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점 · 강민 — 균열·낙인 단계

의공사의 진단

第1部 · 話 6 · 검령성 · published

海東曆: 201년 4월 30일 · 시점: 유서란

의공실(醫工室)에는 새벽부터 피 냄새보다 쇠 냄새가 먼저 풍겼다.

삶은 붕대가 줄에 걸려 김을 뿜었고, 석조 홈에는 흑영(黑影) 자객의 팔꿈치에서 빼낸 검은 나사못이 잿빛 물에 잠겨 있었다. 물은 세 번을 갈아도 맑아지지 않았다. 창밖에서 망치 소리가 났다.

“말뚝은 반 뼘 더 깊이! 어젯밤처럼 밀리면 또 뽑힌다!”

장무겸(張武謙)의 목소리였다. 모두가 살아남은 것을 다행이라 했지만, 유서란(柳瑞蘭)은 그 말이 얼마나 얇은 붕대 같은 것인지 알고 있었다. 밤새 무겸의 어깨를 꿰매고 설무진(雪武陳)의 옆구리에서 쇳조각을 뽑았다. 죽은 자는 되살릴 수 없다. 그것이 의공사가 가장 먼저 배우는 겸손이었다.

방 한가운데에는 강민(剛民)이 앉아 있었다.

“누나, 한숨도 못 잤지?”

“너는 잤니?”

“……못 잤어.”

“그럼 둘 다 나쁜 환자네. 강민아, 상의를 조금 더 풀어.”

“벌써 다 풀었는데.”

“앞섶 말고. 왼쪽 가슴까지.”

강민이 멋쩍게 웃으며 수련복을 벌렸다. 서란의 눈은 어깨의 멍에 머물지 않았다. 그녀가 보는 곳은 왼쪽 가슴과 하복부 사이, 사람의 기맥이 가장 조용해야 할 자리였다.

“누나, 이 정도는 그냥 타박상이야. 비호가 마당 배관 다시 물리느라 밥도 못 먹고 있는데, 내가 가서 도와야지. 어제도 손을 또 데었던데.”

“비호는 네가 없어도 망치질을 해. 네가 쓰러지면 그 애가 망치질을 멈추고.”

강민이 입을 다물었다. 이 아이에게는 설득보다, 누군가가 자기 때문에 멈춘다는 말이 가장 잘 먹혔다. 서란은 그 틈에 청동 감응띠를 손목에 감았다. 띠의 황동선은 책상 위 청동 진맥기(靑銅診脈器)로 이어졌다. 황실 의공원에서 쓰던 구형이었다.

“새 장비도 있다던데, 왜 하필 그 낡은 걸 써?”

“새 건 숫자가 많고 소리가 가벼워. 오래된 건 오차가 적어.”

“이게 내 안을 다 읽는 거야?”

“읽는 게 아니라 재는 거야. 맥이랑 기운 상태를. 가만있어 봐.”

치익, 그녀가 실린더를 1mm 열자 약한 증기가 태엽을 밀었다.

“첫 번째 바늘, 손목 맥. 빠르지만 안정적이야. 두 번째, 폐맥. 거칠어도 위험 범위는 아니고.”

“밤새 연기 마셨으니까요. 그럼 저 멀쩡한 거 맞죠?”

“아직 두 개 읽었어. 세 번째.”

세 번째 바늘은 척추를 타고 오르는 내공의 떨림을 쫓았다. 곡선을 그리던 바늘이 중간에서 덜컥 멈췄다.

“방금 뭐 걸렸어?”

“아무것도. 숨 참지 마.”

“참는 거 아니야. 누나가 갑자기 진지한 얼굴을 해서.”

“원래 진지해. 모르게 쉬어.”

강민의 기운은 강물이 아니라 피스톤처럼 밀고 당겼다. 서란은 눈치채지 못할 만큼만 손목을 바꿔 잡고 탐침을 가슴으로 옮겼다. 의공사의 손이 떨리면 환자가 먼저 불안해진다.

“네 번째. 여기 누르면 어때?”

“그냥 눌리는데.”

“아파?”

“아니. 간지러운데.”

정말로 그렇게 느끼는 얼굴이어서 더 무서웠다. 통증은 몸이 이상을 알리는 신호인데, 이 아이의 몸은 이만큼 눌러도 아무 반응이 없었다.

“심박과 별개. 흉부 중심부에서 역회전성 공명. 청염 잔향과 연동.”

“누나, 방금 뭐라고 중얼거렸어?”

“진단 기록. 마지막이야. 배 위에 청동판 올릴 거니까 차가워도 움직이지 마.”

“차가운 건 괜찮은데 간지러워서…… 큭.”

“움직이지 말라고 했다.”

하단전(下丹田) 위에 얇은 청동판을 얹고 손바닥을 겹쳤다. 보통 수련생은 이 지점에서 바늘이 크게 흔들린다. 그런데 강민의 마지막 바늘은 움직이지 않았다.

탁.

서란에게는 문이 잠기는 소리처럼 들렸다. 막힌 혈로라면 저항이 기록되고, 찢어진 단전이라면 흔들림이 남는다. 이곳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아니, 아무것도 없도록 만든 자리가 있었다. 코테르(機核)의 열을 받아들일 매끈한 수용부, 훗날 청염기관(靑炎機關)이 들어앉을 자리였다.

“……비어 있어.”

“응? 뭐가?”

“아니, 바늘이 서 버렸다고. 기계가 오래돼서 그런가 보네.”

서란은 모든 소리를 잃었다. 열여섯 살 겨울, 황실 의공원 19℃의 지하 서고에서 본 금서 한 장이 눈앞에 펼쳐졌다.

“백씨 혈맥 특수 적응체. 단전 결손으로 위장한 기계성 기맥 수용부. 청염 반응 전까지 무증상.”

어린 서란이 그 문장을 소리 내어 읽자 지도 의관이 책을 덮었다.

“이게 치료로 보이냐. 끝까지 읽었으면 말해 봐.”

“공정으로 보입니다. 아이가 자라기를 기다렸다가 몸에 불을 넣는…… 사람을 재료로 쓰는 공정요. 이걸 쓴 사람은 환자를 한 번이라도 안아 본 적이 있을까요.”

“없겠지. 그러니 쓸 수 있었을 거다. 사람을 살리는 기술과 사람을 도구로 삼는 기술은 뿌리가 같다. 의공사는 언제나 자기 손이 무엇을 향하는지 살펴야 해. 병을 향하는지, 사람의 미래를 향하는지.”

그때는 이해했다고 믿었다. 하지만 그 죄를 몸에 지닌 아이가 밥을 굶으면 혼내야 하는 동생 같은 얼굴로 앞에 앉아 있자, 서란은 학문만으로는 버틸 수 없었다.

“누나? 왜 그래?”

강민이 눈을 떴다. 눈에는 불안보다 미안함이 먼저 떠올라 있었다. 서란은 안전 밸브를 돌려 흰 김을 뿜게 했다. 바늘이 증기에 밀려 흔들리는 척했다. 이 아이에게는 지금 진실보다 버틸 시간이 필요했다.

“이틀 전 충격 때문에 기맥이 안쪽에서 굳었어. 깊은 내상이야. 당장 죽을 병은 아니지만 오늘은 수련 금지. 보일러 밸브도 금지. 비호 돕는다고 배관 밑으로 기어 들어가는 것도 금지.”

“하루 종일? 점심 전까지만이라도……”

“안 돼.”

“비호 혼자 하면 배관이 또 샐 텐데.”

“새면 비호가 고쳐. 그게 비호 일이야.”

“그럼 밥상은 옮겨도 돼?”

“밥상은 네가 먹는 용도로만 허락한다.”

강민이 조금 웃었다. 서란은 약장 맨 아래칸 안쪽 벽을 손톱으로 세 번 두드렸다. 태엽 잠금이 풀리고 자줏빛 도자기 병과 황금기공탕(黃金氣功湯) 분말, 청동 침 세 자루가 나왔다. 그녀는 분말을 종이에 접어 혀로 적시는 대신 새 붕대를 잘라 묶었다.

“이거 먹으면 다 나아?”

“낫는 약이 아니라 늦추는 약이야. 몸이 스스로를 태우는 속도를. 그래서 하루 두 번. 따뜻한 물에 타서 마셔. 쓴맛이 올라와도 혀로 누르지 말고 그냥 삼켜. 그리고 네가 괜찮다고 느껴도 괜찮은 게 아니니까, 오늘은 내 말을 들어.”

“누나가 만든 약은 쓴맛이 두 번 와. 먹을 때 한 번, 먹고 나서 마음이 무거워질 때 한 번.”

“마음은 내가 책임 안 져.”

“누나가 그렇게 말하면 무섭잖아.”

“무서워하라고 말하는 거야.”

강민이 약포지를 두 손으로 받았다.

“정말 큰일은 아니지?”

서란은 거짓말을 싫어했다. 그러나 지금은 아는 것을 다 말할 수 없었다. 그녀는 그의 머리카락에 묻은 재를 손끝으로 털어 주었다.

“큰일이 되지 않게 내가 붙잡고 있어.”

“그럼 믿고 갈게, 누나.”

그 대답은 거짓말이 아니었다. 강민이 문을 열자 찬 공기와 흙먼지 냄새가 밀려들었다. 마당 끝에서 단비호(段飛虎)의 목소리가 날아왔다.

“형, 여기 나사 좀 잡아 줘!”

그러다 문가에 선 서란을 본 모양이었다.

“아니, 잡지 마! 내가 잡을게!”

강민은 피식 웃고는 문을 닫았다.

문이 닫히자마자 서란은 책상 모서리를 붙잡았다. 손아귀가 하얗게 질렸다. 무너지고 싶었지만 무너질 시간이 없었다. 진맥기는 태엽도 압력관도 정상이었다. 고장 난 것은 기계가 아니었다.

기록판을 새것으로 바꿔 끼우고, 소리 내어 읽으며 적었다. 그래야 손이 떨리지 않았다.

“강민, 해동력 201년 4월 30일, 1차 심부 진단. 손목 맥, 흉부 역회전, 하단전 무반응.”

마지막 줄에서 오래 망설였다.

“청염기관 자리 확인. 본인 고지 보류. 폭주 대비 필요.”

적고 나니 숨이 막혔다. 이 한 줄이 소년의 앞날을 정해 버릴지도 몰랐다.

그때 문이 조금 열리고 비호가 얼굴만 내밀었다. 평소라면 허락도 없이 굴러 들어왔을 아이가 오늘은 문턱에서 멈춰 섰다. 코끝에는 윤활유가, 왼손에는 헝겊 꾸러미가 들려 있었다.

“들어와. 형은 갔어.”

“진짜요? 확인하고요.” 비호가 진단대를 힐끗 보고서야 꾸러미를 책상에 올렸다. “누나, 이거 형한테서 나온 건 아니고, 형 근처에서 나온 거예요.”

헝겊이 펼쳐지자 휘어진 황동 파이프 조각 셋과 까맣게 그을린 압력계 바늘 하나가 나왔다. 첫 방어전이 끝난 뒤 연무장 잔해를 치우다 주운 것들이었다.

“열에 녹은 흔적이 없는데 나선으로 비틀려 있죠? 바늘도 끝만 푸르고요. 이거 들어 봐요.”

비호가 손톱으로 파이프 절단면을 톡톡 쳤다. 낮고 맑은 소리가 났다. 멀쩡한 파이프를 치자 소리가 탁했다.

“소리가 다르네.”

“다른 쇠하고 달라요. 형이 가까이 지나가면 이것들만 먼저 울어요. 어젯밤엔 형이 복도를 지나가니까 셋이 동시에 딸랑거렸어요. 시간도 적어 놨고요.”

“그것만으로도 이상한데, 뭐가 더 있니?”

“무서운 건, 제가 방금 마당 끝에 숨겨 놓고 왔는데도 진동이 안 멈췄다는 거예요. 형이 움직이는 방향이랑 상관없이요.”

“그게 언제부터였니?”

“첫 방어전 다음 날부터요. 형이 어디 있는지 몰라도 울었어요. 형을 찾는 게 아니라, 형 안에 있는 뭔가에 이것들이 반응하는 것 같아요.”

서란은 파이프를 진맥기 옆에 놓고 감응 바늘을 세웠다. 방금 적은 강민의 역회전 눈금을 맞추자 바늘이 천천히 움직였다. 그에게서 떼어 낸 것도 아닌 쇠가 그의 심장 곡선과 같은 신호를 냈다.

“몇 번이나 확인했어?”

“세 번이요. 한 번은 일부러 멀리서, 한 번은 형 몰래요. 형한테 말하면 형이 또 ‘괜찮아’ 할 거잖아요.”

“잘했어. 이걸 누구한테 말했니?”

“아무한테도요. 누나가 처음이에요.”

“앞으로도 나한테 먼저. 형한테도 다른 사람한테도 아직은 말하지 마.”

“그래도 형한테 말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아직은 안 돼. 대신 너는 본 걸 계속 적어. 감으로 넘기지 말고, 언제, 어디서, 어떤 쇠가, 어떤 소리를 냈는지 전부. 네 기록이 나중에 형을 살릴 수 있어.”

“정말요?”

“정말이야. 의공사는 몸을 읽고, 도공은 쇠를 읽지. 지금 강민한테는 둘 다 필요해.”

비호가 고개를 세게 끄덕이고 문가에서 돌아보았다.

“누나, 형이 무서운 게 아니라 형을 노리는 것들이 무서운 거죠?”

“그래.” 이번에는 망설이지 않았다. “그러니까 우리는 형을 무서워하지 않기로 하자.”

“알았어요!”

“비호야.”

“네?”

“밥 먹고 해. 네가 굶으면 형이 또 자기 탓을 해.”

“누나도요!”

비호가 달려 나가자 서란은 기록판에 새 항목을 달았다. ‘외부 금속 잔해의 강민 반응 추종. 단비호 관찰 기록과 대조 필요.’ 그 옆에 의공원식 위험 표시인 작은 점 하나를 찍었다. 아직 빨간 원을 그을 수는 없지만 더는 평범한 이상으로 넘길 수 없다는 뜻이었다.

그녀는 서랍에서 자객에게 회수한 톱니를 꺼냈다. 직경 2cm 남짓, 검은 강철과 붉은 코테르 가루를 섞은 합금이었다. 확대 렌즈로 안쪽의 가는 홈을 읽었다.

“추적. 판독. 식별.”

황실 의공원의 생체 표식과는 계통이 달랐지만 목적은 같았다.

“흑영은 강민을 죽이러 온 게 아니야. 무엇인지 확인하러 온 거지. 확인이 끝났다면 다음은 탐색이 아니라 회수겠고.”

그녀는 청동 침 세 자루에 가죽 덮개를 씌워 안쪽 주머니에 넣었다. 멸균수는 모자라고 냉각판은 둘뿐이며 증기 압박기는 낡았다.

“그래도 준비는 해야지. 희망이 없어도 준비하는 게 내 습관이니까.”

◆

창밖에서는 수련생 둘이 부서진 현판을 다시 걸고 있었다.

“어깨 더 올려! 내가 밟고 올라갈게!”

“야, 네 발이 내 귀를 밟고 있어!”

“참아, 거의 다 올라왔어! 글자 비뚤어진 건 어떡해?”

“비뚤어져도 우리 도장이야! 일단 걸어!”

검령성(劍靈城)은 깨진 곳을 여러 사람이 손으로 붙잡아 가며 버티는 곳이었다. 그래서 서란은 더 두려웠다.

해 질 녘까지 그녀는 강민을 멀리서 세 번 더 보았다. 첫 번째는 비호의 공구상자를 들어 주려다 등짝을 맞는 모습이었다.

“형은 가만있어! 공구상자는 내 거라고!”

“들어만 주겠다니까!”

두 번째는 무겸의 어깨 붕대를 갈아 주는 모습이었다.

“민아, 붕대는 감는 거지 묶는 게 아니다.”

“감았는데요?”

“그건 묶은 거다.”

세 번째는 설무진의 거처 앞이었다. 강민은 문을 두드리려 손을 들었다가 내렸다.

“사부님, 저……. 아니다. 내일 여쭤보자.”

소년은 무언가를 묻고 싶어 했다. 어른들은 대답을 미루고 있었다.

저녁 아홉 시, 산안개가 다시 내려앉았다. 서란은 기록판을 들고 설무진의 거처로 향했다. 화로 곁에서 노스승은 불 붙이지 않은 담뱃대를 쥐고 있었고, 무릎 위에는 본국검(本國劍)이 놓여 있었다.

“서란아.”

“진단 결과를 보고드리겠습니다.”

서란은 앉지 않았다. 제자가 아니라 의공사가 온 것이다.

“강민의 하단전 좌표에서 정상 기맥 신호가 완전히 끊겼습니다. 단전 파열도, 기맥 폐색도 아닙니다. 인위적인 빈자리입니다. 흉부 역회전 공명과 이어져 있고, 코테르 반응을 받는 생체 수용부로 판단합니다.”

설무진은 눈을 감았다. 놀라지 않았다. 그 반응이 서란을 더 화나게 했다.

“알고 계셨군요.”

“짐작했다.”

“짐작하셨다면 그 아이가 진맥 내내 웃었다는 것도 아시겠군요. 아프지 않다고, 간지럽다고요.”

“……간지럽다고.”

“그뿐이 아닙니다. 연무장 잔해 속 쇠붙이가 강민의 심장 곡선을 따라 울립니다. 비호가 찾아냈습니다.”

“……그 아이가.”

“짐작으로 넘어갈 일이 아닙니다, 사부님. 아이의 몸속에 장치를 들일 자리가 있습니다. 자연 발생이 아닙니다. 누군가 만들었습니다. 아주 오래전부터, 아주 정확하게요.”

“그래서 내가 이곳에 숨겼다.”

“숨긴다는 말은 안전할 때만 보호가 됩니다. 적은 이미 문 앞까지 왔습니다. 흑영은 강민의 심장 반응을 확인했습니다. 이 톱니가 남긴 신호가 그 증거입니다. 확인했으니 다음에는 데려가려 할 겁니다.”

“그 톱니는 어떻게 했냐.”

“제가 보관 중입니다. 아직 반응은 없습니다.”

설무진의 손가락이 검집 위에서 멈췄다. 아주 느린 움직임이었지만 서란은 그 손이 떨리는 것을 보았다.

“내가 말하지 않은 건 겁이 나서가 아니다.”

“그럼 무엇 때문입니까?”

“말하는 순간, 그 아이가 제 몸을 싫어하게 될까 두려웠다. 강민은 아직 자신을 검령성 수련생으로 안다. 비호의 나사못을 챙기고, 무겸의 창날을 닦고, 네 탕약을 몰래 덜 쓰게 하려고 약장 앞에서 망설이는 아이로 산다. 그 평범함을 조금이라도 더 붙잡아 주고 싶었다.”

그 말은 따뜻했다. 하지만 서란은 숨긴 것이 옳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모르게 한다고 평범한 삶이 지켜지지는 않습니다. 본인이 알고 선택할 수 있어야 합니다. 강민이 아무것도 모른 채 폭주하면, 본인이 선택할 기회만 빼앗은 셈입니다.”

화로의 불이 낮게 튀었다. 설무진은 오래 침묵했다. 밖에서 목책을 두드리는 소리가 세 번 들렸다. 경계 교대 신호, 저녁 열 시였다.

“언제까지 숨기실 생각이셨습니까. 그 아이가 제 몸에서 먼저 알아채기를 기다리실 겁니까?”

“……오늘 밤, 강민을 부르겠다.”

서란은 숨을 멈췄다.

“전부 말할 수는 없다. 그래도 제 몸을 다스리는 데 필요한 진실은 말하마. 청염기관이라는 이름도, 그 자리가 무엇을 기다리는지도. 다만 네가 옆에 있어야 한다. 그 아이가 흔들리면 네 손이 먼저 닿아야 해. 내 검은 적을 막아도 몸 안에서 타는 불은 베지 못한다.”

“그 불이 깨어나면 제가 할 수 있는 건 침 세 자루와 약 한 줌뿐입니다. 오늘은 내상이라고만 둘러댔습니다.”

“그거면 된다. 네가 곁에 있는 것만으로 그 아이에게 힘이 된다.”

“제가 붙잡겠습니다. 그 아이가 몸을 두려워하게 되는 일만은 없게 하겠습니다.”

“서란아.”

“예.”

“그 아이가 나를 원망하면, 막지 마.”

서란은 그 말에서 노스승이 이미 어떤 결말을 예감하고 있음을 느꼈다. 그는 제자의 신뢰와 평범한 식탁을 오늘 밤 제 손으로 무너뜨릴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녀는 고개를 숙였다.

“원망은 살아 있는 사람이 하는 일입니다. 저는 강민이 살아서 원망하게 만들겠습니다.”

설무진의 입가에 희미한 웃음이 스쳤다. 젊은 사람의 단단함을 확인한 늙은 전사의 표정이었다.

“그 말이면 됐다.”

서란은 방을 나섰다. 두 번째 약을 준비하고 진맥기를 재조정해야 했다. 그 일들 덕분에 서란은 오히려 버틸 수 있었다.

그러나 의공실 문을 열자마자 걸음이 멎었다. 감응띠는 누구에게도 감겨 있지 않은데 진맥기의 마지막 바늘이 아주 천천히 왼쪽으로 기울고 있었다. 환자의 몸이 있는 방향이 아니었다. 의공실 바닥 아래, 도장 지하로 이어지는 낡은 배관 쪽이었다.

“……누구야.”

대답은 없었다. 치익, 닫힌 약장 안에서 황금기공탕 병이 가늘게 떨었다. 서란이 뽑아 든 청동 침의 끝이 푸르게 식어 있었다. 뜨거워서가 아니라 너무 차가워서 내는 푸른빛이었다.

그 순간 바닥 밑 어딘가에서, 아주 오래 잠들어 있던 금속이 처음으로 관절을 푸는 소리가 났다.

“지금 이 소리…… 아래에 대체 뭐가 있는 거야.”

진맥기의 유리판 안쪽에 김이 맺히더니 세 글자를 남겼다.

깨워라.

— 話 6 終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