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점 · 강민 — 균열·낙인 단계

밀월성(密月城)의 비무대

第1部 · 話 22 · 검령성 · published

海東曆: 201년 7월 10일 · 시점: 강민

밀월성(密月城)은 멀리서 보면 달이 아니라, 반쯤 닫힌 눈 같았다.

황도를 떠난 지 이레째 아침, 강민은 낮은 구릉 위에서 그 성을 처음 보았다. 동서로 길게 늘인 초승달 모양 성벽 위로 흰 증기가 낮게 흘렀다.

“요새라기보다 덫 같군.” 떠돌이 무사 꼴을 낸 장무겸이 낮게 말했다.

“눈이면 누가 우리를 보고 있다는 거네요.” 강민이 중얼거렸다.

“그러니 눈 마주치지 말고 들어가야지.”

“덫이면 덫이지, 왜 이렇게 덥게 만들어요?” 빈 철통과 헝겊만 가득한 병기 상자를 멘 단비호가 투덜거렸다. “달 이름 붙은 성이면 좀 시원해야 정상 아니에요?”

“말할 힘이 있으면 아직 괜찮다는 뜻이야.” 유서란이 비호의 목 뒤에 식힌 약포를 끼워 주었다.

“누나, 그 말은 의원이 아니라 채권자 말투야.”

“둘 다 사람을 살리려면 끝까지 따라붙어야 하거든.”

강민은 희미하게 웃었다. 손목에 걸린 청우의 기계 염주, 백여덟 알이 걸음마다 얇은 쇳소리를 냈다.

“밀월성은 힘을 겨루는 곳이니, 힘에 취한 사람도 많을 것입니다.” 청우가 두 손을 모은 채 말했다. “강민 시주께서 보실 것은 상대의 칼끝만이 아닙니다. 그 칼끝 뒤에 매달린 사정입니다.”

“사정 봐주다가는 제 목이 먼저 달아날 텐데요.”

“봐주라는 말이 아닙니다. 보라는 말입니다.”

남문 위 붉은 현수막 아래, 집게와 회전 절단기를 단 철가면 기계병 둘이 서 있었다.

제42회 밀월 비무대. 출전자 및 수행원 입성 허가.

“저 집게 보여요?” 비호가 목을 움츠렸다. “한 번 물리면 병기고 팔이고 같이 접수예요.”

“구멍은 저 현수막이다.” 무겸이 턱짓으로 가리켰다. “일반 통행은 심문이 길지만, 출전자 명부에 이름을 올리면 수행원 네 명까지 한꺼번에 들여보낸다. 태사부 끄나풀들이 성 안에 깔렸다는 소문이 맞다면, 대회가 놈들의 그물이기도 하겠지.”

“그물 안으로 들어가자는 말이네요.” 강민이 말했다.

“밖에서 그물을 구경해 봐야 고기 얼굴은 못 본다.”

“근데 왜 꼭 형이 출전자예요?” 비호가 상자 끈을 꽉 쥐었다. “무겸 형님이 나가면 되잖아요. 키도 더 크고, 얼굴도 더 무섭고, 도망치기도 힘들게 생겼는데.”

“칭찬이냐?”

“절반쯤은요.”

“무겸 형, 저 감응부 봐요.” 강민이 성문 옆을 가리켰다. “낙인을 찍자마자 출전자 가슴께로 떨어요. 코테르(機核) 반응을 보는 거예요.”

“네 가슴이 울리면 입성은 시작도 전에 끝이란 소리군.”

“입구에서 숨을 막으려고 하지 마.” 수행 의원 차림의 서란이 바짝 다가왔다. “막으면 심장이 더 크게 뛰어. 첫 박은 지나가게 두고, 둘째 박에서 내려앉혀.”

“누나가 옆에 있으면 심장이 더 크게 뛰는 건?”

서란의 손이 잠깐 멈췄다. 그러고는 아무렇지 않게 그의 어깨끈을 바로잡았다.

“그건 진료 대상이 아니야. 쓸데없는 농담도 병이면 좋겠네. 침 한 대로 고치게.”

비호가 뒤에서 키득댔다. 강민은 천으로 감은 본국검(本國劍)을 등에 두르고 허리에 짧은 기공 단검 하나만 찼다.

“이름.” 검문관이 명부를 내려다보았다.

“강민.”

가명은 대지 않았다.

“소속.”

“떠돌이 무사단. 북동 산길에서 내려왔소.” 무겸이 끼어들었다. “저쪽은 수행 의원, 이놈은 병기 시중꾼, 스님은 길 안내 겸 복을 빌어 주는 분.”

“소승은 싸움을 부추기지 않습니다.” 청우가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다만 이미 시작된 싸움 뒤에 남는 상처를 줄이고자 동행합니다.”

“……그게 무슨 말이오?”

“복 빌어 주는 말입니다.” 무겸이 대신 받았다.

검문관이 귀찮다는 듯 낙인을 찍었다. 푸른 먹물이 손등에 반달로 번졌다. 이어 감응부가 낮게 울었다.

웅.

“첫 박.” 서란이 입술만 움직였다.

강민은 첫 박을 보냈고, 둘째 박에서 청염기관의 열을 물그릇 속 돌처럼 가라앉혔다. 바늘이 반 치 올라가다 멈췄다.

“흠?” 검문관이 눈을 가늘게 떴다.

강민은 염주 한 알을 엄지로 굴렸다.

딸깍.

박동이 조금 늦어졌다. 바늘이 내려왔다.

“다음.” 검문관이 통행패를 던졌다.

◆

성문 안은 풀무 소리와 증기차 경적, 호객하는 노점상 목소리로 끓고 있었다.

“달의 성이라더니 배수구마다 김이 올라와요. 한낮에는 솥뚜껑이네요.” 비호가 이마를 훔쳤다.

“우리가 익는 쪽이지.” 무겸이 대꾸했다.

일행은 비무대가 내려다보이는 객잔 이층에 방을 잡았다.

“네 사람이 누우면 발이 겹치겠어요.” 비호가 방을 둘러보다 청우를 돌아보았다. “스님은 어디서 주무세요?”

“소승은 처마 밑이면 족합니다.”

“비 오면요?”

“비 오는 소리를 듣겠습니다.”

저녁이 깊자 아래층은 무인들로 터질 듯 찼다. 서란은 취한 무인들의 잔상처를 봐 주는 척했고, 비호는 물동이를 들고 오가며 귀를 열었다.

소문은 기다리지 않아도 흘러왔다.

“작년 우승자 말이야. 태사부 초빙장 받고 갔다더니 돌아왔나?”

“돌아오기는. 황도에서 벼슬 한자리 받았겠지.”

“벼슬 받은 놈이 어머니 장례에도 안 와?”

“입 닥쳐. 여기 귀가 몇 개인 줄 알아?”

다른 테이블에서는 더 낮은 목소리가 오갔다.

“북문 쪽 병영이 밤마다 찬다더군. 낮에는 비어 보이는데 밤만 되면 수레가 들어가. 바퀴 소리가 끊이질 않는대.”

“황도 병영 이야기냐?”

“외곽. 정식 명부에 없는 곳.”

“태사부(太師府), 백유강(白裕剛), 황도 외곽 병영……” 강민이 술잔을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잔 속 물이 떨렸다. “말들이 다 한 줄로 이어져요.”

“목소리 낮춰라.” 계단 아래 기둥에 기대 술잔을 세 시간째 비우지 않은 무겸이 말했다.

그때 옆자리에서 젊은 창수(槍手) 하나가 벌떡 일어났다.

“내 사형이 도망친 게 아니라고 했잖소!” 술기운과 분노가 같이 올라온 얼굴이었다. “초빙장을 받고 갔고, 마지막 서신까지 왔소. 황도 외곽 병영이 낮보다 밤에 붐빈다고. 그 뒤로 끊긴 거요. 도망이 아니라 끊긴 거라고!”

“그만해, 그만! 입 다물어!” 동료가 그의 입을 틀어막았지만 늦었다.

그늘의 검은 옷 사내 둘이 고개를 들었다. 허리에 태사부의 칠흑 패가 매달려 있었다.

“말은 한번 나가면 돌아오지 않습니다.” 청우가 찻잔을 내려놓았다. “그러나 돌아오지 않는 말에도 책임은 남습니다.”

“지금 움직이면 저 사람이 더 위험해져.” 강민이 속삭였다. “비호야.”

“알았어, 형.”

비호가 물동이를 안고 비틀거리는 척 창수 쪽으로 걸어갔다.

“어이쿠, 어이쿠!”

“이 꼬마가 물을 쏟아? 앞을 보고 다녀라!”

“죄송합니다요, 나리!” 비호가 허리를 꺾는 사이 검은 옷 사내들이 시선을 돌렸다. 그 틈에 창수 신발 옆의 구겨진 종이가 비호의 발끝을 타고 바지단 속으로 사라졌다.

방으로 올라와 문을 걸어 잠그자마자 비호가 종이를 꺼냈다.

“물 쏟은 값은 했죠? 서신 귀퉁이예요. 물에 번졌는데 몇 자는 읽혀요.” 비호가 종이를 펴 읽었다. “황도 외곽. 제삼 병영. 밤마다 증기 수레. 명부 없음.”

“밀월 비무대는 우승자를 뽑는 자리가 아니다.” 무겸이 욕을 삼켰다. “쓸 만한 사람을 표시해 가져가는 장부야.”

“그러면 내일 강민이 우승하면 안 되는 거 아니야?” 서란이 물었다.

“오히려 가까이 갈 수 있겠지.”

“가까이 가는 것과 잡혀 가는 건 달라. 그 차이는 알고 말해.”

“알아.”

“알면 대답을 그렇게 하지 마.”

서란의 말투에는 의공사의 냉정함보다 누나의 걱정이 더 많이 묻어 있었다.

“내일은 베지 않을 거야. 누가 뭐라 해도.”

“베지 않겠다는 마음과, 베지 않고도 이기겠다는 실력은 다릅니다.” 청우가 조용히 물었다. “어느 쪽을 준비하셨습니까?”

강민은 대답 대신 기공 단검을 빼 들었다. 본국검에 익숙한 손에는 지나치게 가볍고 베는 맛도 없는 칼이었다. 그래서 좋았다.

“이 칼로는 분노를 멀리 보낼 수 없어요. 가까이에서, 정확히, 필요한 만큼만 움직여야 하니까요.”

“그럼 둘 다 준비하신 거군요.”

“둘 다 준비해 보겠습니다.”

“소승은 내일 관중석에서 염주 소리를 듣겠습니다.”

◆

이튿날 비무대의 하늘은 유난히 낮았다. 초승달 백선을 밟을 때마다 숨은 증기구가 김을 뿜었다.

“치명상 금지. 단전 훼손 금지. 항복 후 공격 금지.” 회색 수염의 심판이 규칙을 읽었다.

“치명상 금지라면서 벽에 피는 왜 저렇게 많아요?” 관중석의 비호가 속삭였다.

“규칙은 있지. 늘 늦게 도착해서 그렇지.” 무겸이 팔짱을 꼈다.

강민의 첫 상대는 양손에 갈고리 달린 칼을 쥔 마른 사내였다.

“쌍구도(雙鉤刀)예요. 갈고리로 손목을 낚는 칼.” 비호가 이를 갈았다.

“떠돌이 애송이 팔 하나는 남겨 줘라!” 관중석에서 누군가 외쳤다.

징이 울렸다.

“무릎이랑 손목, 동시에 와요!”

“호흡이 먼저 오르고, 어깨가 따라가고, 손목이 마지막이다.” 무겸이 중얼거렸다. “저 순서가 보이면 길도 보이지.”

강민은 단검을 갈고리 안쪽에 걸어 방향을 반 치만 틀었다.

“어?” 사내의 오른손이 자기 왼손의 길을 막았다.

바닥의 증기구가 터졌다. 김이 걷혔을 때 사내는 무릎을 꿇고 있었고, 단검 끝은 목젖 앞에 멈춰 있었다.

“졌소.”

“다치지 않아서 다행입니다.”

“피도 안 나는 걸 무슨 비무라고!” 관중석에서 야유가 쏟아졌다.

“베어 이기는 것보다 어려운 걸 했다.” 무겸이 낮게 말했다.

두 번째 상대는 무겸보다 큰 거한이었다. 사람 몸통만 한 도끼날 가장자리에서 톱니가 돌았다.

“저 톱니 금지라면서요! 심판 눈 감았어요?” 비호가 소리쳤다.

“작은 칼로 사람을 넘어뜨렸다지.” 거한이 도끼를 어깨에 올리며 웃었다. “나도 넘어뜨려 봐라.”

도끼가 바람을 갈랐다. 강민은 맞서지 않고 사선으로 빠졌다.

“형, 자루 끈! 한쪽 매듭만 새거예요!” 비호가 무릎을 쳤다. “급히 고친 거라 힘 받으면 풀려!”

“저 꼬마, 눈이 매섭군.” 무겸이 낮게 웃었다.

강민은 초승달 선을 밟아 김을 솟구치게 한 뒤, 그 속에서 단검 등으로 매듭을 세 번 두드렸다. 끊지는 않았다.

“뭘 두드려? 간지럽다!”

세 번째 휘두름에 매듭이 풀리며 도끼 머리가 자루에서 빠져 굴렀다.

“엎드려요, 엎드려!”

톱니가 돌판을 갈며 흰 불꽃을 뿌렸다. 강민은 발끝으로 도끼 머리를 관중석 반대편으로 틀고, 헛디딘 거한의 무릎 뒤를 눌렀다.

쿠웅.

“발가락 잘릴 뻔했잖아요!” 벌떡 일어난 비호의 옷깃을 서란이 잡아 앉혔다.

“앉아. 한 치 남았어. 저 애는 한 치면 돼.”

“강민 승.” 심판이 마지못해 손을 들었다.

“이겼다! 사람 안 다치고 이기는 게 되네요, 이게?” 비호가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되는 게 아니라 하는 거다.” 무겸이 낮게 말했다. “저 아이는 지금 매 합마다 목숨 둘을 지키고 있어.”

강민이 손을 내밀자 거한은 노려보다 결국 붙잡고 일어섰다.

“도끼를 부순 놈은 많았지만, 도끼가 사람을 다치게 하지 못하게 막은 놈은 처음이다.”

“그 도끼가 당신 손에 있었으니까요.”

“무슨 뜻이냐?”

“손이 남아 있어야 다음에 더 나은 도끼를 들 수 있다는 뜻입니다.”

거한은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세 번째 승부부터 상대들은 자존심을 걸었다.

“피 한 방울 못 내는 칼이 무슨 칼이냐! 비살 따위는 겁쟁이의 핑계다!”

그 말에 청염이 갈비뼈 안쪽을 긁었다. 강민은 염주를 굴렸다.

딸깍.

“갚고 난 다음 날 아침에는 무엇을 하실 겁니까.” 청우의 물음이 귓가에 남아 있었다.

강민은 숨을 낮추고 턱 대신 어깨 관절을, 허벅지 대신 발목 축을 짚었다. 피를 보지 않는 대신 그의 몸이 맞았다.

“윽…….”

날아온 돌이 관자놀이를 스쳐 피가 눈썹을 타고 내렸다.

“돌 던진 놈 누구야!” 비호가 일어섰다.

“앉아.” 서란의 손이 약낭 위에서 굳어 있었다. “저 애가 칼을 안 푸는데, 우리가 먼저 풀면 안 돼.”

준결승 상대는 객잔의 젊은 창수였다.

“어제 내 말을 들었소?”

“들었습니다.”

“그럼 일부러 져 주지 마시오. 나는 사형을 찾으러 가야 하오. 태사부 초빙장이 필요하오.”

“저도 알아야 할 게 있습니다.”

“그러면 서로 양보할 이유가 없군.”

“그렇습니다.”

징이 울렸다. 창수는 욕심내지 않고 찌르고 빠지며 증기로 시야를 끊었다.

“창이 너무 길어! 형이 안으로 못 들어가!” 비호가 난간을 움켜쥐었다.

세 번 뒤로 밀린 강민의 옆구리가 네 번째 찌르기에 찢어졌다.

“옆구리야!” 서란이 벌떡 일어났다.

“얕다. 급소를 일부러 비껴 찔렀어.” 무겸이 그녀의 팔을 눌렀다.

“더 깊이 찔러! 뭘 봐줘!” 관중이 외치자 창수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이기고 싶지만 죽이고 싶지는 않은 얼굴. 그렇다면 길이 있었다.

다섯 번째 찌르기가 왔다. 강민은 창끝이 어깨 위를 스쳐 가는 순간 왼손으로 창대를 움켜쥐었다. 손바닥이 찢어졌다.

“이 사람이……!”

강민은 한 걸음 안으로 들어가 단검으로 갑주 앞고리를 풀고 어깨로 밀었다. 창수가 뒤로 넘어갔다. 창끝은 하늘을 향했다.

“졌소.”

“당신 창은 아직 살아 있습니다.”

“내 사형도 살아 있으면 좋겠군.”

경기가 끝난 통로에서 창수가 작은 대나무 관을 내밀었다.

“사형의 마지막 서신 조각이오. 어제 취해서 떠든 것보다 조금 더 남아 있소. 당신이 우승패를 받으면 그자들이 초빙장을 줄 거요. 그때 이 글과 맞춰 보시오.”

“왜 제게 줍니까?”

“당신은 내 창을 꺾지 않았소. 창을 꺾지 않은 사람에게라면, 남은 말도 꺾이지 않을 것 같아서.”

강민이 관을 열려 하자 무겸이 어깨를 짚었다.

“여기선 펴지 마라. 보는 눈이 너무 많다. 태사부 그늘막이 아까부터 뭘 적고 있어.”

결승 상대는 태사부 그늘막에서 직접 내려온 곽태였다.

“철환검(鐵環劍)이에요.” 비호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고리 여섯 개가 울면서 호흡을 흐리고, 손잡이 실린더가 순간적으로 검속을 밀어 올려요. 금지는 아닌데…… 공정하지도 않아요.”

“큰 칼은 장식이냐?” 곽태가 강민의 등을 가리켰다.

“오늘은 이걸로 충분합니다.”

“건방지군. 아니면 겁이 많거나.”

“둘 다 조금씩은 있겠죠.”

“웃기는 놈이네. 그럼 겁부터 벗겨 주마.”

징이 울렸다. 첫 합에 소매가, 두 번째 합에 어깨가 베였고, 세 번째 합에 단검이 크게 튕겼다.

“눈에 보이는 궤도랑 칼이 도착하는 궤도가 달라.” 무겸이 이를 악물었다.

“그럼 어떻게 막아요?”

“막는 게 아니라 읽어야 해. 저 소리를.”

“무릎 꿇어라, 애송이! 항복만 하면 목숨은 붙여 주마!”

곽태는 강민이 물러설 때마다 검풍을 관중석 쪽으로 흘렸다. 물장수 소년의 모자가 반으로 갈라졌다.

“저놈, 일부러 관중석 쪽으로 휘둘러!” 비호가 외쳤다.

강민의 가슴속에서 청염이 목구멍까지 치밀었다. 본국검을 풀면 한 번에 끝낼 수 있다. 오른손이 아주 조금 등 뒤로 움직였다.

“형, 칼 풀려고 해…….”

“……대사님.” 서란이 청우를 돌아보았다.

딸깍.

염주 한 알이 엄지 아래에서 걸렸다. 관중석의 청우가 눈을 뜨고 있었다.

“갚고 난 다음 날 아침에는 무엇을 하실 겁니까.” 그 물음이 다시 들렸다. 강민은 본국검에서 손을 뗐다.

곽태의 검이 목을 스쳐 피가 한 줄 흘렀다. 서란이 일어서자 무겸이 그녀 앞을 막았다.

“아직이다.”

“저게 아직이면, 늦은 건 언제인데요?”

무겸은 대답하지 못했다.

목을 타고 흐르는 피가 뜨거웠다. 분노가 아니라 살아 있다는 감각이었다.

“……여섯 개가 다 같은 소리가 아니야.” 강민이 피 묻은 입술로 중얼거렸다. “세 번째 고리가 반 박자 늦어. 실린더가 밀 때마다.”

그 반 박자가 길이었다. 일부러 밀려 주던 강민이 철환검의 옆면을 손목으로 미끄러뜨렸다. 늦은 고리 안으로 단검 손잡이가 파고들었다.

깡.

“뭣……!”

압력이 갈 곳을 잃었다. 곽태의 검끝이 초승달 선을 찔러 증기구가 터졌고, 김 속에서 단검이 어깨, 팔꿈치, 손목을 짚자 검이 손에서 빠졌다.

“됐다! 검 놓쳤어요!” 비호가 외쳤다.

그러나 곽태는 비겁했다. 검을 놓는 순간 왼소매에서 압축 침이 튀어나왔다. 피하면 침은 뒤쪽의 물장수 소년에게 날아간다.

“강민아, 피해!” 서란이 소리쳤다.

“피하면 뒤에 애가 맞아!”

강민은 피하지 않고 왼손으로 침을 움켜쥐었다. 침끝이 손바닥을 뚫고 솟았다. 침 속 코테르 가루가 피에 닿아 울며 눈가에 푸른 빛이 돌았다.

“너, 그 힘은……” 곽태가 처음으로 웃음을 잃었다.

강민은 청염을 터뜨리지 않았다. 뚫린 손으로 침을 쥔 채 단검 등으로 곽태의 손목을 쳤다.

“으아악!”

뼈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곽태가 비명을 질렀다. 강민은 그를 엎드리게 하고 목덜미에 단검 끝을 댔다.

“항복하십시오.”

“죽여.”

“싫습니다.”

“그럼 내가 다시 일어나서—”

단검이 아주 조금 움직이자 잘려 나간 옷깃 속에서 검은 태사부 패가 떨어졌다. 강민은 그것을 발끝으로 비무대 중앙에 밀었다.

“이 대회는 무인을 겨루는 자리입니까, 태사부가 사람을 고르는 자리입니까?”

관중석이 폭발했다.

“태사부가 사람을 골라 간다고?”

“입 막아, 이 사람아!”

“암기다! 저놈이 먼저 암기를 썼어!”

“심판, 뭐 하시오! 규칙대로 하시오!”

심판이 입술을 씹으며 머뭇거렸다. 청우가 관중석에서 천천히 일어났다. 기계법륜이 여섯 고리를 낮게 울렸다.

“규칙은 약한 자를 묶기 위해 있는 것이 아닙니다. 강한 자를 멈추게 하려고 있는 것입니다.”

크게 외친 것도 아닌데 이상하게 멀리 갔다.

“……곽태, 암기 사용으로 실격. 강민 승.”

“이겼다! 형이 이겼어!” 비호가 펄쩍 뛰었다.

강민이 침을 뽑자 피가 쏟아졌다. 서란이 난간을 넘어 내려와 그의 손을 잡았다.

“미쳤어? 피할 수 있었잖아.”

“뒤에 아이가 있었어.”

“네 손도 네 몸이야.”

“알아.”

“알면 이렇게 쓰지 마.”

그 말이 침보다 깊이 들어왔다. 서란이 상처를 압박하자 손끝에서 황금빛 기공이 번졌다.

“청염 잔열이 피를 타고 올라와. 밀어내고는 있는데…… 다 안 빠져. 손바닥 안쪽에 불씨가 남았어.”

우승패 수여식은 소란 속에서 치러졌다.

“형, 이 초승달 흑철판 가운데에 감응구가 박혀 있어.” 비호가 뒤에서 속삭였다. “뒤쪽 홈에 봉랍 찍힌 붉은 종이도 있고. 태사부 인장이야.”

“우승자에게는 태사부 초빙의 영예가 주어집니다.” 관리가 웃음을 붙인 얼굴로 말했다. “황도에서 더 큰 무대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초빙은 영예입니다.”

“영예라면 거절할 시간을 주겠죠.”

무겸이 헛기침을 했다.

“형, 관리 웃음 굳는 거 봤어?” 비호가 웃음을 참느라 얼굴을 찡그렸다.

“초빙을 받은 이가 스스로 걸어갈 수 있도록 기다리는 것도 예의입니다.” 청우가 관리에게 합장했다.

관리는 초빙장을 강민의 손에 억지로 쥐여 주고 물러났다. 그늘막 아래의 태사부 사내들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

해가 기울자 일행은 객잔 대신 성벽 밖 폐사(廢寺)로 옮겼다. 부처상은 한쪽 눈만 남아 있었다.

“객잔은 이제 못 써. 태사부 눈이 너무 많아졌어.” 무겸이 말했다.

“우물은 아직 살아 있네요.” 서란이 법당 구석에 약낭을 풀었다. “여기를 의공실로 쓸게.”

강민은 법당 마루에 앉았다. 붕대 아래에서 열이 올랐다.

“상처 열이 아니야.” 서란이 이마를 짚었다. “하루 종일 베지 않으려고 불을 안으로만 눌러 담았잖아. 눌러 담은 건 사라지지 않아. 닫힌 보일러처럼 쌓이지.”

“어…… 이거, 좋지 않은데요.” 비호가 작은 압력계를 강민의 손목에 대고 있었다. 바늘이 떨리다 한 칸 뛰었다.

“얼마나? 정확히 말해.”

“비무 시작 전보다 네 칸 높아요. 아니, 다섯 칸. 방금 또 올랐어요.”

밖을 살피던 무겸이 들어왔다.

“성벽 쪽은 아직 조용하다. 아직은.” 무겸이 말했다. “오래 못 버틴다. 서둘러라.”

강민이 품에서 대나무 관을 꺼냈다. 손이 떨렸다.

“지금은 안 돼. 손 떨리는 거 안 보여? 내일 봐.” 서란이 말렸다.

“지금 봐야 해. 이걸 보려고 들어간 거니까.”

그는 종이를 펼쳤다. 번진 글씨 사이로 문장이 남아 있었다.

“황도 외곽 제삼 병영. 낮에는 빈 막사, 밤에는 팔 없는 병사들.” 강민이 더듬더듬 읽었다. “초빙장은 문이 아니라 족쇄다. 돌아갈 수 없으면, 밀월의 노인을 찾아라.”

“그 아래는요? 한 줄 더 있잖아요.” 비호가 종이를 들여다보았다.

“거의 지워졌어. 두 글자만 선명해.” 서란이 손끝으로 짚었다. “高崙. 고륜.”

“밀월의 노인……” 강민이 중얼거렸다. “관중석 그늘에 노장 하나가 있었어요. 박수도 야유도 안 하고, 처음부터 끝까지 저만 봤어요. 잃어버린 물건 확인하듯이.”

“노장이라……. 나는 못 봤다.” 무겸이 문 쪽에서 돌아보았다. “네 눈이 나보다 낫군.”

그때 손목의 염주가 저절로 움직였다.

딸깍.

“형…… 손 안 댔는데 염주가 혼자 돌아.” 비호가 목소리를 떨었다.

딸깍.

“바늘 끝까지 갔어! 누나, 이거 재는 범위를 넘었어!”

서란의 얼굴에서 핏기가 빠졌다. 청우가 천천히 눈을 떴다.

“시주, 숨을 내리십시오. 천천히.”

“……하고 있어요.”

“형, 숨! 숨 쉬어!” 비호가 외쳤다.

“민아, 나 봐. 내 목소리만 들어.” 서란이 그의 손목을 움켜쥐었다.

강민의 가슴속에서, 비무대에서 삼켜 둔 푸른 불이 한꺼번에 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딸깍.

세 번째 알이 돌아가는 순간, 강민의 입술 사이로 작은 푸른 증기가 새어 나왔다.

“강민아.”

그는 대답하려 했지만, 목소리보다 먼저 심장이 대답했다.

쿵.

폐사의 낡은 부처상 한쪽 눈에서, 오래 말라 있던 먼지가 파르르 떨어졌다.

— 話 22 終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