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의 밤, 도장의 첫 방어전(防禦戰)
海東曆: 201년 4월 28일 · 검령성 도장
하루 전 피투성이 전령이 검령성(劍靈城) 도장으로 뛰어든 뒤, 도장의 밤은 더 이상 예전의 밤이 아니었다. 모든 소리가 평소보다 훨씬 낮았다.
강민(剛民)은 동쪽 회랑 기둥 아래서 수련용 증기검을 조립하고 있었다. 어제 푸른 불꽃을 토해낸 뒤로 실린더가 한 바퀴에 한 번씩 걸렸고, 틈에는 푸른 그을음이 보였다.
“아직도 떨려?”
유서란(柳瑞蘭)이 두꺼운 무명 겉옷 차림으로 다가왔다. 옷깃의 고삼과 당귀와 마른 박하 냄새가 닿는 곳만큼은 아직 집 같았다.
“검? 아니면 나?”
“둘 다.”
“검은 조금. 나는…… 잘 모르겠어.”
서란이 손목을 잡았다.
“맥이 평소보다 빨라.”
“긴장해서.”
“긴장이면 좋겠다.”
강민은 가슴이 이상하다는 말을 끝내 하지 않았다. 말하는 순간 정말 낯선 기계가 든 사람이 될 것 같았다.
“강민아.”
“응, 누나.”
“오늘 밤에는 네가 먼저 나서지 마. 사부님이 네 자리를 동쪽 회랑으로 정한 건 싸우지 말라는 뜻이 아니라 지키라는 뜻이야. 부엌, 의공실, 뒤뜰 정비창, 지하 저장고로 내려가는 계단. 네가 무너지면 그 길들이 모두 열린다.”
“알고 있어.”
“알고 있다고 해서 버틸 수 있는 건 아니야.”
서란이 손바닥에 작은 약환 하나를 올려 주었다.
“씹지 말고 삼켜. 겁을 없애 주는 약은 아니야. 손이 떨릴 때 네가 떨고 있다는 사실을 늦게 깨닫게 해 주는 약이지.”
“그게 더 무서운데.”
“그러면 안 삼켜도 돼. 다만 쓰러지고 나서 내가 억지로 먹이면 두 알이다.”
“한 알로 할게.”
“무겸 오라버니가 정문을 맡으셨고 사부님도 계시니까 너무 겁먹지 마.”
“누나는?”
“나는 의공사야. 다친 사람이 있는 곳이 내 자리지.”
서란은 강민의 어깨를 두 번 두드리고 의공실로 걸어갔다. 강민은 전령이 전한 흑영(黑影)이라는 이름을 떠올렸다. 문파 하나를 밤새 소리 없이 지운다는 이름 없는 칼.
밤 10시 40분, 설무진(雪武陳)이 연무장 중앙에 섰다. 본국검(本國劍)의 검갑에는 청람색 봉인선이 감겨 있었다.
“정문은 무겸이가 맡는다.”
장무겸(張武謙)이 증기 분출관 달린 창을 세우고 강민을 한 번 보았다. 입술 끝만 움직였다. 살아남자는 뜻이었다.
“서란이는 의공실과 지하 계단. 비호는 정비창 안쪽에서 보일러 압력을 본다. 절대 앞마당으로 나오지 마.”
“사부님, 저는―”
“비호야.”
단비호(段飛虎)가 입을 다물었다. 소년의 눈 밑이 잠을 못 자 거뭇하게 꺼져 있었다.
“강민이는 동쪽 회랑. 네 검이 말을 듣지 않으면 검을 버리고 몸으로 막아라. 네가 지키는 건 벽이 아니다. 길이다.”
“예, 사부님.”
“그리고 모두 들어라. 흑영은 길을 확인하러 온다. 누가 어디에 있는지, 무엇이 열리고 닫히는지, 어느 심장이 어떤 소리에 반응하는지 보러 온다. 그러니 함부로 분노하지 마. 그들은 우리가 어떻게 분노하는지까지 살펴 갈 거다.”
“놈들이 뭘 찾습니까?”
무겸의 물음에 설무진의 시선이 아주 짧게 강민의 가슴을 스쳤다. 그 시선이 지나간 자리가 뜨거웠다.
“아직 말할 수 없다.”
“사부님.”
“말할 수 없어서가 아니라, 지금 말하면 너희가 오늘 밤을 넘기지 못한다.”
“알겠습니다. 그래도 하나만 여쭙겠습니다. 오늘 밤을 넘기면 말씀해 주시는 겁니까?”
“살아 있다면.”
잠시 아무도 말하지 못했다. 비호가 강민의 소매를 당기며 속삭였다.
“형, 사부님 지금 형 쳐다봤죠?”
“……봤어.”
“나도 봤어요.”
“모두 위치로.”
“예!”
“비호야, 화상 입으면 바로 불러. 약 챙겨 놨어.”
“네, 누나.”
◆
습격 전까지 강민은 지켜야 할 길을 외웠다. 첫 번째는 부엌이었다. 수련생 셋이 칼과 도마를 하나씩 끌어안고 있었다.
“칼이랑 도마로 되겠어요, 형?”
“되든 안 되든 들고 있어. 아궁이 불씨는 재 속에 묻고, 소리 내지 말고.”
“형, 정말 오는 거예요?”
“올 거야. 그러니까 숨부터 죽여. 내가 부를 때까지 나오지 마.”
“흑영이 정말 사람이에요?”
“……사람이면 좋겠다.”
두 번째는 의공실 뒤쪽이었다. 서란이 바닥에 하얀 가루로 선을 그어 놓았다.
“여기까지가 환자 자리야. 선 넘어 들어오는 건 뭐든 네가 막아.”
“적을 막는 선이 아니라 다친 사람이 넘어지지 않게 하는 선이네.”
“알아봤으면 됐어.”
세 번째는 지하 저장고 계단이었다.
“아래엔 물통이랑 상자뿐이에요, 형.”
“그것도 지켜야 해. 오늘 밤엔 그게 도장의 살림이고 목숨이야.”
강민은 이상한 부끄러움을 느꼈다. 강해진다는 건 검을 빠르게 휘두르는 일인 줄 알았는데, 밤이 오자 정작 필요한 건 서란이 붕대를 쌓아 두는 일이었다.
뒤뜰 보일러실에서는 비호가 등롱을 입에 물고 압력계 앞을 기어 다니고 있었다.
“비호야, 잠은 좀―”
“형, 여기 오면 안 돼요. 형 가슴이 가까워지면 이 압력계가 자꾸 틀어져요.”
비호는 고개도 들지 않았다. 강민의 등줄기가 차갑게 식었다.
“……그건 뭐야? 어제부터 끌어안고 있던 거.”
“충격기요. 증기를 한 번에 터뜨려서 밀어내는 건데, 아직 시험을 못 해 봤어요. 사부님한테도 안 보여 드렸고요.”
“위험하잖아.”
“알아요. 그래서 비밀이에요.”
“……무슨 일 있으면 소리쳐. 알았지?”
“형이야말로요.”
밤 11시 17분, 북쪽 담장의 경보종 줄이 소리 없이 끊어져 지붕 아래로 떨어졌다. 설무진의 손이 검자루를 잡았다.
“온다.”
“형! 북쪽 압력계가 떨려요! 담 쪽이에요!”
비호의 목소리가 정비창 창문에서 들렸다. 첫 적은 담을 넘지 않고 그림자 속에서 소리 없이 들어왔다. 그 뒤로 셋, 다섯, 아홉이 네 방향에서 나타났다.
“아홉이다! 사방에서 들어온다!”
“정문 쪽이다!”
“서쪽 담도 넘는다!”
“등불이 꺼졌어!”
“당황하지 마! 가운데로 모여라!”
“서쪽 배관 압력 올라가요! 아직은 버텨요!”
정문에서 무겸의 창이 먼저 움직였다. 증기가 터지며 반 박자 빠르게 뻗은 창끝이 검은 칼집에 막혔다.
“하체다! 무릎을 쓸어라!”
“이놈들, 사람 몸이 아니야! 가볍다!”
“이 정도에 창룡대 장무겸이 물러설 줄 아냐!”
“무겸, 남쪽 처마를 봐라!”
“셋이 더 넘어옵니다, 사부님!”
“사부님이 칼을 뽑으셨다!”
설무진이 검을 뽑았다. 청염(靑炎)이 올라붙는 순간 도장 안이 푸른빛으로 환해졌다. 사부의 검 위에서 청염은 흔들림 없는 등불 같았다.
“가슴이 아니다. 손목 안쪽 관절, 흉갑 안쪽 코테르(機核)실, 입안의 독침관이다. 멈추게 하는 게 먼저다!”
“예!”
첫 칼이 피스톤 관절을 끊고, 둘째 칼이 코테르 보조실을 잘랐으며, 셋째는 독침관을 검등으로 깨뜨렸다.
“사부님 검이…… 저런 검이었어……”
“저게 우리 사부님 맞아요, 형?”
“나도 처음 봐.”
뒷짐 지고 자세를 고쳐 주던 노검객이 어떤 전쟁을 통과한 사람의 차갑고 오래된 전투 감각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그때 동쪽 회랑에도 적이 붙었다.
“강민, 회랑을 지켜라!”
“예!”
“온다, 형!”
강민은 압력 고리를 당겼다. 치익, 소리가 절반에서 끊겼다.
“돌아…… 돌아라!”
“형! 문 쪽으로 하나 들어왔어요!”
“내가 간다! 도마 내려놔!”
“왜 안 돌아!”
기운이 왼쪽 가슴에서 한 번 걸렸다. 낯선 박동이 먼저 대답하고 그다음에야 검이 움직였다.
“지금 이러면 안 돼!”
회랑으로 들어온 자객은 넷이었다. 기둥 사이로, 들보 위로, 바닥 가까이로. 도장 구조를 아는 움직임이었다.
“칼등에 무게추가―! 충격이 뒤집혀!”
“쇳덩이냐, 네놈은!”
걷어찬 무릎은 딱딱하게 잠겨 있었다. 그 순간 증기검이 완전히 멈췄고, 들보에서 자객이 떨어졌다.
“움직여…… 움직여라, 내 팔!”
“안 돼…… 팔이 너무 느려……”
칼이 천천히 내려왔다. 어제의 불꽃도, 배운 기본식도 그 찰나에는 아무 도움이 되지 않았다.
“형!”
정비창 문이 벌컥 열리고 비호가 굴러 나왔다. 어른 팔뚝만 한 황동 통 앞에는 고무 완충판이, 뒤에는 폭약나사 세 개가 박혀 있었다.
“터지기 전에 쏘는 거예요, 형! 밀려요!”
비호가 손잡이를 끝까지 밀었다. 뻥, 증기가 터져 완충판이 자객의 옆구리에 꽂혔고, 칼이 강민의 어깨를 한 뼘 비껴 돌바닥에 박혔다. 그러나 황동 통에도 붉은 금이 번졌다.
“비호야, 들어가!”
“싫어요! 아직 한 발 더 있어요!”
“그건 폭약나사 하나뿐이잖아!”
“하나면 충분해요, 형 목숨 값은!”
새카맣게 그을린 비호의 눈은 자객이 아니라 금 간 장치에 붙어 있었다.
“압력통이 먼저 찢어졌어…… 반동이 옆으로 샜어…… 두 번째는 세로로 겹쳐서……”
“저 녀석, 지금 다음 장치를 고치고 있어……”
열세 살 아이가 다른 사람을 살리기 위해 무기를 생각하고 있었다. 자객 둘이 비호를 향해 몸을 돌렸다.
“비호한테 가지 마!”
강민은 멈춘 검을 버리고 뛰어들어 자객의 팔목을 붙잡았다. 피부 밑에 금속 줄이 지나가는 듯 단단했다.
“놔라, 이…… 쇳덩이!”
비틀리는 어깨를 버티며 이마로 코끝을 들이받았다. 눈앞이 하얘졌다. 자객이 물러난 틈에 비호가 정비창 안으로 몸을 굴렸다.
“엎드려, 민아!”
정문에서 날아온 무겸의 장창이 자객의 흉갑을 꿰뚫고 벽에 박았다. 무겸이 창대를 당기며 이를 드러냈다.
“민아, 네가 몸으로 막으라는 말을 너무 곧이곧대로 들은 것 같은데.”
“형도 지금 농담할 때는 아닌 것 같은데요.”
“농담 아니야. 다음에는 머리 말고 어깨로 받아. 이마는 네가 써야 할 데가 많다.”
“고마워요, 형. 그런데 옷에 피가―”
“내 피 아니다. 고마우면 살아서 갚아라.”
“안 죽어요, 형! 쓰러져도 또 일어나요!”
“그러니까 끊으란 거다! 팔도 다리도 관절째!”
“강민, 아직 서 있냐!”
“서 있습니다, 사부님!”
“서란아, 서쪽!”
그 외침에 맞춰 서쪽 담 아래에서 폭음이 일었다. 흑영 하나가 화약관으로 담을 무너뜨리려 했지만 폭발은 번지지 않았다.
“알고 있습니다, 사부님! 젖은 약포랑 모래주머니 던져 놨어요!”
서란이 의공실 창문에서 외쳤다.
“둘 다 뒤로 들어가요! 문 안쪽에서 잠그세요!”
그녀가 수련생 둘을 밀어 넣고 은침 세 개를 끼웠다. 문으로 돌진하는 자객의 쇄골 아래 기압관 세 곳에 침이 박히자 팔이 늘어졌다.
“사람이면 멈춰. 장치면 더 빨리 멈춰.”
“누나…… 침을 저렇게 쓸 줄 알았어?”
“의공사는 사람 몸이 어디서 멈추는지 알아야 해. 기계도 마찬가지고. 수다 떨 시간 없어, 앞 봐!”
“다들 뭔가를 감추고 있어…… 사부님도, 무겸 형도, 누나도.”
강민은 쓴맛을 삼켰다. 어쩌면 비호마저도.
남쪽 처마의 전투가 끝나 갈 무렵 설무진이 아주 짧게 멈췄다. 왼손이 가슴을 누르고 있었고, 안정되어 있던 청염이 가늘게 떨렸다. 강민의 박동과 닮은 떨림이었다.
“사부님!”
“……신경 쓰지 마.”
설무진은 곧 손을 내리고 검을 들었다. 그러나 강민의 눈에는 새겨졌다. 사부의 몸 안에도 무언가가 있었다.
그때 북쪽 지붕에서 가장 늦은 자객이 내려왔다. 회색 금속 가면에 작은 유리알이 박혔고, 오른손에는 칼 대신 접힌 갈고리 세 개뿐이었다. 그는 강민을 보았다.
“저놈, 사부님이 아니라 민이를 본다!”
“강민아, 내 뒤로!”
“반응 확인.”
메마르고 납작한, 감정 없는 목소리였다. 푸른 한기가 가슴에서 솟구쳤고, 바닥에 버린 증기검의 실린더가 저절로 반 바퀴 돌았다.
“윽…… 뭐야, 이거……”
설무진의 얼굴이 변했다. 강민은 처음으로 사부의 눈에서 분노가 아닌 두려움을 보았다.
“눈을 감아라, 강민!”
눈을 감는 순간 도장이 푸른빛으로 번쩍였다. 눈을 떴을 때 갈라진 가면 아래 자객의 목에 설무진의 검끝이 닿아 있었다.
“누가 보냈냐.”
“흑영은…… 길을 열 뿐.”
“누구의 명이냐.”
“수레바퀴는…… 이미 돌고 있다.”
“수레바퀴라니, 무슨 소리냐!”
“묻지 마, 무겸. 이놈은 대답하려고 온 게 아니다.”
부서진 턱 아래에서 기괴한 소리가 났다. 흉갑 안쪽에서 작은 톱니가 미친 듯이 돌기 시작했다.
“자폭 장치예요! 회전음이―”
“엎드려!”
무겸이 강민과 비호를 한꺼번에 밀어 넘어뜨렸다.
“문 닫아요! 안쪽으로 들어가요!”
서란이 문을 닫는 사이 설무진은 몸을 피하지 않고 청염을 자객의 흉갑 안으로 꽂았다. 폭발은 푸른 불 안에서 사그라들었다. 큰 폭음 대신 도장 바닥이 쇠북처럼 울렸다.
◆
먼지가 내려앉았다. 도장 안은 숨소리까지 들릴 만큼 조용했다. 자객의 팔꿈치 안쪽에는 기계중원식 흑색 인장이 찍혀 있었다.
“모두 살아 있냐!”
“여기요!”
“살아 있습니다, 사부님!”
“끝난 거예요?”
“모른다. 숨부터 쉬어라.”
다가가는 강민의 소매를 서란이 붙잡았다.
“피부에 닿지 마.”
그녀가 은침 끝으로 자객의 손등을 건드렸다. 가죽 아래에서 가느다란 검은 실이 꿈틀하다 곧 타 버렸다.
“독이 아니야. 명령을 전하는 기계줄이야.”
“그럼 저들은 아픈 걸 몰랐던 게 아니라…… 아플 수가 없었던 거네.”
“죽을 각오를 한 무인이 아니라, 죽은 뒤에도 몇 번 더 움직이게 만들어진 병기야.”
“서란아, 다친 사람부터 확인해라. 무겸, 정문 밖을 살펴라. 비호는 보일러 압력을 낮춰라.”
“수련생 둘이 경상입니다. 죽은 사람은 없어요.”
정문 밖에서 끊어진 경보줄과 발자국을 살피던 무겸이 낮게 욕설을 삼켰다.
“정문 쪽 놈들은 도망친 게 아니라 물러난 겁니다.”
“발자국이 이상하게 가볍다. 사람 하나 무게보다 얕고 방향도 제각각이야. 실제로 들어온 놈들보다 더 많은 수가 다녀간 것처럼 꾸민 흔적도 있어.”
“겁주려는 거였나요?”
“우릴 겁주려고 온 게 아니야. 다음에 어디로 들어오면 되는지 재고 간 거다.”
강민은 담장을 바라보았다. 낮에는 정겨운 울타리가 밤에는 너무 낮아 보였다. 설무진이 흉갑을 열자 안쪽의 코테르 조각이 새카맣게 변해 있었다.
“죽은 돌이다. 움직이게 한 건 명령뿐이었다.”
“사부님, 저놈이 말한 ‘길’이 무슨 뜻입니까?”
“……아직은 모른다. 다만 이제 시작이라는 뜻이다.”
푸른 것과 검은 것. 그런데도 두 박동은 방금 회랑에서 서로를 알아본 듯했다. 강민은 손바닥을 펴 보았다.
“누나, 이상해. 아까 가면을 건드렸던 자리에 자국이 안 지워져.”
“손 줘 봐. ……상처는 아니네. 그런데 지워지지도 않아.”
“그럼 이게 뭐야?”
“나도 몰라. 내일 아침에 다시 보자.”
금 간 충격기를 품에 안고 바닥에 앉은 비호는 울지도 웃지도 않았다. 강민이 다가가자 겨우 고개를 들었다.
“형.”
“다쳤어?”
“비호 손 이리 줘. 화상이야.”
“괜찮다니까요, 앗, 따가워!”
“괜찮은 사람 비명이 아닌데.”
“손이 좀…… 아니, 그건 괜찮아요. 이거 봐요. 뒤쪽 압력통이 먼저 찢어졌어요. 완충판이 옆으로 밀려서 반동이 샜고요. 두 번째로 만들 때는 압력통을 세로로 두 개 겹치면―”
“비호야.”
“네?”
“살았으면 됐어.”
그 말에 비호의 얼굴이 처음으로 무너졌다. 강민이 낮게 덧붙였다.
“숨 쉬어. 천천히.”
“……형은 숨 쉬고 있어요?”
“지금 하는 중이야.” 장치를 더 세게 끌어안은 작은 어깨가 강민의 손바닥 아래에서 떨렸다.
“형…… 나, 무서웠어요.”
“나도. 지금도 손이 떨려.”
강민의 손은 서란의 약환을 삼킨 뒤에도 계속 떨렸다.
설무진은 회색 가면 자객의 잔해 앞에 서 있었다. 가면 조각 안쪽의 얇은 동판을 강민이 집어 들었다. 글자 대신 원이 새겨져 있었다. 원 안을 또 다른 원이 돌고, 그 사이로 얇게 파인 선들이 뻗어 있었다.
“수레바퀴 모양인가…… 심장을 둘러싼 톱니 모양이기도 한데……”
“만지지 마.”
설무진의 말이 날카롭게 떨어졌다. 동판을 놓쳤지만 이미 늦었다. 손바닥에 닿은 순간 가슴의 박동이 그것과 맞물렸다. 둥, 둥, 둥. 도장 바닥 아래에서 같은 박자가 되돌아왔다. 설무진만이 얼굴을 굳혔다.
“사부님, 방금 그 소리 들으셨죠?”
“……만지지 말라 했다.”
“사부님, 저 동판이 뭐든 민이를 건드리지 못하게 하셔야 합니다.”
“……알고 있다.”
“사부님, 이게 뭡니까?”
“오늘 밤 대답할 수 있는 질문이 아니다.”
“그럼 언제―”
“네가 살아 있는 아침.”
살아 있는 아침. 설무진이 돌아섰다. 뒷모습이 흔들렸고, 왼손이 또 한 번 가슴으로 갔다가 내려왔다.
그때 의공실 안에서 날카로운 파열음이 터졌다. 문을 열고 나온 서란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사부님.”
서란의 손에는 의공용 소형 맥압계가 들려 있었다. 환자의 손목에 감응띠를 감아야 움직이는 장치였다.
“보세요. 아무한테도 연결 안 했는데 바늘이 혼자…… 방금 막 닦아 놓은 기계예요. 혼자 움직일 리가 없어요. 이 박자가―”
바늘이 미친 듯이 왕복하고 유리판 안쪽에는 푸른 김이 서려 있었다. 바늘이 세 번 크게 튀었다.
둥. 둥. 둥.
“같은 박자야…… 내 박자랑.”
강민의 가슴도 같은 박자로 뛰었다.
밤바람이 문틈을 다시 파고들었다. 회색 가면 자객의 재 속에서 아직 식지 않은 작은 톱니가 마지막 힘으로 한 번 더 돌았다.
그리고 아주 낮은 소리가 났다.
“심장은…… 확인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