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구함(工具函)의 방랑자(放浪者)
海東曆: 201년 4월 24일 · 검령성(劍靈城) 도장 · 시점: 단비호(段飛虎)
산등성이를 타고 내려온 바람은 차가웠지만, 도장 뒤뜰의 석조 바닥은 화덕처럼 후끈했다. 외벽의 황동 배관이 피식, 피식 증기를 흘렸고, 고철장에서는 쇠조각들이 쉴 새 없이 부딪쳤다.
단비호는 그 모든 소리를 좋아했다. 남들에게는 소음이었지만 그에게는 도장이 살아 있다는 증거였다. 열세 살 견습 도공은 뒤뜰 바닥에 쪼그려 앉아 낡은 가죽 공구가방을 벌려 놓았다. 허리춤에서 정비 망치 ‘땅콩’이 짤랑거렸다.
그 앞에는 황동 부품 열일곱 덩이가 놓여 있었다.
“열일곱 개. 민이 형이 두 달 동안 수련하다 부순 것들.”
어른들 눈에는 ‘힘 좋은 놈이 또 쇠를 부쉈다’ 정도의 고철이었다. 비호에게는 달랐다.
“이건 다 기록이야. 사람은 아파도 괜찮다고 하는데 쇠는 안 그래. 받은 압력이랑 열이랑 충격을 단면에 그대로 남기거든.”
그는 가장 왼쪽의 납작한 밸브 조각을 집었다.
“하나. 두 달 전 새벽 밸브 훈련. 형이 손도 안 대고 돌리겠다고 하다가 처음 과압을 일으킨 거. 그때 사부님이 뭐라셨더라.”
“‘쇠도 네 성질머리는 못 당하는구나.’ 다들 웃었지. 나도 웃었는데, 이상하게 이것만 챙기고 싶더라고.”
비호는 조각을 내려놓고 다음 조각으로 손을 옮겼다.
“둘, 셋, 넷…… 여기까진 이해가 돼. 바깥으로 찢겼고 찢긴 면이 한 방향으로 밀렸어. 증기가 벽을 밀다가 제일 약한 데를 뜯어낸 흔적이야.”
“근데 다섯 번째부터는 달라. 균열이 한쪽으로 안 흘러. 중심에서 바깥으로, 바깥에서 다시 중심으로 번졌어. 안쪽에서 여러 방향으로 동시에 힘을 받아 찢어진 거야.”
“아홉 번째. 단면 가장자리에 푸른 얼룩. 처음엔 화덕 광물 가루인 줄 알았는데 긁어도 안 묻고 닦아도 안 지워져. 알코올 램프에 올려 봤더니 오히려 더 선명해졌어. 불꽃 색이 아니라 맑고 차가운 푸른빛이야.”
“열두 번째부턴 얼룩이 아니라 선이고. 그리고 열일곱 번째, 이틀 전에 수거한 기어 조각은……”
그는 열일곱 번째를 햇빛에 비춰 보았다. 부러진 면 한가운데에 짙은 푸른 그을음이 박혀 있었다.
“석탄 연기면 표면에 앉았을 거고, 기름불이면 탄 냄새가 났을 거야. 근데 냄새가 안 나. 쇠 냄새가 너무 깨끗해. 안쪽만 서늘하게 타고 바깥엔 열 흔적이 하나도 없어.”
“이건 화화(火化) 기공도 아니고, 그냥 과압도 아니야.”
조각칼 끝으로 얇게 긁자 손목을 타고 찌릿한 감각이 올라왔다.
“으으, 기분 나빠. 뜨겁지 않은데 차가운 기운이 살 속까지 파고들어.”
입으로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눈은 반짝였다. 알 수 없는 것을 만나면 비호는 겁이 나기도 전에 호기심부터 생겼다. 그는 지난겨울부터 눈금을 세 번이나 고쳐 그린 작은 압력계를 꺼냈다.
“압력 반응, 없음. 자석침, 없음. 재미없네.”
그러다 문득 열일곱 개를 한 줄로 놓고 압력계를 가장 오래된 조각 옆에서부터 옮겼다.
“첫 번째, 없음. 두 번째, 없음. 세 번째……”
비호의 눈이 가늘어졌다.
“어? 방금 아주 살짝 떨렸다.”
“네 번째, 조금 더 떨려. 다섯 번째. 여섯 번째, 더 길게. 열 번째엔 바늘 끝이 좌우로 흔들리면서 박자를 만들어……”
그는 자기도 모르게 웃음을 멈추었다.
“이거…… 쌓이고 있어.”
처음부터 다시 확인해도 결과는 같았다. 최근 조각일수록 바늘이 더 분명하게 떨렸다.
“부품은 다 식었고 안에 증기가 남았을 리도 없는데…… 열이나 압력이 아니라 박자와 호흡의 흔적이 새겨져 있어. 민이 형 몸에서 새어 나온 낯선 진동이 조금씩 쌓인 거야.”
“도대체 민이 형 몸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지?”
“이틀 전에 의공실로 실려 갔고, 서란 누나는 밤새 맥을 짚었는데, 사부님은 ‘훈련 중 과부하였을 뿐이다’라고만 했어. 말도 안 돼. 과부하면 황동은 바깥으로 찢겨야지. 이건 안쪽에서부터 누가 문을 두드린 흔적이야.”
그때 뒤편에서 묵직한 발소리가 났다. 체중이 실린 무거운 걸음이었다.
“무얼 그렇게 숨어서 혼자 세계의 비밀이라도 캐내고 있냐, 비호야.”
수건으로 목덜미를 닦으며 장무겸(張武謙)이 다가왔다. 비호가 재빨리 조각을 가렸지만 늦었다. 무겸은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아 파편들을 내려다보았다.
“이건 민이가 깨뜨린 것들이군.”
“훔친 거 아니에요. 버리는 거 주운 거지.”
“내가 훔쳤다고 했냐?”
“무겸 형 얼굴이 그렇게 말했어요.”
“이 녀석이……”
무겸의 입가가 올라갔다가 이내 굳었다. 굵은 손가락 하나가 열일곱 번째 조각의 푸른 단면 위에서 멈췄다.
“점점 깊어지고 있구나.”
“뭐가요? 이 푸른 자국? 아니면 균열? 아니면 민이 형 가슴에서 나는 이상한 박동?”
무겸은 대답하지 않았다. 두 달 전, 한 달 전, 보름 전, 이틀 전. 비호가 늘어놓은 순서를 눈으로 따라가는 얼굴이 점점 무거워졌다.
“무겸 형도 느꼈죠?”
“무엇을.”
“못 느낀 척하지 마요. 나는 기계 보는 애라서 사람을 잘 모르는 줄 알죠? 아니거든요. 사람도 기계처럼 주기가 있어요. 화났을 때 걷는 주기, 거짓말할 때 숨 쉬는 주기, 걱정할 때 손가락이 멈칫하는 주기. 무겸 형은 민이 형 얘기만 나오면 왼쪽 어깨가 먼저 굳어요.”
무겸이 무심코 자기 왼쪽 어깨를 내려다보았다.
“봤죠? 지금도 굳었잖아요.”
“눈썰미가 지나치게 좋으면 오래 못 산다.”
“그건 눈썰미 없는 어른들이 어린 천재한테 겁주려고 하는 말이에요.”
무겸은 조각 하나를 조심스레 집어 들었다. 손끝이 단면에 닿는 순간 딱, 들었다기보다 느낀 소리가 났다. 그가 손가락을 거두었다.
“민이는 최근 대련할 때마다 달라지고 있다. 검을 들지 않아도 권풍 끝에 쇠 냄새가 섞여. 몸 안쪽에서 기공이 도는 게 아니라, 기계가 기공을 끌고 가는 느낌이랄까.”
“그럼 민이 형 몸속에 진짜 보일러라도 들어 있는 거예요?”
“그런 농담을 할 때가 아니다.”
“농담 아닌데요.”
비호는 열일곱 번째 파편을 손바닥에 올렸다. 푸른 그을음이 햇빛 아래서 잠깐 빛났다.
“기공만으로 이런 흔적이 남지는 않아요. 기공은 사람 몸을 지나 밖으로 나가는 힘이잖아요. 근데 이건 힘이 지나간 흔적이 아니라 뭔가가 맞물린 흔적이에요. 사람과 쇠 사이에 보이지 않는 톱니가 생겼다가, 그 톱니가 억지로 빠져나오면서 부품을 안쪽에서 뜯은 거죠.”
열세 살이 하기엔 지나치게 정확한 말이었다.
“누구에게 그 이야기를 했냐?”
“아직 아무한테도요.”
“잘했다. 당분간은 네 가방 안에만 넣어 둬라.”
“왜요?”
무겸은 대답 대신 도장 본관 2층, 반쯤 열린 의공실 창문을 올려다보았다. 비호도 창문을 보다가 다시 무겸을 보았다.
“무겸 형도 뭔가 알고 있죠?”
“나는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많다.”
“어른들은 꼭 그렇게 말하더라. 알고 있는 걸 말하기 싫으면 모른다고 하고, 모르는 걸 들키기 싫으면 때가 아니라고 하고.”
“정말로 때가 아닌 말도 있다.”
“기계는 때를 안 기다려요. 압력이 차면 밸브를 열어야 하고, 균열을 봤으면 그날 바로 손을 대야죠. ‘때가 아니다’ 하고 미루다 보면 작은 균열이 결국 터진다고요.”
“사람은 기계가 아니다, 비호야.”
“알아요. 그래서 더 어렵다는 거예요.”
뒤뜰의 공기가 무거워지자 비호는 갑자기 코를 킁킁거리며 무겸의 발을 내려다보았다.
“근데 무겸 형.”
“또 뭐냐.”
“민이 형 걱정보다 먼저 형 발을 걱정해야 할 것 같은데요. 방금 압력계가 ‘위험, 위험, 장무겸 발 냄새 접근’ 하고 울었다니까요?”
“이 녀석이.”
무겸의 큰 손이 비호의 머리를 덮쳤다. 비호는 기다렸다는 듯 비명을 질렀다.
“으악! 도장 최악의 생화학 기공이다! 사람 살려! 설 사부님, 여기 무겸 형이 금지된 발 냄새 병기를 씁니다!”
“내 수련의 향기를 모독하다니. 오늘은 네 머리를 황동 솔로 박박 문질러 줄 테니 각오해.”
비호가 데굴 굴렀고 무겸은 일부러 느린 동작으로 쫓았다. 수련생들이 웃음을 터뜨렸지만 비호는 알고 있었다. 무겸도 일부러 크게 웃고, 자기도 일부러 크게 소리치고 있다는 것을. 그 웃음은 서로 걱정을 감추려는 것이었다.
비호는 조각들을 가방에 넣었다. 가장 푸른 열일곱 번째는 천으로 싸서 깊숙이 밀어 넣었다. 그 순간 가방 밑바닥의 압력계가 아주 작게 떨렸다.
딱.
“왜 그러냐?”
“아무것도 아니에요.”
비호는 밝게 대답하고 가방끈을 묶었다. 강민 옆에서 느끼던 박자와 닮았지만 더 낮고, 더 멀고, 더 딱딱했다. 쇠로 만든 손가락이 아주 먼 곳에서 같은 문을 두드리는 것 같았다.
◆
저녁 식당에는 된장 냄새와 삶은 무 냄새가 가득했다. 강민은 창가에서 조용히 밥을 먹고 있었지만, 비호의 눈에는 보였다. 숨을 들이쉴 때마다 가슴 한가운데 옷자락이 심장보다 더 안쪽에서 먼저 움직였다. 맞은편 서란은 웃으면서도 어김없이 강민의 손목과 안색을 훑었다.
“어른들은 정말 이상해. 걱정을 왜 꼭 숨겨야 예의라고 생각할까.”
혼잣말을 한 비호는 식탁 분위기를 바꾸기로 했다. ‘땅콩’을 뽑아 들고 일어섰다.
“자, 검령성 여러분! 지금부터 해동 역사상 가장 위대한 정비 시범을 보이겠습니다. 재료는 평범한 무 토막 하나. 목표는 황궁에도 납품 가능한 초정밀 무 기어!”
“또 시작이다.”
“저 무 한 조각만 줘!”
“입금부터 하세요! 증기압 상승, 톱니 맞물림, 좌측 밸브 개방!”
무 토막을 세워 놓고 망치 뒷날로 통통 두드리자 몇몇 수련생이 웃었다.
“밥상에서 망치질하지 마.”
설무진의 목소리가 낮게 떨어졌다. 비호는 움찔했지만 곧 씩 웃었다.
“사부님, 이건 망치질이 아니라 예술입니다. 저는 무를 때리는 게 아니라 무의 잠재력을 두드려 깨우고 있는 겁니다.”
“그럼 네 잠재력도 한 대 맞으면 깨어나겠구나.”
식당 여기저기서 웃음이 터졌다. 서란도 웃었고, 그러자 강민의 입가에도 옅은 미소가 생겼다. 비호는 속으로 안도했다. 푸른 불이니 이상한 박동이니 하는 것들보다 먼저, 무던하게 밥 먹고 웃는 민이 형이 여기 있다.
“민이 형, 먹어 봐요. 천재 도공의 손길이 닿은 무는 그냥 무가 아니에요.”
강민이 무 토막을 장에 찍어 입에 넣었다.
“맛은?”
“무네.”
“아니, 천재의 무라니까.”
“천재적으로 무네.”
더 큰 웃음이 터졌다. 무겸은 밥을 씹다 말고 기침을 했고 서란은 손등으로 입가를 가렸다.
“형은 사람 기를 꺾는 데 재주가 있어요. 나중에 검이 아니라 말로 적을 쓰러뜨리면 되겠네.”
비호가 뺨을 부풀렸을 때, 강민이 물을 마셨다. 목울대가 움직이기 전에 가슴 안쪽이 먼저 한 번 뛰었다. 웅. 식당의 소음 속에서도 비호의 손끝이 먼저 반응했다. 그는 웃음을 유지한 채 눈만 살짝 돌렸다.
설무진이 강민을 보고 있었다. 수저를 든 사부의 밥은 줄지 않았고, 눈은 강민의 가슴 한가운데에 머물렀다. 거기에는 훈계도 분노도 없었다.
‘저 눈, 어디서 봤는데.’
지난겨울, 작은 보일러가 터지기 직전에 모두 압력계만 보고 괜찮다고 할 때 설무진만은 벽의 떨림을 보고 수련생들을 물러나게 했다. 몇 분 뒤 밸브가 찢어졌다. 그때 사부는 터질 것을 아는 사람의 얼굴이었다. 다만 그때 바라본 것은 보일러였고, 지금은 강민이었다.
딱, ‘땅콩’이 식탁에 내려앉았다. 강민이 고개를 돌렸다.
“왜 그래?”
“아니요. 무가 갑자기 너무 무라서요.”
강민은 의아한 얼굴을 했지만 더 묻지 않았다. 그 무던함이 고마우면서도 답답했다. 자기 몸에서 파이프가 울어도 피곤해서 그렇겠지 하고 넘길 사람이다. 그런 사람일수록 옆에서 누군가는 계기판을 봐야 한다.
식사가 끝나자 무겸은 설무진에게 무언가 짧게 보고하고 나갔고, 서란은 약그릇을 챙기며 강민에게 일렀다.
“의공실에 한 번 더 들러.”
“괜찮아요, 누나.”
서란은 눈으로만 대답했다. 괜찮은지는 내가 판단한다는 눈이었다. 강민이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
저녁의 뒤뜰은 낮과 달랐다. 열기 빠진 돌바닥이 식었고, 배관에서 새는 증기가 달빛을 받아 흰 실처럼 보였다. 낮에 그렇게 시끄럽던 고철장은 소리 하나 없이 조용했다.
비호는 알코올 램프를 켜고 열일곱 번째 조각을 다시 꺼냈다. 푸른 단면이 어둠 속에서 더 또렷했다. 노트 가장자리에 동그라미 하나, 가로선 두 개, 작은 톱니 모양을 그렸다. 이름은 아직 붙이지 않았다. 이름을 붙이면 진짜가 되어 버릴 것 같았다.
“무슨 실험을 하는 거야?”
비호는 조각을 떨어뜨릴 뻔했다. 뒤뜰 입구에 강민이 서 있었다. 오른팔에는 새 붕대가 감겨 있었다.
“형은 걸을 때 발소리 좀 내요. 사람 심장 멈추게 하지 말고.”
“네가 뭔가 몰래 하는 표정이라.”
“나는 늘 뭔가 몰래 하는 표정이에요. 천재는 비밀이 많거든요. 의공실 다녀왔어요? 누나가 뭐래요?”
“맥이 아직 흔들린대. 오늘은 일찍 자라더라.”
“그래서 일찍 자러 안 가고 여기 왔어요?”
“너 혼자 뭘 하는지 궁금했거든.”
강민이 피식 웃었다. 그 웃음을 확인하고서야 비호는 가방을 닫으려던 손을 멈췄다. 오늘 묻지 않으면 앞으로 계속 자기 귀를 믿지 못하게 될 것 같았다.
“민이 형.”
“왜.”
장난기 섞인 말투를 찾았지만 목소리가 낮게 나왔다.
“사부님이 우리한테, 아니 형한테, 입에 올리지 못하는 무언가를 숨기고 있다는 생각 안 들어요?”
강민의 표정이 아주 잠깐 멈췄다. 눈동자가 흔들리기 전에 손가락이 먼저 굳고, 그전에 호흡이 반 박자 늦었다.
“사부님이? 갑자기 무슨 소리야.”
“오늘 식사 때 봤어요. 형을 볼 때마다 사부님이 숨을 참았어요. 그냥 걱정이 아니었어요. 형한테서 눈을 못 떼셨다고요. 터질 걸 아는 사람이 터지지 않게 하려고 살피는 눈이었어요.”
강민은 말이 없었다. 비호는 멈추면 다시 장난으로 돌려버릴 것 같아서 말을 이었다.
“그리고 형도 이상해요. 형 심장 박자 말고 다른 박자가 있어요. 아까 밥 먹을 때도 물 마시기 전에 가슴 안쪽이 먼저 울렸어요. 보통 사람 몸은 그렇게 안 울려요. 수련하다 숨이 찬 거랑도 달라요. 도장 보일러에 처음 불이 붙을 때 나는 진동이랑 비슷해요. 안쪽에서 뭔가가 먼저 움직이는 느낌이에요.”
강민의 손이 천천히 가슴으로 올라가 옷 위에서 멈췄다.
“나도…… 그 일 뒤로 가끔 느껴.”
처음이었다. 강민이 자기 몸의 이상을 말로 인정한 것은. 비호는 숨을 삼켰다.
“어떻게요?”
“심장이 뛰는 것하고는 달라. 더 깊은 곳에서 금속이 맞물리는 느낌이야. 아프지는 않은데, 가끔 내 몸이 내가 모르는 장단을 기억하고 있는 것 같아.”
“몸이 장단을 기억한다……”
“이상한 소리지?”
“아니요. 기계도 그래요. 한 번 잘못 맞물린 톱니는 다음 회전에도 같은 자리에서 떨리고, 오래 맞춰진 기계는 주인이 손대기 전에도 제 박자를 찾아요. 그러니까 형 몸이 그렇다면 단순한 과부하가 아니에요.”
“그럼 뭔데.”
“그걸 재 보자는 거예요. 형, 잠깐만 가만히 있어 봐요.”
“뭐 하려고?”
“잡아먹지는 않아요. 내가 아무리 천재라도 아직 사람 분해 조립은 안 배웠거든요.”
“아직?”
“말꼬리 잡지 말고요.”
비호는 압력계를 강민의 가슴에서 30cm쯤 떨어진 곳에 들었다. 사람 몸에는 반응하지 않아야 할 물건이었다. 처음에는 아무 일도 없었다.
그때 강민이 아주 작게 숨을 들이켰다.
우우웅.
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뒤뜰 바닥이 미세하게 떨렸다. 바늘이 한 칸도 안 되는 거리만큼 움직였다가 돌아왔다.
“방금…….”
“한 번 더.”
“20cm. 15cm. 10cm.”
바늘은 움직이지 않다가, 강민의 가슴 안쪽 박자가 한 번 더 올라오는 순간 분명하게 떨었다. 왼쪽으로 반 칸, 오른쪽으로 반 칸.
딱. 딱.
비호는 가방에서 갈색 정비 노트를 꺼냈다. 언젠가 자신만의 첫 장비를 설계할 때 쓰려고 아껴 둔 노트였다. 첫 장을 펼치는 손이 떨렸다. 창피해서 더 세게 펜을 잡았다.
‘海東曆 201년 4월 24일. 검령성 도장 뒤뜰. 강민 형의 가슴 안쪽에서 심장 박동과 다른 저주파 진동 확인. 거리 10cm에서 정밀 압력계 바늘 반 칸 떨림. 열일곱 번째 황동 기어의 푸른 단면과 박자 유사. 원인 불명. 위험도 불명. 정비 필요.’
마지막 네 글자에서 비호의 펜이 멈췄다.
“내 이름도 적었네.”
“환자 이름은 기본이에요.”
“그걸 적어서 뭘 하려고?”
“모르면 적어야죠. 적다 보면 보이고, 보이면 고칠 수 있어요.”
“내가 고장 난 물건 같아?”
질문은 날카롭지 않았다. 오히려 조금 쓸쓸했다. 비호는 평소처럼 “형은 원래 나사가 좀 빠졌잖아요” 하고 농담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오늘은 그렇게 넘기고 싶지 않았다.
“물건이면 벌써 뜯었죠.”
“뭐?”
“형은 사람이잖아요. 그러니까 더 조심해서 봐야죠. 기계는 잘못 열어도 다시 조이면 되는데, 사람은 함부로 열면 안 되잖아요.”
강민의 눈빛이 조금 달라졌다.
“나는 어려서 모르는 게 많아요. 사부님이 왜 숨기는지도, 서란 누나가 왜 웃으면서 형 맥만 보는지도, 무겸 형이 왜 자꾸 어깨부터 굳는지도 몰라요. 근데 하나는 알아요. 형 몸에서 이상한 소리가 나요. 그리고 그 소리는 점점 커지고 있어요. 모두가 말하기 싫어하면, 내가 대신 들어야죠.”
바람이 지나가며 뒤뜰의 증기를 흔들었다. 비호는 괜히 민망해서 코끝을 긁었다.
“물론 내가 해동 최고의 도공이 될 몸이라 가능한 일이긴 하지만요. 아무나 이런 중대한 임무를 맡으면 안 되죠.”
그제야 강민의 입가에 작은 웃음이 돌아왔다.
“그럼 부탁해야겠네.”
“뭘요?”
“내 몸에서 나는 그 이상한 소리. 네가 들어 줘.”
비호는 대답하려다 목이 막혔다. 어려운 부탁이 아니었다. 아니, 너무 어려운 부탁이었다. 그는 일부러 크게 웃었다.
“당연하죠. 비용은 비싸요.”
“얼마나?”
“아침밥 고기 반찬 있으면 내 몫 하나 더. 그리고 형이 수련하다 부품 부수면 고철은 전부 나한테 넘기기.”
“그건 원래 네가 몰래 가져갔잖아.”
“이제 합법화하는 겁니다.”
강민이 고개를 저었지만 표정은 한결 편안해졌다. 비호는 노트 아래쪽에 한 줄을 더 적었다.
‘담당 정비사: 단비호.’
“형.”
“응.”
“걱정 마요. 형이 얼마나 거대한 보일러를 품고 있든, 내가 옆에서 계속 계기판 볼게요. 압력이 오르면 알려 주고, 밸브가 막히면 뚫어 주고, 나사가 풀리면 조여 줄게요. 형이 괜찮다고 거짓말해도 안 믿을 거고, 사부님이 때가 아니라고 해도 나는 내 노트에 적을 거예요.”
비호는 ‘땅콩’을 들어 가슴 앞에 세웠다.
“나는 해동 최고의 도공이 될 사람이니까.”
강민이 달빛 아래서 말없이 그를 보았다. 눈빛에 고마움과 미안함이 섞여 있었다. 비호는 그 미안함이 싫어서 얼른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형, 진짜 보일러가 몸에 들어 있으면 말해요. 내가 이름 멋지게 지어 줄게요. ‘강민식 초고열 인간 보일러 1호’ 어때요?”
“절대 싫어.”
“그럼 ‘민이 형 내장형 푸른 난로’.”
“더 싫어.”
“까다롭네. 작명비도 받을 건데.”
둘은 아주 작게 웃었다. 비호는 열일곱 번째 조각을 천으로 다시 감았다. 오늘부터 이것은 고철이 아니었다. 첫 증거였다.
그때였다. 가방 안쪽에서 압력계가 혼자 울었다.
딱.
비호의 손이 멈췄다. 강민도 고개를 들었다.
“왜 그래?”
“쉿.”
이번 박자는 강민의 가슴에서 온 것이 아니었다. 강민의 박자가 불을 받아들이는 깊은 보일러 소리라면, 이것은 차갑고 얇고 규칙적이었다. 먼 곳에서 쇠못 하나가 같은 간격으로 박히는 소리.
딱. 딱.
“형, 가만히 있어요.”
가방을 열자 압력계 바늘이 북쪽으로 기울어 있었다. 뒤뜰 북쪽 담장 너머는 낮에는 장작꾼이 오가고 밤에는 바람과 짐승 소리만 지나는 산길이었다.
“북쪽이에요. 형 박자랑 달라요. 훨씬 딱딱하고…… 멀어요.”
“무슨 소리지?”
도장 어딘가에서 개가 한 번 짖다가 갑자기 멈췄다. 뒤이어 북쪽 외벽 너머의 어둠 속에서 아주 낮은 금속음이 돌아왔다.
딱.
누군가 문을 두드린 것이 아니었다.
무언가가, 아직 문이라고 불러도 좋을지 모를 것을, 안쪽에서부터 세 번 확인하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