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점 · 강민 — 균열·낙인 단계

도공거리(刀工街)의 불

第1部 · 話 15 · 검령성 · published

海東曆: 201년 5월 22일~25일 · 도공거리(刀工街) · 시점: 강민

스팀갱을 빠져나온 뒤에도 강민의 옷에서는 검은 먼지가 떨어졌다.

사흘을 빨아도 빠지지 않았다. 갱도에서 사람들 기침과 섞였던 석탄 가루, 무너진 나무를 들추며 손톱 밑까지 파고든 흙, 굴착기 배기구에서 튄 기름때가 소매와 손등에 눌어붙어 있었다.

“또 우물이다. 손 씻어.” 유서란이 우물이 보일 때마다 강민을 세웠다.

“누나, 아까 씻었어.”

“아까 씻은 손이 그 색이야?”

“형 손이 아니라 굴착기 밸브 같아졌네.” 단비호가 옆에서 투덜댔다.

장무겸은 웃지 않았다. 대신 뒤쪽 언덕과 숲 가장자리를 자주 돌아보았다. 흑영(黑影) 잔당이 완전히 떨어졌다고 믿기엔 길 위의 고요가 너무 가지런했다.

검령성을 떠난 뒤 강민은 고요에도 종류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사람이 없는 고요, 사람이 숨어 있는 고요, 누군가 이미 지나간 뒤 남은 고요. 지금 뒤를 따라오는 건 세 번째에 가까웠다.

길가 억새가 한 방향으로 눕자 무겸이 말없이 창대를 낮췄다. 비호가 등짐 끈을 고쳐 매다가 풀밭에서 작은 흑철 못 하나를 주웠다. 못머리에 희미한 톱니 문양이 찍혀 있었다.

“이거 흑영 신발 밑창에 박는 거예요. 발자국 깊이 속이려고.”

“따라붙었나?” 강민이 물었다.

무겸이 손가락 두 개를 세웠다. 적어도 둘. 많으면 더.

“근데 왜 안 덤벼요?”

“우리가 어디 가는지 보려는 거다.”

강민은 본국검(本國劍) 칼자루를 만졌다. 검은 여전히 휘어 있었다. 검령성의 밤, 청염(靑炎)이 너무 급하게 흘러들어 검신 안쪽 코테르(機核) 반응로를 비틀어 놓았다. 겉으로는 곧았지만 칼등 안쪽 회전 실린더가 조금씩 늦게 돌았고, 뽑을 때마다 손목에 작고 날카로운 반발이 올라왔다.

“검이 형을 싫어하는 거예요?” 비호가 물었다.

“아니. 반대야. 아직 내 박동을 못 따라오는 거야.”

그 어긋남이 하루에도 몇 번씩 왼쪽 가슴을 찔렀다. 비호가 만든 2세대 냉각통은 임시로 등에 묶여 있었다. 이중 나선 도관이 가죽 덮개 안에서 천천히 맥동했고, 과열될 때마다 차가운 김을 조금씩 뿜었다. 덕분에 전보다 오래 걸을 수 있었다. 하지만 냉각통이 식혀 주는 건 몸뿐이었다. 스승이 죽고 남은 빈자리는 식지 않았다. 오히려 불 먹은 쇠처럼 말없이 더 붉어졌다.

도공거리(刀工街)는 스팀갱에서 남동쪽으로 70킬로미터쯤 떨어진 낮은 분지에 있었다. 산허리에서부터 냄새가 먼저 올라왔다. 젖은 숯, 녹은 쇠, 돼지기름 바른 가죽 앞치마, 쇠 위에서 마른 땀 냄새.

해가 기울 무렵 분지로 내려서자 골목마다 불빛이 있었다. 등불이 아니라 화덕 불이었다. 집집마다 벽 한쪽이 화로였고 지붕마다 낮은 굴뚝이 열 개씩 솟아 붉은 김을 토했다. 골목 위 쇠사슬에는 아직 식지 않은 칼날과 창끝, 톱니바퀴, 증기총 부품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어둠이 내리려 할 때마다 망치가 그걸 깼다. 탕, 탕, 탕. 멀리선 하나의 소리였는데 가까이 가니 수십 수백 개의 박자가 서로 다르게 골목을 채웠다. 성급한 망치질, 깊은 망치질. 새 칼을 만드는 화덕, 부러진 도끼를 고치는 화덕.

“도장 새벽 같아.” 강민이 중얼거렸다. “보일러 울리고, 사부님 느리게 걸어오시고.”

“사부님이 젊을 때 여기 계셨다고 했지?” 서란이 낮게 물었다.

“거의 말씀 안 하셨어. 본국검 손잡이 손질하실 때 가끔 ‘쇠에도 귀가 있다’고만 하셨지. 난 농담인 줄 알았어.”

“지금은?”

“아닌 것 같아. 여기 쇠들은 누가 어떻게 두드리는지 다 듣고 있어.”

“노철 영감님이 준 패, 어디서 맞춰 보지?” 무겸이 비호를 돌아보았다.

“망치 문양 걸린 집은 전부 아니래요. 영감님이 그랬어요. 간판 없는 집을 찾으래요.”

“간판 없는 대장간이 이 거리에 몇 개나 되겠냐.”

“하나요. 저기.” 비호가 손가락으로 거리 끝을 가리켰다. “다른 집들은 다 불 냄새가 시끄러운데, 저 집만 조용해요.”

“불 냄새가 시끄러운 건 또 뭐야.” 서란이 웃음을 참았다.

“있어요. 형은 알죠?”

“……응. 좀 알 것 같아.”

일행이 찾아간 대장간은 거리 끝 낡은 수로 옆에 있었다. 다른 가게들이 큰 간판을 내건 것과 달리, 그 집은 문 위에 손바닥만 한 검은 쇳조각 하나만 달아 두었다. 글자도 문양도 없이, 오래 두드린 자국만 겹겹이 남은 쇳조각이었다.

무겸이 문턱 앞에서 창대를 세우자 안에서 늙은 목소리가 먼저 나왔다.

“문턱 밟고 들어오면 쫓아낸다. 문턱은 사람 발 받치라고 있는 게 아니라 집 숨 끊기지 말라고 있는 거다.”

강민은 저도 모르게 발을 멈췄다. 비호가 혀를 빼물고 한 발 물러났다. 서란이 살짝 웃었다가 금세 웃음을 거뒀다. 안쪽에서 나온 노도공의 눈이 곧장 강민의 콧등 흉터에 꽂혔기 때문이다.

노도공은 키가 작고 등이 굽었다. 그런데 팔은 젊은 장정보다 굵었고 손가락 마디는 오래된 나무뿌리처럼 울퉁불퉁했다. 왼쪽 귀는 반쯤 타 없어졌고, 오른쪽 눈 밑엔 불티 박힌 작은 흉터들이 흩어져 있었다. 그는 강민을 한참 보다가 본국검을 보았다. 칼집에 든 채인데도 안쪽의 뒤틀림을 알아챈 듯했다.

“검이 아프구나.”

강민은 말없이 검을 내밀었다. 노도공은 칼자루를 잡지 않았다. 손등을 가까이 대 열을 재고, 귀를 기울여 칼집 안의 미세한 떨림을 듣고, 엄지손톱으로 칼집 끝을 튕겼다. 맑은 소리가 나지 않았다. 둔하게 갈라진 소리였다.

“불을 너무 급하게 먹었다. 불이 검을 벼린 게 아니라 검이 불을 삼키다 목에 걸린 꼴이다. 이대로 더 쓰면 다음엔 검신이 아니라 네 손목이 먼저 틀어진다.”

“고칠 수 있어요?” 비호가 끼어들었다.

“고친다는 말 싫다. 검은 고치는 물건이 아니다. 다시 설득하는 물건이지.”

노도공이 그제야 검을 받아 반쯤 뽑았다. 안쪽 회전 실린더가 빛을 받자 파랗게 그을린 선들이 드러났다. 청염이 지나간 자리였다. 손가락으로 그 선을 더듬다가 한 지점에서 멈추고 혀를 찼다.

“설가 놈이 끝내 이 검을 아이 손에 들려 보냈구나.”

강민의 숨이 멎었다.

“사부님을 아세요?”

“안다는 말은 너무 가볍고, 모른다는 말은 너무 비겁하지.”

더 말하지 않았다. 노도공은 본국검을 모루에 올리고 무거운 집게로 검신을 눌렀다. 묻고 싶은 게 많았다. 사부가 이 거리에 얼마나 있었는지, 왜 떠났는지, 왜 자신에게 아무 말도 안 했는지. 하지만 장인의 손이 움직이는 동안 질문을 던지는 게 도공거리에서 가장 무례한 짓이라는 걸 강민은 본능적으로 알았다.

다시 벼리는 일은 그날 밤에 끝나지 않았다.

첫날 밤, 노도공은 본국검을 해체했다. 칼자루 황동 나사 열두 개를 순서대로 풀고, 손잡이 안쪽에 숨어 있던 작은 코테르 정제실을 꺼냈다. 비호의 눈이 커졌다.

“이거 보통 병기 거랑 달라요. 코테르를 그냥 태우는 게 아니라, 쓰는 사람 기맥 박동을 받아서 작은 맥동으로 되돌려 보내요.” 비호가 허공에 손가락으로 도면을 그렸다. “반응로라기보다 심장 보조판이에요. 형이 검을 쓰는 게 아니라, 검도 형을 재고 있었던 거예요.”

서란이 강민의 손목을 잡았다. 맥을 짚는 손끝이 차가웠다. 뭔가 알아챈 얼굴이었지만, 강민이 묻기 전에 고개를 저었다.

“오늘은 검이 먼저야. 네 몸은 내가 볼게.”

노도공이 숯을 갈았다. 검은 숯 사이에 은빛 가루가 섞여 있었다.

“이게 청회탄이다. 청염 품은 검을 다시 불에 넣을 때, 불이 겁먹지 않게 하는 숯이지.”

“불이 겁을 먹어요?” 비호가 되물었다.

“먹는다. 너도 먹고 나도 먹는다.”

말은 이상했지만 불길은 정말 달랐다. 붉은 불 속에서 희미한 푸른빛이 살아났다. 강민의 가슴 안쪽이 그 빛에 반응했다. 냉각통 도관이 낮게 한 번 울었다.

“손 내밀어라.”

노도공이 강민 손바닥에 작은 쇳조각을 올렸다. 뜨겁지 않았다. 얼음처럼 차가웠다.

“검을 다시 벼리려면 네 박동도 같이 넣어야 한다. 겁먹으면 검이 그 겁을 배운다. 화내면 그 화를 배운다. 복수만 생각하면 검은 베는 법만 알고 멈추는 법을 잊는다.”

강민은 쇳조각을 쥔 채 풀무 앞에 섰다. 들이쉴 때 당기고 내쉴 때 밀었다. 처음엔 박자가 맞지 않았다. 불길이 성급하게 튀었고 검신이 모루 위에서 작게 비틀렸다. 노도공의 망치가 그 실수를 바로잡았다.

탕.

한 번의 망치질이 방 안 모든 숨을 눌렀다. 다시 탕. 이번에는 강민의 박동이 그 소리에 끌려갔다.

“이상해요.” 강민이 풀무를 당기며 말했다. “제가 불을 넣는 게 아니라, 불한테 제 숨을 알려 주는 것 같아요.”

“이제 좀 알아듣는군.” 노도공이 망치를 들었다. “계속해.”

둘째 날 아침, 도공거리에 장이 섰다. 대장간 앞 수로에 작은 증기수레들이 줄을 섰고, 골목에 칼집 장수, 가죽끈 장수, 압력계 수리공, 기계 목어를 파는 떠돌이 승려까지 뒤섞였다. 강민은 노도공 심부름으로 물통을 나르며 거리를 천천히 보았다. 여기 사람들은 모두 뭔가를 두드리고 있었다. 밥벌이를 두드리는 사람, 명예를 두드리는 사람, 죽은 사람 유품을 다시 쓸 수 있게 하려고 쇠를 두드리는 사람.

길모퉁이에서 한 여인이 부러진 낫 두 자루를 안고 서 있었다.

“남편이 쓰던 거예요. 고쳐 주세요. 값은…….”

“값은 됐소.” 이웃 도공이 낫을 받아 들었다. “낫등에 새긴 이름은 안 지우겠소. 약속하지.”

강민은 그 약속을 듣자 스팀갱의 돌무더기가 떠올랐다. 이름을 지우지 않는 사람들. 이 세상은 사람을 부품으로 바꾸려는 쪽과, 부품이 된 것에서 다시 사람 이름을 찾아내려는 쪽으로 갈라져 있었다.

오후가 되자 노도공은 본국검 안쪽 실린더를 꺼내 깨끗이 갈았다. 수술처럼 조심스러웠다. 서란은 옆에서 약초를 달이며 강민의 열을 살폈고, 비호는 허락을 받아 작은 부품들을 순서대로 늘어놓았다.

“그건 어디로 돌아가느냐.” 노도공이 부품 하나를 가리켰다.

“칼자루 세 번째 내벽이요. 박동 받아서 뒤쪽 냉각 홈으로 보내는 부품이에요.”

“그럼 이건.”

“청염 치솟을 때 첫 충격 받는 완충판이요. 근데 모서리가 너무 얇아요. 형이 조금만 세게 밀어 넣어도 또 찢어질 거예요.”

노도공의 눈가가 아주 조금 움직였다. 칭찬은 아니었지만 쫓아내지 않는 것만으로도 도공거리에서는 큰 인정이었다. 그가 비호에게 작은 줄칼 하나를 던졌다.

“말로만 아는지 손도 아는지 보자.”

비호가 침을 삼키고 앉았다. 작은 손이 떨리지 않았다. 강민은 그 모습에 가슴 한쪽이 아렸다. 도면 귀퉁이에 ‘형이 백 살까지 쓸 것’이라고 썼던 아이가, 지금은 자기 검이 부서지지 않도록 부품 모서리를 깎고 있었다. 고맙다는 말을 하려다 삼켰다. 그런 말을 들으면 비호는 괜히 더 떠들 테고, 그러면 손끝이 흔들릴지도 몰랐다.

“형, 왜 쳐다봐요. 부담스러워요.”

“안 봤어.”

“봤잖아요. 숨소리가 다 들려요.”

둘째 날 밤이 깊자 노도공이 안쪽에서 대장간 문을 걸어 잠갔다. 장터 소음이 멀어지고 불과 망치와 물 끓는 소리만 남았다. 노도공은 벽장 앞에 오래 서 있다가 바닥을 열고 낡은 장부 한 권을 꺼냈다. 가죽 표지는 기름과 먼지로 검었고 가장자리가 여러 번 그슬려 있었다.

“설가 놈이 죽었다고 들었다.”

강민은 대답하지 못했다.

“그놈은 젊을 때도 말을 아꼈다. 미련한 놈이었지. 목숨 걸 일엔 망설이지 않으면서, 제 마음 말하는 일엔 늘 도망쳤다.”

장부가 펼쳐졌다. 칼 한 자루, 창촉 서른 개, 사슬낫 세 벌, 황동 손잡이 수리. 날짜와 금액과 주문자 이름이 빽빽했다. 노도공의 손가락이 한 페이지에서 멈췄다. 열여덟 해 전, 비 오던 날. 주문자 이름 칸은 비어 있었다. 선금은 넉넉히 치러졌고, 비고란에 한 줄이 적혀 있었다.

‘아이의 열여덟 생일에.’

등 뒤 화덕이 멀어지는 것 같았다.

“누가 주문한 거예요?”

“이름은 안 썼다. 이름을 쓰면 쫓기는 사람들이 있었으니까.”

“그 아이가…… 저예요?”

노도공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하지 않는 게 대답이었다. 서란이 조용히 강민 옆에 섰다. 손이 그의 팔꿈치까지 왔다가 멈췄다. 누나로서 잡아 주고 싶지만, 이 질문이 맥보다 깊은 곳을 찌른다는 걸 아는 의공사의 손이었다.

노도공은 장부를 덮지 않고 천천히 말을 이었다.

“그 밤엔 비가 많이 왔다. 수로가 넘쳐 도공거리 절반이 물에 잠겼지. 그런데도 한 사내가 이 골목을 지나갔다. 등엔 검집 하나, 품엔 갓난아이 하나. 비가 그렇게 쏟아지는데 아이가 울지를 않더구나. 사내가 이 문 앞에 서서 인장 하나를 보였다. 백룡문(白龍紋)이었다.”

백룡문.

대장간 공기가 바뀌었다. 무겸의 손이 창대로 갔고, 서란의 눈이 가늘어졌다. 비호는 줄칼을 내려놓았다. 강민은 그 문양을 직접 본 적이 거의 없었다. 그런데 폐갱에서 청동 함을 연 뒤로, 그 문양은 마음 한쪽에서 지워지지 않는 그림자처럼 남아 있었다.

“그 사내가 사부님이었어요?” 강민의 목소리가 스스로도 놀랄 만큼 낮았다.

노도공은 이번에도 바로 답하지 않았다. 화덕에서 달아오른 검신을 꺼내 모루에 올렸다. 붉은 쇠 한가운데서 푸른 선이 뛰었다.

탕. 불꽃이 튀었다. 다시 탕. 두 번째 불꽃이 강민 눈가 가까이까지 날아왔다.

“그놈은 아이 안은 팔을 한 번도 안 바꿨다. 오른팔에 피가 흐르는데도. 바꾸라고 했더니 아이가 깬다고 하더구나. 그게 설무진이었다.”

강민은 눈을 감았다. 기억에 없는 밤이었다. 그런데 노도공의 말이 기억보다 더 선명하게 들어왔다. 비, 넘친 수로, 피 흐르는 팔, 잠든 아이. 그리고 사부.

“왜 말 안 해 주셨을까요.” 강민이 눈을 감은 채 중얼거렸다. “왜 죽는 순간까지 이름보다 검을 먼저 남기셨을까요.”

노도공의 망치질은 멈추지 않았다.

“알고 싶으면 살아 있어라. 죽은 놈은 아무것도 못 안다. 복수하다 죽은 놈도 마찬가지다.”

설교가 아니라 망치질이었다. 강민이 이를 악물었다. 왼쪽 가슴에서 청염이 꿈틀거렸다. 스승에 대한 원망인지, 흑영에 대한 증오인지, 아무것도 모르고 살아온 자신에 대한 수치인지 구별할 수 없었다. 냉각통이 낮게 울었고 서란이 바로 손을 뻗었다.

“강민아.”

그 한마디에 불이 조금 낮아졌다. 강민은 숨을 들이켰다. 검이 자신의 겁과 화를 배운다면, 지금 이 불을 먹여선 안 됐다. 분노를 누르는 대신, 그걸 불 속에 던지지 않으려고 애썼다.

“괜찮아, 누나. 안 던졌어.”

“안 던진 거 알아. 그래서 손 잡은 거야.”

셋째 날 새벽, 마지막 단계에 들어갔다. 노도공이 검신을 오래 식힌 뒤 안쪽에 아주 얇은 홈을 새겼다. 장식이 아니었다. 청염이 한꺼번에 터지지 않고 검신을 따라 흐르게 하는 숨길이었다.

“형 냉각통 도관이랑 같은 원리야!” 비호가 입을 벌렸다. “불길을 막는 게 아니라 지나갈 길을 내주는 거네.”

노도공이 이번엔 짧게 웃었다.

“막으면 터진다. 길을 주면 흐른다. 사람도 대개 그렇다.”

마지막 담금질은 강민이 직접 해야 했다. 노도공이 본국검 슴베를 집게로 잡아 넘겼다. 아직 칼이 아니라 타오르는 쇠였다. 강민이 양손으로 집게를 잡았다. 열기가 손바닥을 뚫고 올라왔지만 놓지 않았다. 서란이 오른쪽에 섰고, 비호가 냉각통 밸브를 조절했고, 무겸은 문가에서 바깥 소리를 들었다.

“네 검이다. 그러니 네 숨으로 물에 넣어라.”

강민은 천천히 숨을 들이마셨다. 단전에서 올라온 기운이 가슴을 지나 팔로 내려갔다. 청염이 날뛰려 했다. 이번엔 강민이 먼저 길을 만들었다. 밀어붙이지 않았다. 검신 안쪽 홈을 떠올렸다. 제7갱에서 사람들을 들것에 실어 내던 손들, 비호의 작은 글씨, 서란의 맥진표, 무겸의 말 없는 등을 떠올렸다. 마지막으로 사부의 피 젖은 팔을 떠올렸다. 그 팔이 갓난아이를 끝까지 떨어뜨리지 않았다는 말을.

검이 물에 들어갔다.

치익.

짧은 소리였다. 그런데 대장간 안 모든 쇠가 동시에 숨을 삼킨 것 같았다. 김이 솟았고, 그 사이로 푸른 선 하나가 검신을 따라 천천히 달렸다. 폭발도 울음도 아니었다. 맥박이었다. 본국검이 손안에서 처음으로 그와 같은 박자로 뛰었다.

“형……. 같이 뛰어요.” 비호가 속삭였다.

“나도 느껴.”

그 순간 무겸이 문가에서 몸을 돌렸다.

“손님이다.”

말이 끝나기 전에 바깥 골목에서 짧은 쇳소리가 울렸다. 누군가의 칼이 좌판 쇠그릇을 베고 지나간 소리였다. 도공거리 장인들은 비명을 아끼는 사람들이었다. 세 집 건너 화덕에서 망치가 빠르게 세 번 울렸다. 탕탕탕. 맞은편 골목에서 두 번. 탕탕.

“신호예요. 위험하다는.” 비호가 벌떡 일어났다.

“흑영 잔당이다.” 무겸이 창을 잡았다.

그들은 장터 쪽에서 들어왔다. 검은 잠행 장포를 입었지만 예전처럼 완전한 부대는 아니었다. 다섯. 둘은 한쪽 팔이 의수였고 하나는 다리 관절에 기계 보조기가 붙어 있었다. 쫓기는 자들은 더 비열해지고, 궁지에 몰린 칼은 방향을 가리지 않는다. 그들의 첫 목표는 강민이 아니었다. 골목 한가운데 기름통이었다.

“불 지르려는 거야!” 비호가 소리쳤다.

기름통이 터지면 도공거리 한 줄이 통째로 불에 먹힌다. 화덕과 숯, 기름과 압력관이 붙어 있는 이곳에서 불은 어떤 무기보다 빠른 살수였다.

무겸이 먼저 뛰었다. 첫 합, 자객의 톱니 칼이 창대를 타고 올라오자 무겸은 창끝을 버리듯 낮추고 어깨 방패로 받아 냈다. 불꽃이 튀었다. 발이 반걸음 밀렸지만 기름통 앞에서 물러서지 않았다.

두 번째 자객이 지붕으로 올랐다. 서란의 세검이 그 길목을 찔렀다. 그녀는 죽이려 하지 않았다. 발목 보조 관절과 손목 증기 도관을 노렸다. 얇은 검끝이 황동관을 찢자 자객 팔에서 흰 김이 새어 나왔다. 균형을 잃고 기와를 밟아 깨뜨리며 떨어지는 순간, 도공거리 장인 하나가 쇠집게로 그의 칼을 물어 버렸다.

“쇠 붙잡는 건 우리가 좀 하지.” 장인이 이를 드러냈다.

강민은 아직 다 식지 않은 본국검을 쥐었다. 칼자루가 낯설었다. 무게 때문이 아니었다. 검이 너무 조용했다. 예전엔 움직일 때마다 작게 반발했는데, 지금은 그러지 않았다. 그 고요가 오히려 두려웠다.

“무게를 의심하지 마라. 의심하면 검끝이 늦는다.” 노도공이 뒤에서 말했다.

세 번째 자객이 강민에게 달려왔다. 거리는 6미터. 자객이 먼저 움직였다. 좌판 밑을 낮게 파고들며 오른손 톱니 단검을 강민 무릎으로 던졌다.

강민은 물러서지 않았다. 왼발로 뒤집힌 철솥 손잡이를 밟아 솥을 세우고, 날아오는 단검을 솥의 둥근 면에 맞춰 흘렸다. 단검이 옆으로 튕겨 향신료 항아리를 깼다. 매운 가루가 퍼졌다. 자객 눈이 조금 찌푸려진 순간, 강민이 첫 베기를 넣었다.

검은 가볍지 않았다. 그런데 늦지도 않았다. 칼끝이 자객 어깨 의수 연결부를 스치자 푸른 불꽃이 얇게 번졌다. 청염은 터지지 않고 홈을 따라 흘렀다. 연결 나사가 붉게 달아오르더니 풀렸다. 자객의 오른팔이 아래로 처졌다.

두 번째 합. 자객이 왼손에 숨긴 짧은 칼을 뽑아 옆구리를 노렸다. 강민이 모루를 등지고 반걸음 물러섰다. 칼이 따라 들어왔다. 본국검으로 막지 않고 모루 모서리로 적의 칼을 받아 흘렸다. 자객 손목이 충격을 못 이기고 꺾였다. 손잡이 안쪽 실린더가 낮게 돌았고, 푸른 박동이 손목에서 검끝으로 이어졌다.

강민은 목을 베지 않았다. 무릎 뒤쪽 보조 힘줄을 잘랐다. 자객이 앞으로 무너졌고, 비호가 던진 연막탄이 그 얼굴 앞에서 터졌다.

“이번엔 터졌다!”

흰 연기가 골목을 덮었다. 비호는 곧장 소화용 증기 밸브로 달려가 두 손으로 레버를 당겼다. 오래돼서 뻑뻑했다. 작은 몸이 거의 매달려 흔들렸다.

“열려라, 이 고집 센 고물아!”

밸브가 돌아갔다. 골목 벽 소화관에서 흰 증기가 터져 나와 시야를 뒤집었다. 흑영 잔당에겐 안개였지만 도공거리 사람들에겐 익숙한 숨이었다. 장인들은 눈을 가늘게 뜨고도 자기 화덕 위치를 알았다. 무겸이 증기 속에서 창대를 수평으로 휘둘러 두 자객의 발목을 한꺼번에 걸었다. 서란이 넘어진 자의 손목 관절을 찔러 칼을 떨어뜨렸다.

강민은 증기 너머 기계 보조기의 미세한 박동을 들었다. 예전 같으면 놓쳤을 소리였다. 지금은 검도 그 소리를 같이 듣고 있었다.

“마지막 하나, 기름통으로 가요!” 비호가 외쳤다.

마지막 자객이 장터 가장자리 큰 기름통에 닿았다. 품에서 불씨 든 황동통을 꺼냈다. 거리 11미터. 사이에 좌판 셋, 물통 둘, 넘어져 버둥대는 말 한 마리, 꺼지지 않은 화덕이 있었다. 곧장 달리면 늦었다.

강민은 왼쪽 좌판을 밟고 몸을 띄웠다. 떨어지는 순간 칼등으로 물통 고리를 쳤다. 물통이 기름통 쪽으로 굴러갔고, 자객이 반사적으로 발을 뺐다. 그 반 박자 동안 강민은 화덕 옆 모루를 밟고 몸을 돌렸다. 본국검이 허공에 짧은 푸른 원을 그렸다.

칼끝은 손이 아니라 황동통 심지를 잘랐다. 불씨가 꺼졌다. 이어 왼손으로 자객 팔꿈치를 잡아 돌렸다. 관절이 뒤틀리며 자객 몸이 기름통에서 멀어졌다. 자객이 마지막으로 입안의 독침을 깨물려 했다. 서란의 세검 손잡이가 턱을 먼저 쳤다. 독침이 바닥에 떨어졌다.

“죽게 안 둬.” 서란이 차갑게 말했다. “죽는 것도 너희 마음대로 못 해.”

모든 게 끝난 뒤에도 도공거리는 한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흰 증기가 걷히자 골목에는 쓰러진 자객들과 흩어진 좌판, 깨진 항아리, 물에 젖은 숯, 피보다 진하게 번진 기름 자국이 남았다. 강민은 본국검을 내려다보았다. 피는 거의 묻지 않았다. 대신 희미한 푸른 줄이 남아 있었다. 베기 위한 검이면서 멈추는 법을 배운 검이었다.

노도공은 싸움이 끝나고서야 모루 곁으로 왔다. 강민이 아니라 검을 먼저 보았다. 한참 뒤 입가가 아주 조금 올라갔다.

“첫 싸움치고는 검을 덜 망쳤다.”

“칭찬이 그거예요?” 비호가 어이없다는 듯 소리쳤다.

“도공거리에서 그보다 큰 칭찬은 없다.”

노도공이 검을 받아 슴베를 살피고 작은 끌로 글자를 새기기 시작했다. 도공거리의 낙관, 그리고 그 옆에 다섯 글자.

‘주인을 기다린 검.’

“왜 기다렸다고 쓰세요?” 강민이 물었다.

“네가 검을 기다린 줄 아느냐. 검도 너를 기다렸다. 기다리는 동안 둘 다 너무 많이 다쳤을 뿐이지.”

강민은 할 말을 잃었다. 스승이 남긴 건 무기만이 아니었다. 자신이 모르는 과거, 감당해야 할 지금, 아직 이름 붙일 수 없는 길을 한데 묶은 물건이었다. 검이 손에 감겼다. 차갑지도 뜨겁지도 않았다. 오래 쥐어 온 물건처럼 알맞은 온도였다.

그날 밤 일행은 대장간 뒤 작은 방에서 잠을 청했다. 강민은 오래 누워 있지 못하고 수로 옆에 나가 앉았다. 검을 무릎에 올려 두었다. 물에 화덕의 붉은 빛이 길게 흔들렸다. 서란이 조용히 옆에 앉았다.

“열은 조금 내려갔어.”

“검 덕분이야?”

“검 덕분도 있고, 네가 참은 덕분도 있어.”

강민은 물을 보았다.

“사부님은 왜 말 안 하셨을까.”

서란은 바로 답하지 않았다. 쉽게 위로할 수 없는 질문 앞에서 그녀는 늘 말보다 침묵을 먼저 놓았다.

“말하면 네가 쫓길 거라고 생각하셨겠지.”

“이미 쫓기고 있잖아.”

“그러니까 더 아픈 거야. 숨겼는데도 쫓기게 됐으니까.”

“주인을 기다린 검이래.” 강민이 손잡이를 쥐었다. “기다렸다는 말, 따뜻한데…… 기다렸다는 건 늦었다는 거잖아. 사부님 말도, 이 검도, 내 질문도 다 늦었어.”

“늦어도 왔잖아.” 서란이 그의 어깨에 자기 어깨를 댔다. “안 오는 것보다는 나아.”

새벽이 오기 전, 노도공은 붙잡힌 흑영 잔당의 장비를 해체했다. 자객들은 도공거리 사람들에게 넘겨졌고 장비만 남았다. 의수 안쪽에서 아주 작은 통신편 하나가 나왔다. 기계중원 암호식 톱니 배열이 새겨져 있었다.

“전부는 못 읽겠어요.” 비호가 들여다보았다. “근데 방향 표식은 알아요. 이 세 줄은 강, 이 작은 갈고리는 나루.”

“강 하구 쪽 표식이다.” 무겸이 덧붙였다.

노도공이 금속편을 불빛에 비추었다. 끝에 거의 지워진 두 글자가 떠올랐다.

용진(龍鎭).

노도공은 한동안 말이 없다가 화덕에 새 숯을 부었다. 배웅은 그걸로 충분하다는 듯했다.

“검은 벼려졌을 때가 아니라 쓰였을 때 완성되는 게다. 어떻게 쓰였는지 언젠가 소문으로 듣마.”

강민이 깊이 허리를 숙였다. 비호도 장난스럽게 숙이려다 노도공 눈치를 보고 제대로 고개를 숙였다. 서란은 약재 꾸러미를 고쳐 멨고 무겸은 창대를 어깨에 올렸다.

도공거리의 아침은 다시 망치 소리로 열리고 있었다. 어젯밤 깨진 좌판은 벌써 누군가 고치고 있었고, 젖은 숯은 새 숯으로 바뀌어 있었다. 이 거리는 상처를 숨기지 않았다. 상처 난 물건을 다시 불 속에 넣었다.

분지를 빠져나오며 강민은 마지막으로 뒤돌아보았다. 굴뚝 수십 개에서 붉은 김이 올랐다. 그 김 사이로 피 흘리는 팔로 아이를 안은 젊은 사내가 잠깐 지나가는 것 같았다. 이름을 쓰지 않고 검을 주문한 사람. 끝내 말하지 못한 스승.

본국검을 허리에 고쳐 찼다. 검은 조용했다. 그 조용함은 더 이상 막힌 침묵이 아니었다. 다음 소리를 함께 기다리는 숨이었다.

그때 길 아래 나루에서 새벽 종이 울렸다. 종소리 사이로, 검은 기름에 젖은 나무 상자 하나가 물살을 거슬러 떠내려와 돌부리에 걸렸다. 상자 옆면에 흑영의 톱니 문양이 찍혀 있었고, 그 아래 누군가 칼끝으로 급히 새긴 글자가 있었다.

용진도에서, 아직 살아 있다.

— 話 15 終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