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팀갱(蒸汽坑)의 검은 폐
海東曆: 201년 5월 12일 · 시점: 강민
환기갱 아래 어둠에서 숨소리가 들렸다.
강민은 쇠사슬에 매달린 채 그 소리를 먼저 들었다. 위쪽 폐갱 입구에서는 추격대 발소리가 가까워졌고, 아래에서는 쇠를 두드리는 광부 신호가 끊어질 듯 이어졌다. 사슬이 감긴 굴착기 축은 반쯤 부러진 이빨처럼 삐걱거렸다. 한 사람이 내려갈 때마다 사슬 마디가 비명을 질렀다. 아래에서 올라오는 바람은 뜨거웠고, 석탄 가루와 기름, 오래 묵은 땀과 기침 냄새가 섞여 있었다.
“숨을 들이마시지 마.”
녹슨 관을 타고 올라온 목소리는 그 말만 되풀이했다. 흉갑 안쪽 경보편은 벌레처럼 미친 듯 떨었다. 폭주 경보가 아니라 독연 경보였다. 강민은 입에 댄 젖은 천을 더 세게 눌렀다. 천이 금세 검게 물들었다.
장무겸(張武謙)이 맨 먼저 내려갔고 강민과 유서란(柳瑞蘭)이 뒤따랐다. 단비호(段飛虎)는 마지막으로 내려오며 굴착기 축에 폭약나사 하나를 박았다.
“비호야.”
“알아요. 추격대가 축 건드리면 통로만 막히게 해 둘게요. 사람 죽이는 쪽 말고, 길만 끊는 쪽으로.”
목소리 끝이 떨렸다. 검령성의 밤 이후 비호는 장치를 설명할 때마다 사람을 해치지 않는다는 말을 먼저 붙였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었다. 사부 설무진(雪武陳)이 하던 말들이 아이 손끝에서 나사처럼 다시 조여지고 있었다. 강민은 그게 고맙고, 아프고, 무서웠다.
“잘했어.”
“칭찬은 살아서 해 줘요.”
사슬 끝에는 좁은 철제 발판이 있었다. 반은 녹슬었고 반은 석탄재에 묻혀 있었다. 그 아래로 30미터쯤 더 떨어지는 검은 수직갱이 입을 벌렸고, 옆으로 난 좁은 통로가 뜨거운 바람을 토해 냈다. 통로 벽에 오래된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스팀갱(蒸汽坑).
“여기가 스팀갱이야?” 서란이 천 너머로 중얼거렸다.
“검령성이랑 황도 해룡성(海龍城) 사이에서 제일 오래된 노동 도시요.” 비호가 답했다. “석탄이랑 코테르(機核) 조각, 철광석 캐서 제국 보일러랑 성벽이랑 병기 공방에 대는 데요. 도장 황동 배관 중에 싼 건 다 여기서 왔어요.”
“누나 약재 상자 밑에 묻어 있던 검은 먼지도.” 강민이 덧붙였다. “여기 거였구나.”
통로 안쪽에서 늙은 남자가 나타났다. 얼굴은 석탄 가루로 뒤덮였고, 눈가와 입가 주름만 땀에 씻겨 흰 선처럼 드러났다. 왼손에는 깨진 광부등, 오른손에는 쇠망치를 들고 있었다. 망치 머리에 방금까지 철관을 두드린 자국이 남아 있었다.
“위에서 온 애들이 맞군.”
무겸이 장창을 낮게 세웠다. “누구냐.”
“살고 싶은 사람. 너희가 추격자였으면 내가 벌써 죽었겠지. 젖은 천은 계속 대고 있어. 여기는 갱의 맨 끝이야. 숨 잘못 들이면 폐가 먼저 검게 굳고, 그다음 눈앞이 하얘진다.”
“독연입니까?” 서란이 앞으로 나섰다.
“독연이라고 하면 점잖지. 우리는 그냥 검은 숨이라고 해. 이 도시 사람들은 아침마다 그걸 조금씩 마시고, 저녁마다 조금씩 늙어.”
아무도 웃지 않았다.
노인을 따라 들어간 통로는 어른 둘이 어깨를 비껴야 지나갈 만큼 좁았다. 천장에는 낡은 증기 배관이 거미줄처럼 얽혀 있었고 이음새마다 흰 김이 샜다. 어떤 김에서는 물 냄새가, 어떤 김에서는 쇠 타는 냄새가 났다.
“형, 괜찮아요?” 비호가 뒤에서 물었다.
“여기 기계들 소리가 이상해.” 강민이 가슴을 눌렀다. “검령성 보일러는 늙은 짐승 하나 같았거든. 여기는 수백 명이 폐 하나를 나눠 쓰는 것 같아. 한쪽은 너무 빨리 뛰고, 한쪽은 곧 멎을 것 같고.”
아래로 갈수록 통로가 넓어졌다. 녹슨 궤도 위로 폐광차들이 줄지어 서 있었고, 그 사이에 사람들이 누워 있었다. 기침하다 지쳐 눈을 감은 사람들이었다. 손가락은 곡괭이 자루를 쥔 모양 그대로 굳어 있었다. 어떤 사람 가슴에는 이름 대신 숫자가 찍힌 철패가 매달려 있었다.
강민은 그 숫자를 보자 이유 없이 화가 났다.
“숫자는 편하지.” 노인이 그의 시선을 읽고 말했다. “세기 쉽고, 지우기도 쉽고.”
“이름은 안 그렇죠.”
“그래서 위에서는 이름을 싫어해.”
노인은 자신을 노철이라고 했다. 본명인지 별명인지는 말하지 않았다. 그는 스팀갱 맨 바깥쪽 낡은 공동 숙사로 일행을 들였다. 방 한 칸, 창문 하나, 기름때 눌어붙은 탁자 하나가 전부였다. 천장 철판 너머로 위층 사람의 기침과 발소리가 그대로 내려왔다.
“여기선 이름을 숨겨야 한다.” 무겸이 짐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나는 떠돌이 경비꾼이다. 서란은 순회 의공사.”
“저는 폐품장 견습 수리공이요.” 비호가 손을 들었다. “제일 그럴듯하죠?”
“강민이는?”
“말 없는 운반꾼이요.” 강민이 답했다. “제일 쉬운 거.”
“말 없는 게 제일 어려운 거야, 너한텐.” 서란이 받아쳤다.
폐갱에서 청동 함을 열고 두루마리의 두 글자를 본 사람은 이 도시 어디에도 없어야 했다.
첫날 아침, 스팀갱의 하늘은 보이지 않았다. 굴뚝이 너무 많았다. 산비탈과 골목과 공방 지붕마다 크고 작은 굴뚝이 솟아 같은 색 연기를 뿜었다. 검고 축축하고 무거운 연기였다. 햇빛은 그 연기를 뚫지 못하고 골목 끝에서 갈색으로 찢어졌다. 누군가의 기침이 끝나기 전에 다른 기침이 이어졌다.
서란의 임시 의방은 숙사 앞 처마 밑에 차려졌다. 처음엔 허리 다친 광부 하나가 왔고, 다음엔 눈이 벌겋게 충혈된 용접공 둘이 왔다. 정오가 되자 줄이 골목을 돌아 굴뚝 밑까지 이어졌다.
“약값은 없는데요…….” 한 광부가 머뭇거렸다.
“약값 대신 말로 내요.” 서란이 그의 손목을 짚었다. “어느 갱 배관이 사흘째 과열돼 있어요?”
“제7갱이요. 감독관이 압력계를 못 본 척해요.”
“교대는요?”
“여덟 시간이라고 써 놓고 열두 시간째 갇혀 있는 조가 있어요.”
서란은 듣고, 손목을 짚고, 가래에 섞인 검은 가루 양을 눈으로 재고, 약재를 나눴다. 밤이 되자 약상자가 반이나 비어 있었다.
비호는 폐품장으로 갔다. 고물상 영감은 아이를 보자마자 코웃음을 쳤다.
“꼬마가 뭘 고친다고.”
비호는 대꾸 없이 고장 난 압력계를 뜯어 바늘축을 바로잡고, 기름 한 방울 없이 어긋난 톱니를 맞물렸다. 영감의 표정이 바뀌었다.
“……내일도 와라.”
“영감님, 이 압력계 바늘 누가 일부러 휘어 놨어요.” 비호가 바늘을 들어 보였다. “실제보다 두 칸 낮게 읽히게요.”
“그걸 어떻게 알았냐.”
“휜 방향이 너무 깔끔해요. 떨어뜨려서 휜 거면 이렇게 안 돼요.”
영감이 한참 비호를 보다가 침을 뱉었다. “제7갱에서 나온 거다. 입 다물고 있어라, 꼬마. 여기선 아는 게 많으면 일찍 죽는다.”
“그럼 고쳐서 돌려보내면 안 돼요?”
“고쳐서 보내면 또 휘어서 온다.”
강민은 멀리서 그 모습을 보았다. 비호의 손은 여전히 작았다. 그런데 그 손이 만지는 기계들은 잠깐씩 얌전해졌다. 사부가 말한 고치는 검이 저런 손끝에서 시작되는 건지도 몰랐다.
무겸은 갱 입구 하역장에 섞였다. 창대를 천으로 감고 허리에 이름 없는 철패를 걸었다. 그래도 군관의 눈빛은 숨기지 못했다. 저녁마다 그는 방에 돌아와 짧게 보고했다.
“흑영(黑影)의 직접 흔적은 아직 없다. 하지만 검은 외투 입은 놈들이 노동자 명부를 훔쳐보고 있다.”
“우리 찾는 거예요?”
“모른다. 이 도시는 추격자가 숨기 좋다. 모두가 매일 조금씩 사라지는 곳에서는, 사람 하나 사라져도 눈에 안 띈다.”
강민은 운반꾼으로 일했다. 광차에서 떨어진 석탄 자루를 보일러실까지 날랐고, 무너진 배관 조각을 치웠다. 사람 셋이 돌려야 하는 밸브를 혼자 돌리는 척하기도 했다. 기공을 흘리면 더 쉬웠지만 그러지 않았다. 보는 눈이 너무 많았다.
대신 기계 소리를 들었다. 어느 밸브가 곧 터질지, 어느 피스톤이 불규칙하게 오가는지, 어느 굴착기 심장부가 이상하게 조용한지.
“누나, 여기 기계들은 고장 난 게 아니야.” 그날 밤 강민이 말했다. “고장 난 채로 계속 쓰이고 있어. 누가 알면서도 안 멈추는 거야.”
둘째 날 밤, 서란이 다시 그의 가슴을 진맥했다. 등잔은 검은 먼지 탓에 자꾸 낮게 흔들렸다. 윗옷을 풀자 청염기관(靑炎機關) 주변 살갗이 평소보다 뜨거웠다. 서란의 손끝이 흉갑 안쪽으로 들어오자 그는 숨을 멈췄다.
“아프면 말해.”
“누나가 말하라고 하면, 별로 안 아픈 것도 아프게 느껴져.”
“그럼 내가 말 안 해도 네가 먼저 말하는 법을 배우면 되겠네.”
말은 부드러웠지만 눈은 웃지 않았다. 진맥기 바늘이 일정하게 뛰다가, 밖에서 굴착기 하나가 거칠게 시동을 걸자 같이 흔들렸다.
“이 도시 진동이 네 몸에 붙고 있어.”
“붙는 게 아니라 들리는 것 같아. 어디가 아픈지.”
서란이 한참 말없이 약봉지를 접었다.
“들린다고 다 만지면 안 돼. 병든 사람이든 병든 기계든, 오래 억지로 버틴 건 갑자기 손대면 더 크게 무너져.”
“누나는? 누나도 오래 억지로 버티고 있잖아.”
서란의 손이 멈췄다. “내가?”
“도장 불난 뒤로 누나 한 번도 안 울었어.”
“울 시간이 없었어.”
“그러니까. 갑자기 손대면 더 크게 무너진다면서.”
서란이 등잔 심지를 낮추며 작게 웃었다. “환자가 의공사 진맥하는 거 아니야. 자.”
강민은 그 말을 기억해 두었다. 그러나 기억한다고 매 순간 지킬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셋째 날 오후, 제7갱이 무너졌다.
처음엔 소리가 줄었다. 도시의 소음이 한순간 목이 눌린 듯 잦아들었다. 굴뚝 연기가 잠깐 멈췄고, 하역장 바닥 철판이 발밑에서 솟았다가 가라앉았다. 다음 순간 산비탈 안쪽에서 천둥 같은 소리가 터졌다. 흙먼지가 갱 입구로 폭발하듯 밀려 나왔고, 비명이 뒤따랐다.
강민은 자루를 내던지고 달렸다.
제7갱 입구는 아수라장이었다. 부러진 나무 지주가 사방으로 튀어나왔고, 찢긴 압력관 하나가 뜨거운 증기를 비스듬히 뿜었다. 사람들이 이름을 불렀다. 아버지, 형, 조장, 동료.
“몇 조야! 교대조 번호부터 대!” 감독관들은 이름이 아니라 조 번호를 물었다. 누가 안에 남았는지가 아니라 어느 조가 명부에 찍혀 있는지가 먼저였다.
강민의 손등에 힘줄이 섰다.
“비켜라! 구조 장비 먼저 넣어야 한다!”
감독관이 가리킨 건 매몰자를 꺼낼 장비가 아니었다. 갱 안에 남은 주 굴착기와 코테르 분쇄기를 빼낼 크레인이었다. 노동자들이 항의하자 감독관이 철봉을 들었다.
무겸이 그 앞을 막았다. 창은 아직 천에 감겨 있었지만 창대를 세운 자세만으로 공기가 달라졌다.
“사람부터다.”
“넌 뭐냐. 외지 경비꾼 주제에 감히—”
무겸이 창대 끝으로 감독관 손목 안쪽을 정확히 눌렀다. 철봉이 떨어졌고 감독관은 소리도 못 내고 무릎을 꿇었다. 부러뜨리지는 않았다. 다시 철봉을 들 수 없을 만큼만이었다.
“형, 더 하지 그러셨어요.” 강민이 낮게 말했다.
“여기서 피를 내면 그 값은 떠나는 우리가 아니라 남는 사람들이 치른다.”
서란은 이미 갱 입구 한쪽에 천을 깔고 있었다.
“숨 막힌 사람은 이쪽! 화상은 물부터! 기침에 피 섞인 사람은 눕히지 말고 앉혀요!”
비호가 폐품장에서 주운 가는 도관과 가죽 주머니를 들고 뛰어왔다. 얼굴은 새까맸지만 눈은 살아 있었다.
“형, 주 굴착기 동력부가 아직 살아 있어요. 근데 톱니가 어긋났어요. 그냥 돌리면 천장을 더 밀어 버릴 거예요.”
“되돌릴 수 있겠냐?”
“나 혼자는 못 해요. 근데 형이면…… 들을 수 있잖아요.”
무너진 입구 안쪽에서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탕. 탕탕. 탕. 살려 달라는 신호였다.
오래 억지로 버틴 건 갑자기 손대면 더 무너진다. 그렇다면 밀어붙이지 말고, 고장 난 숨과 같은 박자로 들어가야 했다.
주 굴착기는 입구에서 18미터 안쪽에 처박혀 있었다. 몸통 절반이 흙에 묻혔고, 왼쪽 굴착팔이 천장 지주를 잘못 밀고 있었다. 황동 동력부 보호판은 반쯤 찌그러졌고, 안쪽 피스톤은 박자를 잃고 미친 듯 오갔다.
강민이 보호판에 손바닥을 댔다. 오래 대고 있으면 살이 들러붙을 온도였다. 이를 악물고 단전의 기운을 끌어올렸다.
기계가 그를 밀어냈다. 사람 맥이 아니라 돌을 씹어 삼키는 짐승 턱 같은 박동이었다. 기운이 들어가자 톱니들이 반발했고, 청염기관이 곧장 응답했다. 푸른 열이 팔을 타고 손바닥으로 몰렸다. 보호판 밑에서 쇠가 낮게 울었다.
“형, 너무 빨라요!” 비호가 압력계를 읽었다. “굴착팔 각도 12도만 낮추면 돼요. 더 밀면 안 돼요!”
“12도.”
손가락 한 마디보다 조금 큰 차이. 그 차이로 갱이 더 무너지거나 버틸 수 있었다. 강민은 세게 밀지 않았다. 오히려 기운을 낮췄다. 요동치는 피스톤 사이에 얇은 틈을 만들고 그 틈으로 자기 숨을 끼워 넣었다. 쿵. 쿵. 쿵. 기계 박자와 그의 심장이 서로 밀어내다가 어느 순간 한곳에서 만났다.
동기화(同期化).
도장에서 배관 밸브를 열 때보다 훨씬 무거웠다. 그때 밸브는 아침을 깨우는 장치였고, 지금 굴착기는 사람 목숨을 얹은 팔이었다. 눈을 감자 보이지 않는 갱 안이 느껴졌다. 어느 지주가 갈라졌는지, 어느 암반 틈이 벌어지는지, 매몰자들이 어느 쪽에 웅크리고 있는지.
“비호야. 오른쪽 보조 밸브.”
“몇 단계요?”
“둘. 아니, 하나 반.”
비호가 망설임 없이 밸브에 매달렸다. 무겸은 노동자 셋과 부러진 지주를 받쳤다. 서란은 기침하는 사람 등을 두드리면서도 계속 강민 쪽을 보았다.
강민의 손등에 푸른빛이 얇게 떠올랐다. 노동자 하나가 움찔했지만 도망치지 않았다.
“저 빛 뭐야?”
“몰라. 지금 그게 중요해? 안에서 두드리잖아.”
굴착팔이 천천히 내려갔다. 1도, 멈춤. 피스톤 정렬. 다시 1도. 찢어진 배관에서 새는 증기를 비호가 임시 나사로 막았다. 숨을 너무 오래 참아 강민의 눈앞이 검어졌다.
“강민아, 숨.”
서란의 목소리에 그제야 숨을 내쉬었다. 입에 댄 젖은 천이 푸른 열에 말라붙어 있었다. 동력부가 낮게 울며 제자리로 돌아왔다. 굴착팔이 내려오자 매몰 공간 위에 작은 틈이 생겼다.
무겸이 곧장 몸을 던졌다. 창대를 지렛대처럼 끼우고 노동자들과 함께 무너진 나무를 들어 올렸다. 첫 번째 광부가 끌려 나왔다. 얼굴은 검었고 입술은 보랏빛이었다. 서란이 그를 받아 눕혔다. 잠시 뒤 그가 검은 가래를 토하며 숨을 들이켰다. 주변에서 울음이 터졌다.
그날 밤까지 열세 명이 나왔다.
갱 안에는 아직 사람이 남아 있었다. 명부에는 스물여덟 명이라 적혀 있었지만 광부들은 서른넷이라고 했다.
“여섯은 교대 시간 어기고 몰래 들어간 불법 작업자다.” 감독관이 잘라 말했다.
한 여자가 감독관 옷깃을 붙들고 울부짖었다. “불법이 아니라 당신들이 임금 장부에서 지운 사람들이잖아!”
감독관은 눈을 돌렸다. 강민이 주먹을 쥐었다. 그 주먹 위로 무겸의 손이 세게 내려앉았다.
“지금은 구해야 한다.”
강민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짧은 끄덕임이 이렇게 어려울 줄 몰랐다.
구조 이틀째 밤, 갱 안쪽에서 유독 증기가 샜다. 처음엔 달큰한 냄새였고 곧 목 안이 타들어 갔다. 구조대가 물러섰고 남은 노동자들이 하나둘 주저앉았다. 강민이 다시 들어가려 하자 서란이 팔을 잡았다.
“그 몸으로 들어가면 네 청염이 독연을 끌어당겨. 네가 쓰러지면 안에 있는 사람도 밖에 있는 사람도 다 끝이야.”
“그럼 어떡해. 안에서 아직 두드리는데.”
“도관을 만들면 돼요.” 비호가 앞으로 튀어나왔다.
“무슨 도관.”
“독연 나오는 데를 막지 말고 빼내는 도관이요. 막으면 압이 차서 또 터져요. 갱 밖으로, 굴뚝으로 빼내야 해요.”
비호는 폐품장으로 달려갔다가 20분 뒤 자기 몸보다 긴 도관 여섯 개와 찢어진 가죽 주머니, 낡은 송풍기 날개를 끌고 돌아왔다. 고물상 영감까지 따라왔다.
“꼬마가 내 창고를 강도처럼 털어 갔다.” 영감이 투덜대며 부품을 던졌다. “살릴 놈 있으면 살리고, 죽을 놈이면 장부에 내 이름 쓰지 마라.”
그렇게 말하면서도 그는 송풍기 축을 직접 잡았다.
비호의 배기 도관은 볼품없었다. 삐뚤고 누더기 같고 곳곳에서 증기가 샜다. 그래도 작동했다. 송풍기 날개가 돌자 갱 안 독연이 도관을 타고 옆 굴뚝으로 빠져나갔다. 굴뚝 끝에서 검푸른 연기가 괴상한 소리를 내며 뿜어졌다.
“된다! 된다고요!”
강민은 그 틈에 다시 동력부에 손을 얹었다. 이번엔 움직이는 게 아니라 멈추지 않게 붙드는 일이었다. 너무 빨리 움직이면 무너지고, 너무 늦으면 안쪽 사람들 숨이 먼저 끊긴다. 그는 자기 심장을 기계의 느린 박자에 묶었다. 청염기관이 뜨겁게 반발했지만 밀어붙이지 않았다. 병든 폐와 싸우는 대신, 잠깐 대신 숨을 쉬어 주는 것처럼 버텼다.
셋째 날에는 검은 물이 내렸다. 굴뚝 매연에 섞인 습기가 하늘에서 떨어져 사람들 얼굴과 손과 들것 천을 더럽혔다. 그래도 아무도 떠나지 않았다. 구조된 광부들이 다시 삽을 들었다. 왼팔에 붕대를 감은 사람이 흙을 펐고, 기침할 때마다 피를 뱉는 사람이 도관을 붙잡았다.
“아저씨, 쉬세요. 방금 나오셨잖아요.” 강민이 말렸다.
“안에 내 처남이 있어.” 남자가 피 묻은 입가를 닦았다. “쉬는 건 그놈 나오면 하지.”
강민은 이상하게 부끄러웠다. 스승의 죽음, 청염기관, 백씨 혈통의 단서, 쫓기는 몸. 자기가 큰 짐을 졌다고 생각했다. 이 사람들도 매일 감당 못 할 짐을 지고 있었다. 아무도 그걸 역사라고 불러 주지 않았을 뿐이었다.
넷째 날 새벽, 안쪽 신호가 끊겼다. 그 침묵이 제일 무서웠다. 광부들은 말없이 삽질했다. 서란은 잠들지 않았다. 약재가 떨어지자 기침 덜한 사람들에게 뜨거운 물을 먹이고 가슴을 두드려 검은 가래를 빼냈다.
감독관들은 이제 구조 현장을 둘러싸고 있었다.
“누가 명령 없이 굴착기를 움직였나.” 그들은 죽은 사람 수보다 그걸 더 궁금해했다.
“저 눈 봐.” 무겸이 강민 곁에서 낮게 말했다. “계산하는 눈이다. 고개 숙이고 있어라.”
“이 도시 공기는 사람을 늙게 만드는데, 저 사람들 눈은 안 늙네요.”
다섯째 날 해 뜨기 직전, 마지막 공간이 열렸다. 암반과 부러진 나무 사이로 손바닥만 한 구멍이 뚫렸고, 아주 약한 소리가 새어 나왔다.
“여기…….”
사람들이 한꺼번에 몰려들자 무겸이 막았다. “한 사람씩. 숨구멍 무너진다.”
강민은 동력부를 붙잡았고, 비호는 도관을 조였고, 서란은 들것을 준비했다. 노동자들은 더 이상 감독관을 보지 않았다. 서로의 눈을 보며 움직였다. 아무도 시키지 않았는데 필요한 손이 필요한 자리로 갔다.
마지막 매몰자는 노철보다 나이 들어 보이는 광부였다. 들것에 실려 나오자마자 그가 누군가의 이름을 불렀다. 대답이 없었다. 다시 불렀다. 이번에도 대답이 없었다. 서란이 그의 손을 잡았다. 노인은 그녀 얼굴도 보지 못한 채 허공을 더듬었다.
“번호 말고…… 이름으로 써라.”
그 말을 끝으로 정신을 잃었다. 서란이 맥을 짚고 고개를 끄덕였다.
“살아 있어요.”
낮은 울음과 안도의 숨이 동시에 퍼졌다. 닷새 동안 갱은 쉰 명이 넘는 사람을 토해 냈다. 살아 나온 사람은 공식 기록보다 많았고, 죽은 사람도 공식 기록보다 많았다.
그날 밤 감독관들이 다시 왔다. 깨끗한 코트 끝에 석탄 가루 하나 묻어 있지 않았다. 가장 높은 자가 사망자 명부를 받아 붉은 먹으로 몇 줄을 그었다.
“이 여섯은 장부에 없다. 사망자 수에서 뺀다. 이 셋은 규정 외 작업 중 사고다. 보상 대상 아니다. 구조 장비 손상 비용은 제7갱 임금에서 나눠 뗀다.”
울음보다 침묵이 먼저 왔다.
강민 머릿속에서 무언가 끊어졌다. 그가 한 걸음 나섰다. 청염기관이 낮게 울었고 손끝에 푸른 열이 어렸다. 그 자리의 모두가 그 열을 느꼈다. 감독관도 느꼈다. 그가 물러서기 전에 무겸이 강민의 어깨를 잡았다.
“안 된다.”
“저 사람들이 지금 뭘 하는지 보셨잖아요, 형.”
“봤다. 그래서 안 된다.”
무겸의 눈에도 분노가 있었다. 강민의 것보다 더 오래되고 단단한 분노였다. 그래도 그는 창을 뽑지 않았다.
“우리는 떠날 사람이다. 저들은 남을 사람이고. 네가 여기서 저자를 베면 내일 저 사람들 임금이 반으로 줄고, 모레 저 사람들 자식이 갱에 들어간다. 검은 뽑는 것보다 언제 안 뽑을지 아는 게 더 어렵다.”
강민이 이를 악물었다. 손끝의 청염이 꺼지지 않았다. 서란이 조용히 다가와 손목을 잡았다. 말은 하지 않고 맥만 눌렀다. 폭주를 막으려는 게 아니라, 그가 아직 살아 있는 사람들 곁에 서 있다는 걸 알려 주려는 것 같았다.
“누나.”
“응.”
“나 이거 못 참으면.”
“참는 거 아니야. 기억하는 거야. 지금은 기억만 해.”
비호는 감독관의 붉은 먹줄을 노려보다가 정비 노트 한쪽에 죽은 사람들 이름을 받아 적기 시작했다. 삐뚤빼뚤했지만 하나도 빠뜨리지 않았다.
“비호야, 뭐 해?”
“지운 거 다시 쓰고 있어요. 장부에서 지워도 제 노트에선 못 지워요.”
새벽이 되자 광부들은 갱 입구 옆에 작은 돌무더기를 쌓았다. 돌은 모두 검었다. 누군가 송곳으로 이름을 새겼다. 글자를 아는 사람이 대신 새기고, 모르는 사람은 돌을 붙들고 울었다. 번호는 아무도 새기지 않았다. 이름만 새겼다.
강민은 돌무더기 앞에 오래 서 있었다. 검령성 잿더미가 떠올랐다. 사부 이름을 제대로 새기지도 못하고 도망친 밤이 떠올랐다. 이곳 사람들은 도망치지 못했다. 그래서 돌이라도 쌓았다. 그게 부러웠다. 부럽다는 생각을 한 자신이 미웠다.
노철이 다가왔다. 닷새 사이 더 늙어 보였지만 눈빛은 처음보다 맑았다. 그가 강민의 소매를 잡았다.
“윗물은 우리를 사람으로 안 봐. 톱니 한 짝 닳으면 갈아 끼우면 그만이라고 생각하지.”
강민은 대답하지 못했다.
“그래도 톱니가 없으면 기계는 안 돌아. 그걸 저 위 사람들만 몰라. 기계는 늘 밑에서 맞물리는 것부터 부러지는데, 위에서는 꼭 자기들이 돌린다고 생각하거든.”
“어르신.”
“응.”
“제국이 성벽이랑 황금 지붕만으로 서 있는 줄 알았어요. 아니네요. 검은 먼지 마시는 사람들 폐 위에 서 있는 거네요.”
“이제 알았으면 됐다. 밑바닥이 무너지면 어떤 황실도 오래 못 서.”
노철이 이번엔 비호를 보았다.
“꼬마 수리공.”
비호가 놀라 고개를 들었다.
“네 손은 고철을 고철로만 안 보더군. 동쪽 폐품장 셋째 굴뚝 밑으로 가라. 죽은 기계들이 마지막으로 숨 쉬는 곳이 있다. 네 형의 그 이상한 박동을 조금 덜 뜨겁게 해 줄 물건도 어쩌면 거기 있을지 모른다.”
“그걸 어떻게…….”
노철은 대답 대신 아주 낡은 황동 열쇠 하나를 아이 손에 쥐여 주었다. 머리에 두 겹으로 꼬인 나선 무늬가 희미하게 새겨져 있었다.
그 무늬를 본 순간 강민의 가슴이 짧게 울렸다. 청염기관이 아니었다. 등짐 속 청동 함이 먼저 반응했다. 아주 작게, 그러나 분명하게.
탕.
돌무더기 사이에서 누군가 미처 다 새기지 못한 이름의 송곳이 굴러떨어졌다. 비호가 열쇠를 쥔 채 강민을 보았다.
“형.”
동쪽 폐품장, 아직 해가 뜨지 않은 굴뚝들 사이에서 낡은 송풍기 하나가 저절로 돌기 시작했다. 바람도 없었고 사람도 없었다. 그런데 그 송풍기는 강민의 가슴과 같은 박자로, 천천히 검은 숨을 내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