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점 · 강민 — 균열·낙인 단계

봉인된 심장의 좌표

第1部 · 話 38 · 검령성 · published

海東曆: 201년 10월 22일

· 시점: 강민

첫눈이 발자국부터 삼켰다.

폐사를 떠난 지 이틀째 되는 아침, 산길은 밤새 내린 눈으로 사라져 있었다. 나무와 바위의 경계가 희게 뭉개졌고, 바람이 불 때마다 능선의 눈가루가 연기처럼 흘렀다.

“큰길은 버리고 동쪽 산맥의 옛 순례로로 간다.” 고륜이 지도를 접었다. “지도상으론 46km지만 무너진 길과 우회로 때문에 두 배는 걸어야 할 거다.”

강민은 선두에서 눈을 밟았다. 발목까지 빠지는 곳이 많아 속도가 나지 않았다. 가슴에는 비호가 만든 새 냉각통의 관이 얇게 연결돼 있었다. 걸을 때마다 등 뒤에서 물이 출렁였다.

“어때?” 비호가 뒤에서 물었다.

“등에 작은 우물 하나 지고 가는 기분.”

“효과는?”

“차가워.”

“그럼 성공이네.”

“관이 갈비뼈를 찔러.”

“그건 형 몸이 이상한 거야.”

서란이 비호의 귀를 잡아당겼다. “환자 탓하지 마.”

“누나가 만든 고정띠가 느슨한 건데.”

“다시 말해 봐.”

“형 몸이 아주 훌륭합니다.”

민초아가 피식 웃었다. 웃음이 산바람에 흩어졌다.

고륜은 가장 뒤에서 능선에 오를 때마다 눈을 감고 코를 들었다.

“사람 땀, 말 기름, 증기 연료는 찬 공기에서 오래 남는다.” 그가 걸음을 멈췄다. “말 기름 냄새다. 저 골짜기로 들어가지 마라.”

“아무것도 안 보이는데요.” 초아가 고개를 갸웃했다.

“위를 봐라. 통나무 열여섯 개가 눈 아래 숨어 있다. 사람이 지나가면 밧줄을 끊어 굴려 보내는 덫이다.”

고륜은 덫을 해체하지 않았다. 대신 통나무 아래에 작은 나무 조각을 받쳐 두었다.

“왜 완전히 끊지 않습니까?” 강민이 물었다.

“끊으면 우리가 알아챈 것을 안다. 그대로 두면 저들은 우리가 지나간 줄 알고 기다린다. 뒤따르던 놈이 무심코 밧줄을 당겨도 바로 굴러가진 않을 거다.”

“나무 조각이 빠지면요?”

“그 전에 우리는 멀리 가야지.”

적을 죽이지 않으면서도 시간을 훔치는 방식이었다. 청우가 그 선택을 보고 조용히 합장했다.

두 번째 매복은 사람보다 기계가 먼저 발견했다. 비호의 냉각통이 갑자기 낮게 울렸다.

“관 속 물이 한쪽으로만 떨려. 근처에 같은 진동수의 감응 장치가 있어.” 소년은 통을 내려놓고 바늘을 눈 위에 세웠다. “북쪽 바위벽이다. 저기, 사람 눈처럼 생긴 황동판. 지나가는 사람 청염 반응을 읽어서 멀리 신호 보내는 거야. 부수면 들킬 거고.”

민초아가 물었다. “그럼 어떻게 해?”

“다른 심장을 보여 주면 돼.” 비호는 폐사에서 가져온 낡은 기핵 조각을 냉각통에 넣고 청염 잔류 열을 흘렸다. 황동판의 눈이 푸르게 켜졌다. 그는 조각을 작은 썰매에 묶어 북쪽 경사로로 밀었다. “이제 저게 형인 줄 알 거야. 추격대가 북쪽으로 간다.”

“네가 만든 가짜 심장인가.” 강민이 말했다.

“형보다 말 잘 듣는 심장.”

“한 번 더 말하면 냉각통 내가 든다.”

“그건 벌이 아니라 도움인데?”

서란이 둘 사이에 끼었다. “둘 다 힘 남아도나 봐. 짐 하나씩 더 줄까?”

첫날 밤에는 눈보라 때문에 4km밖에 가지 못했다. 일행은 바위 아래의 얕은 굴에서 몸을 붙였다.

“불은 작은 화로 하나만.” 고륜이 일렀다. “경계는 두 시간씩 돌아가며 선다.”

“입구는 내가 막지.” 무겸이 망토를 걸어 바람을 막았다.

강민이 냉각통을 벗자 등에 눌린 자국이 붉게 남았다. 서란이 연고를 바르며 말했다. “통 무게를 줄여야 해.”

비호가 즉시 반박했다. “물을 줄이면 열을 못 잡아.”

“물통 위치를 아래로 옮기면 어깨 부담이 줄어.”

“그러면 달릴 때 다리를 쳐.”

“내가 조금 더 강해지면—” 강민이 끼어들었다.

“힘으로 해결할 생각 하지 마.” 둘이 동시에 말했다.

강민은 입을 다물었다. 민초아가 웃음을 참다가 담요 속에서 어깨를 떨었다.

“그럼 물통을 둘로 나눠서 허리 양쪽에 달자.” 비호가 손가락을 튕겼다.

“가슴 관은 부드러운 가죽으로 감쌀게.” 서란이 덧붙였다. 끈을 풀고 다시 매는 데 한 시간이 걸렸지만, 다음 날 강민의 걸음은 훨씬 편해졌다.

“이래서 사람 말을 들어야 해.” 서란이 말했다.

비호가 덧붙였다. “기계 말도.”

“너는 기계가 아니잖아.”

“기계 대표.”

두 번째 날 오전, 일행은 무너진 철제 현수교를 만났다. 남은 줄 하나가 바람에 흔들렸고, 아래에는 얼지 않은 검은 물이 흘렀다.

“협곡 폭이 25m야. 돌아가면 하루 더 걸려.” 비호가 재었다.

무겸이 줄을 당겨 보았다. “사람 한 명씩은 버틴다.”

“초아부터 보낸다.” 강민이 말했다.

소녀의 얼굴이 굳었다. “저 안 무서워요.”

“안 무섭다고 안 했어. 가벼운 사람부터 가는 거야.”

“비호도 가볍잖아.”

“내가 더 무거워.” 비호가 가슴을 폈다.

초아가 위아래를 훑었다. “어디가?”

서란이 둘의 머리를 한 번씩 눌렀다.

무겸이 쇠줄을 건너편 기둥에 걸려고 창을 던졌다. 첫 시도는 바람에 밀렸고, 두 번째에 창끝이 철고리에 박혔다. 비호가 줄을 당겨 임시 손잡이를 만들었다. 청우가 초아의 허리에 보조줄을 묶었다.

“아래를 보지 않으셔도 됩니다.”

“존댓말 들으니까 더 무서워요.”

“죄송합니다.”

초아는 이를 악물고 줄을 탔다. 중간에서 바람이 불어 몸이 크게 흔들렸다.

“당긴다!” 반대편의 고륜이 줄을 당겼고, 강민이 뒤에서 보조줄을 잡았다. 소녀는 끝까지 비명을 지르지 않았지만 도착하자마자 무릎이 풀렸다.

비호가 뒤따라가 옆에 앉았다. “나도 조금 무서웠어.”

“조금?”

“많이.”

초아는 그제야 숨을 길게 내쉬었다.

마지막으로 무겸이 줄에 올랐다. 큰 몸과 창 무게 때문에 철기둥이 삐걱거렸다. 중간쯤 갔을 때 절벽 위에서 쇠침이 날아왔다.

“정찰병이다! 위!” 강민이 검을 뽑아 침을 쳐 냈다. 고륜은 창을 들 수 없는 무겸을 대신해 바위 위로 투창을 던졌다. 창은 사람을 맞히지 않고 바로 앞 바위에 박혔다. 놀란 정찰병이 물러나는 사이 무겸이 건너왔다.

“왜 맞히지 않았습니까?” 초아가 물었다.

고륜은 창을 회수하며 말했다. “저 사람 하나를 잡으려다 다리 위 사람을 떨어뜨릴 수 있었다. 오늘의 목적은 싸움이 아니다.”

강민은 목표를 잊지 않는 힘이 무공만큼 중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두 번째 밤, 일행은 천장이 절반 무너진 산악 관측소에서 쉬었다. 안쪽에는 200년 전 기상 기록이 남아 있었다.

“온도, 풍향, 눈 깊이…… 마지막 장 봐.” 비호가 종이를 들어 읽었다. “‘동쪽 절벽에서 겨울에도 온기 관측.’ 천부항 열이 이때도 밖으로 새어 나온 거야.”

“이백 년 동안 노심이 살아 있었다는 뜻이야?” 서란이 물었다.

“완전히 살아 있는 건 아니고, 최소한의 보온 장치가 돌았겠지. 누가 계속 연료를 넣지 않았다면 코테르 자체가 잠든 채 열을 냈을 거야.”

강민의 가슴이 그 말에 반응하듯 울렸다. ‘나 같은 것을 기다린 걸까.’

그날 밤 그는 설무진의 꿈을 꾸었다. 스승은 검령성 도장 마당에 서 있었지만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손에는 열리지 않는 문 하나가 들려 있었다.

‘열어야 합니까?’ 꿈속의 강민이 물었다.

설무진은 대답하지 않고 문을 내려놓았다. 문 뒤에는 또 다른 문이 있었다. 하나를 열면 다음 것이 나타났다. 끝이 없었다.

잠에서 깨자 청우가 곁에 앉아 있었다.

“악몽이셨습니까?”

“문을 계속 열었습니다.”

“마지막에는 무엇이 있었습니까?”

“못 봤습니다.”

“모든 문을 열 필요는 없습니다.”

“천부항 문은 열어야 합니다.”

“그것은 본인이 정하실 일입니다. 다만 문 너머의 것이 기대와 다를 수 있다는 준비는 하셔야 합니다.”

강민은 어둠 속 동료들을 보았다. “저 혼자라면 못 열 것 같습니다.”

“그래서 함께 가는 것이지요.”

셋째 날 아침, 눈은 더 깊어졌다. 민초아가 선두 근처에서 마른 솔가지를 끌어 발자국을 지웠다.

“너무 반듯하다. 그러면 오히려 길처럼 보인다.” 고륜이 손을 저었다. “좌우로 불규칙하게 흔들어라. 바람이 지운 것처럼 보여야 한다.”

“바람은 생각 없이 부는데 어떻게 따라 해요?”

“생각 없이 보이게 하려면 많이 생각해야 한다.”

“……이렇게요?” 몇 번 지나자 발자국이 자연스럽게 흐려졌다.

“그렇지.”

아이는 자기가 도움이 되었다는 사실에 작게 웃었다.

정오 전, 북쪽 능선에서 검은 연기 하나가 솟았다.

“가짜 심장 쫓아간 놈들이 엉뚱한 데서 신호 올린 거야. 15km는 벗어났어.” 비호가 자랑스럽게 말했다. “성공했네.”

고륜은 고개를 저었다. “저들은 곧 속았다는 걸 안다. 다음부터는 더 넓게 퍼질 것이다.”

실제로 오후부터 바람 속 기름 냄새가 여러 방향에서 났다.

“말 대신 걷자. 쇠붙이는 전부 천으로 감싸.” 강민이 일렀다.

오후 늦게 길은 절벽 옆 외길로 좁아졌다. 오른쪽은 바위벽, 왼쪽은 80m 아래 계곡이었다. 우회하면 날이 바뀌기 전 절벽에 닿을 수 없었다. 앞쪽 눈밭에는 발자국이 없었지만, 고륜이 걸음을 멈췄다.

“눈 아래 쇠 냄새가 난다.”

비호가 막대를 찔러 넣었다. 20cm 아래에서 금속이 울렸다. “압력판이야.”

“밟으면 어디가 터질까?” 초아가 물었다.

“우리 아래.” 비호가 눈을 걷었다. “절벽 바닥에 폭약관이 깔려 있어. 길째 떨어뜨리려는 거야.”

강민은 길 양쪽의 바위를 보았다. “저 위, 눈이 한 군데만 덜 쌓였어요. 누가 최근에 엎드려 있었던 자리입니다. 있습니다.”

그가 말하는 순간 위쪽에서 활시위가 풀리는 소리가 났다. 곧이어 바위에서 눈덩이가 쏟아졌다.

“숙여!” 무겸이 외쳤다.

눈 사이로 쇠침이 섞여 있었다. 강민은 검을 뽑아 두 발을 쳐 냈고, 무겸이 창대를 돌려 뒤쪽을 막았다. 바위 위에 반백파 척후 넷이 나타났다. 동시에 앞쪽 길모퉁이에서도 넷이 나왔다.

“위아래로 갇혔다.” 고륜이 낮게 말했다.

선두의 척후가 손을 들었다. “강민은 살려라. 나머지는 절벽 아래로.”

민초아의 얼굴이 굳었다. 서란이 아이를 바위벽 쪽으로 밀었다. “비호야, 폭약관 끊을 수 있어?”

“시간 필요해.”

“얼마나?”

“두 분.”

강민은 앞의 넷을 보았다. “무겸 형, 위를 맡아 줘요. 고륜 어르신은 뒤. 대사님은 비호와 초아를 지켜 주세요.”

“너 혼자 넷을?” 서란이 물었다.

“누나가 옆에 있잖아.”

서란이 세검을 뽑았다. “그 말은 마음에 드네.”

첫 척후가 긴 도를 휘둘렀다. 좁은 길이라 옆으로 피할 공간이 없었다. 강민은 검면으로 도를 받아 위로 흘렸다. 쇠가 머리 위 바위에 부딪쳤다. 그는 상대의 가슴으로 파고들어 어깨로 밀었다. 뒤의 둘이 진형을 잡기 전에 서란의 세검이 손목을 찔러 무기를 떨어뜨렸다.

세 번째는 갈고리를 절벽 난간에 걸고 몸을 회전시켰다. 발차기가 옆구리를 노렸다. 강민은 팔로 막았지만 충격에 밀렸고, 발밑의 눈이 무너지며 왼발이 허공으로 빠졌다.

서란이 허리띠를 잡았다. “안 놓쳐.”

강민은 그녀의 힘을 이용해 몸을 돌려 길 위로 올라왔다. 동시에 본국검 끝으로 갈고리 줄을 끊었다. 척후가 절벽 쪽으로 기울자 강민은 그의 옷깃을 잡아 안쪽으로 던졌다. 죽이지 않고 길에 처박았다.

“위는 정리 중이다!” 무겸이 눈사태 속에서 외쳤다. 창끝이 바위를 찍고 몸이 솟았다. 첫 적의 발목을 창대로 쓸고, 떨어지는 몸을 둘째에게 밀었다. 쇠침 하나가 허벅지를 스쳤지만 그는 속도를 늦추지 않았다.

“좁아서 창을 못 펴겠군.” 고륜은 뒤쪽 척후 둘과 창대를 짧게 잡고 맞섰다. 첫 공격은 상대의 도를 묶고, 두 번째는 어깨를 눌렀으며, 세 번째는 눈 아래 숨은 돌을 깨뜨렸다. 적의 발이 돌 틈에 끼었다.

청우는 철장으로 날아오는 쇠침을 막으며 비호 앞에 섰다. “서두르지 마십시오. 정확히 하셔야 합니다.”

“대사님, 이런 때도 존댓말이 나와요?”

“습관입니다.”

“손가락이 얼어서 감각이 없어. 붉은 관이랑 검은 관이 엉켰어. 잘못 자르면 터진다.” 비호가 장갑을 벗고 눈 속을 더듬었다.

초아가 옆에서 작은 거울을 들었다. “빛 비춰 줄게.”

“손 떨지 마.”

“너나 떨지 마.”

두 아이의 손이 나란히 눈 속으로 들어갔다.

강민 앞의 지휘관이 증기권총을 꺼냈다. 총구가 서란을 향했다. 강민은 검으로 막는 대신 바닥을 내리쳤다. 청염 2경계의 얇은 검기가 눈 아래 바위를 갈랐다. 폭발이 아니라 길 옆에 새 발판을 만드는 힘이었다. 갈라진 바위 조각이 솟아 총구를 쳤고, 탄환이 하늘로 날아갔다.

강민은 새 발판을 밟고 상대의 옆으로 돌았다. 검집으로 팔꿈치를 치고, 손목을 꺾어 총을 빼앗았다. 지휘관이 단검을 뽑아 찔렀으나 서란의 세검이 옆에서 들어와 칼날을 벽에 박았다.

“끝.” 서란이 말했다.

강민은 검자루로 지휘관의 턱을 쳤다. 상대가 눈 위에 쓰러졌다.

“끊었어!” 비호가 외쳤다. 폭약관의 압력이 빠지며 길 아래에서 긴 숨 같은 증기가 새었다.

“둘 도망친다!” 무겸과 고륜이 위아래에서 몰아붙였고, 청우가 도망치려는 둘의 기맥을 눌러 제압했다.

싸움은 길지 않았지만 모두가 상처를 남겼다. 무겸의 허벅지에서는 피가 났고, 고륜의 손등이 칼에 베였다. 강민의 왼팔은 살얼음 낀 바위에 쓸려 길게 찢어졌다. 서란은 절벽 바람 속에서 붕대를 감았다. 손가락이 추위로 굳어 매듭이 잘 묶이지 않았다.

“동해 바다는 여기보다 따뜻하겠지.” 그녀가 중얼거렸다.

비호가 코를 훌쩍였다. “바닷물은 차가울걸.”

“분위기 좀 읽어.”

초아가 말했다. “그래도 얼음산보단 따뜻하겠죠.”

무겸이 웃었고, 고륜도 낮게 웃었다. 강민은 붕대를 감긴 팔을 들며 말했다. “누나 손이 제일 차가워.”

“말 많으면 더 세게 묶는다.”

“다들 같은 명령서를 품고 있군.” 무겸이 매복자들의 품을 뒤져 종이를 펼쳤다. “‘천부항 문이 열리기 전에 강민을 생포하고, 동료는 제거할 것.’ 조하륜의 독필 문양과 백유강의 반백 인장이 같이 찍혀 있다. 둘이 손을 잡았군.”

고륜은 명령서를 불에 태웠다. “손을 잡은 것이 아니라 서로 이용하는 거다. 문이 열리면 먼저 등을 찌를 자들이다.”

“제가 열쇠라면, 저들은 열쇠가 갈 길까지 깔아 주고 있는 셈이네요.” 강민이 타는 종이를 보았다. “동쪽으로 가는 단서가 전부 함정일 수도 있고요.”

“그래도 가겠느냐?” 무겸이 물었다.

“아니요, 돌아갈 수는 없어요. 함정이어도요. 제가 안 가면 저들이 문을 열어요.”

절벽을 4km 앞둔 골짜기에서 비호의 냉각통이 갑자기 압력을 잃었다.

“관 이음새가 얼어서 갈라졌어!” 비호가 외쳤다.

강민은 즉시 무릎을 꿇었다. 가슴 안쪽에서 열이 밀려 올라오자 눈 위로 푸른 김이 번졌다. 서란이 외투를 벗어 그의 등을 가렸다. “다들 바람막이 만들어!”

무겸과 고륜이 천막을 펼쳐 눈보라를 막았고, 청우는 철장으로 얼어붙은 땅을 파 작은 화로 자리를 만들었다. 비호는 장갑도 끼지 않은 손으로 관을 풀었다. 손끝이 금세 새파래졌다.

“예비 관.”

“여기.” 민초아가 가방에서 꺼내 건넸다. 출발 전부터 비호의 부품 목록을 외우고 있었다.

“조임쇠 둘.”

“여기.”

“소금물.”

서란이 약병을 던졌다. 비호는 얼음이 낀 관 안쪽에 소금물을 흘리고, 얇은 구리망을 감은 뒤 조임쇠를 물렸다.

“15분. 끝났어.” 비호가 손을 털었다.

“체온이 벌써 39℃를 넘었어.” 서란이 강민의 이마를 짚었다. “왜 말 안 했어?”

“갑자기 올라왔어.”

“그 전에 신호 있었을 거야.”

강민은 눈을 피했다. 갈비뼈 아래가 찌르는 듯 아팠지만 일행의 속도를 늦추기 싫어 참았었다. 서란이 그의 턱을 잡아 눈을 마주쳤다. “우리가 약속했지.”

“미안.”

“그 말 말고.”

“다음부터 찌르면 바로 말할게.”

“어디가?”

“왼쪽 갈비뼈 아래. 숨 크게 쉬면 더 아파.”

서란은 그제야 손을 놓고 침 두 자루를 놓아 호흡을 조절했다.

“혼자 참는 게 도움인 줄 알았어.” 통증이 줄어드는 동안 강민이 말했다.

“가끔은 도움일 때도 있지.” 서란이 대답했다. “하지만 우린 네가 참는지조차 모르면 선택할 수 없어. 네 고통을 말하는 건 짐을 넘기는 게 아니라 우리한테 몫을 주는 거야.”

무겸이 천막 끝을 잡은 채 말했다. “몫이 없으면 형 역할도 못 한다.”

비호도 관을 두드렸다. “정비할 것도 없어지고.”

초아는 예비 부품 가방을 들어 보였다. “저도 외운 게 아까워져요.”

청우가 마무리했다. “그러니 다음에는 말씀해 주십시오.”

강민은 웃을 힘이 없어 고개만 끄덕였다.

절벽 가까이에 이르자 길은 두 갈래로 나뉘었다. 왼쪽에는 사람 발자국과 썰매 자국이 선명했고, 오른쪽은 눈이 허리까지 쌓인 막힌 길처럼 보였다. 고륜은 왼쪽 흔적을 한 번 보고 곧바로 오른쪽을 택했다.

“너무 친절한 길은 적이 만든 것이다.”

“진짜네. 왼쪽 200m 지점 눈 밑에 얇은 철망이 깔려 있어.” 비호가 연결선을 따라갔다. “밟으면 골짜기 위 바위가 쏟아져. 도르래엔 최근 기름칠까지 했고. 우리가 좌표 찾은 걸 알고 있어.”

“소나무 꼭대기에 검은 천 조각이 흔들려요.” 강민이 능선을 가리켰다. “조하륜의 관측 표식입니다.”

“떼지 마라. 반대쪽을 가리키게 돌려놓으마.” 고륜이 말했다.

“나는 발자국 여덟 명분 더 찍지.” 무겸이 눈 위를 짓밟았다.

“빈 짐자루를 끌어 썰매 흔적을 내겠습니다.” 청우가 이었다.

“도르래 나사는 딱 하나만 풀어 둘게. 다시 확인하러 오면 자기 덫에 걸리게.” 비호가 씩 웃었다.

해가 기울 무렵, 산 아래에서 둔탁한 붕괴음이 들렸다. 누군가 왼쪽 길을 밟은 것이다. 비명은 들리지 않았다. 강민이 돌아보려 하자 고륜이 막았다.

“우리가 판 덫이 아니다. 그들이 자기 손으로 만든 길을 밟은 것이다.”

“그래도 사람이 죽었을 수 있습니다.”

“그 마음은 잃지 마라. 다만 그 마음 때문에 모두를 되돌리지는 마라.”

강민은 한동안 서 있다가 다시 걸었다. 선택은 누군가를 버리는 일이 아니라, 버리지 않기 위해 감당할 죄책감을 고르는 일일 때도 있었다.

나흘째 밤, 일행은 마지막 능선을 넘었다. 좌표는 눈앞의 거대한 암벽을 가리켰다. 높이 200m가 넘는 검은 화강암 절벽이 산을 통째로 잘라 세운 것처럼 서 있었다.

“이상해요. 주변은 다 하얀데 절벽엔 눈이 안 쌓여요.” 초아가 말했다.

“닿자마자 녹아서 물길이 되는구나.” 서란이 손을 뻗었다. “바위 안쪽에서 열이 배어 나와.”

강민이 가까이 가자 청염기관이 낮게 울렸다.

쿵.

그의 박동과 같은 간격으로 암벽 안쪽에서 진동이 돌아왔다.

“안이 비어 있어.” 비호가 귀를 붙였다.

고륜은 절벽 아래를 천천히 걸으며 바위의 무늬, 이끼가 끊긴 선, 물이 흐르는 방향을 살폈다. 50년 전의 기억을 더듬는 얼굴이었다.

“다리가 후들거려요.” 마지막 1km를 서란과 번갈아 업혀 온 초아가 주저앉았다.

“나도.” 공구 상자를 무겸의 창대에 묶어 끌어 온 비호가 옆에 쓰러졌다.

“여기 친다. 바람을 피하면서 절벽과 접근로가 다 보인다.” 고륜이 야영지 자리를 골랐다.

해가 지기 전까지 입구를 찾지 못했다. 민초아는 솔가지로 발자국을 지웠고, 청우는 경보 방울을 걸었다. 비호는 옥반지 인장 사본과 도면을 몇 번이나 겹쳐 보았다. 강민은 주변을 한 바퀴 돌다 암벽 밑에서 낡은 못 하나를 발견했다.

“못 머리에 백룡 발톱이 아니라 이름 없는 파도 문양이 있어요.” 그가 고륜을 불렀다. “봉인자들의 길잡이일까요, 먼저 온 적의 표식일까요?”

“모르겠다. 이곳에선 오래된 흔적도 지금의 덫이 될 수 있다.”

“그럼 뽑지 말고 실을 묶어 두죠. 누가 건드리면 방울이 울리게.”

밤이 깊자 초아가 불가에서 낮은 노래를 불렀다.

“사라진 마을에서 할머니가 불러 주던 노래예요. 이제 마지막 구절만 기억나요.” 아이가 말했다. 누구도 따라 부르지 못했지만, 아무도 자리를 뜨지 않았다.

“형, 이거 봐.” 노래가 이어지는 동안 비호가 냉각통의 바늘을 가리키며 속삭였다. “형 쪽이 아니라 절벽 쪽으로 움직여. 바위 안에 아직 식지 않은 동력이 있어.” 그는 눈금 옆에 숯으로 표시하고 관을 한 번 더 조였다.

초아는 마지막 구절을 두 번 불렀다. “돌아올 집이 없으면, 함께 걷는 사람이 집이다.”

강민은 가사를 마음속으로 되뇌었다. 절벽 너머에 무엇이 있든, 그곳이 그의 집을 대신해 주지는 못할 것이다. 집은 피가 정한 장소가 아니라 함께 돌아갈 사람들이 있는 자리였다. 그 사실을 붙잡자 문 안의 정체를 향한 두려움이 조금 작아졌다.

노래가 끝난 뒤 사람들은 차례로 잠들었다. 누구는 코를 골고, 누구는 꿈속에서도 손으로 공구를 찾았다. 그 사소한 소리들이 절벽 안의 거대한 침묵보다 더 확실한 현실이었다.

“첫 경계는 내가 설게.”

“두 시간만.” 서란은 반대하려다 그의 체온이 안정된 것을 확인하고 허락했다.

강민은 모닥불 가장자리에서 본국검을 무릎에 놓고 절벽을 바라봤다. 얼마 지나지 않아 검집 안쪽에서 가벼운 진동이 느껴졌다. 검을 뽑자 청염 실린더의 푸른 불이 절벽의 금맥 같은 줄무늬를 따라 움직였다. 그는 불꽃을 세게 하지 않고, 바위가 응답하는 최소한의 세기만 유지했다.

“문을 찾았다고 바로 열지 마라.” 잠에서 깬 고륜이 곁에 앉았다.

“알아요. 힘으로 부수면 안쪽 장치도 같이 무너질 수 있으니까요.”

“그것만이 아니다. 봉인은 안의 것을 지키기도 하지만, 밖의 사람을 지키기도 한다.”

“안에 위험한 게 있을 수 있다는 뜻입니까?”

“혹은 위험을 만들 수 있는 선택이 있을 수도 있다.”

강민은 불꽃을 거뒀다. 절벽의 가느다란 줄무늬도 함께 어두워졌다.

“젊을 때 이 근처에서 쇠사슬 소리를 들었다.” 고륜이 한참 뒤에 입을 열었다. “그땐 바람과 눈보라 때문에 방향을 몰랐지. 지금 생각하면 바깥이 아니라 산 안쪽이었다. 오십 년 전에 누가 안에서 두드렸을지도 모른다.”

강민은 고륜을 돌아봤다.

“나는 확인하지 않았다. 명령이 없었으니까.”

“이번에는 확인하면 됩니다.”

“그 말이 과거를 없애 주진 않는다.”

“없애려고 하는 게 아니에요. 다음 소리를 모른 척하지 않으려는 겁니다.”

고륜은 대답 대신 경계용 방울 하나를 더 걸었다. 과거를 용서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번 밤만큼은 안과 밖의 어떤 소리도 놓치지 않기 위해서였다. 강민은 문을 찾는 것보다 문 앞에서 멈출 줄 아는 일이 더 어렵다는 것을 배웠다.

자정 무렵, 바람이 멎었다. 절벽에서 물이 흐르는 소리도 끊겼다.

강민의 가슴이 한 번 뛰었다. 암벽 안에서 같은 박동이 답했다.

두 번째 박동 뒤, 절벽 전체를 가로지르는 가느다란 금이 푸른빛으로 드러났다. 이끼도 없던 바위 표면에 문 모양의 선이 나타났다.

그리고 절벽 안쪽에서 거대한 쇠사슬 하나가 풀리는 소리가 났다.

철컥.

잠시 뒤, 안에서 누군가 주먹으로 두드리는 듯한 소리가 세 번 울렸다.

— 話 38 終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