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점 · 강민 — 균열·낙인 단계

용진도(龍鎭渡)의 어부들

第1部 · 話 16 · 검령성 · published

海東曆: 201년 5월 30일 · 시점: 강민

강이 바다로 내려앉는 곳에는 늘 두 가지 냄새가 섞여 있었다. 젖은 갯벌의 짠내, 그리고 낡은 증기 어선들이 밤새 토해 낸 기름 냄새.

용진도(龍鎭渡)는 그 두 냄새 위에 세워진 어촌이었다. 북쪽 산줄기에서 흘러온 큰 강이 여기서 넓어져 하구의 검은 뻘을 지나 동해(東海)로 빠져나갔다. 해 뜨기 전이면 수면 위에 낮은 안개가 깔렸고, 그 안개 위로 어선들의 황동 굴뚝이 하나씩 솟아 있었다.

강민은 사흘째 그 항구의 새벽을 보고 있었다. 도공거리(刀工街)에서 다시 벼린 본국검(本國劍)은 아직 손에 낯설었다. 낡은 검을 고친 게 아니라 같은 이름의 다른 검을 받은 것 같았다. 검신 안쪽에 새로 박힌 얇은 청염 감응선이 단전 기운이 닿을 때마다 작게 울었다. 그 울림은 왼쪽 가슴의 기계 박동과 비슷했지만 완전히 같지는 않았다. 아직 서로를 시험하는 사이였다.

“쓰였을 때 완성된다.” 강민이 혼잣말로 노도공의 말을 되뇌었다. “검만 그런 게 아니네.”

일행은 용진도에 오래 머물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장무겸(張武謙)의 옆구리 상처가 다시 벌어졌다.

“더 움직이면 상처 안쪽 열독이 폐로 올라가요.” 유서란(柳瑞蘭)이 못을 박았다. “오라버니, 최소 닷새는 누워 있어야 해요.”

“닷새는 길다.”

“사흘 누워 있다가 열 올라서 열흘 눕는 것보단 짧아요.”

단비호(段飛虎)는 그 말을 듣자마자 항구 뒤편 빈 그물 창고를 빌려 무겸을 눕혔다. 강민은 숙식값 대신 어선 수리를 돕기 시작했다.

어부들은 처음엔 외지 소년에게 배를 맡기길 꺼렸다. 그런데 첫날 아침, 강민이 멈춰 선 삼십 년 묵은 증기 권양기 밸브를 손끝 하나 대지 않고 움직이게 하자 눈빛이 달라졌다.

“저놈 손에는 쇠 귀가 달렸나 보네.”

혀를 찬 사람은 늙은 선주 곽노였다. 머리는 눈처럼 희었고, 오른쪽 눈가에 갈고리 바늘에 긁힌 흉이 길게 나 있었다. 바닷바람에 한쪽 눈이 늘 붉어서 젊은 어부들은 뒤에서 그를 ‘소금눈’이라 불렀다.

곽노의 배 이름은 ‘검은갈매기’였다. 이름과 달리 선체는 회색으로 벗겨졌고 굴뚝은 두 번이나 덧댄 자국이 있었다. 강민은 좌현 피스톤이 일정한 간격으로 빈 박자를 내는 걸 듣고, 배 밑창에 고인 물이 압력관을 조금씩 식히고 있다는 걸 찾아냈다.

“물 퍼내면 또 멈춰요. 관 안쪽에 소금이 붙었어요.”

“소금이 붙어?” 곽노가 눈썹을 치켜올렸다.

“소금 알갱이가 안쪽 벽을 긁고 있어요. 관을 달궈서 빼내야 해요.”

“형, 이제 말도 어부처럼 하네.” 비호가 곁에서 웃었다.

“네가 하면 더 빨리 끝나겠지.”

“나는 머리 쓰는 쪽이야. 힘든 건 형이 하고.”

말은 그렇게 해도 비호는 이미 소매를 걷고 있었다. 어부들이 버린 황동 못, 부러진 갈고리, 찌그러진 압력계 테두리를 주워 즉석에서 긁개를 만들었다. 강민이 관을 달구고 비호가 긁개를 밀어 넣었다. 흰 가루와 검은 기름때가 함께 쏟아지자 어부들이 낮게 탄성을 냈다.

창고 문턱에 앉아 보던 무겸이 피식 웃었다. “저 둘을 배에 태우면 고기보다 고철을 더 잡아 오겠군.”

“오라버니는 누워 있으라니까.” 서란이 약탕 그릇을 들고 나타났다. “상처 아물기도 전에 문간에서 찬바람 맞으면 오늘 밤 다시 꿰매야 해요.”

무겸은 얌전히 물러났다. 기계중원 자객보다 서란의 낮은 목소리를 더 무서워하는 것 같았다. 강민이 잠깐 웃었다. 검령성을 떠난 뒤 웃음은 늘 짧았고 끝이 씁쓸했다. 그래도 용진도의 낮은 이상하게 사람을 느슨하게 했다. 아이들이 그물 사이를 뛰어다녔고, 아낙들은 생선 배를 가르며 외지인들을 조심스레 곁눈질했다.

용진도의 밤은 낮과 달랐다.

해가 지면 어부들은 등불을 높이 걸지 않았다. 항구 끝 초소 봉화도 작게만 피웠다. 배들은 해가 다 지기 전에 돌아왔고, 늦게 들어오는 배가 있어도 아무도 크게 부르지 않았다.

“장례가 있었나 봐요.” 첫날 밤 비호가 말했다.

“기름 아끼는 거 아닐까.” 둘째 날 밤 강민이 답했다.

사흘째 밤, 곽노가 강민이 고쳐 준 압력관을 손바닥으로 쓰다듬다가 입을 열었다.

“젊은 검객.”

“강민입니다.”

“그래, 강민. 자네들 떠돌이 무사인가?”

강민은 잠깐 대답을 골랐다. “쫓기는 사람들에 더 가까워요.”

곽노는 놀라지 않았다. 오래 물 위에서 산 사람답게, 말보다 말하지 않은 틈을 먼저 들었다.

“쫓기는 사람치고는 남의 배를 너무 정성껏 고치는군.”

“그냥 두면 내일 누가 다칠 것 같아서요.”

곽노의 붉은 눈이 가늘어졌다. 그가 항구 너머 어두운 물길을 보았다. 강 하구엔 밤안개가 낮게 내려앉고 있었다. 먼 곳에서 쇠사슬 긁히는 소리가 아주 작게 들렸다 사라졌다.

“요즘 밤물에 이상한 배들이 다닌다.”

“어떤 배요?”

“등을 끄고 다닌다. 노도 안 젓는다. 그런데 물살을 거슬러 올라간다. 보일러 소리도 안 나는데 배가 간다. 그물에 걸리는 것도 고기가 아니야. 기름 먹인 나무 상자, 쇠 냄새 나는 포대, 사람 뼈처럼 생긴 쇠붙이.”

“누가 열어 봤어요?”

“우리 젊은 놈 하나가 상자 하나를 몰래 뜯었지. 석두라고. 입은 거칠어도 어미한테는 착한 놈이었다. 그 밤 이후로 안 돌아왔어.”

강민은 뒤쪽 그물 창고를 보았다. 서란이 문틈으로 이쪽을 보고 있었다. 무겸은 이미 일어나 있었다. 비호는 곽노의 말을 받아 적을 판자를 찾고 있었다.

“그 상자 지금도 있습니까?” 무겸이 물었다.

곽노가 잠깐 망설였다. “하나 숨겨 뒀다. 못 본 척하려 했는데, 자네 손이 내 배를 살렸으니 나도 하나는 갚아야지.”

그는 일행을 항구 뒤 소금 창고로 데려갔다. 반쯤 무너진 돌담 안, 썩은 문짝을 새 판자로 덧댄 창고였다. 곽노가 바닥의 젖은 멍석을 걷자 기름 냄새가 확 올라왔다. 검은 방수포에 싼 나무 상자 하나가 있었다. 미끼통만 한 크기인데 지나치게 무거웠다. 무겸이 창대로 뚜껑을 누르자 안에서 쇠끼리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비호가 상자에 찍힌 낙인을 먼저 보고 숨을 삼켰다.

“이거, 스팀갱 감독관들 인장이랑 선이 닮았어. 똑같지는 않은데 같은 장인이 판 것 같아.”

강민의 눈매가 굳었다. 스팀갱(蒸汽坑)의 검은 폐, 쇳가루에 젖은 아이들, 감독관의 붉은 먹줄이 머릿속을 스쳤다.

“그 동네 착취랑 이 강 밀수가 같은 손에서 나온 거면…….”

“기계중원 그림자가 생각보다 훨씬 안쪽까지 들어와 있다는 거다.” 무겸이 말을 받았다.

서란이 무릎을 꿇고 상자 틈의 기름을 손끝에 묻혔다. 냄새는 맡지 않고 손끝에 황금빛 의공 기운을 아주 얇게 돌렸다. 기름이 미세하게 거품을 냈다.

“녹 막는 기름이야. 사람 몸에 들어가는 부품에 쓰는 건 아니고, 오래 물 건너야 하는 기계 관절에 바르는 거 같아.”

무겸이 뚜껑을 열었다. 사람 팔꿈치를 닮은 쇠 관절 여러 개, 갈비뼈 모양 얇은 철편, 손가락처럼 마디가 나뉜 집게 부품이 빽빽했다. 한쪽에 검은 윤활유가 고여 있었고, 바닥엔 얇은 코테르(機核) 가루가 푸르게 눌어붙어 있었다.

“자동병 부품이야.” 비호가 이를 악물었다. “그것도 농사용 인형 같은 게 아니야. 관절 각도가 사람 몸 부러뜨리기 좋게 돼 있어.”

“확실하냐?”

“무겸 형, 농사짓는 손가락엔 이런 역가시가 필요 없어요.”

강민은 상자 속 쇠 손가락을 내려다보았다. 검령성의 밤, 목덜미로 날아오던 검은 인형의 손이 떠올랐다. 스승의 마지막 등이 되살아났다. 손바닥이 저릿했고 본국검 감응선이 희미하게 울었다.

“이게 어디로 가요?”

곽노가 입술을 깨물었다. “상류로 간다. 강폭 좁아지는 곳에 버려진 제방이 있다. 거기서 작은 배로 나눠 싣고 안쪽 운하로 올린다더군. 누가 받는지는 모른다. 알려고 한 놈들은 다 사라졌다.”

“오늘 밤에도 와요?”

곽노는 대답 대신 창고 밖을 보았다. 바람이 바뀌고 있었다. 강물에서 비린내보다 기름 냄새가 먼저 올라왔다.

작전을 길게 짤 시간은 없었다. 두면 상자는 또 강 안쪽으로 사라진다.

“오라버니는 빠져요.” 서란이 무겸을 막아섰다.

“배 위에서 창 쓸 사람이 나밖에 없다.”

“상처 터지면요?”

“네가 꿰매겠지.”

서란이 그를 한참 노려보다가 끝내 약띠를 더 단단히 감아 주었다. “두 번은 안 꿰매요.”

비호는 곽노와 어부들의 도움을 받아 낡은 거룻배 셋을 묶었다. 배 사이에 굵은 그물과 닻줄을 걸어 물 위에 낮은 차단선을 만들었다. 겉보기엔 떠내려가는 폐선처럼 돛대를 꺾어 눕혔고, 배 밑에는 급히 손본 소형 증기 충격기를 숨겼다.

“손잡이 당기면 짧은 압력 폭발이 일어나서 그물줄이 위로 튀어 올라요.” 비호가 설명했다. “한 번밖에 못 써요. 두 번째는 없어. 한 번에 배 밑을 걸어야 해요.”

“네 장치는 늘 한 번이더라.” 무겸이 웃었다.

“한 번이면 충분하게 만드는 게 천재예요.”

“그럼 이번에도 천재 노릇 제대로 해라.”

서란은 상류 둔덕에서 등불 신호를 맡았다.

“붉은 등은 적선 접근, 푸른 등은 물길 변화, 흰 등은 민가 쪽 위험. 헷갈리지 마.”

“누나야말로 둔덕에서 내려오지 마.” 강민이 말했다.

“네가 앞서가지만 않으면.”

강민과 무겸은 검은갈매기에 올랐다. 낮에 고친 덕에 피스톤 박자는 안정적이었지만, 밤안개 속에서 큰 소리를 내면 밀수선이 방향을 틀 게 뻔했다. 보일러를 거의 죽이고 물살에 배를 맡겼다. 강민은 난간에 손을 얹고 강의 떨림을 느꼈다. 물밑에서 자갈 구르는 진동, 멀리서 닻줄 당겨지는 떨림, 사람 실은 배가 물을 밀어내는 둔한 움직임이 각각 달랐다.

자정 무렵, 서란의 붉은 등이 한 번 깜빡였다.

상류 안개가 갈라지며 배 한 척이 나타났다. 평범한 어선처럼 낮은 선체에 낡은 돛을 달았지만, 돛이 바람을 받지 않았다. 선미 아래 감춘 소형 추진륜이 물속에서 느리게 돌고 있었다. 갑판 옆에 소금과 말린 생선 포대가 쌓였고, 그 밑에 기름 먹인 상자들이 숨겨져 있었다.

“셋, 아니 넷.” 무겸이 낮게 셌다. “앞갑판 둘, 선미 하나, 조타간 안쪽 하나.”

“하나 더 있어요. 조타간 지붕 위.”

박쥐처럼 몸을 낮춰 붙은 호위병이었다. 사람인지 자동병인지 알 수 없었다. 팔꿈치가 보통 사람보다 한 마디 길었고 어깨에 얇은 쇠판이 붙어 있었다. 달이 없어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비호의 차단선이 물 위에 죽은 짐승처럼 떠 있었다. 밀수선이 그걸 피하려고 방향을 조금 틀었다. 그 순간 서란의 푸른 등이 두 번 흔들렸다. 밀물과 강물이 부딪쳐 밀수선 옆구리를 밀었다. 선장이 욕을 뱉으며 키를 돌리는 순간, 비호가 배 밑에서 손잡이를 당겼다.

퍽.

둔한 폭음이 물속에서 터졌다. 그물줄이 솟구쳐 밀수선 추진륜에 감겼다. 선체가 옆으로 크게 기울었다. 검은갈매기가 안개를 찢고 튀어 나갔다.

“지금!”

무겸이 먼저 뛰었다. 다친 사람이라고는 믿기 어려운 움직임이었다. 창대를 밀수선 난간에 꽂고 몸을 던져 갑판으로 넘어갔다. 강민도 뒤따랐다. 발이 닿는 순간 배가 꺼졌다 솟았다. 땅에서 익힌 걸음은 물 위에서 절반도 믿을 수 없었다. 무릎이 흔들린 틈을 앞갑판 호위병이 놓치지 않았다. 짧은 톱니칼이 찔러 왔다.

강민은 본국검을 반쯤만 뽑았다. 칼날을 받는 순간 감응선이 작게 울었다. 불꽃은 터뜨리지 않았다. 좁은 갑판에서 힘을 크게 쓰면 상자 속 코테르 가루와 기름에 불이 붙는다. 검집째 상대 손목을 밀어내고 어깨로 가슴을 들이받았다. 호위병이 밀렸지만 쓰러지지 않았다. 발목에 박힌 작은 쇠갈고리가 갑판 틈에 걸려 몸을 붙들고 있었다.

무겸이 창을 낮게 휘둘렀다. 창끝이 아니라 창대로 호위병 무릎 뒤를 찍었다. 발목은 버텼지만 무릎은 못 버텼다. 몸이 꺾였고, 강민의 검집이 턱 밑을 쳤다. 호위병이 소리 없이 쓰러졌다.

“죽이지 말라는 얼굴이더니 제법 세게 치는구나.”

“살려서 물어봐야 하니까요.”

“그럼 덜 세게 쳐라.”

말은 가벼웠지만 무겸의 숨이 짧아지고 있었다. 옆구리 약띠에 검은 피가 조금씩 번졌다. 강민은 그걸 보고도 지금은 붙들 수 없었다.

선미 쪽 호위병 둘이 동시에 달려왔다. 하나는 양손에 갈고리 낫, 하나는 팔뚝에 접이식 쇠방패를 달았다. 배가 또 한 번 기울었다. 강민은 일부러 중심을 놓았다. 오른쪽으로 밀리는 힘을 타고 낮게 미끄러지자 갈고리 낫이 머리 위를 스쳤다. 갑판에 손을 짚으며 본국검을 완전히 뽑았다. 갓 벼린 검신이 안개 속에서 차갑게 빛났다.

검이 처음으로 제대로 쓰였다.

강민은 팔을 베지 않았다. 검등으로 쇠방패 경첩을 찍었다. 청염이 아주 얇게 검신을 타고 지나갔다. 쇠 끓는 소리가 나며 경첩이 풀렸고 방패가 떨어졌다. 호위병이 놀라 물러서자 무겸의 창이 가슴팍을 밀어 선실 벽에 박았다. 살이 아니라 옷깃과 어깨 장갑 사이를 꿰뚫어 벽에 묶은 것이었다.

갈고리 낫을 든 자가 뒤에서 강민의 허리를 노렸다. 검을 돌릴 틈이 없었다. 그때 어둠 속에서 밧줄 하나가 날아와 호위병의 목과 어깨 사이를 감았다. 둔덕에 있어야 할 서란이었다. 어느새 작은 배를 타고 밀수선 옆까지 와 있었다. 세검을 입에 문 채 한 손으로 밧줄을 당기고 다른 손으로 난간을 짚었다.

“강민아, 뒤!”

강민이 몸을 낮췄다. 서란의 세검이 그의 어깨 위를 스쳐 지나갔다. 손목 힘줄이 아니라, 낫 손잡이와 손을 묶은 가죽끈만 잘랐다. 낫이 떨어졌다. 강민의 발차기가 상대를 밀어냈고, 그는 포대 더미 위로 굴렀다.

“누나, 둔덕은?”

“비호가 대신 보고 있어. 그리고 네가 자꾸 혼자 앞서가니까 내가 내려왔지.”

낮은 목소리에 화가 섞여 있었다. 강민은 대꾸하지 못했다.

조타간에서 마지막 호위병이 나왔다. 다른 자들과 달랐다. 얼굴 한쪽에 검은 철판을 덧댔고, 오른팔은 팔꿈치 아래가 전부 기계였다. 손가락 다섯 대신 긴 집게 세 개가 달렸고 집게 끝에 작은 톱니가 돌았다. 어부 옷 아래로 기계중원 무늬가 새겨진 흉갑이 드러났다.

“해동 촌놈들이 강까지 지키겠다고?” 사내가 웃었다. 사람 목에서 나오는 목소리인데 중간중간 마른 쇳소리가 섞였다. “이건 네 강이 아니다. 물길은 물건이 흐르는 길이고, 물건 흐르는 데엔 주인이 있다.”

“석두는 어디 있나!” 검은갈매기에서 곽노가 분노로 떨었다.

사내가 입꼬리를 비틀었다. “상자 열어 본 꼬마? 손재주가 좋더군. 손만.”

다음 말은 나오지 못했다. 무겸이 창을 던졌다. 머리가 아니라 기계팔과 갑판 사이를 노렸다. 사내가 물러나며 집게로 창을 튕겼다. 그 틈에 강민이 들어갔다.

본국검과 기계 집게가 부딪쳤다. 톱니가 검신을 물려 했지만, 검날 안쪽에서 청염이 푸르게 번쩍이며 톱니 사이 기름을 태웠다. 사내가 낮게 신음했다.

“검이 나한테 맞춰 움직여.” 강민이 숨 사이로 중얼거렸다.

새 검은 무겁지 않았다. 오히려 배의 흔들림, 발밑 물살, 상대 팔의 기계 박자를 알려 주었다. 세게 밀지 않았다. 상대가 당기는 힘에 맞춰 반걸음 들어가고, 집게가 닫히는 순간 손목을 비틀어 검등으로 관절 틈을 눌렀다. 쇠가 비명을 질렀다.

사내가 남은 왼손으로 품에서 작은 화통을 꺼냈다. 상자에 불을 붙일 작정이었다.

“강민아, 불!” 서란이 몸을 날렸지만 멀었다. 무겸은 창을 회수하지 못했다.

강민의 박동이 급격히 빨라졌다. 청염을 쓰면 배가 통째로 날아갈 수 있었다. 안 쓰면 상자에 불이 붙어 마을까지 번질 수 있었다.

그 순간 곽노 배에서 들었던 소금 긁히는 소리가 떠올랐다. 막힌 관 안쪽을 손끝으로 느끼던 감각. 강민은 불꽃을 밖으로 내지 않고 감응선에만 아주 얇게 흘렸다. 검자루 안쪽에서 작은 맥동이 한 번 일었다. 칼끝으로 화통이 아니라 손목 안쪽 압력관을 찔렀다. 깊게 찌르지 않았다. 관 표면만 찍었다.

치익.

압력이 샜다. 집게가 벌어졌고 화통은 불붙기 전에 바닥으로 떨어졌다. 무겸이 그걸 걷어차 강물에 빠뜨렸다. 강민은 검등으로 사내의 흉갑 한가운데를 밀어 선실 벽에 박았다. 사내가 기계팔을 다시 움직이려 하자, 비호의 그물줄이 갑판 위로 끌려 올라와 발목을 감았다.

“형! 지금 밀어!” 검은갈매기 쪽에서 비호가 젖은 얼굴로 고함쳤다.

강민과 무겸이 동시에 움직였다. 무겸의 창대가 사내 어깨를 누르고 강민의 검등이 기계팔 관절을 눌렀다. 두 힘이 엇갈리자 사내 균형이 무너졌다. 상자 더미 위로 쓰러지는 순간, 서란이 세검으로 상자들을 묶은 굵은 밧줄을 잘랐다.

“곽 선주님!”

곽노와 어부들이 기다렸다는 듯 닻줄을 당겼다. 밀수품을 받치던 받침목이 빠졌다. 기름 먹인 상자들이 갑판을 미끄러져 강물로 쏟아졌다. 하나가 난간에 걸리자 강민이 달려가 걷어찼다. 무거운 상자가 검은 물속으로 사라졌고, 잠시 뒤 물밑에서 푸른 가루가 희미하게 퍼졌다. 자동병의 팔, 갈비뼈, 손가락들이 물살에 삼켜졌다.

배 위가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물소리와 거친 숨, 그물에 묶인 밀수선이 삐걱대는 소리만 남았다. 기계팔 사내는 제압되었고 호위병들은 어부들 밧줄에 묶였다.

무겸은 갑판에 앉아 이를 악물고 있었다. 약띠에 피가 더 번졌다. 강민이 다가오자 손을 내저었다.

“걱정 마라. 아직 욕할 힘은 남았다.”

“그럼 돌아가면 누나한테 먼저 욕먹겠네요.”

“그건 네 몫도 반이다.”

서란이 다가와 둘을 한 번씩 노려보았다. “둘 다 말할 힘 아껴. 꿰맬 때 소리 지를 힘은 있어야지.”

비호는 밀수선 선미에 엎드려 추진륜을 살폈다. 눈빛이 다시 정비사의 것으로 돌아와 있었다.

“이거 봐요. 코테르를 통째로 태운 게 아니야. 가루를 물기름에 섞어서 조금씩 먹였어. 그래서 소리가 작았던 거야. 누가 만들었는지 몰라도 더럽게 영리해.”

“뜯어 갈 수 있나?” 무겸이 물었다.

“지금은 안 돼요. 잘못 건드리면 배 밑에서 터질 수 있어. 대신 이것만 가져갈게요.”

비호가 추진륜 옆 감응판 하나를 떼어 냈다. 손바닥보다 작은 황동판에 물무늬 같은 가는 선들이 새겨져 있었다. 강민은 그 선을 보자 가슴이 조금 답답해졌다.

“그 선, 그냥 장식 아니지?”

“아니에요. 물길 읽는 선이랑, 배 떨림 숨기는 선이에요. 그리고 이건…… 어디 깊은 데로 이어지는 선 같아요. 아직 모르겠어요.”

그날 밤 용진도는 오랜만에 등을 밝혔다. 석두가 돌아온 건 아니었다. 포로들은 그가 어디로 끌려갔는지 끝내 정확히 말하지 않았다. 기계팔 사내는 “안쪽 공방”이라는 말만 되풀이했고, 그게 뭔지 아는 사람은 없었다.

그래도 어부들은 처음으로 밤바다를 향해 큰 등을 걸었다. 아이들이 항구로 나와 젖은 갑판을 닦았고, 아낙들이 갓 잡은 숭어와 조개를 구워 일행 앞에 내놓았다. 누군가는 웃었고 누군가는 울었다.

석두의 어머니가 강민의 손을 붙잡고 한참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생선 비늘과 소금에 거칠어진 손이었고, 손톱 밑에 검은 흙이 끼어 있었다.

“우리 애가 돌아온 것도 아닌데.” 그녀가 겨우 입을 뗐다. “왜 이렇게 고맙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네.”

누군가를 구했다고 하기엔 너무 가벼웠고, 아무것도 못 했다고 하기엔 그녀에게 잔인했다. 강민은 고개를 숙였다.

“아드님 찾겠습니다.”

장담할 수 없는 말이어서 더 조심스럽게 나왔다. 어머니가 그의 손등을 두 번 두드렸다.

“못 찾아도 돼. 다만 저 물길에 우리 애 같은 놈이 또 실려 가지 않게 해 줘.”

그 말이 가슴에 오래 박혔다.

“누나.” 그날 밤 화롯가에서 강민이 서란에게 낮게 말했다. “검령성 떠나고 나는 계속 잃은 것만 셌거든. 사부님, 집, 도장. 근데 저분은 잃은 걸 돌려 달라고 안 하셨어. 더 잃지 않게 해 달라고 하셨어.”

“그게 더 무겁지?”

“응. 복수는 지난 일만 보면 되는데, 지킨다는 건 아직 안 온 밤까지 다 져야 하잖아.”

서란이 아무 말 없이 그의 그릇에 조개 하나를 더 얹었다.

화롯가에 늙은 어부들이 모였다. 곽노는 술잔을 들지 않았다. 대신 낡은 나무 상자를 꺼내 놓았다. 조개껍데기, 오래된 낚싯바늘, 바랜 천 조각, 물에 젖었다 마른 얇은 항법 일지 몇 장이 들어 있었다.

“강을 거슬러 온 배들은 늘 바다에서 시작된다.” 곽노가 말했다. “우린 강만 보고 살지만, 물은 우리 눈보다 멀리 다닌다. 동해 너머엔 붉은 안개가 내려앉는 섬들이 있다. 화산이 밤마다 속을 토하고 바위가 쇠처럼 검지. 거기엔 검 쓰는 무녀들이 산다는 말이 있다. 바람보다 빨리 칼을 뽑고, 바다에 죽은 자 이름을 묻지 않는 여자들.”

“진짜예요?” 비호가 눈을 반짝였다.

“나는 본 적 없다. 하지만 그쪽에서 온 배는 봤다. 돛에 붉은 재가 묻었고 갑판엔 물고기 대신 검집이 널려 있었지. 그리고 그 바다엔, 이름을 입에 올리면 파도가 높아진다는 해적왕이 있다.”

무겸이 잔을 내려놓았다. “이름이 뭡니까?”

곽노는 한참 말이 없었다. 화롯불이 붉은 눈에 작게 흔들렸다.

“여기서 부를 이름이 아니다. 강 하구에도 귀가 있어.”

“그럼 그 섬에 가면 그 무녀들 만날 수 있어요?” 비호가 다시 물었다.

“갈 일이 없기를 빌어라, 꼬마.” 곽노가 화롯불을 뒤적였다. “그 바다는 들어간 배보다 나온 배가 적다.”

강민은 화롯가 너머 검은 강을 보았다. 오늘 가라앉힌 상자들은 작은 가지에 불과할지도 몰랐다. 물길은 더 큰 곳으로 이어져 있었고, 그 끝엔 아직 못 본 바다와 아직 못 만난 사람들이 있었다.

곽노가 항법 일지 한 장을 강민에게 건넸다. 글자는 절반쯤 지워졌지만 물살과 별자리, 바람 냄새를 표시한 작은 그림들이 남아 있었다. 숫자보다 그림이 많았고, 거리보다 새가 어디로 나는지를 더 중요하게 적은 이상한 기록이었다.

“예전에 강을 거슬러 바다를 읽던 사람들이 있었다. 쇠 나침반이 미쳐도 갈매기 날개만 보고 항로를 잡는 자들. 그중 어떤 이는 일지를 사람처럼 썼다더군. 오늘 물은 화가 났다, 내일 물은 등을 보일 것이다, 이런 식으로. 우스운 소리 같지만 그런 자들이 폭풍을 제일 잘 피했지.”

종이 끝에 작은 글씨가 남아 있었다. ‘물은 길을 기억한다.’

“왜 저한테 주세요?”

“자네는 힘으로 배를 멈췄지만, 언젠간 물을 읽어야 할 얼굴이다.”

“저는 뱃사람이 아닌데요.”

곽노가 처음으로 희미하게 웃었다. “물은 뱃사람만 데려가지 않아.”

밤이 깊었다. 서란은 무겸의 상처를 다시 꿰맸고 비호는 떼어 온 감응판을 닦았다. 강민은 항구 끝에 앉아 본국검을 무릎에 올렸다. 오늘 첫 실전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톱니가 물려다 실패한 얕은 흠, 방패 경첩을 찍으며 생긴 검은 점, 강물에 젖은 소금기. 천으로 닦다가 손을 멈췄다. 검이 완성됐다는 느낌은 없었다. 다만 오늘 조금은 자기를 알려 준 것 같았다.

“지킬 힘이 있으니까요.”

낮에 어부들에게 했던 대답이 질문이 되어 돌아왔다. 정말 지킬 힘이 있나. 있다면 어디까지 지켜야 하나. 한 마을의 등불, 한 어머니의 손, 한 강의 물길. 그 끝을 따라가면 언젠가 검령성의 불길보다 더 큰 어둠과 마주치게 될 것이다. 강민은 그걸 어렴풋이 알았다.

그때 항구 아래에서 어린아이의 비명이 들렸다.

강민이 벌떡 일어섰다. 검을 잡은 손이 먼저 움직였다. 달려간 곳에 적은 없었다. 낮에 상자가 빠진 강가, 물 빠진 뻘밭에 아이 하나가 주저앉아 있었다. 겁에 질린 얼굴로 강바닥을 가리켰다.

“저기…… 저기 뭐가 있어요.”

어른들이 횃불을 들고 몰려왔다. 물이 빠지며 드러난 뻘 속에 거대한 황동판 모서리가 비스듬히 솟아 있었다. 상자와는 비교도 안 되게 컸다. 배 외피처럼 보였지만 어선 장식과 전혀 다른 정밀한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비호가 떨리는 손으로 뻘을 걷어 냈다. 두 마리 용이 서로 다른 방향에서 톱니 하나를 물고 있는 형상이 드러났다. 그 아래 반쯤 지워진 오래된 글자가 있었다.

— □□ 조사선 제삼 격실.

“형, 이거…… 배예요. 엄청 큰 배.”

강민의 가슴속 청염이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대답했다.

강바닥 아래에서 무언가가 한 번 더 울었다.

— 話 16 終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