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점 · 강민 — 균열·낙인 단계

해동(海東)의 무게를 짊어진 소년

第1部 · 話 40 · 검령성 · published

海東曆: 201년 10월 31일

· 시점: 백민

“승선자의 이름을 말하라.”

기계음은 네 날 동안 같은 문장을 반복했다.

첫날, 소년은 제단 앞에서 밤을 새웠다. 둘째 날에는 유룡의 선실과 노심실을 돌아보았다. 셋째 날에는 봉인 일지와 설계도를 끝까지 읽었다. 넷째 날 새벽, 그는 다시 황동 제단 앞에 섰다.

아무도 재촉하지 않았다. 비호는 선저의 굳은 기름을 긁어 내고 압력관을 갈았다. 무겸과 고륜은 절벽 바깥 경계로를 번갈아 지켰다. 청우는 폐관제실에서 봉인 장치의 염주를 정리했고, 민초아는 오래된 승선 명부의 먼지를 닦았다. 서란은 제단에서 8m 떨어진 의공대에 침과 냉각관을 펼쳐 놓았다. 기다림도 일이었다.

“한 시간마다 저 소리야. 천으로 막아도 바닥이랑 선체를 타고 울려.” 첫날 밤, 비호가 음성관을 노려보았다. 결국 그는 작은 톱니를 분리했다. “반복 간격을 여섯 시간으로 늦췄어. 이름도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지.”

“고마워.” 소년은 그렇게 말하고도 제단 곁에 머물렀다.

“혼자 있으면 답이 떠오를 것 같아?” 서란이 멀리서 물었다.

“그럴 줄 알았는데, 아니야.” 소년이 어둠을 둘러보았다. “여기선 내 생각보다 남은 사람들 흔적이 더 잘 보여. 장난감 배, 식다 만 죽, 출산 매듭, 어르신이 새로 적은 고백. 이름 하나가 그걸 다 대신할 순 없잖아.”

둘째 날, 그는 비호와 함께 유룡의 좁은 통로를 처음부터 끝까지 걸었다.

“선수 항법실에서 선미 압력실까지 60걸음도 안 돼.” 비호가 세었다. “둘이 마주치면 한쪽이 비켜야 하고, 침상은 벽에서 접어 내려. 큰 전함 상상한 사람은 실망하겠다.”

“난 좋은데. 누구도 다른 사람 숨소리를 모른 척할 수 없는 크기잖아.”

“항법실 봐. 조종륜이 둘이야. 앞사람이 방향을 잡고, 옆사람이 수심이랑 압력을 같이 맞춰야 해. 한 사람이 혼자 돌리면 톱니가 안 맞물려.” 비호가 감탄했다. “귀찮게 만들었네.”

“좋다는 뜻이지?”

“최고라는 뜻이야.”

두 사람은 굳은 축에 기름을 먹이고, 부러진 손잡이를 새로 깎았다. 소년이 조종륜을 잡자 선체 안쪽에서 미세한 떨림이 돌아왔다. 잠든 배가 손의 무게를 재는 듯했다.

“네가 배를 고르는 게 아니라 배도 널 보는 걸까?” 따라온 초아가 물었다.

“그럴 수도 있지.”

“마음에 안 든다고 하면?”

“내리라고 해야지.”

“절벽 안에서?”

둘은 잠깐 마주보다 웃었다.

셋째 날에는 역할을 나눴다.

“노심이랑 압력관은 나.” 비호가 손을 들었다.

“갑판과 방어 장치는 내가 맡지.” 무겸이 말했다.

“항로 기록은 내가 보마.” 고륜이 이었다.

“봉인 장치와 균형추는 제가 살피겠습니다.” 청우가 합장했다.

“나는 의공실. 모든 선실 비상 통로까지 외울게.” 서란이 말했다.

“저는 문서를 날짜별로 묶을게요. 모르는 이름 옆엔 빈칸 남기고요. ‘무명’이라고 안 쓸 거예요.” 초아가 덧붙였다.

소년은 어느 자리에도 완전히 속하지 않았다. 검을 들면 갑판으로 갔고, 관을 잡으면 비호 옆에 섰으며, 기록을 읽을 때는 고륜과 마주 앉았다.

그날 저녁 첫 시험이 실패했다. 비호가 보조 압력통에 남은 증기를 넣자 유룡의 푸른 눈이 반쯤 열렸다가 곧 꺼졌다.

“관 터졌다! 김 나와!”

“막는다!” 무겸이 철판으로 막았다.

“손 이리 줘, 비호야. 데었잖아.” 서란이 화상을 치료했다.

“균형추가 거꾸로 달려 있습니다.” 청우가 찾아냈다.

“설계도 여백에 고쳐 단다고 적혀 있어요!” 초아가 교정 문구를 짚었다.

“한 사람이라도 없었으면 원인을 못 찾았겠군. 배가 이름보다 우리를 먼저 시험하네.” 고륜이 말했다.

“잘됐어요.” 소년이 답했다. “말 한마디로 얻는 것보다 낫습니다.”

넷째 날 새벽, 그는 조선소 바깥의 봉인문까지 걸어갔다. 절벽 틈으로 찬 공기가 들어왔고, 멀리 산 아래에서 희미한 불빛이 움직였다. 눈 위로 남긴 거짓 흔적이 시간을 벌었지만 영원히 속일 수는 없었다.

고륜이 뒤따라왔다. “시간이 줄었다.”

“그래서 말해야 합니까?”

“아니다.”

소년이 돌아보았다.

노장은 칼집을 바닥에 세웠다. “시간이 없다는 말로 나는 너무 많은 사람에게 선택을 빼앗았다. 이번에는 네가 침묵해도 그 침묵을 지키겠다.”

“문이 끝내 안 열리면요?”

“밖으로 나가 싸우면 된다.”

“이길 수 있습니까?”

“모른다. 그래도 지킨다.”

처음 듣는 군인답지 않은 대답이었다. 그래서 더 믿을 수 있었다.

“저를 찾는 사람들은 피의 이름을 원해요.” 소년이 절벽 밖의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 “백유강은 계승자를, 조하륜은 열쇠를, 황실은 명분을요. 그 이름을 그대로 받으면 평생 남이 적은 역할을 연기하게 될 것 같아요.”

“그럼 버리겠느냐?”

“버린다고 자유로워지는 것도 아니더라고요. 스승님이 지키려던 것, 운하가 목숨 걸고 옮긴 것, 이름 없이 죽은 봉인자들의 선택까지 같이 버리는 거니까요.” 소년은 숨을 골랐다. “그래서 새 이름을 지어내진 않으려고요. 오래된 두 글자의 뜻을 제가 다시 고를 겁니다.”

고륜은 대답하지 않고 고개만 끄덕였다.

조선소로 돌아온 소년은 황동 인장 위에 손을 올리지 않은 채 열여덟 해를 되짚었다. 설무진이 끝내 완성하지 못한 문장, 폐갱의 두루마리, 불에 그슬린 부부의 얼굴, 노도공이 숨긴 장부, 민초아에게서 들은 빗속의 사내, 비밀 서고에서 번진 백유운의 먹. 기억은 한꺼번에 덮치지 않고 하나씩 와서 제자리를 찾았다.

‘백씨는 제국을 세웠고, 사람을 실험했고, 죄를 숨기려 이름을 지웠다. 나는 검령성의 평범한 수련생일 뿐이라고 외치면 편하겠지.’ 그는 가슴을 짚었다. ‘하지만 청염기관은 여기 있다. 살아남으려고 누군가 죽었고, 숨기려고 누군가 거짓 기록을 만들었고, 지키려고 스승님이 목숨을 내놓았다. 무관하다고 하면 그 선택들을 다시 지우는 거다. 그렇다고 피에 무릎 꿇을 수도 없다.’

“이름을 말하면 누구의 배가 되지?” 소년이 음성관에 물었다.

기계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비호가 선저에서 기름 묻은 얼굴을 내밀었다.

“이름을 말한 사람의 배가 되는 구조는 아니야.”

“그럼?”

“노심이 그 사람 진동을 기준으로 깨어나. 근데 일곱 자리 모두 사람이 있어야 안정돼. 한 명이 소유하는 게 아니라, 한 명이 시작하고 나머지가 붙잡는 거야.”

“일곱 자리.”

“형, 누나, 무겸 형, 고륜 어르신, 대사님, 나, 초아.”

민초아가 놀라 고개를 들었다. “저도요?”

“네 자리는 기록이야. 누가 어떤 명령을 했는지 남기는 자리.”

초아는 승선 명부를 가슴에 안았다. “그건 할 수 있어.”

“영웅 하나를 기다린 게 아니었구나.” 소년이 바닥의 원을 내려다보았다. “시작할 사람이랑 붙잡을 사람들을 같이 기다렸던 거야.”

서란이 가까이 왔다. “아직 마음에 안 들면 말하지 않아도 돼.”

“누나는 무슨 이름이든 부를 수 있어?”

“네가 고른 거라면.”

“싫은 이름이어도?”

“부르다 보면 좋아질 수도 있지.”

“너무 대충인데.”

“이름보다 사람이 중요하다며.”

서란은 웃지 않았다. 말끝이 떨렸다. 이름을 얻는 순간 동생이 다른 사람이 될까 봐, 자신이 알던 아이와 멀어질까 봐 두려운 것이었다. 소년은 그 두려움을 알아차렸다.

“누나.”

“응.”

“이름이 바뀌어도 내가 아침 굶으면 혼낼 거지?”

“그건 더 심하게 혼낼 거야.”

“그럼 됐어.”

서란의 눈가가 붉어졌다. 그녀는 소년의 어깨를 한 번 두드리고 의공대로 돌아갔다.

청우는 제단 맞은편에 섰다. “이름은 과거를 설명할 수 있지만 미래를 명령할 수는 없습니다.”

“제가 잘못 고르면요?”

“그때 다시 선택하시면 됩니다.”

“문은 한 번만 열릴 텐데요.”

“문보다 사람이 중요합니다.”

“누나랑 똑같은 말씀을 하시네요.”

고륜이 창을 바닥에 세웠다. “나는 예전에 명령을 먼저 보았다. 이번에는 네 선택을 먼저 보겠다.”

무겸은 길게 말하지 않았다. “네가 말하면 우리가 지킨다. 말하지 않아도 지킨다.”

비호가 노심실에서 외쳤다. “대신 너무 오래 끌면 관이 다시 굳어!”

서란이 소리쳤다. “재촉하지 마!”

“기계 사정도 중요하다고!”

긴장 속에서 웃음이 터졌다. 민초아까지 웃었다. 소년은 그 소리를 들었다. 이름을 받는 자리에 울음과 엄숙함만 있을 필요는 없었다. 이 사람들이 곁에 있다면 이름은 족쇄가 아니라 약속이 될 수 있었다.

동이 틀 무렵, 절벽 바깥의 첫 빛이 수로를 따라 들어왔다. 유룡의 선체에 푸른 선이 희미하게 드러났다.

소년은 오른손을 황동 인장 위에 올렸다. 차가운 금속이 손바닥에 닿았고, 청염기관이 크게 뛰었다. 푸른 빛이 손목을 타고 제단으로 흘렀다. 황동 인장의 백룡문이 밝아졌고, 일곱 자리의 원이 차례로 켜졌다.

“노심 밸브 연다!” 비호가 외쳤다.

“침 준비됐어.” 서란이 침을 쥐었다.

“골조 아래 섰다.” 무겸과 고륜이 흔들리는 보 아래에 섰다.

“염주를 끼우겠습니다.” 청우가 제단 홈에 염주를 넣었다.

“첫 장 펼쳤어요.” 초아가 승선 명부를 열었다.

기계음이 다시 물었다. “승선자의 이름을 말하라.”

소년은 입을 열었다. 처음에는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목 안에 열여덟 해의 침묵이 걸려 있었다. 그는 숨을 삼키지 않고 그대로 내보냈다.

“나는….”

청염이 손바닥 아래에서 요동쳤다. 제국이 회수할 물건이라고 부르던 백유강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소년은 그 말을 밀어냈다. 이 이름은 가문의 소유권도, 황실의 명령도 아니었다.

“백민(白民)이다.”

짧은 선언이 조선소를 울렸다. 정적이 왔다.

“백민아.” 가장 먼저 서란이 이름을 되불렀다. 울음인지 웃음인지 모를 얼굴이었다.

“백민 형!” 비호가 노심 아래에서 외쳤다.

“백민.” 무겸의 목소리가 뒤를 이었다.

“백민.” 고륜이 허리를 숙이며 불렀다.

“백민.” 민초아가 마지막으로 조그맣게 따라 했다.

“권력의 백이 아니라 죄를 밝히는 흰빛.” 청우가 합장한 채 나직이 덧붙였다. “백성 위가 아니라 백성 가운데 남겠다는 이름이군요.”

황동 제단은 이름만 기록하지 않았다. 일곱 자리의 원 안에 각자의 맥과 손의 진동이 짧게 새겨졌다.

“한 사람 피로 문을 찾았지만, 배가 받아들인 건 일곱 사람의 동의야.” 비호가 압력계를 보며 말했다.

“다행이다.” 백민이 숨을 내쉬었다. “훗날 내가 잘못된 명령을 내려도, 멈춰 세울 자리가 배 안에 있다는 거니까.”

“이제 진짜 깨운다!” 비호가 주먹을 들어 보였다.

“천천히 해.” 서란이 말했다.

“이백 년 기다린 배한테 천천히가 되겠어?”

“안 되면 네 귀를 잡고라도 천천히 시켜.”

처음에는 불이라기보다 숨에 가까운 소리였다. 노심 안쪽에서 공기가 길게 빨려 들어갔고, 선체의 관들이 차례로 떨었다. 유룡의 푸른 눈이 가느다랗게 열렸다가 다시 감겼다.

“박동 하나.” 비호가 노심실 바닥에 귀를 댔다.

“이쪽도 하나.” 서란이 백민의 손목에서 맥을 셌다. “근데 어긋나. 배가 빠르면 네가 늦고, 네가 안정되면 배가 급해져.”

“점화 박자는 기록에 이렇게 적혀 있다.” 고륜이 일지를 읽었다.

“부두 고정쇠 넷, 이상 없다.” 무겸이 확인했다.

“누가 뭘 했는지 다 적고 있어요. 실패해도 다음엔 안 틀리게요.” 초아가 말했다.

청우가 염주알을 공명홈에 돌려 끼우자 낮은 종소리가 선체를 한 바퀴 돌았다.

“백민아, 내 숫자만 들어.” 서란이 말했다. “하나에 들이쉬고, 둘에 멈추고, 셋과 넷에 내쉬어.”

백민은 눈을 감고 서란의 목소리, 손목의 맥, 가슴 안의 떨림만 좁게 붙잡았다. 하나에 차가운 공기가 폐로 들어왔다. 둘에 노심의 푸른 빛이 손바닥 아래에서 멈췄다. 셋, 넷에 숨을 내보내자 유룡도 측면 배기관으로 오래 묵은 먼지를 토했다.

“맞았어! 다시!” 비호가 주먹으로 바닥을 쳤다.

두 번째 호흡에는 선수의 등불 하나가 켜졌다. 세 번째에는 압력계 바늘이 바닥에서 떨어졌다. 네 번째에는 선체 외판 사이로 푸른 선이 물결처럼 번졌다.

“오십 년 전엔 닫히는 소리만 들었는데.” 고륜이 자신도 모르게 멈췄던 숨을 천천히 내쉬었다. “이번엔 여는 숨소리를 듣는구나.”

다섯 번째 박동에서 유룡이 백민의 리듬을 따라왔다. 여섯 번째에는 둘의 간격이 완전히 겹쳤다. 백민의 손바닥 위로 오래된 손금 자국과 자신의 손금이 겹쳐 비쳤다.

‘나보다 먼저 여기 선 사람들도 무서웠겠지. 배가 안 깨어날까 봐, 깨어난 뒤 뭘 해야 할지 몰라서.’ 그는 생각했다. ‘그래도 그들이 남긴 장치엔 다음 사람을 복종시키는 명령보다 함께 움직이게 하는 빈자리가 더 많다.’

그는 그 빈자리를 동료들의 목소리로 채웠다. 노심의 열은 혼자 감당할 불길이 아니라 여러 관으로 나누어 흐를 힘이 됐다. 이름 선언은 끝이 아니라 일곱 사람이 처음으로 같은 박자에 들어선 순간이었다. 이름은 혼자 말했을 때보다 다른 이들의 목소리를 입었을 때 더 무거워졌다. 그러나 감당할 수 없는 무게는 아니었다. 일곱 사람이 나누어 들고 있었다.

그 순간 노심 깊은 곳의 봉인막이 갈라졌다. 푸른 불이 심장 모양의 투명관 안에서 둥글게 피어났다. 작고 조용한 불꽃이었지만, 조선소의 모든 관이 그 빛에 한꺼번에 응답했다.

유룡의 노심에 불이 붙었다. 먼 쪽 등불부터 차례로 살아났다. 선체의 비늘 장갑이 하나씩 떨렸고, 측면 추진기 안에서 이백 년 묵은 톱니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굉음이 조선소 천장을 때렸다.

점화는 곧 폭주로 바뀌었다.

“바늘이 끝까지 올라갔어! 배기 막혔어! 안쪽 관이 굳었어!” 비호가 밸브에 매달렸다.

푸른 불이 노심실 틈에서 분출했다. 선체가 부두 고정쇠를 잡아당겼고, 골조 위의 쇠사슬이 끊어졌다. 무겸과 고륜이 양쪽에서 떨어지는 보를 창대로 받쳤다.

“사람부터 빼!” 무겸이 외쳤다.

“아니, 자리를 지켜야 해!” 비호가 소리쳤다. “하나라도 빠지면 출력이 한쪽으로 몰려!”

“손이 안 떨어져!” 백민의 손바닥이 제단에 붙은 듯했다. 청염이 몸에서 빠져나가 노심으로 빨려 들어갔다. 시야가 푸르게 물들고 가슴이 타올랐다.

서란의 침 세 자루가 등 뒤 혈에 꽂혔다. “내 목소리 들어.”

“들려.”

“박동 줄여. 배가 아니라 네 심장부터.”

백민은 숨을 셌다. 첫 숨은 불규칙했고, 둘째는 짧았다. 셋째에 청염심법의 흐름을 좁혔다. 배가 요구하는 출력을 전부 주지 않고 숨마다 나누어 보냈다.

비호가 배기 밸브를 망치로 내리쳤다. 한 번, 두 번. 열리지 않았다.

“비호! 왼쪽 아니야!” 민초아가 승선 명부에서 오래된 정비 기록을 찾아냈다. “비상 배기는 선수 아래라고 적혀 있어!”

“몇 번째 관?”

“푸른 줄 세 개 아래, 검은 손잡이!”

비호는 바닥을 미끄러져 선수 쪽으로 달렸다. 검은 손잡이는 녹으로 굳어 있었다. 청우가 철장 끝을 걸었다.

“하나, 둘, 셋에 당기겠습니다.”

“대사님, 그냥 당겨요!”

“셋.”

손잡이가 부러질 듯 휘다가 갑자기 열렸다. 고압 청염 증기가 수로 쪽으로 뿜어지며 조선소 전체가 푸른 안개에 잠겼다. 압력계 바늘이 조금 내려왔다. 그러나 선체 진동은 멈추지 않았다.

“부두 고정쇠가 버티지 못한다!” 고륜이 외쳤다.

“왼쪽 주관 압력 급상승! 이백 년 굳은 관들이 한꺼번에 압력을 받고 있어!” 선수 아래에서 파열음이 났고, 선미에서 검은 증기가 솟았다.

“억지로 손을 떼면 나랑 노심 중 하나가 폭주해! 나는 여기서 못 움직여!”

“그럼 형은 숨만 맞춰!” 비호가 공구 상자를 들고 선저로 뛰었다. “나머지는 우리가 해!”

무겸은 갑판의 수동 배출기를 열려 했다. 녹슨 손잡이가 돌아가지 않자 창대를 끼워 지렛대로 눌렀다. 쇠가 휘고 어깨가 비명을 질렀지만, 세 번째에 밸브가 열렸다. 고압 증기가 천장으로 솟았다.

“첫 압력은 선수로 보내지 마라! 측면 추진관 둘을 먼저 깨워라!” 고륜이 봉인 일지의 비상 점화 순서를 읽었다.

“쪽수마다 표시해 둘게요. 바로 찾으시게!” 초아가 고륜이 넘기는 장마다 표식을 붙였다.

청우가 좌우 균형추를 철장으로 동시에 쳤다. 서로 다른 음이 울리자 선체 안의 톱니가 맞물렸다.

“배보다 네 호흡이 먼저야. 넷에 들이쉬고, 여섯에 내쉬어.” 서란이 백민의 맥을 잡았다. 노심이 빨라질 때마다 그의 심장도 따라 뛰었다. 둘의 간격이 무너지면 몸이 먼저 타 버릴 수 있었다.

“듣고 있어.” 백민은 선체의 진동이 뼛속으로 들어오는 와중에도 서란의 손가락이 세는 박자를 붙잡았다. 푸른 불꽃이 한 번 크게 솟았다가 낮아졌다.

“젠장, 조임쇠가 안 맞아!” 선저에서 비호가 욕설을 내뱉었다.

초아가 예비 부품 상자를 뒤지다 규격이 다른 쇠고리 두 개를 꺼냈다. “이거 이어 쓰면 안 돼?”

“크기가 달라.”

“가운데를 천으로 감으면?”

“……완벽하진 않아도 여섯 시간은 버티겠다.” 비호는 의공실에서 내열 붕대를 가져와 두 고리 사이에 감고, 송진과 금속가루로 틈을 막았다. “초아, 압력계 봐!”

“빨간 선 아래로 내려와요!”

측면 추진관이 차례로 깨어났다. 마른 조선소라 추진익은 펴지지 않았지만, 유룡은 자기 팔다리를 확인하듯 한 번 떨었다.

쇠사슬 하나가 끊어져 무겸의 어깨를 후려쳤다. 갑옷이 찢어지고 피가 났지만 그는 창을 놓지 않았다. 반대편 보를 받치던 고륜의 발이 미끄러졌다.

“내가 출력을 끊으면 멎을 거야.” 백민이 제단에서 손을 떼려 했다.

서란이 손목을 눌렀다. “도망치지 마.”

“이러다 다 다쳐.”

“우리가 여기 있는 이유가 뭔데.”

“누나.”

“네가 시작하고 우리가 붙잡는다며.”

제단의 구조와 같은 말이었다. 백민은 손을 더 깊이 눌렀다. 청염을 억누르지 않고 유룡의 진동에 맞췄다. 배를 복종시키는 대신, 서로의 박동이 만나는 지점을 찾았다.

쿵.

가슴이 뛰었다.

쿵.

노심이 답했다.

“너무 빨라! 늦춰!” 비호가 밸브를 조절했다. 서란은 기맥의 열을 빼냈고, 청우는 염주로 진동의 떨림을 눌렀다. 무겸과 고륜은 골조를 지켰으며, 초아는 압력 변화와 명령을 빠짐없이 적었다. 마침내 심장과 노심이 같은 주기로 맞물렸다.

백민의 손바닥 아래 황동 인장이 뜨거워졌다. 음성관이 새로운 질문을 냈다.

“노심 자리, 동의하는가.”

“동의!” 비호가 선저에서 소리쳤다.

“항법 자리, 동의하는가.”

“동의한다.” 고륜이 대답했다.

“의공 자리, 동의하는가.”

“동의해.” 서란은 백민의 맥에서 손을 떼지 않은 채 말했다.

“갑판 자리, 동의하는가.”

“동의한다.” 무겸이 휘어진 창을 세웠다.

네 목소리가 모이자 제단의 잠금이 풀렸다. 백민의 손이 비로소 떨어졌다. 휘청이는 그의 어깨를 청우가 받쳤다. 유룡의 푸른 눈이 완전히 열렸고, 진동이 고르게 바뀌었다. 선체 표면의 푸른빛이 어둠과 섞이더니 배의 윤곽이 잠깐 물결처럼 흐려졌다.

“광휘은신 첫 반응이야. 살아났어.” 비호가 웃음을 터뜨렸다.

백민의 무릎이 꺾였다. 서란이 뒤에서 받쳤다. 이번에는 의식을 잃지 않았지만 손가락 하나 움직일 힘이 없었다.

“이름 얻자마자 쓰러지면 멋없는데.” 백민이 중얼거렸다.

“멋있으려고 한 거 아니잖아.”

“그래도 조금은.”

“아침부터 굶어서 그래.”

멀리서 비호가 웃었다.

굉음이 잦아든 조선소에 살아 있는 배의 낮은 박동이 남았다. 유룡은 아직 부두에 묶여 있었고, 관 곳곳에서 증기가 샜으며, 선실은 먼지투성이였다. 이제 막 숨을 돌린 작은 원형기였다. 백민은 제단 곁에 앉아 동료들을 보았다. 무겸의 어깨에서는 피가 났고, 고륜의 손은 떨렸으며, 비호의 얼굴은 그을렸다. 서란의 손가락에는 새 화상이 생겼고, 청우의 철장 끝은 휘었으며, 초아의 기록지는 땀에 젖었다. 이름의 값은 혼자 치르는 것이 아니었다.

“다들 미안—”

서란이 입을 막았다. “그 말 말고.”

백민은 잠깐 생각했다. “고마워.”

“그건 괜찮네.”

그는 제단에 등을 기대고 눈을 감았다. 도망치는 잠이 아니었다. 자기 이름을 부른 뒤 처음 맞는 짧고 깊은 잠이었다.

“형…… 아니, 백민 형.” 비호는 처음 두 번은 무심코 “형”만 불렀다가 세 번째에 이름을 덧붙였다. “입에 붙으려면 좀 걸리겠다.”

“전 옛 이름 안 지우고, 한 줄 아래에 새 이름 쓸 거예요.” 초아가 기록지의 인물란을 고쳐 적었다. “지나온 걸 없애는 게 아니라 그 위에 책임을 더하는 거니까요.”

“나도 그렇게 적으마. ‘혈통이 명령한 이름이 아니라, 본인이 선택한 뜻으로 발화함.’” 고륜이 봉인 일지 첫 장에 날짜와 함께 썼다. “계승자라는 말은 쓰지 않겠다. 그 말은 또 다른 왕좌가 될 수 있으니.”

서란은 잠든 백민의 손바닥에 남은 얕은 화상에 약을 발랐다. 새 이름을 속으로 여러 번 불러 봤다. 낯설었지만 사람은 그대로였다.

“이름 바꿨다고 습관까지 새로워지는 건 아니지. 아프면 숨기고, 미안하단 말부터 하고, 남 살리려다 자기 몸 태우는 고집까지.”

그녀가 혼잣말하자 비호가 들었다. “그건 우리가 계속 고치면 돼.”

“사람을 기계처럼 말하지 마.”

“기계도 사람도 같이 고치는 거지.”

두 사람은 목소리를 낮춰 웃었다.

“해수문 쪽 관에서 가끔 불규칙하게 떨려.” 비호가 피로한 눈으로 압력계를 확인했다. “그래도 바늘은 안전선 아래야. 점화 직후 잔진동이겠지.” 그는 기록만 남겼다. 누구도 잠들어 있던 항구 전체가 배의 신호를 따라 깨어나고 있다는 사실까지는 알지 못했다.

바다 쪽 첫 번째 격벽 뒤에서, 이백 년 동안 굳은 쇠사슬이 아주 조금 움직였다.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비호의 고함이 조선소를 흔들었다.

“다 일어나!”

백민이 눈을 떴다.

“해상 수로 압력계 봐! 점화랑 같이 천부항 전체가 깨어나서 바다 쪽 격벽을 열고 있어. 근데 이백 년 굳은 격벽이 제대로 안 움직여!” 붉은 바늘이 위험선 위로 올라갔다. 비호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형, 이건 배만 깨운 게 아니야. 항구 전체를 깨운 거야.”

멀리 바다 쪽에서 거대한 충격음이 울렸다.

쾅.

지하 조선소 벽이 흔들렸다. 해수문 중앙에 검은 금이 생겼고, 그 틈으로 차가운 바닷물이 가늘게 뿜어져 들어왔다.

“바깥 수압이 예상보다 두 배다.” 고륜이 해수문 위의 오래된 눈금을 읽었다. “이백 년 사이 바닷물 높이가 변했고, 산 아래 땅도 가라앉은 모양이다. 옛 설계도만 믿고 문을 열면 조선소와 배가 한꺼번에 잠긴다.”

무겸이 갑판 사슬을 풀려 하자 비호가 막았다. “지금 배를 띄우면 천장에 부딪혀! 수위를 단계별로 올려야 해.”

“격벽이 그 시간을 주겠느냐?”

“안 주니까 만들어야지.”

백민은 금이 번지는 속도를 보았다. 첫 임무는 적을 베는 것도, 바다로 나가는 것도 아니었다. 그는 제단에서 내려와 젖은 바닥에 본국검 끝으로 세 줄을 그었다.

“해수문, 배수로, 유룡의 노심. 세 곳을 동시에 살린다. 어느 하나도 버리지 않는다.”

비호가 헛웃음을 냈다. “첫날부터 제일 어려운 걸 고르네.”

“쉬운 길 있었어?”

“없었지.”

동료들이 각자의 자리로 흩어졌다. 막 깨어난 항구는 대답 대신 두 번째 충격을 토해 냈다. 금이 사람 키만큼 길어졌다.

“여섯 시간 안에 격벽이 무너져!” 비호가 압력계를 보며 외쳤다.

백민은 막 깨어난 유룡을 올려다보았다.

이름을 얻은 첫날, 그에게 주어진 일은 출항이 아니라 침몰하기 전에 배를 살려 내는 것이었다.

— 話 40 終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