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점 · 강민 — 균열·낙인 단계

청혈성(靑血城)의 봉기

第1部 · 話 25 · 검령성 · published

海東曆: 201년 8월 1일 · 시점: 강민

청혈성은 멀리서 보아도 이름을 속이지 않는 도시였다.

여름비에 씻긴 동남 관도 끝에서 요새의 성벽이 늦은 오후의 열기 속에 둥글게 솟아 있었다.

“벽돌에 철광석을 섞어 구웠네. 햇빛 받으니까 마른 피 같아.” 단비호가 성벽을 올려다보았다.

“그래서 청혈성이라 부르오.” 고륜이 말했다. “방열판 틈으로 푸른 증기를 피처럼 흘리는 붉은 요새. 밀월성이 달빛을 등진 칼집이었다면, 이곳은 심장에 박혀 아직 뛰는 쇠못 같은 곳이오.”

“말이 너무 무서운데요, 어르신.”

“사실이 그렇소.”

“가슴 눌려?” 유서란이 강민을 곁눈으로 보았다.

“도르래 도는 소리, 성벽 안쪽 수압관 소리, 바닥 밑 증기 배관까지…… 다 들려. 기계 소리가 박동에 하나씩 맞물려.”

“동기화가 빨라졌어. 힘만 느는 게 아니야. 기계가 아픈 것까지 알게 되는 거야.”

“그게 좋은 거야, 나쁜 거야?”

“둘 다야. 그러니까 숨 쉬는 거 잊지 마.”

“걸음 늦추지 마라.” 외투 아래 접이식 방패를 감춘 장무겸이 잠금쇠를 자꾸 만졌다. 불안할 때 나오는 버릇이었다.

“두건 때문에 앞이 안 보여.” 약재 상인의 짐꾼 차림의 서란이 투덜거렸다.

“누나는 어차피 앞을 안 보고 사람 맥을 보잖아요.” 비호가 속삭였다.

“그래서 더 위험한 거야. 맥이 이상한 사람이 너무 많아.”

성문 오른쪽 게시판에는 반백파의 검은 기어 문장이 박힌 고시가 붙어 있었다.

곡식 삼 할.

열여섯에서 스물다섯 사이의 남녀 장정.

닷새 안에 자진 출두.

거부자는 반역 협력자로 간주.

“곡식 삼 할이면 한 집이 겨울을 못 나요.” 비호가 입술을 깨물었다.

“곡식 삼 할에 장정까지.” 무겸이 낮게 말했다. “성 하나를 통째로 비우겠다는 거군.”

“수비대장 명의에 태사령부 감찰 인장이야.” 서란이 속삭였다.

“톱니 문양이…… 기계중원에서 본 거랑 닮았어요.” 강민의 손가락이 차갑게 굳었다. “해동 도장인데 중원 냄새가 나요.”

게시판 아래에서 한 여인이 얇은 명부를 쥐고 군졸에게 매달려 있었다.

“붓글씨가 아니라 황동 활자로 찍었어. 이름이 아니라 부품 번호 같아.” 비호가 중얼거렸다.

“우리 아이는 아직 열다섯이오. 생일이 지나지 않았소. 이건 잘못된 명부요.”

“명부에 있으면 대상이다.”

“그 애는 폐병이 있소. 무거운 짐을 들면 기침으로 피를 토하오. 제발 의공사를 불러 확인만이라도—”

“명부에 있으면 대상이다.”

대답이 아니라 작동음이었다. 옆에 선 자동병이 고개를 기울였고, 눈구멍의 녹색 감응석이 여인의 얼굴을 훑었다.

“저 감응석, 눈물은 못 읽어.” 비호가 이를 갈았다. “나이, 키, 체중, 노동 가능 여부. 그것만 봐.”

강민이 한 걸음 나서자 서란이 짐끈을 고치는 척 앞을 막았다.

“여기서 뽑으면 저 모자(母子)가 먼저 죽어.”

“……지나가면 그만인 사람. 못 본 척하면 다칠 일 없는 외지인. 지금 내가 그거네.”

그 쉬운 이름이 목 안에서 쇳가루처럼 걸렸다.

◆

그날 밤 일행은 성 안 동쪽 구역의 낡은 여관에 숨었다. 벽 뒤 배관을 따라 울음소리가 번졌다. 서란은 저녁이 끝나자마자 가방을 멨다.

“어디 가?”

“아까 그 어머니 찾으러.”

“누나 혼자 가게?”

“우는 사람 곁에 검 든 사람이 서 있으면, 그 사람은 울다가도 변명부터 하게 돼. 넌 쉬어.”

자정 가까이 그녀가 돌아왔다. 두건에는 빗방울이 맺혀 있었다. 비호가 등잔을 당기다 멈칫했다.

“누나, 손등 왜 그래?”

“어머니가 붙잡고 안 놓더라.” 서란이 물 한 컵을 단숨에 비웠다.

“이름이 도현이래. 명부엔 열여섯인데 실제론 열다섯. 생일이 넉 달 남았어. 폐병도 있고. 그런데 낮에 자동병이 감응석으로 훑더니 몸무게가 기준을 넘었다고 끌고 가겠대.”

“사람을 저울추로 재?” 비호가 얼굴을 찡그렸다.

“그게 끝이 아니야.” 서란이 피 묻은 천 조각을 꺼냈다. “어머니 말로는 명부에 오른 아이들 중 셋은 지난달에 병으로 죽었대. 그런데도 이름이 남아 있어. 죽은 아이 몫까지 누군가 채워 넣을 생각인 거지.”

“징발이 아니라 사냥이군.” 무겸의 손이 방패 손잡이로 갔다.

“황궁 명부라면 수비대장이 임의로 고치지 못하오.” 창가의 고륜이 거리의 기척을 들으며 말했다. “그러나 성문에서 저렇게 몰아넣는 건 현장 지휘관의 방식이오. 겁을 주고, 먼저 울게 하고, 서로를 의심하게 만든 다음, 남은 사람을 짐승처럼 줄 세우는 방식.”

“막을 수 있습니까?” 강민이 물었다.

고륜은 대답하지 않았다.

“우리가 여기서 수비대를 베어 넘기면 청혈성 전체가 반역 도시가 된다.” 무겸이 대신 말했다. “황도는 진압군을 더 보낼 거고, 잡혀갈 사람은 두 배가 되겠지.”

“그럼 그냥 봐야 해요?” 강민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탁자 위 등잔불이 푸르게 흔들렸다. 비호가 놀라 등잔을 붙잡았고, 서란이 강민의 손목을 덮었다.

“봄이랑 참음은 달라. 눈 감으라는 게 아니야. 칼부터 뽑지 말라는 거야.”

“싸우려면 먼저 무엇을 지킬지 정해야 합니다. 이기는 것보다 먼저입니다.” 청우가 염주를 멈췄다. “오늘 밤 우리 마음은 모두 칼집에서 반쯤 빠졌습니다. 이 상태로 나가면 칼은 사람을 가리지 못합니다.”

강민은 대답하지 못했다. 청염기관이 쿵, 쿵 뛰었다. 싸우라는 것 같기도, 멈추라는 것 같기도 했다. 그는 손목의 첫 황동 알을 넘겼다. 알 하나에 숨 한 번. 숨 하나에 불길 한 줌.

◆

새벽 세 시 무렵 거리에서 북소리가 났다. 둥. 둥. 둥.

“시장이랑 남문 쪽…… 동시에 울려.” 비호가 창문에 귀를 댔다.

“잠든 도시를 깨우는 소리가 아니오.” 고륜이 일어섰다. “잠들지 못한 사람들끼리 보내는 신호요.”

“시장 사람들이 곡물 창고 앞에 모입니다.” 여관 주인이 겁에 질린 얼굴로 문틈에서 속삭였다. “밤새 참을 줄 알았는데…… 징발대가 먼저 움직인 모양입니다.”

일행은 말없이 장비를 챙겼다. 무겸은 방패 잠금을 풀었고, 서란은 침통과 지혈포를 손 닿는 곳에 옮겼다.

“오늘은 폭약 말고 연막나사랑 쐐기만 챙겼어. 터뜨리면 사람 다치니까.” 비호가 공구 주머니를 세 번 두드렸다.

고륜은 속에 검을 감춘 낡은 지팡이를 들었다.

“죽이지 않는 싸움은 죽이는 싸움보다 어렵습니다.” 청우가 합장했다.

“오늘은 그 어려운 쪽으로 갑니다.” 강민이 본국검 자루를 잡았다.

◆

청혈성의 아침은 붉었다. 경고등이 붉은 빛을 뿜는 곡물 창고 앞 광장에 농부와 대장장이, 아이를 안은 여자들이 어깨를 맞대고 있었다. 맞은편에는 진압군과 자동병 여덟 기가 섰다.

“전투용이 아니라 징발용으로 개조한 기체요. 곡물 집게에 쇠사슬 발사구.” 고륜이 낮게 말했다. “사람을 살려 둔 채 끌고 가려고 만든 기계지.”

“죽이려고 만든 것보다 더 차갑네요.”

“명부 순서대로 앞으로 나온다! 한 명도 빠뜨리지 마라!” 왼눈에 계측 렌즈를 낀 지휘관이 증폭 나팔에 외쳤다. “숨긴 집은 곡식 전량 몰수! 저항하면 반역 협력자로 기록한다! 기록된 자는 황도에서 재심을 받을 수 없다!”

“재심까지 막았군. 한 번 기록되면 끝이란 뜻이오.” 고륜이 낮게 말했다.

어젯밤의 여인이 기침을 참는 마른 소년의 손을 잡고 사람들 사이를 헤치고 나섰다. 소년은 낡은 목각 새를 쥐고 있었다.

“이 아이는 대상이 아니오!”

“저 아이부터 데려가라.”

지휘관이 손가락을 튕기자 자동병의 사슬 발사구가 소년의 허리를 겨눴다.

“도현아!” 여인이 소리쳤다.

그 순간 군중 속에서 돌멩이가 날아가 황동 나팔을 찌그러뜨렸다. 날카로운 비명 같은 소리가 광장을 갈랐다. 그것이 봉기의 시작이었다.

“더는 못 내준다!”

“우리 애들 못 데려가! 쌀도 못 가져가!”

시민들이 한꺼번에 밀려 나왔다. 첫 번째 사슬이 한 젊은이의 어깨를 감았다.

“잡아! 놓치지 마!” 사람들 셋이 매달리자 그의 몸이 갈라질 듯 휘었다.

“무겸 형!”

“알았다!”

콰앙. 무겸의 접이식 방패가 사슬과 자동병 팔 사이에 끼어들어 방향을 비틀었다.

“뒤로! 아이들부터 뒤로 보내!”

“방패 뒤로 붙으시오! 한 줄로, 밀지 말고!” 고륜이 지팡이로 군중의 방향을 틀었다.

“누나, 부상자!”

“벌써 가고 있어!” 서란은 이미 쓰러진 사람들 사이에 있었다. 한 손으로 젊은이의 어깨를 눌러 지혈하며 다른 손으로 노인의 목덜미에 침을 꽂았다.

“거기 견습 둘! 멍하니 서 있지 말고 이 어깨 눌러요, 세게!”

어쩔 줄 몰라 하던 청혈성의 의공 견습 둘이 달려왔다.

“깨끗한 천! 끓인 물! 그리고 울 시간 있으면 손부터 씻어!”

비호는 낮게 몸을 숙여 자동병들 사이를 파고들어 무릎 뒤 관절 틈에 황동 쐐기를 밀어 넣었다. 관절이 잠기며 기체가 주저앉았다.

“하나 잠갔다! 쐐기 아직 많아!”

“형! 얘들 오른쪽 무릎 뒤가 약해! 근데 너무 세게 치면 압력통 터져!”

“알았다!”

“여기선 불 못 써. 적이랑 시민을 못 가려.” 강민은 청염을 누르고 검면을 세웠다. 군졸의 창끝을 흘려 손목을 치고 어깨로 밀어 넘어뜨렸다. 시민 셋에게 돌진하는 자동병 앞에서는 배관 덮개를 밟아 울림을 흘린 뒤 잠금핀을 검등으로 쳤다.

“형, 방금 배관 울려서 저놈 걸음 박자 틀었지? 그거 나도 못 하는 건데!”

“말 걸지 말고 쐐기나 꽂아!”

사람을 베지 않는다. 자동병만 부순다. 죽이지 않고 길을 연다. 터진 곡물 자루에서 흰쌀이 쏟아져 피와 기름에 뒤섞였다.

“쌀이…… 누구네 한 해 양식인데!” 비호가 이를 악물었다.

봉기를 이끄는 중년 대장장이가 망치를 치켜들고 지휘관에게 달려들었다. 지휘관이 권총식 증기발사기를 꺼내 들었다.

“형, 지휘관이 증기발사기 꺼냈어! 저 거리면 가슴 뚫려!”

“대사님!” 강민이 소리쳤다.

그 사이로 청우가 맨손으로 파고들었다.

“비켜!”

“쏘겠다!”

청우의 염주가 손목에서 둥근 잔상을 그렸다. 그 호흡이 분노를 조금 늦췄다.

“쏘지 마!” 강민이 뛰어들어 총구를 검면으로 쳐 올렸다. 압축 증기가 하늘로 뿜어졌고, 대장장이의 망치는 청우의 어깨 옆 돌바닥을 갈랐다.

“당신이 지금 저자를 죽이면, 저자는 당신을 반역자로 기록할 것이고, 죽은 뒤에도 당신 이름으로 더 많은 사람을 끌고 갈 것입니다.”

“그럼 참으란 말이냐?”

“아니요. 살아서 증언하라는 말입니다.” 청우가 대장장이의 눈을 똑바로 보았다. “죽은 사람은 이름만 남지만, 산 사람은 이야기를 남깁니다.”

“……살아서, 증언.” 대장장이의 손이 떨렸다.

지휘관이 나팔을 다시 잡으려 하자 고륜의 지팡이가 그의 손등을 눌렀다.

“나팔은 그만 부시게.”

“늙은이, 너도 반역 명부에—”

“명부를 너무 믿지 마시오. 명부는 칼을 막아 주지 못하오.”

지팡이 끝이 살짝 움직이자 지휘관의 렌즈에 금이 갔다.

“……너, 뭐냐.”

“감히 황명을 받은 징발대를—”

“황명이라면 인장을 다시 보여 주시오. 명부에 없는 늙은이도 글자는 읽을 줄 아오.” 고륜이 지팡이를 거두었다.

무겸의 방패가 광장 중앙을 막아섰다. 비호가 세 번째 자동병을 잠가 길목을 막았고, 강민은 그 뒤로 아이와 노인들을 빼냈다. 잠깐, 아주 잠깐, 사람들은 이길 수 있을 것처럼 보였다.

북쪽 종루에서 종이 세 번 울렸다. 철제 보행교가 내려오고, 방독 가면에 증기통을 멘 예비 진압대가 나타났다.

“진압용 안개 부대요!” 고륜이 외쳤다.

“엎드려! 코랑 입 막아, 소매로!” 서란이 외쳤다.

매운 금속 냄새의 회색 안개가 골목 위에서 쏟아졌다. 시민들이 기침하며 무너졌다. 강민의 가슴속에서 청염이 고개를 들었다.

“이 안개쯤…… 태워 버리면 길이 열려. 가면도, 자동병도 전부.” 강민이 자기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그는 염주를 돌리며 숨죽여 셌다.

“하나…… 뜨겁다. 둘, 태우지 마. 셋, 사람이 있어. 넷…… 사람이 너무 많아.”

“강민아. 불 쓰지 마.” 서란이 기침하며 그의 팔을 잡았다. 눈가가 붉게 젖어 있었다.

“알아.”

“시주, 숨을 내쉬십시오. 불은 내쉰 숨만큼만 따라옵니다.” 청우가 곁에서 낮게 말했다.

“안다고 말하지 말고, 해.”

그 한마디가 검보다 깊게 박혔다. 강민은 청염을 안쪽으로 말아 넣고 박동을 광장 아래 배수 증기관에 맞췄다. 치익. 배수구마다 흰 수증기가 솟아 회색 안개를 옅게 만들었다.

“지금!”

“내 뒤로 붙어!” 무겸이 방패로 길을 열었다.

“노인부터 빼시오!” 고륜이 기침하는 노인 둘을 부축했다.

“연막 반대로 터뜨린다! 진압대 눈부터 가려!” 비호가 연막나사를 던졌다.

한순간씩, 작은 승리들이 만들어졌다. 그러나 봉기는 이기지 못했다.

오전 열 시, 외곽 병영의 본대가 궤도식 수레로 철제 울타리를 끌고 와 광장 네 방향을 막았다.

“형, 울타리! 네 방향 다 막혔어!” 비호가 소리쳤다.

“주동자다! 저놈부터 묶어!”

대장장이는 끝까지 망치를 놓지 않다가 등 뒤에서 날아든 쇠그물에 덮였다. 강민이 달려가려 하자 무겸이 어깨를 붙잡았다.

“놔 줘요, 형!”

“지금 들어가면 다 죽는다.”

“저 사람을 두고 가라고요?”

“지금 네가 죽이면 저 사람 말도 같이 죽는다.”

그 말이 맞다는 게 더 잔인했다.

“형, 우리 잘한 거 맞죠?” 비호가 숨을 몰아쉬었다.

“잘한 게 뭔지는 지금 못 정해.” 서란이 도현이를 끌어안은 채 말했다. “도현이는 살았어. 살았는데…….”

소년은 끌려가는 이웃들을 보며 목각 새를 손안에서 부러뜨렸다. 그 작은 소리가 이상하게 크게 들렸다. 끌려가던 대장장이가 고개를 돌려 강민과 눈을 맞췄다. 그는 터진 입술로 웃었다.

“젊은이! 오늘을 잊지 마시오!”

진압군이 등을 쳤다. 그는 무릎을 꿇었다가 다시 일어섰다.

“잊지 않는 자가 한 명이라도 남으면, 진 것이 아니오!”

강민은 손목의 염주를 돌렸다. 열 개, 스무 개, 서른 개.

“누나. 사람을 부품으로 세는 건 기계중원 증기탑만이 아니었어.” 목소리가 갈라졌다. “스팀갱 광부들도, 도공거리 장인들도, 용진도 어부들도, 여기 사람들도…… 다 같은 톱니 아래야. 해동 황금 현판 아래에서도.”

“……눈 감아도 돼.”

“안 감아. 잊지 않으려면 봐야 해.”

백여덟 알을 전부 돌릴 때까지, 그는 끌려가는 얼굴들을 보았다.

◆

돌아오는 골목 배수관에 찢긴 붉은 깃발 조각이 걸려 있었다. 검은 실로 꿰맨 글자가 반쯤 남아 있었다.

“내 아이를…… 기계에 넣지 마라.” 비호가 더듬어 읽었다. “누가 급하게 숨겼나 봐.”

“제국은 늘 변방에서 먼저 무너졌소.” 고륜이 그것을 오래 보았다. “황궁 사람들은 성벽이 높으면 나라가 버틴다고 믿지만, 성벽 아래 시장에서 아이 이름이 지워지는 순간 이미 금이 간 것이오.”

“옳은 말이 병력을 움직이는 건 아닙니다, 어르신.” 무겸이 겨우 입을 열었다. “저도 군문에서 그걸 배웠습니다.”

“알고 있소. 그래서 우리가 움직여야 하는 것이오.”

강민은 걸음을 멈추고 광장을 돌아보았다. 텅 빈 광장이 오히려 더 시끄러웠다. 깨진 항아리 속 물이 떨리는 소리, 배수구 안에서 쌀알이 굴러가는 소리.

“가자, 민아.” 서란이 낮게 불렀다.

“조금만. 이 소리들을 기억해 두고 싶어서.”

해 질 녘, 관청 앞에 새 고시가 붙었다.

“기한이…… 닷새에서 사흘로 줄었어.” 비호가 읽었다.

여관 뒤 창고에서 강민은 창가에 섰다. 북문으로 향하는 궤도 수레 소리가 났다. 쇠사슬에 묶인 사람들을 태운 수레였다.

“저 수레가 북문을 나가면…… 그다음은 아무도 모르겠죠.”

“황도 외곽 병영으로 가는 거겠지.” 무겸이 닦지 않은 방패를 내려놓았다. 시민들의 손자국과 창날 흠집이 뒤섞여 있었다.

“강민아.”

“나 괜찮아.”

“괜찮은 얼굴 아니야.”

“누나 손은. 어머니한테 긁힌 데, 아직 안 아물었잖아.”

“내 손은 내가 알아서 해. 지금은 네 얼굴 얘기 중이야.”

웃으려다 실패했다. 손가락이 염주 위를 더듬었다.

“백여덟 알을 다 돌리셨는데, 손가락이 아직 다음 알을 찾고 있군요.” 청우가 제 염주의 흠을 살피며 말했다.

“……분노가 안 끝나요.”

“끝나지 않았지요. 다만 길을 잃었을 뿐입니다.”

“대사님, 염주 알은 왜 백여덟 개예요?” 비호가 어색한 분위기를 깨려는 듯 물었다.

“사람의 번뇌가 그만큼이라 합니다.” 청우가 대답했다. “다 돌려도 하나쯤은 남지요.”

“그럼 끝이 없는 거 아니에요?”

“그래서 매일 돌리는 것입니다.”

“형, 이거 누가 넣어 둔 거야?” 비호가 탁자 아래에서 황동 원통을 주웠다. “자동병 부품 같은데, 세공이 너무 정밀해.”

손톱으로 옆면을 누르자 딸깍 열리며 감응지가 말려 나왔다.

“청혈성 봉기 관련자 이송 완료.” 비호가 읽었다. “외부 개입자 여섯 명 확인. 검령성 출신 강민, 청염 반응 보유.”

“여섯…… 우리 머릿수까지 세어 놨어.” 비호의 목소리가 떨렸다.

서란의 손에서 약초 꾸러미가 떨어졌다. 무겸이 방패 손잡이를 잡았고, 고륜의 얼굴이 종이처럼 창백해졌다.

“이 인장은……”

맨 아래 찍힌 인장을 알아본 얼굴이었다. 강민이 감응지를 뒤집었다.

“태사령 백유강(白裕剛)에게 즉시 보고.”

바로 그 순간, 여관 지붕 위에서 누군가의 발소리가 났다.

“불 꺼.” 무겸이 낮게 말했다.

— 話 25 終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