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궁 결사 방어전·2경계
海東曆: 201년 10월 5일
· 시점: 강민
황동 기계 새는 날개가 아니라 피로 날아왔다.
동쪽으로 향한 지 사흘째, 일행이 폐역의 보일러실에서 쉬고 있을 때였다. 새는 서쪽 창문을 깨고 들어와 바닥을 두 번 튕긴 뒤 강민의 발 앞에 떨어졌다.
“백도윤 전하의 전령조야.” 강민이 새를 들어 올렸다. 왼쪽 날개가 절반쯤 뜯겨 있었고, 황동판 사이에 검붉은 피가 굳어 있었다. 목 안에서 끊어진 태엽 소리가 났다.
“줘 봐, 형.” 비호가 공구를 꺼내 배를 열었다. “종이띠가 감겨 있어.”
‘궁이 무너진다. 오지 마라.’
“열 글자야. 전하 필체고…… 마지막 획이 피에 번졌어.” 강민이 읽었다.
아무도 회군 여부를 묻지 않았다. 무겸이 먼저 창을 들었고, 서란은 약재 가방을 다시 묶었다. 고륜은 말의 안장을 확인했다. 청우는 전령조의 머리를 손바닥으로 덮고 잠깐 눈을 감았다.
“전하가 오지 말라 했어.” 비호가 말했다.
강민은 종이를 접었다. “그래서 가야 해.”
“여기서 황도까지 68km다.” 고륜이 말고삐를 당겼다. “쉬지 않고 달려도 반나절이 넘는다. 말을 번갈아 타자.”
길가의 역참 세 곳이 이미 불타 있었다. 황도로 향하던 상단은 반대 방향으로 쏟아져 나왔고, 수레에는 짐보다 사람이 많았다.
“궁이 불탔대요!”
“황제 폐하가 돌아가셨다더라!”
“무슨 소리야, 태사령께서 나라를 구하러 군을 일으키신 거지!”
“소문이 칼보다 빠르네.” 서란이 이를 물었다. “진실보다 먼저 사람을 갈라놓고.”
황도 외곽에 도착했을 때 해가 기울고 있었다. 청염 광탑 셋 가운데 하나가 꺼져 있었고, 나머지 둘은 푸른 불 대신 붉은 연기를 뿜었다.
“성문 위 좀 봐.” 비호가 가리켰다. “황룡기랑 반백기가 같이 걸려 있어.”
“같은 궁을 지키는 깃발이 서로한테 칼을 세운 꼴이다.” 무겸이 말했다. “정문은 막혔군.”
“서쪽 배수로로 간다.” 고륜이 앞장섰다. “50년 전 호위무사 시절에 나만 쓰던 길이다.”
수로 안에는 이미 시체가 널려 있었다. 돌아선 근위병과 끝까지 황자를 지킨 병사가 같은 갑옷을 입고 쓰러져 있었다.
“얼굴을 보기 전에는 누가 어느 편인지도 모르겠네.” 비호가 중얼거렸다.
청우가 무릎을 꿇어 한 병사의 맥을 짚었다. “살아 있습니다.”
서란이 곧장 옆에 앉았다. “갈비뼈 두 개, 폐에 피가 찼어. 비호야, 관.”
“지금 치료할 시간이—” 강민이 말하다 멈췄다.
서란이 그를 보았다. “살아 있는 사람을 두고 가면 우리가 왜 돌아온 건데?”
강민은 대답하지 못했다. 백유강의 다정에서 들은 효율이라는 말이 머리를 스쳤다.
“오 분.” 강민이 말했다. “오 분 안에 움직일 수 있게 해 줘.”
“해 볼게.” 서란이 고개를 끄덕였다. 비호가 얇은 관을 꺼냈고, 청우가 병사의 몸을 받쳤다. 무겸과 고륜은 수로 양쪽을 지켰다.
“숨 쉰다. 스스로 쉬어.” 정확히 오 분 뒤 서란이 손을 뗐다.
“마른 곳으로 옮기겠습니다.” 청우가 병사를 벽 쪽으로 옮겼다. 시간을 잃은 선택이었지만, 강민은 후회하지 않았다.
수로 끝을 열자 내궁의 소리가 한꺼번에 들이쳤다. 금속이 깨지는 소리, 증기총의 폭발음, 사람들의 고함, 자동병의 규칙적인 발굽.
“반쯤 함락됐다.” 고륜이 낮게 말했다.
부서진 가마와 책장, 청동 화로를 쌓은 방벽 뒤에서 근위대 백여 명이 버티고 있었다. 그 앞을 진홍색 안광의 목인(木人)들이 메웠다. 나무 골격에 철판을 덧댄 자동병은 쓰러져도 뒤의 병력이 밟고 넘어왔다. 백도윤은 방벽 중앙에 있었다. 소매는 피로 젖었고, 왼손에는 짧은 검이, 오른쪽 어깨에는 화살이 박혀 있었다.
강민이 수로에서 뛰쳐나오자 황자의 얼굴이 굳었다.
“왜 왔소!”
“전하 글씨가 너무 못생겨서 무슨 뜻인지 몰랐습니다.”
“지금 농담할 때요?”
“살아 계시니 됐습니다.”
백도윤이 욕인지 웃음인지 모를 숨을 뱉었다.
목인 다섯이 방벽을 넘어왔다. 무겸의 창이 첫 번째의 가슴을 꿰뚫고 뒤의 둘까지 밀어냈다. 고륜은 반대쪽 회랑으로 달려갔다.
“50년을 지킨 궁이 오늘 무너지는 꼴은 못 본다!”
그 외침에 남은 근위병들이 함성을 올렸다.
“전하, 방어선이 어떻게 나뉘어 있습니까?” 강민이 높은 난간에 오르며 물었다.
“북쪽 회랑은 근위대, 남쪽 약방은 시녀와 잡역부들이 부상자를 옮기며 버티고 있소. 중앙은 나와 호위들이고.” 백도윤이 숨을 몰아쉬었다. “문제는 목인들이 벽을 부수면서 연락이 끊겼다는 거요.”
“북쪽 등불이 두 번 꺼졌다 켜졌습니다. 지원 요청이에요. 남쪽엔 붉은 연기, 약방에 불이 붙었고요. 중앙 앞엔 목인이 제일 많이 몰렸습니다.”
모든 곳을 한꺼번에 구할 수는 없었다. 백유강이라면 가장 많은 사람을 살릴 구역을 계산해 약방을 버리거나 북쪽 근위대를 희생했을 것이다. 강민은 그런 계산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었다. 다만 계산에서 빠지는 사람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
“비호, 신호선을 만들 수 있어?”
“어떻게?”
“부서진 등롱을 연결해서 세 구역이 서로 보게.”
소년은 천장을 올려다봤다. “저 위 장식용 청동관, 원래 향 연기 보내는 관이지? 연기를 쓰면 돼. 색을 다르게. 초아야, 약재 주머니에서 황색, 흰색, 검은색 나는 가루 찾아!”
“찾았어요!” 민초아가 작은 통에 가루를 나눴다. 청동관에 연결하자 세 구역에서 같은 색을 볼 수 있었다.
“흰색은 버팀, 황색은 지원, 검은색은 후퇴!” 비호가 소리쳤다.
“흰색은 버팀, 황색은 지원, 검은색은 후퇴예요!” 민초아가 각 구역으로 달려가는 병사들에게 규칙을 반복했다. 아이의 목소리는 작았지만 또렷했다. 사람들 앞에서 말하는 것을 두려워하면서도 멈추지 않았다.
북쪽에서 황색 연기가 올라왔다. 고륜이 창을 들었다. “내가 간다.”
“혼자서는 안 됩니다.” 강민이 말했다.
“중앙이 더 급하다.”
무겸이 고륜 옆에 섰다. “북쪽 입구까지만 같이 간다.”
두 창수는 목인 사이를 뚫고 달렸다. 무겸의 창이 넓게 길을 열고, 고륜의 창은 빈틈을 정확히 찔렀다. 그들이 지나간 자리에는 부서진 관절과 꺼진 동력통이 남았다.
“약방은 불보다 증기통이 더 위험합니다.” 청우가 남쪽을 보았다. “열이 오르면 내궁 절반이 날아갈 겁니다.”
“누나는 부상자 곁을 못 떠나. 대사님, 저랑 가시죠.”
약방 문 앞에는 반백파 근위병 여덟이 길을 막고 있었다. 셋은 비밀 서고 잠입 때 얼굴을 본 자들이었다. 같은 궁에서 근무하던 사람들이었다.
“길을 비켜.” 강민이 말했다.
선두 병사가 검을 들었다. “태사령께서 황궁을 정화하신다.”
“안에는 다친 사람이 있다.”
“황자의 편에 선 자들이다.”
“불은 편을 가리지 않는다.”
병사는 대답 대신 돌진했다. 강민은 첫 칼을 검집으로 받아 옆으로 흘리고, 손목을 잡아 벽에 밀었다. 두 번째 병사의 검끝이 목을 노렸지만 청우의 철장이 끼어들었다. 노승은 검을 위로 들어 올린 뒤 손바닥으로 가슴을 밀었다. 병사가 약방 문을 부수며 안쪽으로 넘어졌다.
“불을 끄는 동안만이라도 싸움을 멈추십시오.” 청우가 말했다.
“배신자와 협상하지 않는다!”
“그럼 제압하겠습니다.”
철장이 회전했다. 첫 타격은 무릎을 꺾고, 두 번째는 어깨의 힘을 뺐다. 세 번째는 검자루를 쳐 무기를 날렸다. 강민은 네 명을 동시에 상대했다. 좁은 문 앞이라 검날 대신 칼집과 손잡이로 관절을 눌렀다. 한 병사가 증기총을 꺼내자 발로 손목을 차 총구를 천장으로 돌렸다. 탄환이 청동관을 뚫고 황색 연기를 쏟아 냈다.
“지원 신호가 너무 많아졌네요.” 청우가 말했다.
“대사님, 지금 웃으신 겁니까?”
“아닙니다.”
약방 안은 불이 천장까지 번져 있었다. 시녀 셋이 쓰러진 약사를 끌어내려 했지만 무거운 선반이 길을 막았다.
“제가 들겠습니다. 대사님, 빼내 주세요!” 강민이 선반을 들어 올렸고, 청우가 사람들을 빼냈다.
“압력계가 위험선 가까이 올라왔습니다. 밸브는 열에 휘어 꿈쩍도 안 하고요.” 강민이 손을 내밀었다가 멈췄다. “여기서 청염을 더하면 터지겠네.”
“물을 부으면 통이 갈라집니다.” 청우가 말했다.
“그럼 압력을 밖으로 빼야 합니다. 저 약재 관이 비호가 만든 신호관에 이어져 있어요.”
그는 본국검으로 관의 끝을 잘라 증기통 배기구에 끼웠다. 뜨거운 증기가 황궁 지붕 위로 빠져나갔다. 흰 연기와 약 냄새가 내궁 전체에 퍼졌다.
“흰 연기다! 약방이 버틴다!” 북쪽과 중앙에서 함성이 들렸다.
돌아오는 길, 강민은 쓰러진 반백파 병사 하나가 기어가는 것을 보았다. 병사는 불길 속 약사를 끌어내고 있었다. 조금 전까지 칼을 겨눴던 자였다.
“왜 돕지?” 강민이 물었다.
병사가 기침하며 답했다. “저 사람은… 내 딸을 살렸다.”
명령과 사람 사이의 틈이 거기 있었다. 강민은 약사의 반대편 팔을 잡아 함께 끌었다.
“밖에 나가면 무기 내려놔.”
병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중앙으로 돌아왔을 때 검은 연기가 올라왔다. 후퇴 신호였다. 그러나 백도윤은 내궁 문을 닫지 않고 있었다. 바깥 뜰에 남은 근위병과 시녀들이 아직 들어오지 못했기 때문이다.
“전하, 중앙을 10m 뒤로 물리십시오!” 강민이 외쳤다. “문은 열어 둔 채 방벽을 안쪽으로 옮깁니다!”
“목인 동체 끌어다 새 방벽 만들게!” 비호가 달려갔다.
“기둥은 우리가 세우마.” 북쪽에서 돌아온 무겸과 고륜이 어깨를 댔다.
“걷지 못하는 분들께는 번호표 달아. 먼저 치료할 순서야.” 서란이 지시했고, 청우는 퇴로를 따라 쓰러진 사람을 옮겼다.
그 과정에서 다섯 명이 더 들어왔다. 반백파 띠를 두른 병사 둘도 섞여 있었다. 호위가 그들을 베려 하자 황자가 막았다.
“무기를 버렸으면 안으로 들여라.”
“전하, 배신자입니다.”
“지금 문밖에서 죽게 두면 내일 다시 숙부님의 병사가 된다.”
청우가 했던 가르침과 같은 말이었다. 황자는 아직 왕이 아니었지만, 선택은 이미 왕의 무게를 갖고 있었다. 강민은 이 궁을 지키러 돌아오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세 구역 다 흰색이야!” 비호가 외쳤다. “다들 버티고 있어!”
그때 중앙 뜰의 대문이 통째로 안쪽으로 날아왔다. 거대한 목인의 주먹이 문 뒤에서 나타났다.
강민은 방벽 위로 올라가 첫 목인의 목을 베고, 두 번째의 어깨 관절에 검을 박아 방향을 틀었다. 쓰러지는 동체를 발로 밀어 뒤따르던 셋의 발을 묶었다. 무겸의 창이 그 위를 지나가며 동력통을 연달아 깨뜨렸다.
“왼쪽 열립니다!” 청우가 외쳤다.
흰 띠를 팔에 묶은 근위병 스무 명이 측면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들은 망설임 없이 옛 동료에게 칼을 휘둘렀다. 청우가 철장을 들고 길을 막았다.
“칼을 내려놓으십시오.”
“비켜라, 중놈!”
첫 병사가 찔러 왔다. 청우는 철장으로 검면을 눌러 바닥에 박고, 손바닥으로 가슴을 밀었다. 병사가 뒤의 둘과 함께 넘어졌다. 두 번째가 옆에서 베어 오자 몸을 틀어 피하고 팔꿈치 아래를 두드렸다. 손이 저리며 검이 떨어졌다.
“어제의 아군을 베면 내일의 아군이 오지 않습니다.” 노승은 끝까지 죽이지 않았다. 그러나 누구도 그를 지나가지 못했다.
“초아야, 물 가져와! 이름 받아 적는 것도 잊지 말고!” 서란은 방벽 뒤 임시 의공소에서 부상자를 돌보다가, 전투가 가까워질 때마다 쌍검을 들어 목인의 관절 사이를 파고들었다.
“다 적고 있어요!” 민초아는 떨면서도 손을 멈추지 않았다.
비호는 무너진 목인 둘을 그 자리에서 분해해 다리 관절은 지지대로, 가슴판은 이동 방패로 바꿨다. “형! 오른쪽 회랑 폭을 줄일게!”
소년이 폭약나사 셋을 기둥 아래 박았다. 폭발이 기둥을 무너뜨려 통로 절반을 막았다. 목인 군세가 두 줄로 좁아졌다.
“잘했다!” 무겸이 외쳤다.
비호가 씩 웃는 순간 쇠침 하나가 날아왔다. 강민이 검으로 쳐서 막았다. 침은 비호의 귀 옆을 지나 벽에 박혔다.
“웃는 건 끝나고 해.”
“형도 지금 웃었거든?”
강민은 대답할 틈이 없었다. 회랑 끝에서 키 4m가 넘는 지휘형 목인이 나타났다. 양팔에 회전도가 달렸고, 가슴에는 반백파 인장이 찍힌 푸른 동력로가 박혀 있었다. 한 걸음마다 바닥 석판이 깨졌다.
무겸이 정면으로 맞섰다. 창끝이 무릎 관절을 찔렀지만 장갑을 뚫지 못했다. 회전도가 옆으로 휘둘러졌다. 무겸은 창대를 세워 막았지만 3m 넘게 밀렸고, 찢어진 손바닥의 피가 창대를 적셨다.
“무겸 형!”
“오지 마. 황자를 지켜!”
그러나 지휘형의 목표도 백도윤이었다. 목인은 무겸을 밀어내고 방벽으로 돌진했다. 근위병 셋이 막으려다 회전도에 무기가 부서졌다. 강민은 지휘형과 황자 사이에 섰다.
청염기관이 뜨거워졌다. 1경계의 힘을 끌어올리자 본국검의 실린더가 돌아갔다. 첫 베기는 가슴 장갑에 흠집만 남겼다. 지휘형의 주먹이 내려왔고, 옆으로 굴러 피했지만 바닥 파편이 어깨를 때렸다. 두 번째 회전도를 검으로 받는 순간 손목에서 뼈가 울렸다.
‘청염이 모자란 게 아니다. 힘이 검 안에 갇혀 있어. 날 너머로 보내야 한다.’
기운을 검에 싣는 것과 검 밖으로 뻗는 것은 달랐다. 밖으로 나간 청염은 통제하지 못하면 사람까지 태울 수 있었다. 그래서 서란은 아직 쓰지 말라고 했다. 뒤에서 화살 박힌 어깨로 검을 든 백도윤이 숨을 몰아쉬었다. 황자 곁에는 부상자들과 민초아, 비호가 있었다.
“형, 뒤에 둘 더 들어와!” 비호가 외쳤다.
같은 크기의 목인 둘이 회랑으로 들어왔다. 셋이 동시에 달려왔다. 강민은 검을 두 손으로 잡았다.
검령성, 설무진, 백유강의 따뜻한 차, 지금 바닥에 쓰러진 병사들. 분노가 올라왔다. 그는 분노를 누르지 않고 방향을 주었다. 사람에게 가지 못하게 하고, 검끝으로 밀었다. 청염기관의 밸브가 한꺼번에 열리는 감각이 왔다.
“강민아, 안 돼!” 서란이 멀리서 외쳤다.
이미 늦었다. 강민이 검을 가로로 베었다.
푸른 파동이 검날 너머로 뻗었다. 불꽃이라기보다 압축된 열과 기운의 칼날이었다. 첫 지휘형의 가슴 장갑이 갈라지고, 뒤의 두 목인 동력부까지 같은 선으로 베였다. 세 동체가 두 걸음 더 달린 뒤 동시에 멈췄다. 잠깐의 정적 뒤, 가슴 안쪽 동력통이 터지며 푸른 증기가 회랑 천장까지 솟았다.
강민의 무릎이 꺾였다. 시야가 하얗게 바랬고, 귀에서는 물속 같은 소리만 들렸다. 밖으로 빠져나간 열이 거꾸로 몰려왔다. 청염기관이 제 주인을 태우기 시작했다.
서란이 달려와 쓰러지는 그를 붙잡았다.
“미쳤어? 내가 쓰지 말랬잖아!”
“셋이… 한꺼번에 와서.”
“말하지 마.” 그녀의 손이 등 뒤 혈을 찾았다. 침 세 자루가 거의 동시에 들어갔다. 황금 기공이 차가운 물처럼 기맥을 따라 퍼졌지만 열이 너무 빨랐다. 침 손잡이가 금세 뜨거워졌다.
“누나, 이거!” 비호가 냉각통을 들고 뛰어왔다.
“왼쪽 가슴 말고 등으로.”
차가운 증기가 강민의 등에 뿜어졌다. 피부가 얼얼했지만 청염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강민이 쓰러진 것을 본 목인 군세가 다시 밀려왔다. 무겸은 찢어진 손으로 창을 잡고 방벽 위에 섰다. 고륜도 반대편 회랑에서 피투성이로 돌아왔다.
“강민이 일어날 때까지 막는다.” 무겸이 말했다.
“그 뒤에도 막아야지.” 고륜이 답했다. 두 창이 나란히 들렸다.
백도윤은 어깨의 화살을 부러뜨리고 남은 근위대를 모았다. “내궁 문을 닫지 마라! 아직 밖에 우리 병사들이 있다!”
한 장교가 외쳤다. “전하, 문을 닫지 않으면 모두 죽습니다!”
“닫으면 밖의 사람들이 죽는다!”
“제국을 위해 희생해야 합니다!”
백도윤의 얼굴이 굳었다. “사람을 버려 지키는 제국은 숙부님의 제국이다. 내 것은 아니다.”
“가자! 부상자부터 끌어와!” 몇몇 병사가 다시 문 밖으로 뛰어나갔다.
강민은 흐릿한 시야로 그 광경을 보았다. 느리고 위험하며 손실이 큰 선택이었다. 그러나 그 선택 때문에 방벽 뒤의 사람들은 끝까지 도망치지 않았다. 청염이 조금씩 가라앉았다.
강민은 서란의 팔을 잡았다. “일어날 수 있어.”
“못 일어나.”
“누나.”
“한 번만 더 힘쓰면 심장 멎어.”
“그럼 한 번만 쓸게.”
서란이 욕을 삼켰다. 눈에 물기가 맺혔지만 손은 흔들리지 않았다. “한 번. 그리고 내 말대로 해.”
“응.”
그녀는 침 하나를 더 깊이 넣었다. 막혀 있던 기맥 한 곳이 열리며 청염이 좁은 길로 정리되었다. 강민은 검을 짚고 일어났다.
이번에는 검기를 크게 내지 않았다. 청염을 얇게 검날 둘레에 감았다. 첫 목인의 목을 베고, 회전하는 힘으로 둘째의 무릎을 끊었다.
“셋째는 내가 밀어 주마!” 무겸이 창으로 셋째를 밀자 강민이 동력부를 찔렀다.
“왼쪽은 막았다!” 고륜이 외쳤고, 청우는 오른쪽의 근위병들을 비살로 제압했다.
“숨 세고 있어. 빨라지면 부를 거야.” 서란이 뒤에서 말했다. “강민아, 너무 빨라!”
“알았어!”
비호가 만든 좁은 길 덕분에 목인은 한 번에 둘씩만 들어왔다. 백도윤은 근위대를 이끌고 부상자를 빼냈고, 민초아는 쓰러진 사람이 어느 편인지 가리지 않고 이름을 기록했다. 한 시간 가까운 난전 끝에 마지막 목인이 쓰러졌다.
그러나 승리는 아니었다. 궁 바깥에서 나팔이 울렸다.
“물러난다. 너무 질서정연해.” 고륜이 눈을 좁혔다. “패해서 도망치는 걸음이 아니다.”
회랑 끝의 붉은 연기 사이로 검은 가마가 나타났다. 백유강이 발을 걷어 올린 채 앉아 있었다. 태사령의 눈이 수백 미터 너머에서 강민의 검, 갈라진 지휘형 셋, 서란의 침, 비호의 냉각통을 차례로 훑었다. 확인의 시선이었다. 그는 손을 들어 후퇴 명령을 내렸고, 가마가 돌아섰다.
강민이 쫓으려 하자 다리가 풀렸다. 서란이 허리를 붙잡았다.
“끝났어.”
“아니야. 저 사람은 원하는 걸 보고 갔어.”
백도윤이 다가왔다. “무엇을?”
“제가 2경계에 오른 것.”
황자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쿠데타는 막았지만 황도 절반은 이미 숙부님 손에 넘어갔소. 관청 셋이 반백파를 지지했고, 외성 병영 두 곳이 문을 닫았지. 내궁만 지켰을 뿐 제국은 갈라졌소.”
서란은 강민을 기둥 아래 눕혔다. 냉각통 두 개를 모두 비우고도 열이 남았다. 비호는 망가진 압력관을 붙잡고 울음을 참았다.
“내가 더 큰 걸 만들었어야 했는데.”
“네 잘못 아니야.” 강민이 간신히 말했다.
“형은 맨날 그 말만 해.”
“맞는 말이니까.”
강민의 눈이 감기려 했다. 서란이 뺨을 쳤다.
“자지 마.”
“피곤해.”
“지금 자면 안 돼.”
“누나가 있잖아.”
그 말 뒤로 의식이 끊겼다.
방어전은 끝나지 않았다. 성벽 바깥에서는 흩어진 반란병들이 소규모로 문을 두드렸고, 내궁 안에서는 매수된 관리들이 기록고에 불을 놓으려 했다. 백도윤은 갑옷을 벗지 못한 채 두 곳을 오갔다.
“불을 끄되 문서는 먼저 꺼내라. 반란군의 가족은 건드리지 마라. 항복한 자의 무기는 받아도 목숨은 빼앗지 않는다.”
“전하, 오늘 동료를 잃은 자들이 많습니다.” 지친 근위병이 불만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그래서 더 그렇게 해야 한다.” 황자는 같은 명령을 세 번 반복했다. “적과 같은 방식으로 이기면 남는 건 왕좌뿐이고 나라는 사라진다. 그건 저 사람에게서 배웠다.”
서란은 임시 의공소를 정전 회랑까지 넓혔다. 바닥에는 황실군과 반란군이 구분 없이 누워 있었다. 약재가 모자라자 그녀는 궁중 장식용 비단을 찢어 붕대로 썼다.
“그건 값비싼 물건입니다!” 내관이 막아섰다.
서란이 피 묻은 손으로 그의 멱살을 잡았다. “사람보다 비싼 천이면 네 몸에 감아 줄까?”
내관은 즉시 창고 열쇠를 내놓았다.
비호는 무너진 목인의 관절에서 쓸 만한 압력관을 뽑았다. 냉각통은 두 개 모두 터졌고, 강민의 등에는 화상 자국이 길게 남았다. 소년은 망치질을 하면서도 자꾸 침상 쪽을 봤다. 망치가 손가락을 때리자 욕 대신 울음이 튀어나왔다.
무겸이 옆에 앉아 손을 잡아 줬다. “울어도 된다.”
“안 울었어.”
“그래.”
“그냥 눈에 기름 들어간 거야.”
“알겠다.” 무겸은 더 묻지 않고 휘어진 관을 무릎에 대고 펴 주었다. 창을 다루는 큰 손이 작은 나사를 잡기에는 서툴렀지만, 비호는 밀어내지 않았다.
“어르신, 이름 모르는 병사는 ‘무명’이라고 적으시면 됩니다.” 기록을 돕던 근위병이 말했다.
“아니다.” 고륜은 사망자 명단을 직접 적으며 갑옷 안쪽의 표식과 발견 장소를 남겼다. “훗날 누가 찾아와 이 한 줄로 사람을 알아볼 수 있어야지. 젊을 땐 전사자를 숫자로만 보고했다. 숫자가 편할수록 명령이 쉬워지고, 명령이 쉬울수록 더 많이 죽더구나.”
새벽 두 시가 지나자 칼소리가 겨우 잦아들었다. 백도윤은 강민의 침상 곁으로 왔다. 잠든 얼굴은 열 때문에 붉었고, 콧등의 흉터는 창백했다.
“이번에도 당신이 나를 살렸구나.”
서란은 침을 갈며 대답했다. “전하만 살린 게 아니에요. 그러니까 빚으로 묶지 마세요.”
“알고 있소.”
“정말 아시면, 깨어났을 때 또 황궁에 남으라고 붙잡지 마세요.”
황자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마침내 그는 강민 곁에 작은 옥패 하나를 놓았다. 황실 통행패였지만 백룡 문장은 칼로 긁어 지워져 있었다.
“이제 내 허락이 아니라 당신들의 선택으로 쓰시오.”
그가 돌아서던 순간, 포로로 잡힌 지휘형 목인 하나가 갑자기 움직였다. 머리와 팔다리가 부서진 상태였지만 가슴판이 스스로 열렸다. 안쪽에는 동력로 대신 작은 황동 종이 들어 있었다.
종이 한 번 울렸다. 궁 지하 깊은 곳에서 같은 울림이 답했다. 두 번.
“바닥 먼지가 원형으로 떨려.” 비호가 고개를 들었다.
“봉인항의 호출음이다.” 고륜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기체로 기어가려는 비호의 어깨를 그가 붙잡았다. “먼저 함정을 의심해라.”
비호는 입술을 깨물고 긴 집게를 가져왔다. “종 둘레에 침이 감겨 있어. 판을 맨손으로 뽑으면 독침이 손목을 뚫는 구조야. 나사 세 개를 거꾸로 풀면…… 조하륜이라면 글 한 줄 보내는 데도 사람 하나는 죽이려고 해.”
“죽음보다 중요한 것은 공포를 남기는 일일 것입니다.” 청우가 부서진 목인의 머리를 돌려 놓았다. “다음 판을 발견한 사람이 손을 뻗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지요.”
비호는 집게로 금속판을 천천히 끌어냈다. 독침이 허공을 찔렀다. 소년은 떨리는 손을 감추지 않고 마지막 나사를 주머니에 넣었다.
“뭐라고 쓰여 있니?” 서란이 물었다.
“동쪽 산맥 좌표랑 한 문장.” 비호가 읽었다. “‘청염 2경계 확인. 천부항 개문 절차를 시작한다.’”
세 번째 울림은 앞선 두 번보다 길었다. 정전 천장의 먼지가 비처럼 떨어지고, 황궁 우물의 수면이 동쪽으로 기울었다. 궁 밖의 청염 광탑 세 곳도 같은 순간 꺼졌다가 다시 켜졌다.
서란은 잠든 강민의 손을 놓지 않았다. 종소리가 그의 가슴 박동과 겹치자 냉각침 끝에서 푸른 불꽃이 맺혔다.
“왕좌를 지키는 싸움과 문을 여는 싸움이 이제 서로 다른 곳에서 동시에 시작되는군.” 백도윤이 열린 창 너머 동쪽을 바라보았다. “당신들이 떠난 뒤 이 궁이 해 줄 일은 시간을 버는 것뿐이겠소.”
이제 그들이 천부항을 찾는 것이 아니었다. 천부항이 그들을 부르고 있었다.
그리고 이백 년 동안 멎어 있던 황궁 지하의 종이 세 번째로 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