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의 야수, 기갑호(機甲號)의 포효(咆哮)
海東曆: 201년 5월 2일 · 검령성 도장
검령성(劍靈城)의 새벽은 이틀 전보다 더 낮게 가라앉아 있었다.
안개가 처마 밑까지 낮게 깔려 있었다. 증기의 숨결조차 적에게 길을 알려 줄 수 있다는 설무진(雪武陳)의 명으로 보일러 배관은 절반쯤 잠겨 있었다.
강민(剛民)은 회랑에 앉아 본국검(本國劍)을 무릎에 올려 두었다. 황동 실린더는 차갑게 식어 있었다.
“또 혼자 검만 붙들고 있니.”
유서란(柳瑞蘭)이 약낭을 들고 다가왔다.
“그냥 붙들고 있는 게 아니야. 검이 반응하게 맞춰 보는 건데, 반응이 없을 뿐이야.”
“억지로 밀어 넣지 마. 사부님이 뭐라셨어?”
“들으려 하지 말고 먼저 고요해져라, 래.”
“그대로 해.”
“어떻게 고요해져? 지금 이 도장에서.”
“소리를 다 막으려 하지 말고 필요한 소리에만 집중하래. 사부님 말씀이야.”
“이틀째 그러고 있는데……. 누나, 누나가 본 글자 말이야. 깨워라, 라고 했다면서. 그게 뭘 깨우라는 건지 사부님은 아셔?”
약낭을 정리하던 서란의 손이 멈췄다.
“사부님께만 말씀드렸어. 대답은 못 들었고.”
“비호는? 어제부터 얼굴을 못 봤어. 식탁에도, 보일러실에도 없어.”
“……필요한 일을 하고 있어. 밥은 챙겨 줬으니까 걱정 말고 검에나 집중해.”
“누나는 아는 거 있잖아.”
“아는 것과 말해도 되는 건 달라. 이 대답은 비호가 직접 해야 해.”
서란은 더 말하지 않았다. 새벽 세 시 무렵, 북쪽 외벽의 종이 울렸다. 한 번, 두 번. 세 번째 소리는 갈라지며 꺾였다.
“종이…….”
“서쪽이다!”
“서쪽이요? 어제는 정문이었는데!”
장무겸(張武謙)의 고함과 함께 수십 개의 금속 발이 같은 박자로 땅을 밟는 소리가 밀려왔다.
쾅!
“서쪽 버팀목이 밀립니다!”
“버팀목은 버려라! 사람이 먼저다! 오늘은 자객이 아니라 방진이다, 한 기 쓰러지면 셋이 들어온다!”
목인(木人) 자동병 다섯 기가 쐐기처럼 서쪽 외벽을 파고들었다. 안개 속에서 흑영(黑影)의 붉은 안광이 하나씩 켜졌다.
“강철 말뚝이 석축을 밀고 있어요!”
“창은 무릎을 찔러라! 관절만 부수면 선다!”
무겸의 장창이 첫 목인의 관절을 꿰뚫었다. 설무진은 계단 위에서 검을 들었고, 그 짧은 검선이 지나갈 때마다 안광이 꺼졌다.
“무겸, 정문을 지켜라. 흩어지지 마.”
“예, 사부님!”
“강민아! 이쪽 방어선은 무너진다! 움직여!”
서란이 부상자 둘을 밀어내며 외쳤다. 강민은 검을 뽑았다.
“오른쪽에도 붙었어!”
“알아! 네가 왼쪽 막아, 내가 부상자 뺄게!”
“이번에는 해야 해.”
왼발을 뒤로 빼고 단전 아래의 숨을 모았다. 그런데 기운이 코테르(機核) 반응부에 닿는 순간 날카로운 냉기가 손목을 타고 거꾸로 뛰었다.
딱.
“어? 돌아, 제발 돌아!”
실린더는 반 바퀴도 돌지 못하고 멈췄다.
“민아, 위!”
톱니 갈고리가 목을 노리고 내려왔다. 몸을 비틀자 옷자락이 뜯겨 나갔다. 검등으로 팔을 쳤지만 잘리지 않았다.
“왜 지금도 안 되는 거야!”
“검 버려! 몸으로 막고 물러나!”
강민은 첫 방어전의 밤을 떠올렸다. 이를 악물자 잇몸에서 피 맛이 났다. 이번에는 더 많은 사람이 보고 있었다.
그때 자재 창고 바닥에서 철이 긁히는 소리가 났다. 강철 해치가 반쯤 열리고 단비호(段飛虎)의 기름때투성이 얼굴이 튀어나왔다.
“민이 형! 여기야!”
“비호야? 너 거기서 뭘 한 거야!”
“사부님이 숨겨 놓은 통로가 있어! 창고 밑이 그냥 창고가 아니었어! 빨리 내려와!”
“그러니까 거기서 뭘 했냐고!”
“살 길 찾았지! 혼낼 거면 살아서 혼내!”
무겸이 창을 바닥에 꽂고 증기압을 터뜨렸다. 흰 증기가 높이 솟구쳐 정문과 창고 사이를 가로막았다.
“무겸, 아이들을 데리고 내려가라.”
설무진은 뒤돌아보지 않았다.
“사부님은요?”
“문을 닫을 사람이 필요하다.”
목소리는 너무 평온했다. 강민이 계단 입구에서 멈췄다.
“싫습니다. 같이 내려가셔야 합니다.”
설무진의 검끝이 목인 하나를 관통했다. 그가 검을 빼며 말했다.
“강민. 지금 네가 지켜야 할 것은 내 등이 아니다.”
그가 처음으로 반쯤 고개를 돌렸다. 눈빛은 꾸짖음보다 부탁에 가까웠다.
“네 옆에 있는 숨들이다.”
“누나, 먼저 내려가!”
“말하지 말고 발 디뎌!”
서란이 부상자들을 해치 아래로 밀어 넣었고 무겸이 마지막으로 몸을 던졌다. 해치가 내려오기 직전, 강민은 홀로 선 사부의 검에서 백광이 떠오르는 것을 보았다.
철컥. 전장이 철문 하나 너머로 밀려났다.
◆
지하 통로는 좁고 길었다. 벽은 검령성의 석재가 아닌 검은 합금이었고 황동 감응등이 켜졌다. 바닥에는 낮은 철망, 천장에는 응급 배기구.
“급하게 도망치는 사람의 발을 생각한 구조야.”
서란이 중얼거렸다.
“무기를 숨기려고 판 길이 아니야.” 강민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누군가를 살려서 내보내려고 판 길이야.”
“십수 년은 걸렸겠군.” 무겸이 벽을 손으로 쓸었다. “이 합금, 군에서도 못 본 물건이다.”
통로 끝 문 앞에서 비호가 손등으로 코를 훔쳤다. 피가 아니라 검은 윤활유였다.
“나도 처음엔 배관인 줄 알았어. 근데 진맥기 바늘이 계속 이쪽을 가리켰다며? 누나가 말해 준 뒤로 바닥 아래를 뜯어봤지. 해치 하나가 나오고, 그 밑에 이 통로가 있었어. 그리고…….”
아이는 말을 잇지 못하고 문 안쪽을 가리켰다.
“……여기가 도장 밑이라고?”
“천장이 본관 마당만큼 높다.”
“저 보일러 셋은 아직 따뜻해요. 누가 계속 돌봤다는 얘기예요.”
벽마다 설계도가 붙어 있었다. 누렇게 바랜 것도, 어제 그린 듯 선이 선명한 것도 있었다.
“황동 다리의 각도, 코테르 감응부의 진동수, 조종자의 신경 부담을 줄이는 완충 도선까지……. 그리고 이 여백에.”
강민이 소리 내어 읽었다.
“그 아이가 달아날 길.”
“이쪽에도 있어. 찢어진 도면에도, 계산을 고친 자리 밑에도.”
“사부님은 도망치라는 말을 한 번도 안 하셨는데. 늘 버티라고만, 검을 놓지 말라고만…….”
무겸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할 수 없는 얼굴이었다.
“이런 걸 십수 년 동안 숨겨 두고도, 밥상머리에서 한마디도 안 하셨단 말이냐.”
“무겸 형, 지금은 그 얘길 할 때가 아니잖아요.”
“……알고 있다.”
격납고 중앙에 그것이 웅크리고 있었다. 호랑이의 골격을 닮은 장갑이 황동 비늘로 덮였고, 꺼진 쌍안 감응등만으로도 목덜미가 서늘했다.
“높이가 사 미터 가까이 되겠군.”
“3.8미터요. 자체 중량 1.9톤. 이름은 기갑호(機甲號)래요!”
비호가 어느새 기체 아래로 기어 들어가 이음쇠를 만지고 있었다.
“배기구 보세요. 여섯 개예요, 여섯 개! 이건 빨리 달리려는 병기가 아니야. 뭔가를 짊어지고 험지를 뚫으려는 병기야.”
“사부님이 미쳤어.” 아이의 목소리가 울음 섞여 떨렸다. “이걸 혼자 만들었다고? 우리 밥 먹고 수련하고, 내가 보일러실에서 졸던 그 밤들에? 혼자서?”
아무도 대답하지 못했다. 천장이 울리고 돌가루가 기갑호의 등으로 떨어졌다.
“위에서 해치를 찾고 있다. 오래 못 버틴다.”
“알아요!”
비호가 조종석 위로 기어올랐다. 아이 하나가 겨우 앉을 좌석 중앙의 굵은 레버에는 붉은 봉인과 네 글자가 음각되어 있었다.
光輝隱身.
“광휘은신…….” 서란이 낮게 읽었다. “외피 차폐 장치야. 빛과 열을 동시에 비틀어야 하는데, 이 정도 병기에 실을 수 있는 물건이 아니야.”
“맞아. 보일러 압력만으론 안 돼. 일반 증기를 넣으면 네 발은 움직여도 차폐막은 안 켜져. 여기 잠금부가 있어. 파동을 맞춰야 열려.”
“무슨 파동?”
강민이 물었다. 비호의 시선이 그의 왼쪽 가슴으로 내려갔다. 강민은 그 순간 답을 알았다.
“……내 심장이구나.”
“형…….”
“이걸 열 수 있는 건 나뿐이라는 거지.”
“응. 형뿐이야.”
천장이 흔들렸다. 아주 멀게, 그러나 분명하게 설무진의 검성이 울렸다. 강민은 그 소리를 듣고 앞으로 나섰다. 그는 기갑호의 황동 외피에 손바닥을 댔다.
“차가워.”
“형, 숨 맞춰. 사부님이 늘 그랬잖아, 밸브보다 숨부터.”
숨을 들이마셨지만 기운은 흐르지 않았다. 대신 왼쪽 가슴 안쪽 빈자리에서 차가운 박동이 먼저 대답했다. 쿵.
“내 심장이 아닌데…… 내 몸속에서 울려.”
“푸른 서리가 번져요!”
“압력계 올라간다! 첫 번째, 두 번째!”
“으윽……!”
“강민아, 내 목소리 들려? 대답해!”
“들, 려…… 괜찮아, 그냥 좀…… 차가워서.”
“그만해!” 서란이 달려가려 했다.
“지금 끊으면 더 위험하다.” 무겸이 팔로 막았다.
“신경이 타 버려요, 무겸 오라버니!”
“알고 있다. 그래도 지금은 안 된다!”
강민은 들을 수 없었다. 손바닥에서 왼쪽 가슴까지 찌르는 통증이 이어졌다. 뺨의 눈물에 피가 섞여 있었다. 닦을 손도 없었다.
“형, 숨 쉬어! 숨 안 쉬면 나사가 안 맞아!”
“세 번째 바늘! 다 올랐어!”
“쌍안등 켜진다! 다리가 펴져, 발톱이 돌을 잡았어!”
“보일러 여섯 개 전부 숨 쉰다!”
푸른 증기가 후방에서 차례로 토해졌다. 포효가 아니라, 긴 세월 참아 온 첫 숨 같았다. 비호가 조종좌에 몸을 던졌다.
“민이 형! 조금만 더 버텨! 내가 차폐를 맞출게!”
“비호야, 네 몸은?”
“내 몸 말고 기체를 봐!”
양손으로 조종간을 잡자 좌석 옆에서 가느다란 감응침이 튀어나와 손목에 붙었다. 서란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신경 동기화 장치야! 너한테 맞춘 물건이 아니야!”
“그래도 읽을 수 있어.” 비호가 봉인 레버를 움켜쥐었다. 작은 손이 떨렸지만 놓지 않았다. “사부님이 일부러 어렵게 안 만들었어. 내가 보라고 만들어 두셨어.”
천장이 갈라지며 목인의 강철 팔이 구멍을 뚫고 내려왔다.
“위다!”
“광휘은신, 초점 맞춰!”
레버가 내려갔다. 황동 비늘의 빛이 꺼지며 네 다리가 먼저 지워지고, 마지막으로 쌍안등이 깜빡이고 사라졌다.
“사, 사라졌어…….”
“빛이 안 보여요. 열도…….”
“이게 가능하단 말이냐. 움직인다! 그런데 발소리가 안 나!”
목인이 목표를 잃고 붉은 눈을 흔들었다. 보이지 않는 1.9톤이 지나가자 발목이 차례로 으스러졌고, 어깨 장갑에 들이받힌 자동병이 배관에 처박혔다.
“모두 측면 고리에 붙어! 해치 안은 나 하나로 꽉 차! 누나, 부상자 먼저!”
허공에서 비호의 목소리가 났다.
“알았어! 무겸 오라버니는 강민이 허리띠를 잡아 주세요!”
“맡겨라!”
서란이 부상자 둘을 발판에 묶는 동안 무겸은 한 손으로 강민의 허리띠를 쥐었다. 강민은 손을 떼지 않았다. 떼면 모두가 죽는다.
“형, 내 숨소리 들려?”
“들려! 집중해, 비호야!”
“집중하고 있어! 형이나 안 놓치게 이를 악물어!”
기갑호가 궤도를 달렸다. 감응등이 접근을 느끼고 하나씩 켜졌다. 마지막 도면의 여백이 눈에 들어왔다.
“그 아이가 달아날 길. 그러나 언젠가 돌아올 수 있도록, 문은 안쪽에서도 열리게 둘 것.”
강민이 숨을 삼켰다.
“사부님…….”
◆
“뒤에서 붙는다! 좌측 셋!”
“비호야, 숨 쉬어! 입으로라도 쉬어!”
“쉬고 있어요, 누나! 조용히 해요, 소리가 겹치면 헷갈려요!”
무겸이 발판에 매달린 채 창을 뒤로 뻗어 목인의 안광을 하나씩 깨뜨렸다. 차폐도 무게가 남긴 진동까지는 지우지 못했다.
“몇 분 버틸 수 있냐!”
“몰라요! 계산하면 틀려요, 감으로 가요!”
비호의 코에서 흐른 피가 입술까지 내려왔다. 열세 살의 뇌가 1.9톤의 몸을 빌려 뛰고 있었다.
“사부님, 이거…… 생각보다 어렵잖아.”
“비호야! 코피!”
“말 걸지 마! 지금은 내가 형보다 형 말을 더 안 들어!”
강민은 그 우스운 대답에 공포를 잠깐 잊었다. 웃지는 못했지만 그 말에 매달렸다. 마지막 굴곡을 돌자 두꺼운 석문이 앞을 막았다. 바깥에서 쇠사슬 끌리는 소리가 들렸다.
“바깥에 포위망이다. 소리가 열 명은 된다.”
“꽉 잡아요, 둘 다!”
“뚫는다.”
“그거 너무 쉽게 말하는 거 아니냐!”
“쉬워서 말하는 거 아니야! 형, 남은 거 전부 밀어 줘! 석문 앞에서 차폐 풀면 끝장이야!”
강민이 남은 청염을 외피로 밀어 넣었다. 고통이 한 번 더 깊어졌다.
“가라!”
콰과광!
석문이 산산이 부서지며 터져 나갔다. 바깥의 흑영은 돌이 부서지는 것만 보았다. 보이지 않는 네 발이 포위망 한가운데를 짓밟고 지나갔다.
“오른쪽 갈고리 온다!”
“내가 끊는다! 서란 누나, 부상자 입 막아! 연기 들어간다!”
“벌써 막았어요!”
출구 밖은 절벽 산길이었다. 광휘은신이 흔들려 황동 비늘이 안개 속에서 번쩍였다.
“화살 온다! 두 발!”
“알아! 반사 각도 틀었어!”
“손이 왜 그래, 비호야!”
“경련이야, 괜찮아! 팔꿈치로 누르면 돼! 조금만……. 조금만 더.”
“충분하다, 비호야! 차폐를 풀어!”
“여기서 풀면 뒤가 보여!”
“네가 먼저 쓰러지면 우리 전부 떨어진다!”
비호가 이를 악물고 중얼거렸다.
“그 아이가 달아날 길……. 형은 혼자 안 도망갈 테니까, 나도 살아야 돼.”
기갑호가 절벽 그늘 아래 암반 위를 미끄러져 멈췄다. 차폐막이 유리처럼 금이 가며 사라졌고, 해치가 열리자 비호가 고꾸라졌다. 강민이 가까스로 받았다.
“비호야! 정신 차려!”
“……나 잘했지?”
아이의 코밑에는 두 줄의 피가 말라붙어 있었다. 서란은 말없이 소매로 피를 닦았다. 꾸짖지도 고맙다고 하지도 않았다.
“맥이 빨라. 입 벌려 봐. 혀 깨물었니?”
“괜찮아요. 누나, 나 진짜 잘했죠?”
“……그래. 아주.”
“비호, 잘했다.”
“형들 어깨 아파요? 내가 너무 세게 달렸죠.”
“추격조는?”
“아직 못 내려온다. 부상자 둘도 숨은 쉰다.”
무겸이 나직이 대답했다. 살아남았다. 그런데 아무도 그 말을 하지 않았다. 모두가 같은 방향을 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검령성 도장이 불타고 있었다.
북쪽 하늘이 붉어졌다. 본관 쪽에서 거대한 폭발이 솟구쳤다. 먼저 빛이 왔고, 다음에 소리가 왔다.
쿠구구구궁.
“종루가…….”
“기와가 날아간다. 본관이 무너지고 있어.”
“사부님…… 아직 안에 계신 거죠?”
“……그래. 계실 거다.”
산비탈이 흔들릴 만큼 큰 진동이 절벽까지 밀려왔다. 매일 새벽 강민이 열던 보일러 굴뚝이 푸른 불길을 토하더니 허리가 꺾인 사람처럼 쓰러졌다.
강민의 다리가 먼저 움직였다. 한 걸음 나아갔을 때 무겸의 손이 어깨를 붙잡았다.
“가지 마.”
“놓으세요, 형.”
“사부님이 너를 내보낸 이유를 생각해라.”
“이유 같은 거 몰라요.” 목소리가 갈라졌다. “저 안에 사부님이 계시다고요!”
“그래서 네가 살아야 한다.”
“살아서 뭘 해요!”
외침이 절벽에 부딪혀 돌아왔다. 그때 강민의 왼쪽 가슴에서 분명한 박동이 울렸다. 푸른빛이 옷깃 아래에서 새어 나왔고, 식어 가던 기갑호의 보일러가 낮게 대답했다.
“그 빈자리…….” 서란이 숨을 들이켰다.
“누나, 또 뛰어. 폭발 소리랑 똑같은 간격으로. 쿵, 쿵. 아프지 않아. 오히려 너무 선명해.”
“뭐라고 하는 것 같아?”
“돌아가라, 아니 버리지 마라, 아니 아직 끝나지 않았다. 세 가지가 한꺼번에 와.”
그 순간 기갑호의 꺼져 있던 중앙 계기판 하나가 저절로 켜졌다. 비호가 흐릿한 눈으로 고개를 들었다.
“이상해……. 동력은 내렸는데. 박동이 두 개예요. 하나는 형 가슴이랑 똑같은 파란 박동, 하나는 불타는 도장 쪽에서 깜빡이는 하얀 박동.”
“사부님이야.” 강민이 말했다. 생각이 아니라 몸이 알았다.
“잠깐, 그 옆에 뭐가 붙었어요. 검은 점이에요. 하얀 박동 쪽으로 가요!”
“붉지도 푸르지도 않은 점이다.” 무겸의 얼굴이 굳었다.
“침 준비할게요.” 서란이 청동 침을 뽑아 들었다.
“나도 올라갈래요. 조종석 비워 두면 안 돼요!” 비호가 입술의 피를 삼키며 기어오르려 했다.
강민은 무겸의 손을 천천히 떼어 냈다. 이번에는 뿌리치지 않았다. 손가락 하나씩, 예의를 갖춰.
“민아.”
무겸이 불렀다. 강민은 대답하지 않았다. 계기판의 검은 점이 백색 박동 바로 앞에서 멈췄다. 절벽 아래까지 들릴 리 없는 목소리가 강민의 가슴 안쪽에서 또렷하게 울렸다.
“심장을 보러 왔다.”
강민의 눈동자가 푸르게 식었다. 그는 기갑호의 차가운 외피에 다시 손을 올렸다. 이번에는 기계가 먼저 대답했다.
“비호야.”
아이의 피 묻은 입술이 떨렸다.
“응.”
“문 열어.”







































