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점 · 강민 — 균열·낙인 단계

국경에서 온 전령과 흑영(黑影)

第1部 · 話 4 · 검령성 · published

海東曆: 201년 4월 27일 · 검령성 도장

검령성(劍靈城)의 저녁은 평소보다 늦게 식었다. 북쪽 기계중원(機械中原) 쪽에서 불어온 바람이 황동 배관을 스칠 때마다 배관이 보이지 않는 손톱에 긁힌 듯 울었다.

강민(剛民)은 정비실 창가에서 수련용 증기검(蒸氣劍)을 분해하고 있었다. 압력 실린더에는 지난 폭주 때의 푸른 그을음이 지워지지 않은 채 남아 있었다.

“또 시작이군. 보일러 맥동보다 낮고 내 심장보다 차가운 박자가 오늘은 북쪽 바람이랑 맞물려 있어.”

왼쪽 가슴에 손을 얹었을 때 약초 냄새가 문틈으로 먼저 들어왔다. 고삼의 씁쓸함과 당귀의 단내였다.

“강민아.”

청람색 의공사복의 유서란(柳瑞蘭)이 들어오자마자 한숨을 쉬었다.

“수련이 끝났으면 밥을 먹어야지. 왜 또 검을 뜯어놓고 있니?”

“누나, 뜯어놓은 게 아니라 점검이야. 검도 숨이 막히면 안 되잖아.”

“사람부터 숨이 막히지 않게 해야지. 네 얼굴이 지금 많이 붉어. 이미 쉬어야 할 상태야.”

서란의 손이 이마에 닿았다. 날카롭게 파고들지 않고 물처럼 몸속을 더듬는 의공사의 기공이었다. 어긋나던 박자가 아주 잠깐 누그러졌다.

“열은 없는데 맥이 또 이상해. 어제보다 더 깊은 데서 울려. 단전이 아니라…… 아니, 단전과 맞물린 다른 곳 같아.”

“내 몸이 도장 보일러랑 같이 늙어가나 보지. 사부님께 말씀드리면 또 호흡부터 다시 하라고 하실 텐데.”

“농담으로 넘기지 마. 네 몸은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정직해. 무리하면 먼저 부서지는 건 검이 아니라 너야.”

“……미안해.”

“사과 말고 약 먹어. 오늘 저녁 약은 평소보다 쓴 걸로 지어 놨어.”

“누나, 그건 벌 아니야?”

“처방이야.”

서란이 검자루의 푸른 그을음을 엄지로 문질렀다. 지워지지 않았다. 손끝에 묻은 희미한 빛을 보며 그녀가 말을 잃었다.

“누나.”

“응.”

“사부님은 왜 요즘 나를 볼 때마다…… 이미 늦었다고 여기시는 눈빛으로 보시는 걸까?”

서란의 손이 굳었다. 그녀는 대답 대신 약함을 열어 침통을 확인했다. 평소보다 굵은 침 세 자루와 황금빛 분말 병이 들어 있었다.

“누나, 그 침은 진맥용이 아니지.”

“사부님은 늘 걱정이 많으셔. 그리고 너는 늘 걱정거리를 만드는 쪽이고.”

“형! 누나! 저녁 먹기 전에 이것 좀 봐야 해요!”

공구가방을 끌고 단비호(段飛虎)가 뛰어들었다. 얼굴에는 기름때가, 머리에는 톱밥이 붙어 있었지만 눈빛은 이상하리만치 또렷했다.

“서쪽 외벽 세 번째 배관이 거꾸로 숨 쉬고 있어요.”

“거꾸로 숨 쉰다는 게 무슨 말이야?”

“보통은 안쪽 압력이 높을 때 바깥으로 밀어내야 하잖아요. 근데 지금은 바깥의 진동이 안쪽 암호 밸브를 먼저 두드리고 있어요. 아주 약하게요. 그러니까 바깥 진동이 안쪽 밸브가 열릴 때 나는 신호를 그대로 따라 하고 있다는 뜻이에요.”

비호가 내민 압력계의 바늘이 안정 구역과 위험 구역 사이에서 짧게 떨고 있었다. 어른들이라면 오차로 넘길 흔들림이었지만, 강민은 가슴속 박동과 같은 떨림을 느꼈다.

“이거…… 내 박자랑 닮았다.”

“그러니까 가져왔죠. 형이 제일 먼저 알아볼 줄 알았거든요.”

“사부님께 알려야 해.”

서란이 곧장 몸을 돌렸다.

“사부님께 가면 또 ‘때가 아니다’ 하시겠죠?”

“비호.”

후원으로 가는 동안 도장은 이상하게 조용했다. 변방 사람들은 소문보다 땅의 떨림을 믿었다.

설무진(雪武陳)은 무도장 뒤편 석단 위에 서 있었다. 허리에는 좀처럼 풀지 않던 흑청색 검집, 손잡이 끝에 푸른 보석이 박힌 본국검(本國劍)이 걸려 있었다.

“사부님. 서쪽 외벽 배관의 암호 진동이 이상합니다. 비호가 역류 신호를 잡았습니다.”

설무진은 놀라지 않았다.

“북쪽 바람이 너무 빨리 도착했구나.”

“북쪽 바람이라니요?”

“비호야, 역류 신호는 언제부터 잡혔냐?”

“한 시간 전부터요. 처음엔 아주 약했는데 점점 커져요. 사부님, 이건 밖에서 밀고 들어오는 신호가 아니에요. 안쪽 밸브가 먼저 반응해요.”

설무진의 시선이 산길에 고정되었다. 황혼 아래로 먼지가 일고, 그 속에서 철이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다. 누군가 쓰러지지 않으려고 달려오고 있었다.

“문을 열어라! 창룡대 휘장이다!”

정문을 지키던 수련생이 외쳤다. 보강문이 반쯤 열리자 사내 하나가 굴러들어오다시피 마당에 엎어졌다. 터진 증기 관절에서 검은 매연이 뿜어졌고, 찢긴 붉은 휘장에서 창룡대(蒼龍隊)의 문양만은 선명했다.

“창룡대 형님이다!”

“의공사님 불러!”

“추격은?”

“뒤에 아무도 없습니다! 그런데 산 전체가 울려요!”

“무겸 형!”

장무겸(張武謙)이었다. 얼굴 절반에 그을음이 묻었고 입가에서는 피와 기름이 섞인 검은 액체가 흘렀다.

“비켜 봐. 비호야, 물이랑 천!”

“네!”

강민이 부축하는 사이 서란이 지혈용 대침을 어깨 아래에 꽂았다. 울컥하던 출혈이 가까스로 멎었다.

“숨 쉬세요, 무겸 오라버니. 깊게. 기계 호흡 말고 사람 호흡으로요.”

“서란아…… 그런 말은…… 평소에 해야 더 무섭지.”

“말할 힘 있으면 살아날 힘도 있는 겁니다.”

단호한 목소리와 달리 서란의 손끝은 떨리고 있었다. 강민은 그 손끝에서 더 큰 공포를 보았다.

설무진이 무겸의 어깨갑옷을 살폈다. 세 줄기 자국이었다.

“칼이 아니라 손으로 뜯었구나. 가장자리에 박힌 이 가루는…… 코테르 결정이다.”

진홍색 가루를 보자 강민의 가슴 어딘가가 반응했다.

“보고해라.”

“형, 누워 있어요. 보고는 나중에—”

“놔라, 민아.”

무겸은 고집스럽게 한쪽 무릎을 세웠다. 창룡대의 군관으로서 엎드려 보고하고 싶지 않은 듯했다.

“기계중원 자객단 흑영이 국경 방어선을 넘었습니다.”

마당의 모두가 숨을 죽였다.

“동북 초소 셋, 외곽 관문 둘, 산길 감시탑 네 곳이 같은 시각에 끊겼습니다. 첫 번째 초소는 신호탄도 못 쏘았습니다. 두 번째는 문이 안에서 열린 흔적이 있었고, 세 번째는…….”

“세 번째는?”

“사람보다 먼저 기계가 날카로운 소리를 냈습니다. 방어용 목책의 증기 장치가 전부 같은 방향으로 돌아섰습니다. 우리 쪽을 향해서.”

비호가 숨을 삼켰다.

“그럴 리가 없는데요. 초소 방어 장치는 안쪽 수동 잠금이 세 겹이에요. 암호 진동이 없으면 역회전 자체가 안 돼요.”

“그 암호를 그들이 알고 있었다.”

무겸의 말을 듣자 비호의 얼굴에서 마지막 장난기가 사라졌다.

“아니, 알고 있었다기보다…… 처음부터 그 암호가 그들을 위해 준비되어 있었던 것 같았다.”

“수는?”

“보이는 것만 십여 기였습니다. 나머지는 어둠 속에서 흩어져 움직이는 바람에 셀 수가 없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본 것은.”

“국경 능선 위에 붉은 불이 하나둘 켜지는 것을요. 그리고 기계들이 걸어 내려오는 소리를. 저는 이것을 품고 도망쳐 왔습니다.”

“그게 뭐냐.”

“세 번째 초소의 전령관이 마지막 숨으로 제 품에 넣어 준 것입니다. 사부님께 전하라고……”

무겸이 찌그러진 청동 신호통을 꺼냈다. 절반이 녹은 통에서 얇은 금속판이 떨어졌다. 진동 암호를 기록하는 미세한 홈이 새겨져 있었다. 받아 든 비호의 얼굴에서 피가 빠져나갔다.

“이건…… 우리 도장 외곽 배관의 예비 개방 주기잖아요?”

“뭐라고?”

“서쪽 배관 세 번째 밸브, 북문 하부 압력 완충기, 지하 격벽의 첫 번째 호흡구까지 전부 맞아요. 외부에서 추측할 수 있는 게 아니에요. 정비 장부에도 안 적힌 거라서, 도장 안에서 살아본 사람도 도면을 보지 않으면 몰라요.”

“사부님.”

서란은 그 한마디로 물었다. 누가. 왜. 언제부터. 설무진이 금속판의 홈을 손가락으로 훑자 가늘게 쇠가 긁히는 소리가 났다. 그는 눈을 감았다.

“조하륜(趙河崙).”

처음 듣는 이름인데 낯설지 않았다. 쇳가루처럼 혀끝에 달라붙었다. 세 글자가 떨어지는 순간 강민의 단전이 뒤틀렸고, 가슴 안쪽의 박자가 신호통과 북쪽 바람과 멀리서 오는 진홍색 박자와 한 줄로 이어졌다.

“사부님, 그자가 누구입니까? 왜 그 이름을 듣자마자 제 몸이 반응하는 겁니까?”

설무진은 강민을 바라보았다. 스승의 눈이면서, 죄인의 눈이면서, 아이를 보내야 하는 아버지의 눈이었다. 그러나 끝내 대답하지 않았다.

“지금은 알 때가 아니다.”

“항상 그 말씀뿐입니다. 제 몸에서 일어나는 일인데, 왜 저는 늘 마지막으로 알아야 합니까?”

강민이 한 걸음 다가서자 허리에 찬 수련검의 압력계 바늘이 스스로 떨었고 검자루에서 푸른 연기가 가늘게 피어올랐다. 서란이 즉시 손목을 붙잡았다.

“강민아, 호흡.”

“괜찮아, 누나.”

“괜찮다는 말은 진단 결과가 아니라고 했지. 호흡.”

“……누나도 알고 있었어?”

서란은 대답하지 못했다. 강민은 그 침묵을 대답으로 받아들였다.

“민아…… 지금은 따질 시간이 아니다. 그들은 곧 도착한다.”

피투성이의 무겸이 힘겹게 말했을 때, 멀리서 외곽 경계종이 울렸다. 한 번, 두 번, 세 번.

“국경 침입이다.”

네 번째 종이 울렸다.

“방어선 붕괴……”

그리고 다섯 번째 종이 울렸다. 무겸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다섯 번? 그건 울릴 일이 없는 종인데.”

“성 내부의 암호 방어가 적에게 넘어갔을 때만 울리는 종이에요! 그러니까 지금 바깥에서 밀려오는 게 아니라, 이미 안쪽 열쇠를…… 쥐고 있다는 뜻이에요!”

비호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설무진이 낮게 답했다.

“알고 있다.”

지붕 위의 까마귀들이 일제히 날아올랐다. 설무진이 마당의 사범들을 돌아보았다.

“사범들은 각 회랑을 맡아라. 불씨는 모두 꺼라. 아이들 곁을 떠나지 마.”

“예, 사부님!”

“모두 안쪽으로. 초급 수련생과 부상자는 동쪽 회랑으로 대피시켜라. 서란아, 무겸이를 의공실이 아니라 지하 격리실로 옮겨라. 비호야, 네가 말한 서쪽 배관 세 번째 밸브를 수동으로 잠가라. 단, 주 배관은 터뜨리지 마. 아직은.”

“아직은요?”

“곧 필요해진다.”

비호는 더 묻지 않고 공구가방에서 황동 나사를 꺼냈다. 머리가 지나치게 무겁고 나사산 안쪽이 검게 도장된 것이었다.

“비호야, 그거 며칠 전에 ‘만약의 만약을 위한 장난감’이라던 거잖아. 위험한 거 아니야?”

“그 만약의 만약이 오늘일 줄은 몰랐죠. 배관에 박아서 문을 막을 거예요. 터뜨리는 건 최후의 수단이고요. 위험하니까 쓸모 있는 거예요.”

비호는 웃지 않았다.

“형, 나중에 혼내요. 지금은 먼저 살아요.”

그 말에 강민은 가슴이 철렁했다. 나중. 오늘 저녁 전까지만 해도 너무 당연했던 말이 강민에게는 갑자기 간절하게 들렸다.

“……너 먼저 살아라. 알았지?”

“형이 먼저요.”

“누가 먼저든 다 같이 살아야지.”

“아이들은 동쪽 회랑으로! 줄 서지 말고 손만 잡아라!”

“부엌 불 꺼! 솥뚜껑 덮고 다 나와!”

“처마 밑 약초 걷어서 처치소부터 만들어!”

“비호가 배관에 뭘 박는다. 건드리지 마!”

“무서워요, 사범님……”

“괜찮다. 눈 감고 내 소매만 잡아라.”

검술 구령을 외치던 마루가 방어선이 되고 비호가 낙서하던 배관에 폭약나사가 박히는 동안, 강민은 허리의 수련검을 잡았다.

“북문 하부 압력 완충기 터졌다!”

“지하 격벽은?”

“아직 버틴다! 저쪽 계단부터 막아!”

“저도 돕겠습니다.”

“너는 서란과 함께 지하로 내려가라.”

“싫습니다.”

“강민아, 사부님 말씀 들어.”

“누나까지 그러지 마.”

말은 생각보다 먼저 튀어나왔다. 사부의 명을 거스른 적이 거의 없는 강민이었다.

“이곳은 제 집입니다. 사부님이 지키는 곳이고, 누나와 비호가 있는 곳이고, 무겸 형이 피 흘리며 돌아온 곳입니다. 제가 왜 도망쳐야 합니까?”

설무진이 말없이 다가와 강민의 검자루 위에 손을 얹었다. 힘으로 누르려면 얼마든지 누를 수 있는 손이 지나치게 조심스러웠다.

“도망치는 것이 아니다. 살아야 다음 선택을 할 수 있다.”

“그 다음 선택이 뭔지도 모르는데요.”

“모르면 더더욱 살아야 한다. 죽으면 선택할 기회도 없다.”

강민은 이를 악물었다. 스승의 말이 옳아서 더 화가 났다. 그때 북쪽 성벽 너머에서 첫 폭발이 일어났다.

쿠우우웅―!

땅이 솟구쳤다가 내려앉았다. 외벽 배관 몇 가닥이 터지며 흰 증기가 세차게 쏟아졌다. 이어 서쪽에서 또 폭발이 일었고, 비호가 달려가 밸브를 잠갔다. 작은 몸이 증기의 반동에 휘청였지만 넘어지지 않았다.

“역류 막았어요! 하지만 오래 못 버텨요!”

탁한 안개 속에서 소리가 들렸다.

처커걱.

“배관이 식는 소리 아니야?”

“아니야. 저건…… 발소리야.”

처커걱, 치이익. 너무 일정했다. 무거운 기계가 사람의 걸음걸이를 따라 하며 다가오는 소리였다. 안개가 갈라지고 첫 번째 목인(木人)이 나타났다. 청동 가면의 눈구멍에서 진홍색 코테르(機核) 빛이 타올랐고, 가슴과 복부의 틈에서는 윤활유와 붉은 액체가 같은 관을 타고 흘렀다.

“저, 저게 뭐야……”

“물러나, 물러나!”

“사람이야, 기계야?”

“둘 다…… 인 것 같아요. 윤활유랑 피가 한 관으로 흘러요. 사람이 섞여 있어요, 저거.”

그 뒤로 둘, 셋, 넷이 더 나타났다. 사이사이로 검은 복면에 강철 의체를 두른 자객들이 낮게 몸을 숙였다. 흑영. 이름 그대로 그림자처럼 번졌지만 발밑에는 무게가 있었다.

“무겸이, 네가 살아 돌아온 것으로 이미 큰 몫을 했다. 이제 쉬어라.”

“아닙니다…… 서란아, 창을…… 창을 줘.”

“안 돼요. 방금 지혈한 자리가 터져요. 움직이면 죽습니다.”

“가만히 있어도…… 다 죽을 수 있다.”

“그러니 제가 살려서 다시 싸우게 만들겠습니다. 지금은 제 말 들으세요.”

서란의 눈이 매서워지자 무겸은 결국 창을 놓았다. 그러나 시선은 설무진의 등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설무진이 검집을 잡았다. 폭발음도 아이들의 울음도 뒤로 밀렸다. 오래 뽑지 않은 검이 검집을 스치는 소리만 선명했다. 강민은 본국검의 실제 검신을 처음 보았다.

검이 뽑혔다.

푸른빛은 한꺼번에 솟지 않았다. 얇고 맑은 선 하나가 등줄기를 따라 번지더니 검 전체가 물속에서 건져 올린 달빛처럼 빛났다. 청염(靑炎)이었다. 적들의 진홍빛과 마주치자 서로 부딪히며 떨었고, 강민의 가슴도 함께 떨었다.

“사부님! 저도―”

“뒤로.”

“사부님 검이…… 푸르게……”

“쉿! 저것들 좀 봐!”

목인들의 머리가 일제히 강민 쪽으로 돌아갔다.

“보지 마.”

설무진이 강민 앞을 가로막았다.

“사부님.”

“저것들은 네 눈을 통해 네 안을 들여다보려 한다.”

설명 없이 금지만 하는 말이었기에 강민은 오히려 그 말이 더 마음에 걸렸다. 한 목인의 가슴판이 갈라지고 작은 음성 기관이 튀어나왔다. 사람 목소리를 흉내 내는 장치가 거친 잡음을 내다가 단어를 만들었다.

“외곽 암호…… 일치.”

마당의 모두가 움직임을 멈췄다.

“봉인 반응…… 확인.”

“봉인? 무슨 봉인이야?”

강민의 속삭임에 설무진의 손등에 힘줄이 솟았다.

“회수 대상…… 도장 심부.”

강민이 자기도 모르게 뒤로 물러서자 목인의 진홍색 눈이 다시 그를 향했다.

“부가 반응…… 확인.”

“부가…… 반응? 나를 말하는 거야?”

“듣지 마, 강민아. 내 뒤로 와. 손 놓지 말고.”

서란이 강민의 팔을 붙잡았다. 무겸은 피 묻은 입술을 악물었다. 설무진은 본국검을 수평으로 들고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평생 기대어 온 익숙한 등이 그 순간 해동의 오래된 죄와 약속을 떠안은 무인의 등으로 변했다.

“서란아, 무겸이를 데리고 내려가라. 비호야, 동쪽 회랑을 열어라.”

“민아, 사부님 말씀대로 해라. 네가 다치면 사부님의 검이 흔들린다.”

“무겸 형까지……”

“사부님!”

“강민.”

설무진은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꾸짖을 때의 ‘민아’도, 다정히 부를 때의 ‘민아’도 아니었다. 그는 강민을 세상 한복판으로 내보내기 전에 마지막으로 그 이름을 불렀다.

“너만은 살아서 빠져나가라.”

강민은 대답하지 못했다. 대답하는 순간 무엇인가가 끝날 것 같았다. 그때 목인의 음성 기관이 다시 열렸다. 증기와 피 냄새가 섞인 안개 사이로 기계가 마지막 문장을 내뱉었다.

“회수 순서 변경.”

흑영들이 동시에 몸을 낮췄다. 목인들의 진홍색 눈이 설무진의 어깨 너머, 강민의 가슴에 정확히 맞춰졌다.

“설무진 보다 먼저―소년을 봉인하라.”

— 話 4 終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