. 힘이 생긴 게 아니었다. 너무 많았다. 너무 뜨겁고 빨라서, 검으로 보낼 수도 몸 안에 가둘 수도 없었다. 오른팔 혈관이 푸르게 솟았다.

“강민아, 내 목소리만 들어!”

서란이 뛰어들었다. 둘째 자객의 쇠침에 왼쪽 어깨를 얕게 찢기면서도 피하지 않고 다가와 냉각통 보조 밸브를 열었다. 찬 증기가 흉갑 밑으로 밀려들었다. 그녀 손끝에서 흘러나온 황금빛 기공이 강민의 손목을 감쌌다.

“네 심장은 지금 싸우려는 게 아니야. 기억하려는 거야. 사부님 죽음, 도장의 불, 못 구한 사람들. 그걸 한꺼번에 떠올리니까 타는 거야.”

“누나, 나는…….”

“말하지 마. 숨부터 세.”

검은 바늘이 날아왔다. 가슴 한가운데를 향해 있었다. 피하면 뒤에 선 서란이 맞는다. 막으려고 손을 들면 청염이 터질지도 몰랐다.

그때 무겸의 창이 날아와 강민과 자객 사이 바닥에 꽂혔다. 황동 창대가 바늘을 받아냈고, 코테르 가루가 창대 위에서 푸르게 타올랐다. 무겸은 창을 놓은 채 맨손으로 선두 자객의 팔을 붙들고 있었다. 손등이 톱니에 긁혀 피가 흘렀다.

“봤느냐.” 그가 이를 악문 채 내뱉었다. “싸움은 베는 순간에 정해지는 게 아니다. 누가 누구 앞에 서느냐에서 정해진다.”

하나. 둘. 셋. 강민은 숨을 셌다. 냉각통 금속음이 들렸다. 서란의 손끝이 떨리는 것도, 창 없이 버티는 무겸의 무게도, 머리 위에서 셋째 나사를 박으려는 비호의 발끝이 흔들리는 것도 느껴졌다. 모두 무너지고 있었고, 모두 버티고 있었다.

강민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았다.

앞으로 뛰쳐나가지 않고 한 걸음 옆으로 섰다. 서란을 등 뒤에 두고, 꽂힌 창대와 자기 검 사이에 좁은 삼각형을 만들었다. 증기검을 낮게 눕혀 바늘이 지나갈 각을 막고, 왼손으로 냉각관을 눌러 열을 낮췄다. 공격이 아니라 막기. 폭발이 아니라 버티기. 스승이 늘 강조하던 기본이었다.

셋째 자객이 두 번째 바늘을 뽑았다.

“귀 막아요!”

셋째 나사가 박혔다. 비호가 작은 기폭 장치를 비틀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너무 조용해서 강민은 실패했다고 생각했다.

딱.

나사가 안에서 부풀었다.

딱딱딱딱딱!

파열음이 천장과 벽 사이를 달렸다. 바위가 터지지는 않았다. 수십 년을 겨우 버티던 지지대가 힘을 잃었고, 천장이 조금 늦게 무너져 내렸다.

굉음이 골짜기를 삼켰다.

자잘한 돌이 비처럼 쏟아지더니 사람 키만 한 바위가 뒤쪽 통로를 막았다. 둘째 자객이 뛰어내려 빠져나가려다 무너지는 지지대에 왼쪽 다리가 깔렸다. 흑철판과 뼈가 함께 부서지는 소리가 났다. 자객은 비명 대신 목 안의 금속 진동판을 찢어진 종처럼 울렸다.

셋째 자객이 물러서려 하자 비호가 넷째 나사를 던졌다. 나사가 자객의 발목 관절에 달라붙었다.

“이건 사람한테 쓰는 거 아니라고 했는데!” 비호의 목소리가 울컥 흔들렸다. “그래도 지금은 예외예요!”

작고 정확한 폭발이었다. 발목 관절이 거꾸로 돌았고 자객이 균형을 잃었다. 서란이 그 틈으로 들어갔다. 의공사답게 그녀는 관절과 흐름을 읽었다. 왼손 세검이 팔꿈치 구동선을 끊고, 오른손 세검이 어깨 뒤 압력관을 찔렀다. 고압 증기가 터지며 자객의 팔이 축 늘어졌다.

“오라버니!”

무겸은 선두 자객과 엉켜 바닥을 구르고 있었다. 창은 여전히 강민 앞에 꽂혀 있었다. 톱니 단검이 무겸의 목으로 내려왔다.

강민은 이번엔 망설이지 않았다. 증기검을 두 손으로 잡고 달렸다. 실린더가 비명을 질렀다. 청염이 터지려는 순간, 그는 그 열을 칼에 싣지 않고 발바닥으로 내려보냈다.

바닥이 울렸고, 몸이 앞으로 튀어 나갔다. 검날은 자객의 목에 닿지 못했다. 대신 단검 궤도를 5센티미터 틀었다. 단검은 목 대신 어깨 갑주를 긁고 지나갔다. 무겸이 그 틈에 자객의 팔을 꺾어 바닥에 눌렀다.

“창!”

강민이 꽂힌 창을 발로 차 올렸다. 무겸이 허공에서 창대를 낚아챘다. 창끝이 흉갑 이음새로 두 번째 내리꽂혔다. 이번에는 깊었다. 흑철판 속 구동 핵이 깨지는 소리가 났고, 붉은 눈빛이 두 번 깜빡이다 꺼졌다.

“기갑호 사슬!” 비호가 외쳤다. “지금 끊어야 해요. 더 무너지면 얘도 묻혀요!”

강민이 기갑호로 뛰었다. 앞다리 관절을 감은 사슬은 톱니째 깊이 박혀 있었다. 손으로는 안 풀렸고, 검으로 베기엔 각이 나빴다. 청염을 끌어올리려 하자 냉각통이 쇳소리를 냈다.

“안 돼!” 서란이 소리쳤다. “지금 열 올리면 관 터져!”

“그럼 얘가 묻혀!”

“검 말고 손으로 해!”

“손으로 어떻게—”

말하다 멈췄다. 손을 대지 않고 단전 기운만으로 밸브를 돌리던 새벽 훈련이 떠올랐다. 강민은 사슬을 끊으려 하지 않고, 톱니가 어느 방향으로 물려 있는지 느꼈다. 갈고리마다 작은 역방향 걸쇠가 있었다. 당기면 더 박히고, 아주 조금 돌리면 풀리는 구조였다.

왼손을 사슬에 얹었다. 청염을 밀어 넣지 않았다. 숨을 낮추고 쇠의 떨림을 들었다. 뜨겁게 뛰는 박동과 사슬의 떨림을 나란히 놓았다.

딸깍.

“형, 지금 뭐 한 거예요?” 비호의 눈이 커졌다.

강민은 대답할 여유가 없었다. 두 번째 걸쇠는 관절 안쪽까지 박혀 있었다. 힘을 조금만 더 주면 청염이 올라올 것이고, 태워 버리면 쉽게 끝날 것이다. 하지만 그러면 기갑호 관절도 같이 녹는다. 모두가 기대는 탈출 수단을 제 손으로 망가뜨릴 수는 없었다.

다시 숨을 낮췄다.

딸깍.

“풀렸다.” 강민이 숨을 내쉬었다.

“손으로? 진짜 손으로?”

“손이 아니라…… 듣기만 했어. 어디로 돌려야 하는지 사슬이 알려 줬어.”

“형, 그거 나중에 저한테 꼭 가르쳐 줘요. 아니다, 못 배우겠다. 그냥 옆에서 구경할게요.”

사슬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기갑호가 몸을 세우며 낮은 구동음을 냈다. 비호가 울 것 같은 얼굴로 기체 옆구리를 두드렸다.

“착하지, 착하지. 아직 죽으면 안 돼. 나한테 고칠 데가 너무 많단 말이야.”

무겸은 뒤쪽 통로가 무너진 상태를 살폈다. 바위에 깔린 둘째 자객이 아직 꿈틀거리며 손가락으로 바닥을 긁어 강민 쪽을 가리켰다. 손목 안 작은 금속관에서 검은 액체가 흘렀고, 그 액체에 닿은 재가 푸르게 변했다.

강민이 다가가려 하자 무겸이 팔을 뻗었다.

“건드리지 마라.”

“살아 있어요.”

“살아 있는 덫일 수도 있다.”

말이 끝나기 전에 자객 목 뒤의 작은 유리구가 깨졌다. 약액이 흘러나오자 몸이 굳었다. 심문을 막으려는 자멸 장치였다. 사람이 마지막 숨을 거두는 것보다는, 서류 한 장을 태워 증거를 없애는 것처럼 조용했다.

“자기들끼리도 사람 취급을 안 하네요.” 강민의 속이 뒤틀렸다.

비호가 셋째 자객의 품을 뒤졌다. 도구와 표식, 코테르 가루 주머니가 나왔다. 흉갑 안쪽 방수 가죽 주머니에서 반으로 접힌 수배 전단 한 장이 나왔다. 기름을 먹인 종이 가장자리에 기계중원의 톱니 문양이 찍혀 있었다.

펼치는 순간 모두가 입을 다물었다.

목탄으로 그린 서툰 얼굴이었지만 알아볼 수 있었다. 콧등 상처가 없었다. 아직 도장에서 밸브를 돌리고 서란의 잔소리를 듣던 때의 얼굴이었다. 그런데 얼굴 아래에 이름이 없었다. 강민(剛民)이라는 두 글자도, 출신도, 죄목도 없었다.

네 글자만 적혀 있었다.

심장을 온전히.

“이름이 없어.” 비호가 속삭였다.

“죽이지 말고, 부수지 말고, 꺼내 오라는 거네.” 강민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저 사람들이 쫓는 건 제가 아니에요. 제 가슴 안에 든 거예요. 저는 운반 중인 부품이고요.”

스승은 죽기 직전 그가 강민이 아니라고 했다. 자객의 전단에는 처음부터 강민이라는 이름이 없었다. 두 침묵이 겹쳤다. 어느 쪽이 진실인지 알 수 없었다.

서란이 전단을 접었다.

“지금은 이거 오래 보지 마. 맥 다시 빨라져.”

“누나.”

“응.”

“저 사람들은 나를 죽이러 온 게 아니었네.”

“그래.”

“그럼 사부님은…… 나 때문에 돌아가신 거네.”

서란의 얼굴이 하얗게 굳었다. 무겸이 입을 열기 전에 서란이 강민의 멱살을 잡았다. 힘은 세지 않았지만 손에 분노가 실려 있었다.

“그 말 다시 하지 마.”

“하지만—”

“사부님은 네가 물건이 아니라는 걸 증명하려고 돌아가셨어. 네가 사람이고, 네가 선택할 수 있고, 네 심장은 네 거라는 걸. 그러니까 지금 네가 할 일은 죄를 뒤집어쓰는 게 아니야. 살아서 그 증명을 이어 가는 거야.”

서란의 눈가가 젖어 있었다. 울지 않으려 이를 악물고 있었다. 강민은 대답하지 못했다. 비호는 고개를 숙이고 공구가방 끈만 만지작거렸다.

무겸이 전단과 쓰러진 자객, 그리고 협곡 너머 흐린 하늘을 차례로 보았다.

“추격조 셋이 여기까지 왔다면 본대도 멀지 않다.” 그가 창을 들어 올렸다. “비호, 기갑호는 얼마나 갈 수 있지?”

“시속 12킬로미터로 두 시간이요. 더 달리면 오른쪽 뒷다리가 빠질지도 몰라요. 그리고 제가 안 자서 제 다리도 빠질 수 있어요.”

아주 작은 웃음이 새어 나왔다. 웃음이라 부르기 민망한 숨소리였지만, 살아 있는 사람만 낼 수 있는 소리였다. 강민은 그 소리에 잠깐 무너질 뻔했다.

“그럼 두 시간 안에 숨을 데를 찾아야겠네.” 서란이 지도를 펼쳤다. “오라버니, 이 근처에 뭐 있어요?”

“폐광 감시초소가 하나 있었다. 지금도 서 있는지는 모르겠다.”

“없으면요?”

“없으면 바위 그늘이다. 오늘은 그것도 사치다.”

일행은 무너진 협곡을 빠져나왔다. 기갑호가 절뚝이며 앞섰고, 비호는 그 위에 올라탄 채 손을 놀렸다. 서란은 강민 옆에서 냉각통 눈금을 지켜봤다. 무겸은 또 뒤를 맡았다.

강민은 이번에는 그 뒤에 숨어 걷지 않았다. 자주 멈춰 바닥 흔적을 확인했고, 절벽 위 그림자를 살폈다. 숨이 빨라지면 스스로 셌다. 하나, 둘, 셋, 넷. 열이 오르면 발바닥으로 내렸고, 손이 떨리면 검자루를 놓았다가 다시 잡았다.

“이제 좀 걷는 것 같네.” 서란이 옆에서 중얼거렸다.

“아까는 안 걸었어?”

“아까는 끌려갔지.”

“누나.”

“또 뭐.”

“아까 내 가슴이 뛰었을 때. 절벽 금이 다 보였어. 자객들 관절 안에서 톱니가 어느 쪽으로 도는지도.”

서란이 걸음을 늦췄다. “그게 무섭니, 아니면 좋았니?”

“둘 다. 그래서 더 무서워.”

“그럼 됐어. 좋기만 했다면 내가 더 걱정했을 거야.”

기갑호 위에서 비호가 고개만 돌렸다. “형, 그거 다음에 또 보이면 기갑호 뒷다리도 좀 봐 줘요. 어디서 새는지 저는 귀로만 찾고 있거든요.”

“너 지금 나를 정비 도구로 쓰겠다는 거지?”

“형은 원래 도장에서도 보일러 담당이었잖아요. 직책이 바뀐 거 아니에요.”

앞서 걷던 기갑호가 퉁, 하고 돌을 밟았다. 오른쪽 뒷다리에서 김이 조금 더 새어 나왔다. 비호가 혀를 차며 다시 몸을 숙였다.

해가 서쪽으로 기울 무렵, 일행은 폐광 감시초소였던 작은 돌집에 들어갔다. 지붕은 반쯤 무너졌고, 벽에는 광부들이 긁어 놓은 숫자와 이름이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바닥 아래 저장구에 물이 조금 고여 있었다. 서란은 그 물을 끓여 상처를 씻었고, 비호는 기갑호 관절을 뜯어 임시로 덧댔다. 무겸은 돌집 밖 20미터 지점에 방울을 단 경계줄을 쳤다.

서란이 강민의 어깨에 박힌 쇠침을 집게로 뽑아냈다. 강민이 이를 악물었다.

“끝이 휘었네. 독은 없어. 운이 좋았어.”

“누나 어깨는?”

“내 건 얕아.”

“얕은지는 누가 봐?”

서란이 손을 멈추고 그를 보았다. “방금 내 말 그대로 돌려준 거야?”

“누나한테 배웠어.”

“나쁜 것만 빨리 배우지.” 그녀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강민에게 등을 돌려 자기 어깨를 보여 주었다. 강민이 서툰 손으로 연고를 발랐다.

가만히 앉아 있으면 그 네 글자가 다시 떠올랐다. 강민이 밖으로 나가려 하자 무겸이 붙잡았다.

“어디 가냐.”

“주변 좀 보려고요.”

“눈보다 발부터 봐야 한다.”

무겸이 창대를 던졌다. 받아 든 창은 생각보다 무거웠다. 검 들 때처럼 손목으로 버티려 하자 창끝이 바로 흔들렸다.

“검이 흔들리는 건 손 때문이 아니다. 발이 흔들려서다.”

“형, 저한테 창 가르쳐 주세요.”

“창을 배우겠다고?”

“아뇨. 서는 법부터요.”

무겸이 잠시 그를 보다가 아주 희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오늘은 베는 법도 찌르는 법도 안 한다. 도망치는 법도 아니다. 누군가 앞에 서야 할 때 쓰러지지 않는 법을 배운다.”

“어떻게 서면 돼요?”

“발은 어깨너비보다 조금 넓게. 무릎 잠그지 말고. 발끝은 살짝 틀어라. 숨은 가슴이 아니라 배 아래로.”

강민은 서 있기만 하는 게 이렇게 힘든 줄 처음 알았다. 10분도 안 돼 허벅지가 떨렸고 다친 어깨가 쑤셨다. 청염기관은 답답하다는 듯 느리게 열을 올렸다.

“도망자는 발뒤꿈치가 먼저 죽는다. 겁먹은 자는 발끝이 먼저 뜬다. 화난 자는 몸이 앞으로 쏠린다. 셋 다 죽기 좋은 자세다.”

“저는 셋 다네요.”

“그래서 배우는 거다.”

“아까 협곡에서요. 형이 창 던졌을 때, 형은 무섭지 않았어요?”

“무서웠다.”

“그런데 왜 던졌어요?”

“네 뒤에 서란이 있었고, 내 손에는 창이 있었다. 그뿐이다.” 무겸이 강민의 무릎을 툭 쳤다. “잠갔다. 다시.”

“그렇게 간단해요?”

“간단하지 않으니까 매일 서는 연습을 하는 거다.”

돌집 안에서 비호가 중얼거렸다. “저는 졸려서 죽기 좋은 자세인데요.”

서란이 그의 뒤통수를 가볍게 쳤다. “손 멈추면 기갑호 다리도 같이 죽어.”

“의공사는 말도 무섭게 해요.”

“환자가 말을 안 들으면 더 무서워져.”

강민이 짧게 웃었다. 웃자 가슴이 아팠다. 그는 이번에는 그 통증을 죄라고 부르지 않았다. 살아 있는 몸이 내는 소리라고 생각했다.

밤이 되자 비호가 만든 차폐판 안에 손바닥만 한 불씨만 살려 두었다. 불빛에 네 사람의 그림자가 벽에 붙었다. 한 사람이 있어야 할 자리가 비어 있었다. 아무도 그 얘기를 꺼내지 않았지만 모두 알고 있었다.

서란이 불씨 옆에서 끓인 물을 나눠 주었다. 비호는 컵을 받자마자 반쯤 졸았다. 무겸은 물을 마시지 않고 창날의 이빨 빠진 곳을 엄지로 쓸었다.

“형, 창 상했어요?”

“톱니에 두 군데 먹혔다. 숫돌이 있으면 하룻밤이면 된다.”

“숫돌 없잖아요.”

“그러니까 하룻밤으로는 안 된다는 거다.” 무겸이 창을 내려놓았다. “내일은 해 뜨기 전에 움직인다. 서란, 강민이 열은?”

“지금은 내려왔어요. 근데 오늘 같은 일 한 번 더 있으면 냉각통이 못 버텨요. 약액이 반밖에 안 남았어요.”

“반이면 몇 번이냐.”

“잘 버티면 두 번. 오늘처럼 터지면 한 번.”

강민은 컵을 내려다보았다. 한 번. 자기 가슴이 한 번 더 날뛰면 모두가 그 값을 치러야 했다.

“내가 조심할게.”

“조심하는 걸로 안 되면?” 서란이 물었다.

“그럼 형한테 배운 대로 설게. 앞으로 안 쏠리게.”

무겸이 아무 말 없이 강민의 빈 컵에 물을 더 따라 주었다.

강민은 품에서 작은 청동 열쇠를 꺼냈다. 스승이 마지막까지 쥐고 있던 것이었다. 이틀 동안 제대로 보지 못했다. 열쇠 머리에는 닳아서 용인지 구름인지 모를 문양이 있었고, 몸통 한쪽에 파인 가는 홈의 간격이 이상하게도 자신의 맥박과 맞는 것 같았다.

손바닥에 올리자 청염기관이 작게 반응했다.

딸깍.

실제로 난 소리인지 몸속에서 난 소리인지 알 수 없었다.

“뭐예요?” 비호가 고개를 들었다.

“사부님이 쥐고 계셨던 열쇠.”

비호가 다가와 보더니 표정이 바뀌었다. “이거 보통 열쇠가 아니에요. 홈이 너무 정밀해요. 기계식 잠금이랑 진동 잠금이 같이 들어간 거 같은데, 이런 규격은 도장에서도 본 적 없어요.”

“사부님 거처 지하에 있던 청동 함, 기억해?” 서란이 조용히 물었다.

“그거요? 만지지도 말라고 하셨던 그 함?”

“도장 빠져나올 때 내가 챙겼다.” 무겸이 불씨를 보며 답했다.

그가 등짐 안쪽에서 천에 싼 청동 함을 꺼냈다. 두 손으로 들 만한 크기였다. 그런데 도장 바닥이나 스승의 낡은 검보다 더 오래된 물건처럼 보였다. 검령성 문양은 없었다. 대신 오래된 흰 금속선이 둥글게 둘러져 있었고, 빛을 받으면 희미한 푸른빛을 띠었다.

강민은 이유 없이 목이 말랐다.

“여기서 열면 안 돼.” 서란이 먼저 못을 박았다.

“추격이 너무 가깝다.” 무겸도 고개를 끄덕였다. “이게 무슨 반응을 일으킬지 모른다. 폐갱 깊은 곳까지 들어가서 열자.”

강민은 열쇠와 함을 번갈아 보았다. 청염기관이 느리게, 무섭도록 차분하게 뛰었다. 함 안에 든 것을 이미 알고 있다는 듯이.

그때 밖에서 경계줄 방울이 울렸다.

한 번.

모두 움직임을 멈췄다.

“바람이에요?” 비호가 숨죽여 물었다.

“모른다.” 무겸이 창을 들었다. 서란이 손으로 불씨를 덮었다. 비호는 공구가방을 끌어안았고, 강민은 열쇠를 쥔 손에 힘을 주었다.

방울이 다시 울렸다.

두 번.

바람이 아니었다. 어둠 속에서 낮은 금속 마찰음이 들렸다. 무겸이 입술만 움직였다. 뒤로. 폐갱 쪽으로.

그 순간 강민의 손안에서 청동 열쇠가 저절로 떨렸다.

그리고 아직 열지 않은 청동 함 안쪽에서, 누군가 문을 두드리듯 세 번 소리가 났다.

똑.

똑.

똑.

— 話 11 終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